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34화 (434/500)

제 3장

모로 가도 베이징만 가면 되잖아 (3)

장원의 수리는 흑금단이 도맡아서 했 다.

부서진 담벼락과 건물을 수리하는 데

기간트가 동원되어 원래의 모습을 찾아

갔다. 살아남은 황보세가와 제갈세가의 무사들은 망연히 수리하는 광경을 지켜 봐야 했다. 그들로서는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었다. 전투가 끝났다는 생각마’ 저 잊었다. 동료의 허망한 죽음에 흐느 끼지도 못했다. 그저 기계처럼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혹금단을 멍하니 바라 볼분이다.

‘악마 같은 놈들!’

‘탈탈 털었어!’

동료의 죽음도 인지 못 할 만큼, 혹금 단은 악랄했다.

죽은 동료들이 발가벗겨진 채 쌓여

갈 때 공포가 밀려왔었다. 도저히 상대 가 되지 않았다. 집단전에서 수적인 차 이가 3배 이상 나면 승부는 보나 마나 다. 하지만 저들은 수적인 차이를 무의 미하게 했다. 다시 싸운다 한들,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을 새겨 주었다.

움찔!

기간트가 삽질을 할 때마다 그들은 몸서리를 치거나, 경기를 일으켰다. 삽 이 그토록 무서운 마병(魔兵)인 줄 처음 알았다. 세가에서 내어 준 신병이기로 도 삽질을 이겨 내지 못했다. 하늘에서 삽날이 폭우처럼 떨어져 내릴 때 동료 는 두 조각이 되어 허무한 최후를 맞았 다.

“뭘 그렇게 쳐다보는 거요? 도와줄 거 아니면 가서 잠들이나 자라고.”

“새끼들, 무인이라면서 정신줄을 놨 네.”

무인은 사람도 아닌가.

황보세가와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발 끈하려다가 멈칫하며 물러섰다. 기세를 조금이라도 드러내자, 혹금단은 사나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평화롭게 삽질했던 풍광이 어느새 전장의 참혹한 대지로 변했다.

“날개가 꺾인 주제에 다시 붙인다고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졌으면 얌전히 처박혀서 반성이나 하고 있어, 괜히 개기다 처맞지 말고.”

전투를 겪어 보기 전이었다면 발끈했 겠지만, 그들은 기세를 잃었다.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억울하고 분하지 만 저들의 말이 맞았다. 꺾어 버린 기세 는 돌아오지 않았다. 몸은 멀쩡해도, 정 신은 잔인하게 짓밟힌 그대로다.

쩝!

양용익은 입맛을 다시다 말았다.

“살쾡이는 되는 줄 알았는데, 고양이

새끼들이었잖아?”

“원래 수만 믿고 설치는 것들은 알맹 이가 없는 법이죠.”

“우리 얼굴에 침은 뱉지 말자.”

“매일매일 반성하잔 거죠.”

혹금단은 철없이 날뛰었던 과거를 상 기했다. 그때 괜히 설치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버렸으니,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

‘가족처럼 대해 주마!’

혹금단은 저들을 죽일 마음이 전혀 없다. 한 식구가 되었으니, 영원토록 단 주의 밑에서 설거지를 해야 한다.

이상한 말이지만 벌써부터 동지애가 싹튼다.

三7 三7 三7 긔!

오싹!

눈빛이 제대로 맛이 갔다.

황보세가와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이 제야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악귀들과 한 편이 되었음을, 그리고 자신들도 악 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장원의 식당, 넓은 식탁에 음식이 가 득차려져 있었다.

정우는 씨암탉을 푹 삶아 익힌 백숙

의 두 다리를 혼자 시식하고 있었다. 한 입에 한 다리를, 순식간에 뼈를 발라내 는 발골 작업은 완벽했다. 입에 들어가 기만 하면 뼈만 고스란히 나왔다.

통, 통!

뼈를 뱉어 낼 때마다 쇠로 된 그릇에 서 청아한 소리가 울린다.

정우는 같이 앉아 있는 이들에게 식 사를 권유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어서들 먹 어.”

황보신황, 제갈천, 당명천, 당명희, 남 궁환, 남궁수는 젓가락질이 편치 않았 다. 한가로이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게 생겼는가. 금강산이 어디 붙어 있는지 도 모르겠고, 문파의 기둥뿌리가 반 이 상 뽑혀 나갔다. 그 장본인이 앞에서 태 연히 음식을 처먹고 있었다. 죽어 간 무 인의 선혈이 마르지도 않았거늘 밥이나 처먹으라니.

