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금의환향(錦衣^) (1)
분명 고의가 맞는데, 공교로울 만큼 자연스럽다. 이때까지는 그대로 참을 만하다. 평소 참을 인(仁) 자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서 성 격이 많이 원만해졌다. 이만하면 부처 님처럼 자비롭다. 하지만 돌아서며 희 미하게 웃는 걸 보고 있자니, 빡침이 승 천한다. 더 참다가는 명치에 암이 걸릴 것같다.
“나 진짜로 화낸다.”
“어머, 여자를 때리시는 분인가요?” 방송 수위를 절묘하게 건드린다.
지능적인 유인책에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인자하게 웃으려니 얼굴에 경련이 온 다.
“누가 그렇대?”
“아주머니가 불쌍해요.”
“안사람은 건들지 마.”
가족을 건드리네.
이 호로 잡……!
“여자는 보호해 주어야 하는 대상이 에요. 아닌가요?”
“……그렇지.”
여자건, 남자건 잘못했으면 처맞아야 한다는 그의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하 물며 웃고 즐기는 예능에서 진심이 나 오면 속 좁다고 지랄할 게 분명하다.
투득, 투득
대신 근육들이 성을 낸다. 인간이 완 성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근육을 자랑 하고 있었다. 각진 근육들이 언어를 구 사할 수준에 도달했다. 꿈틀거릴 때마 다 선명해진 핏줄이 터질 둣이 부풀어 오른다.
‘살짝 한대만 칠까?’
한 대 정도는 괜찮잖아.
이호극은 계속 속을 긁어 대는 하라 로 인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속 을 어찌나 잘 뒤집어 놓는지, 짜증 나게 도 정우와 아주 잘 어울렸다. 지금도 이 럴진대, 어디다 내놔도 뒤지지 않는 염 장 부부가 될 공산이 농후하다.
“컷,아주 좋습니다!”
“좋기는 어디가‘?”
왜 좋고 지랄이야?
안 좋아, 나는!
“진짜로 때렸으면 문제가 되겠지만, 문주님이 그러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 까.”
“그렇긴 한데, 나 열 받아서 뒈지는 꼴 보고 싶은 건 아니지?”
더 열 받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강 피 디였다. 온도가 올라갈 때마다 시청률 도 수직 상승했었다.
“……물론이지요.”
“강 피디, 왜 말을 더듬어?”
“제가 언제요.”
강 피디로서는 금강문주가 역정을 낼 수록 시청률이 오르고 있어 일거양득이 었다. 저 큰 덩치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편으로 교묘히 간극을 조절하는 하라의 방송 짬밥이 놀라웠다. 정말 얄밉지만, 선을 잘 지켰다. 눈살을 찌푸릴 만한 대화나 상황은 만들지 않았다.
15분간 쉬고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 다.
효린이 상황을 만들어 가고, 하라가 동참하는 가운데 호극이 적당히 빠져
주지 못해서 이상한 연출이 되었다. 나 브지는 않지만 좀 더 재밌을 상황이었 는데 안타깝게 되었다.
“누차 말하지만, 문주님은 낄끼빠빠가 안 돼서 문제예요.”
“뭔 빠’?”
빠돌인가?
“낄끼빠빠 몰라요? 세대 차이 많이 나 네요. 그치, 효린아?”
효린도 그때만큼은 아빠의 편을 들어 주지 못했다. 이미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흔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난 그런 말 처음 듣는다.”
“많이 들을걸요? 그래도 볼매니까 시 청률은 오르네요.”
“……그렇지.”
볼매?
볼 때마다 매질해 달란 소리로 들린 다. 그럼 땡큐이긴 한데, 아닌 것 같다. 칭찬인지 아닌지 몰라 이호극은 가만히 있어야 했다.
아직도 낄끼빠빠?가 뭔지 고민하고 있 었다.
‘뭐야, 이 말 같지도 않은 단어는!’
효린은 알고 있을 테지만, 물어볼 수 가 없다. 하라의 신안과 천원일기공이 만만치가 않았다. 이 망할 놈의 피디가 이때는 속성 무력화를 쓰지 않는다. 그 렇다고 성질대로 하기도 어렵다. 대선 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문제를 일으 켜선 안 되었다. 벌써부터 견제가 들어 오고 있었다.
-대선 주자가 지나치게 방송을 많0]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건 명백히 불공정한 선거 유세입 니다.
공정한 선거를 위한다면 방송 출연 을 자제해야 합니다.
