제 6장
척하면 척이지 ⑵
화끈하게 몸을 푼 정우는 집으로 공 간을 이동했다.
정우는 방으로 들어가서 문주와의 전 투를 복기해 보았다. 10단의 현천공을 제대로 사용할 시험 대상은 많지 않았 다.
‘이거, 생각보다 더 대단한데?’
9단의 현천공과 10단의 현천공은 아 예 다른 영역이었다. 그저 한 단계의 차 이가 아니라, 단계를 매길 수 없는 격차 가 있었다. 이전까지 문주와 수도 없이 싸웠지만, 오늘처럼 수월하게 제압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문주가 강했던 것 도 있지만, 10단의 현천공이 가진 위력 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라니.’
깨달음을 얻어 단계를 벗어났음에도 컨트롤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10단 은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파워업을 이 룬다. 단순히 전투력만 강해진 게 아니 라, 모든 부분에서 한 단계 이상을 건너 뛰었다.
-그 말도 안 되는 영역은 대체 뭐냐?
문주조차도 얼이 나갔던 걸 감안하면, 10단의 현천공이 얼마나 대단한 경지인 지를 체감하게 해 준다. 전생의 경험에 서도 얻지 못한 성과였다. 하지만 그만 큼 위험한 영역이기도 했다. 순간순간 통제가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않았던 생소함마저 느꼈 다.
‘재밌네.’
솔직히 쉬웠다.
무공에 관해서는 언제든 벽을 허물고 완전한 통제의 확신이 있었다. 진강백 도 무공으론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 만 10단의 현천공은 다가서면 다가설수 록 손안에 잡히지 않고 있었다.
‘넘어서 주마.’
미개척지가 개척지로 바뀌었을 때의 전율을 즐겼다. 무인으로서 그 맛을 알 면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못한다. 무공의 맛은 알면 알수록 더 깊 어지고, 넓어진다.
복기가 길어졌다.
벌써 새벽 2시가 되어 갔다.
“혼자가 아니네.”
정우는 기감을 열어 동생을 감지했다. 혼자 온 줄 알았는데, 1명이 더 있었다. 그것도 같이 붙어 다니며 감시를 도맡 아 했던 소영이 아닌 사내 나부랭이였 다. 여행 가기 전까지 품 안에 넣고 평 생을 간직하려고 했던 동생이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부들부들!
정우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런 걸 배신감이라고 하는 거로군.’
통수는 맞았어도, 배신은 당하지 않는 다. 배신당하기 전에 항상 먼저 치곤 했 었다. 생소한 감정을 느꼈다.
집 근처에서 남녀가 실랑이를 벌인다.
오기 전에 할 것이지, 다 와서 할 일 은 아니다. 굉장히 소모적인 언쟁이고, 불필요하며, 효율적이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처럼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동물이기도 하다.
“나 혼자 갈수 있다니까.”
“데려다주고 싶어서. 우리 사귀는 사 이잖아.”
“난 분명히 시험을 통과한 후에 사귀 자고 했어.”
“통과한 거나 마찬가지지.”
철수의 끈질김에 수연은 답답한 한숨 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대화를 해도 말 이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분이 참 묘 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항상 주변의 애 들보다 덩치가 커서 여자로서의 대접은 받아 보지 못했었다. 애들의 우상화에 시달렸던 기억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지켜 줄 대상을 잘 못 고르기는 했어도, 철수로 인해 여자로 대접받는 기분이 다.
“말술이더라.”
“싫지?”
“아니, 더 좋아.”
“어림없어.”
“아니거든?”
수연과 철수는 과에서 술에 관해서는 톱을 달린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를 않았다. 항상 모두가 쓰러졌을 때 멀쩡 하게 일어나서 귀가하곤 했다.
두둥!
집에 도착하자, 철수는 그 엄청난 규 모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소영을 통해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이상이었다. 집의 규모도 그렇지만, 담벼락에 들어간 정성도 무 시 못 했다. 어떤 건축사가 설계했는지 몰라도, 아귀가 딱딱 들어맞고, 주변과 의 조화도 완벽하다. 건축에 대해 문외 한인 철수조차도 감탄하게 만드는 작품 이었다.
“와, 엄청 잘사는구나.”
“너도좀 살잖아.”
“너희 집하고 우리 집을 비교하면 초 가집보다 못해.”
“포기할래?”
“난 자격지심 같은 거 없어. 여자 친
구가 잘살면 나야 좋지.”
“또 모르지.”
“사귀어 보면 알걸?”
“얻어먹게?”
“더치페이 좋잖아.”
“그건 맞아.”
철수는 수연을 좋아하는 거지, 그녀가 가진 재산이나 배경을 원하지 않았다. 설령 수연이 더 훌륭한 유니크가 되어 수입이 좋아진다고 해도 괜찮다. 자신 도 먹고살 정도의 수입은 된다. 본인이 못났다고 해서 자격지심을 갖는 것이 더 못난 행동이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 다 해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남을 탓하는 행위는 옳지 않았다.