“소태 씹은 표정들 지어 봤자 현실은 변하지 않아. 내가 그런다고 맘이 바뀔 거란 기대는 하지 마.”

어쭙잖은 동정심을 바라지 말라고 못 을 박았다. 밥 다 먹고 나면 마음이 변 하지 않을까, 기대하면 매우 곤란하다.

원래의 계획대로 차곡차곡 진행할 것이 다. 그 외의 기타 건의 사항은 묵살한다. 패자는 살아 있는 거로 만족해야 했다. 농담이라도 거절했다면 세가의 주춧돌 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어떻게 하면 내 뜻을 잘 이행 할 지를 고민하는 편이 좋을 거야.”

툭 던져 놓은 정우는 마저 허기를 채 웠다. 요즘 들어 배 속에 거지가 들었는 지, 문주님 버금가는 왕성한 식욕을 보 이고 있었다.

후루룩!

정우는 차를 마신 후, 식사를 마무리

했다.

차의 본고장답게 다양한 차가 있으며, 맛과 풍미가 남달랐다. 최상의 재료로 제조한 안계 철관음이 입 안을 개운하 게 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봐.”

“이제 어떻게 할 요량이십니까?”

“당연히 오대세가를 통합해야겠지.”

“통합해도 세력 약화는 불가피합니 다.”

“그게 내 책임이라는 거야?”

“누가 됐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겁 니다.”

그들은 현실을 냉철히 봐야 했다. 오 대세가는 전력의 반도 남지 않은 상태 다. 여러모로 이전과 같은 영향력을 행 사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엄살은, 구파일방이 아니면 오대세가 와 대적할 세력은 거의 없을 거야. 하물 며 연합이라면 또 다르지.”

“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거야 형식적으로만 협력했으니 그 렇지.”

정우의 시선이 당명희를 향했다.

움찔!

노골적인 눈빛에 당명희는 안절부절

못했다. 반백 년을 살아오면서 누군가 의 시선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처음이 다.

“?왜요?”

“쟤, 어때?”

정우는 갑자기 중매쟁이가 되었다.

선택을 받은 남궁환의 안색이 어둡게 변해 갔다.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신을 지 목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혼인하지 않은 남녀는 남궁환과 당명희 가 유일했다. 다들 장성한 자식들이 있 었다.

“혼인은 인륜지대사입니다. 차분히 심 사숙고를 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닌지.”

둘러대긴.

정우는 대뜸 정곡을 찔렀다.

“나이가 많지‘?”

M |99

남궁환은 시간을 달라고 하려다가 입 을 닫아야 했다. 당사자 앞에서 저리 대 놓고 말하면 어쩌라고. 막말로 남궁환 의 나이는 이제 막 20대 중반이다. 그 에 반해 당명희는 오십이 넘었다. 일찍 혼인을 했으면 남궁환만 한 자식이 있 을 나이 차다.

그렇더라도 상대는 독봉이다. 정중히 거절을 해도 부족한 판국에 나이가 많 아서 싫다고 거절할 순 없지 않은가.

오싹!

대답이 늦은 남궁환은 의도치 않게 죄인이 되고 말았다.

당명희의 독 오른 안광이 죽일 듯이 쏘아졌다. 육신에 박히는 서슬 퍼런 기 세에 남궁환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남궁세가의 가주가 되었다고는 하나, 독봉과 비교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설상가상, 정우의 주둥이는 멈추지 않 았다.

“자고로 여자는 한 살이라도 더 어려 야 한다지. 여자 나이 서른 넘어가면 그 땐 상종도 하지 말라는 옛말도 있고.”

여성부에서 알면 난리 날 발언을 서 슴없이 하고 있었다.

남궁 환으로서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다. 가만히 있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 었다. 저 괴물이 자신을 살려 두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다른 이도 아니고 독이 잔뜩 올라 있는 독봉을 건드리면 어쩌 잔 말인가. 이대로 있다가는 중독되어 고통스럽게 뒈질지 모른다. 독봉이라면 능히 그리하고도 남을 독심(毒心)을 지 닌 여자다.

“저는 좋습니다!”

남궁환은 살고 싶었다. 독봉이 나이가 있기는 해도, 외모는 20대 중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엄청난 동안이다.

“그래, 사랑 앞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야. 하지만 독봉의 의견도 들어는 봐야 겠지?”