딱히 방송을 더 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지만,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하니 더 하고 싶어지는 이상한 반항심이 생겼다. 그러나 공정하지 않은 경쟁을 하고 싶 진 않았다. 별것도 아닌 잡것들하고 경 쟁을 하는데, 굳이 유리하지 않아도 된 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정우가 있다 이거야.’
중국에서의 성과를 간간이 듣고 있었 다. 사실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되놈 들이 정우를 대적할 수 있을 거라 기대 하지 않았다. 정우의 라이벌은 이 세상 에 자신분이었다.
‘카드가 살아 있는 한.’
정우가 실패했다면 카드가 정지되었 을 텐데, 여전히 긁는 맛을 즐기고 있었 다. 한도가 정해지지 않은 카드의 사용 이 아주 맘에 든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 는 부분이 있었다. 대선 주자로서 카드 사용이 많아지면 팽가와의 관계를 거론 할 빌미를 제공한다. 순수한 의도든, 아 니든 중요하지 않았다.
부르릉!
해안가의 공영 주차창으로 5톤급 밥 차가 도착했다. 이호극이 밥차로 가려 고 하자, 강 피디가 따라붙었다.
“이러실 필요는 없는데요.”
“뭐?”
“스태프들을 위해서 밥차를 주문하신 거잖아요. 다 압니다, 은근히 츤데레세 요.”
**.2”
이호극은 사실대로 말 못 했다.
‘내 개인 밥찬데.’
1 인용.
백금단의 천호가 밥차에서 내려 이호 극을 향해 걸어왔다.
이호극의 개인 경호를 맡게 되면서
백금단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금강문주 의 등살을 이겨 내기란 간단하지 않았 다. 방송에서의 짜증을 자신들을 향해 푸는데, 무지막지했다.
“문주님! 개인…… 크악!”
가공한 무형의 경력이 천호를 가격했 다.
그는 한 방으로 저 멀리까지 날아가 서 처박힌 채 땅바닥을 굴렀다. 주변을 호위하는 백금단은 입을 다물었다. 뭐 가 뭔지 모르지만, 괜한 말을 하면 백금 단주 꼴을 면치 못할 게 뻔했다.
“자자, 내가 쏘는 것이니 맘껏 들어.”
“……고맙습니다.”
한 끼 덜 먹는다고 죽지 않는다.
정우는 하북팽가로 돌아왔다.
그사이 하오문을 통해 오대세가의 통 합을 널리 알렸다. 최대한 사실에 기반 을 두고, 피해가 적지 않다는 걸 밝혔다. 극적인 상황으로 치달았지만, 결국에는 대타협을 이루어 냈다는. 현실적으론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타협처럼 비쳐 졌다.
정우는 암묵적으로 오대세가의 대호 법이 되었다.
각 세가의 핵심 수뇌부들은 정우의 명으로 혼례를 치러야 했다. 혈통을 중 시하는 오대세가로서는 껄끄러운 일이 었으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굳이 피해 현황을 외부에 알릴 필요 가 있을까요?”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곧이곧대 로 믿진 않겠지.”
“개방이 나선다면 그렇긴 한데, 위험 하지 않겠어요?”
“말을 잘 듣게 하려면 혼란을 주고, 쉴 틈을 주지 말아야 해.”
정우는 오대세가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다급하게 밀어붙어야 동기가 생긴다. 시간을 주게 되면 딴 주머니를 차려 할 테고, 그리되면 혼란만 자초하게 된다. 외부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뭉쳐 야 한다는 당위성을 만들어 준 것이다.
“반발이 생길지도 몰라요.”
“그럼 죽겠지.”
정우는 오대세가를 인간적으로 다룰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저들이 하려고 했 던 행위들을 되짚어 보면 대우는 가당 치도 않았다.
“각 세가에 하오문을 받아들이라고
전달했다.”
“고마워요.”
“고마워할 필요 없어, 약속이니까.”
“그래도요.”
약속을 해도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오문의 특성 상 정보만 빼앗 거나, 잔금을 치르지 않았을 때 받아 오 기도 어렵다. 특히 대문파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힘을 가졌으면 그에 합 당한 품격과 신뢰를 갖추어야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필요할 때만 쓰다 버릴 요?]고, 공적만 가로채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하오문은 살기 위해서 고개를 바짝 엎드려야 했다.
“소림과 신강의 동향은?”