드륵!
문이 열렸다.
움찔!
수연은 깜짝 놀랐다.
자동문이 열리자 그 앞에 오빠가 떡 하니 서 있었다. 온다는 말도 없이 오빠 가 나타나서 당혹스러웠다. 부모님이 연락이라도 해 줬으면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철수와 같이 오는 바람에 모든 일정들이 꼬이며, 뒤죽박죽이 되었다. 사고를 깊이 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 다.
“오빠, 언제 온 거야?
“오늘. 옆에는?”
정우의 시선이 사내 나부랭이를 향했 다.
긴장한 기색이 완연한 철수는 황급히 90도로 인사를 올렸다. 수연의 오빠인 이상, 형님으로 모셔야 할 어려운 대상 이다. 첫인상이 중요하듯, 잘 보여야 했 다.
“안녕하십니까! 수연이의 남자 친구인 정령학과 3학년 장철수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형님!”
“넉살은 좋네.”
수연이 도중에 말을 끊었다.
“아니야, 오해하지 마.”
“오해 아닙…… 맞습니다.”
수연이 도끼눈을 뜨자, 철수는 찔끔하 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고 싶지는 않았다. 과제가 남아 있지만, 발목을 잡지는 않을 것이 다. 수연이 부끄러워서 허둥지둥 댄다 고 봤다.
그 모습도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지 보고 있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한다. 우리 수연이는 언제부터 이렇게 예뻤으 려나, 형님을 보니 이해는 된다.
“얘가 장난친 거야.”
“장난 같진 않은데.”
현천공을 운용하진 않았다. 그랬다간 눈치 빠른 오빠가 바로 알아챈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육신의 반응에 관해서는 독심술사도 울고 간다. 왠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독심술이 아닌, 그냥 심술이 전해진다. 수연은 난감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철수가 조금 안쓰러웠다. 되 도 않는 제한을 걸어 놓은 꼴이 되었다.
“형님.”
“선배.”
정우는 정정해 주었다.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고의가 된 다. 동생이 아니라고 했으니, 형님이란 소릴 들을 이유가 없다. 사내 나부랭이 와는 거리를 두라고, 예로부터 그래 왔 었다. 아버지에게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물론 동생이 서른 넘어서도 집 구석에서 탱자탱자 하면 그땐 달라지겠 지만.
철수는 이왕지사, 본론으로 넘어가기 로 했다.
“선배님, 죄송하지만 저하고 겨뤄 주 십시오.”
“호오, 배짱이 좋네.”
수연은 아차! 했다.
다른 때와 달리 굉장히 눈치가 없는 철수다. 적당히 구슬려 보낸 다음에 말 하려고 했거늘 성격이 굉장히 급했다. 한편으로 이해는 된다. 3년이나 기다렸 으니 조급함이 극에 이를 수밖에.
“한 수면 됩니다.”
“내 한 수를 버틸 자신이 있단 거냐?”
“수연이 그랬거든요. 형님…… 아니, 선배님의 한 수를 견디면 사귀기로.”
“아, 그렇게 된 거였구나.”
정우의 시선이 수연을 향했다.
‘그럼 그렇다고 말할 것이지.’
척이면 척이다.
초면부터 다짜고짜 겨루자고 하는 게 수상했는데, 안심이었다. 수연이가 평생 내 품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 줄도 모르 고 의심했었다니, 오빠로서 동생을 믿 지 못한 죄책감에 한없이 미안할 따름 이다. 그 보답으로 보다 확실하게 오빠 의 실력을 보여 주는 수밖에.
- 오빠.
수연이 전음을 보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말?
-확실하게 보내 주마. 네 마음이 그런 줄몰랐단다, 미안하구나.
-지금 무슨소리 하는거이?
?부끄러워하긴.
오빠의 전음에 수연은 오빠가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수습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철수에 대한 마음 도 정리하지 않은 마당이라 더더욱 그 렇다. 하물며 이제 와 아니라고 해 봤자, 오빠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휙!
정우가 손을 젓자, 공간이 형성되었 다.
의지가 곧 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조화 지경을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능력자 의 여유와 권리를 맘껏 사용해 주었다. 가지고 있음에도 주위 눈치가 보여서 사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우(愚)를 범하지 않는다.
“이건?”
“마법 결계다.”
“과연 듣던 대로 대단하십니다.”
“뭘 들었건 그 이상일 거다.”
“저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철수도 얌전히 손을 놓고 있진 않았 다.