“저는……

선택을 독봉에게 돌렸다.

하지만 선택이랄 수 있을까?

“뭘 망설여, 그 나이에 새파랗게 어린 놈을 만날수 있을 것 같아?”

“따르겠어요.”

말은 끝까지 들어야 했다.

통수 제대로다.

“남녀 불문, 역시 영계가 좋나 봐.”

“?(샹)!”

당명희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거 절하면 가만두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자신은 영계나 밝히는 여자가 되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고 하지만, 저자는 되레 빚을 억만 냥으 로 늘리고 있었다. 입을 열면 열수록 분 노 게이지를 상승시켰다.

독봉이 비록 나이가 많다곤 해도, 그

녀 정도의 능력이면 얼마든지 남자를 골라서 만날 수 있었다. 굳이 남자가 필 요하지 않아 여태 혼자 살고 있었을 분 이다. 괴물의 남녀 차별적인 발언에 엄 중한 처벌을 해야 하나, 주먹이 깡패였 다. 괴물 앞에 일반적인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병신 같은 연놈들이네.’

정우는 남궁환과 당명희의 태도에 혀 를 찼다.

아직도 자기들의 처지를 모르고 있었 다. 이 와중에 찬밥, 더운밥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배부른 투정이었다. 과거의 잘나가던 시절을 바라본다고 해서 현실 이 바뀔 것 같나. 엎드리기로 결정했다 면 체면이나 자존심까지 버렸어야 했다. 그래야 다음에 기회라도 생기지.

“가문의 부흥을 위해서 그 정도의 희 생도 하지 않으려고? 정신이 썩어 빠졌 네.”

정우의 신랄한 비판이 이어졌다.

오대세가의 수장들은 소름이 돋았다. 그저 자신들을 놀리는 줄만 알았다. 하 지만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간 오대세 가가 형식적으로만 뭉쳐 있었다고. 그 런 식으로 안일하게 해서는 위기를 타 개할 수 없다는 걸 꼬집었다.

‘괴물 같은 전투력보다 심기가 더 무 섭구나!’

‘금강문은 어떻게 저런 자를 포섭할 수 있었던 거지?’

괴물의 역량은 일문의 문주로도 부족 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금강문의 일개 단주였다. 과연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오대세가의 혈족이 서로 간의 벽을 허물고 피로 이어진다면 간단히 해결될 사안이지. 아, 차후의 문제는 너희가 알 아서 할 일이고.”

정우는 훗날 뒤죽박죽이 될 후계 구 도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다. 미래 는 현재가 있어야만 존재한다. 현재가 무너져 버리면 미래는 꿈도 못 꾼다. 가 당치 않은 조건은 미연에 차단해 버렸 다.

“구역 정리는 원래대로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남궁세가가 다시 안휘성을 관리하게 되면 표면적인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된 다. 세력의 대부분을 잃어버린 남궁세 가를 다른 세가가 얌전히 두고 본다는 게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각 세가의 핵 심 인물들이 혈육으로 이루어진다면 얘 기는 달라진다. 구파일방이 끼어들 명 분을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서로 간의 감시 역도 되고.’

정우는 오대세가를 장악하기 위해서 감시 체계를 따로 두기로 했다. 그 일환 이 각 세가의 핵심 수뇌부 간 강제 결혼 이다. 배신을 하려고 해도 녹록치 않을 거다. 다른 세가와의 연결 고리가 하나 면 모르겠지만, 그 이상이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족보를 꼬일 때로 꼬아 놓 으면 풀기 어려운 것처럼.

“자자, 한 식구가 되었으니 잘해 보자

고.”

“대답 안 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세가의 핵심 멤버들은 울고 싶은 심 정이었다. 혹금단주의 제안은 완벽했다. 구파일방이 개입할 여지를 제거하면서 도, 오대세가가 공격당했을 때 함께할 명분까지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혈통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다. 차후, 오대세가는 특징을 잃어버린 채 흑금단주의 손에 좌지우지될 공산이 컸다.

“모로 가도 베이징만 가면 되잖아, 안 그래?”

“……그렇습니다!”

정우가 세운 계획의 반은 성공했다. 오대세가를 통합한 후, 대호법이 되어 관리하기로 한 것이다. 오대세가는 대 륙의 지배권을 늘리는 발판에 불과했 다.

‘구파일방만 있다면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제3 세력이 존재했다. 그 들은 대륙의 혼란을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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