“소림에서 회합이 이루어지기는 했는 데, 그 이상은 알아내지 못했어요. 한데, 마교가 정말로 부활하는 건가요?”
“모르지.”
“마교는 위험한 집단이에요.”
“그렇겠지.”
대호법의 무심함에 여운랑은 혼란스 러웠다. 오히려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하긴, 오대세가를 홀로 병합했으니 소림이건 마교건 성에 차겠어?’
여운랑은 대호법의 본질을 알고 있었
다. 그는 포식자다. 누구든 건드리면 처 절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대륙 무림의 오대세가가 제물이 되었고, 철저히 짓 밟았다. 오대세가는 이제 대호법의 명 을 거스르지 못한다. 반발이 일어나 봤 자, 힘을 규합하기도 어렵다. 오대세가 의 병합을 위해 혼인을 하도록 한 것도 계산이 깔려 있었다. 힘이 있음에도 명 분을 중시하며 전략적인 계산까지도 치 밀하게 이루어졌다.
“구파일방일까, 아니면 제3 세력일 까?”
“오대세가는 항상 구파일방의 아성을
넘으려고 애썼어요. 그 단적인 예만 봐 도 구파일방의 저력을 무시하긴 어려워 요.”
정우는 오대세가의 피해를 숨기지 않 았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마교든, 또 다른 세력이든 굳건한 요새를 구축 한 구파일방을 건드리기에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유인할 셈이군요.”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숨어 있는 적을 찾으려고 해 봤자, 꼬 리가 잡히지 않는 한 시간만 소모된다. 그보다는 나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 드는 편이 효과적이다.
“이제까지 숨죽인 세월을 감안하면 이른 시간은 아닐 거예요.”
“마기에 영향을 받느냐, 아니냐의 차 이에 달려 있겠지.”
전자일 경우 마공의 수준이 기대 이 하이겠지만, 후자일 경우는 예상 밖의 난적이 될 수도 있었다.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초월마경에 이르렀다면 자웅 을 겨뤄 볼 만하다.
“공식적으로 활동하고 싶다면 오대세 가와 동맹 관계를 맺게 해 주지.”
“무서운 말을 하시네요.”
여운랑은 간단히 결정하지 못했다. 음 지가 아닌 양지에서 오대세가의 지지를 받으면서 활동한다면 금상첨화였다. 그 러나 그만큼 활동에 제약을 받고, 마찰 의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기회는 많지 않아.”
정우는 속전속결을 원했다.
여운랑은 작금의 선택이 하오문의 미 래를 결정하게 되리라 직감했다. 음지 에서 활동하면 세력이 드러나지 않는다 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숨어 서 활동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오문이 세력을 더 확장하려면 공식적인 행사가 가능해져야 했다.
“좋아요.”
“도박을 좋아하나 보군.”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렇지도 않을걸?”
?日들혼인하는데 전안되나요?”
“쓸데없는 말 할 거면 문파의 정비나
다시 하는 게 좋을 거야.”
“하아! 빈틈이 없으시네요.”
여운랑은 아쉽지만 자리에서 일어났 다.
하오문이 공식적인 이름을 걸고 양지
로 나오려면 해야 할 일들이 태산이었 다. 구파일방의 개방도 반기지 않을 테 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미연에 방비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대호법의 명으로 팽가 대회의(大會議) 가 열렸다.
팽가의 핵심 수뇌부가 된 이극과 하 북삼도, 팽세기가 탁자를 앞에 두고 앉 았다. 대호법이 들어오기 전부터 그들 은 바짝 얼어 있었다.
“가주의 평생소원이 오대세가의 병합 이었는데, 그걸 단숨에 이루어 버리다 니.”
“오대세가로 만족하시지 않겠지?”
“돌아가는 꼴을 보니 구파나 제3 세 력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오대세가의 병합 이 세간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 음에도 오대세가는 분란 없이 협상을 맺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란 변명은 설득력이 빈곤하다.
“정보 싸움이 될 겁니다.”
“그다음?”
“움직이겠지요.”
“골치 아프게 됐소.”
오대세가의 통합에 대호법이 빠져 있 다.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져 버리니, 사실을 얘기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밀이 언제까지나 유지된다는 보장은 어렵다. 오대세가의 전력 약화 의 원인이 밝혀지는 즉시, 풍파는 일어 나게 된다.
드륵!
문이 열리고 남녀가 들어섰다. 그중 사내를 확인한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 다. 뜻하지 않은 인물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