선배에 대한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고, 어느 정도의 능력인지를 확인했다. 마 법학과로서 처음으로 MT에서 우승을 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사 건 사고의 중심에 있었다. 이제는 사라 져 버린 흑호문의 혹호를 처리하고, 상 급 학년과 대등한 결전을 벌였다고 했 다. 그 이후로도 시간이 꽤 흘렀으니, 실력은 유니크 전문학교 내에서는 톱클 래스가 분명하다.
‘아니 왜 결계까지 치고 지랄이야!’
수연은 오빠가 작심했음을 체감했다.
지나치게 진심이라서 말릴 엄두가 나 지 않았다. 괜한 말을 했다가는 역사 속 으로 사라져 버린 국어책 속의 영희 꼴 이 될 수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겠지, 라는 자기 합리화를 해 버렸다.
‘젠장, 쉴드 오빠들로 할걸.’
쉴드 오빠들이 비록 환장할 만한 극 강 방어력을 갖추기는 했어도, 피해를 입히지는 않는다. 그때는 신경질이 나 서 오빠를 거론했지만, 지금에 와서 후 회가 밀려온다. 무얼 상상하든, 그 이상 을 언제든 당연하게 보여 주었던 오빠 다. 넘사벽이란 단어는 오빠를 위해서 존재했다.
‘그래도 적당히 하겠지.’
수연의 뇌리로 오만 가지 상념이 스 쳐 지나갔다.
‘넌 전력을 다해!’
그래 봤자 안 된다는 걸 모르지 않지 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혹시나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가 작 용했다.
“화아야, 부탁해.”
불의 정령을 불렀다.
화르르!
최상급 불의 정령을 소환한 철수는 정령합신(精靈合身)을 이루었다. 격렬한 화기는 극대화되어 발산된다. 강철을 물처럼 녹여 버리는 극화점을 초월한다. 정령합신은 정령술 중에서도 최상급의 정령 스킬로서 정령학과에서도 가능한 정령술사는 철수와 수연이 유일했다.
파괴력이 급상승하는 만큼 소모되는 정령력도 상당하다. 지속 시간이 길어 지면 근원이 바닥나 치명타를 입을 수 도 있다. 무공을 익혔다면 본원진기를 소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사용한다는 건, 작심했다는 의미가 된 다.
“갑니다.”
“와 봐.”
철수는 최상의 전력을 끄집어냈다. 정 령합신에 이어 본문의 비전절기인 황룡 신화기(黃龍神火氣)를 운용하여 화천신 격포(火天返擊5W 발출했다.
꽈아아앙
화기의 극점에 이른 화천신격포의 파 괴력은 엄청났다.
철수가 자랑할 만한 절기임에는 틀림 없다. 잠재등급 6급의 천재라는 수식어 가 부끄럽지 않은 수법이었다.
문제는 천재건, 범재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있었다.
휘이잉, 쿠다다당!
뻗어 나갔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튕 겨 나간 그림자는 바닥을 인정사정없이 굴러다니며 청소해 주었다. 직선으로 길게 난 흔적들이 자의가 아닌 타의라 는 사실을 드러낸다. 결계에 부딪쳐서 멈춰 선 신형의 동공은 흰자위만 남았 다.
부르르르!
게거품을 물며, 풍 맞은 환자처럼 바 르르 떨었다. 의식은 순식간에 사라졌 으니, 고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철수o 卜!”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처참한 사태 에 수연은 그제야 반응했다. 예견된 사 고임에도, 도가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 괜찮아?”
≪.2”
괜찮으면 대답했겠지.
철수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하아, 고 녀석. 성질 급하기는. 의식 만 끊어 놨으니 괜찮을 거다.”
대인배처럼 뒷짐을 지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오빠의 모습. 수연은 소름 이 제대로 돋았다. 철수를 한 방에 보내 버린 파괴력, 그건 절대 평범하지 않았 다.
‘이러다가 시집은커녕 평생 모솔 되는 거 아냐?’
오빠의 오해가 커지고 있었다.
“네가 날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줄 몰 랐다. 진작 말할 것이지, 부끄러워하기 는 ”
오해를 해선 안 되는데, 부연 설명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정우로서는 지극히 당연했다. 수연보
다 못한 녀석이 본인의 일격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사내를 거절하기 위한 핑계를 댔을 분 이다. 동생의 마음을 알아본 정우는 흡 족했다.
‘완전 센스 쩔었다.’
멋있는 오빠의 아름다운 역할이다.
‘망했어!’
수연은 오빠의 미소에 절망했다. 저리 좋아하는 오빠에게 아니라고 말할 용기 가 생기지 않는다. 오빠는 대범하다고 하지만, 밴댕이 소갈딱지보다 작은 아 량을 가지고 있었다. 반드시 보복이 있 을 것이다.
‘얘도 큰일 났네.’
철수를 내려다보는 수연은 안쓰러웠 다. 이 녀석의 성향 상 한 번으로 포기 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될 턱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