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모로 가도 베이징만 가면
되잖아 (1)
수연은 정령학과에 입학해 3학년이 되었다.
3번의 MM 통해 능력을 인정받으며, 학교에서 톱을 차지하고 있었다. 교내 대회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았다.
십전여제(十全女帝)라는 별호가 붙었 다.
마법학과와 마찬가지로 정령학과도 비인기학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 지만, 수연으로 인해 주목을 받게 되었 다. 물론 혼자만의 실력으로 교내 최강 으로 올라선 건 아니다. 같은 학과에 라 이벌인 동기생이 있었다. 둘의 경쟁의 식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정령학과를 이끌었다.
정령학과 주변에 제법 괜찮게 만들어
진 정원이 있었다.
호숫가 근처에 조성된 벤치에 앉은 수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푸념을 늘어놓 았다. 옆에는 의도치 않게 단짝이 된 소 영이 있었다. 중학교 이후로 다시 보지 말자는 절연도 통하지 않았다. 어찌어 찌하다 보니 소영만 남았다. 다른 애들 은 평범한 학교에 진학하는 바람에 어 쩔 수 없는 선택지가 된 셈이다.
방년 열아홉 살의 소영.
수수한 차림이나 예쁨이 만개하고 있 었다. 무공을 익혀 몸매가 균형적으로 발달되었다. 건강하면서도 순수한 소녀 감성이 묻어 나온다. 누구나 보면 호감 을 가질 만한 외모다. 학교에 입학하자 마자 여러 차례 대시가 있었지만, 철벽 녀로 불리고 있었다. 지고지순한 순애 보는 변하지 않았다.
소영은 속성을 살려 파동학과에 입학 했다.
일례로 파동은 어떤 형태로도 변화가 가능하고 파괴력이 상당하기에 인기 학 과에 속한다. 상위권에 속하는 실력뿐 만 아니라, 신룡문과의 특수성으로 인 해 주목을 받고 있다.
수연의 푸념은 납득하기 힘든 현실에
서 오는 괴리감으로 인해서다.
“ 왤까?”
“뭐가?”
“내가 좋아해 주겠다는데 싫다잖아.”
“취향이 다른가 보지.”
“나 정도면 개인 취향은 무의미하다 고.”
“자빽이 심한 거 아냐?”
수연의 미모가 만개하고 있었다.
소영과 더불어 학교 내에서 얼굴로만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연예인 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비주얼이다. 학 교 성적도 톱클래스인 데다가 집안도 나쁘지 않았다. 요즘 한창 주가를 을리 고 있는 하이퍼 팩토리 오너의 딸이면 말 다했지.
“일전에 너 좋다는 사람도 있었잖아.”
“집안 배경 보고 오는 놈들은 딱 질색 이야.”
“너무 얼굴만 보는거아냐?”
“난 얼굴보다 체격을 본다고.”
수연은 남자 얼굴에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얼굴로 밥 벌어먹고 살 것도 아 니고, 조용조용하고 진실해 보이는 성 격이면 딱 좋았다. 돈이야 없다가도 있 고, 있다가도 없는 거고, 내가 벌어도 충분히 먹고살 만했다. 굳이 집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이 정도 능력이면 취직 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오빠가 출장 간 지금이 기횐데.’
오빠가 있을 땐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귀는 낌새라도 보이면 오빠가 어찌 나올지 감당이 되지 않는다. 귀신은 속 여도 오빠는 속이지 못한다. 흑금단 아 저씨들까지 데리고 가는 바람에 모처럼 홀가분한 상황이었다. 열아홉 살 인생, 드디어 모태솔로라는 단어를 떼고 날개 를 달 기회가 찾아왔다.
“나처럼 개방적인 여자가 여태 솔로
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이게 다 오 빠 때문이라고. 오빠만 아니면 확 마!”
“오빠 때문은 아냐.”
“너한테 무슨 말을 하겠냐. 도긴개긴 이지.”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소영의 마음은 알지만, 오빠가 변심을 기대하진 않는다. 딱 보면 바람둥이 체 질인데, 이상하게 한 여자만을 바라본 다. 무엇보다 하라 언니가 만만치 않다. 오빠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제대로 저격 했다.
‘나도 웃겨서 배꼽 빠지는 줄 알았는 데, 오빠는 보나 마나지.’
개그는 쥐약이거든, 오빠가.
오빠의 개그는 혈육조차도 받아들이 기 힘든 최악이다. 어지간해야 받아서 먹지, 대형 똥을 투척하고 지 혼자 웃으 면 남은 사람은 어쩌라는 거야.
‘흑금단 아저씨들이 불쌍해.’
충신은 절대 못 된다.
재미없다고 직언을 해야 하나, 혹금단 의 누구도 감히 불경을 저지르지 못했 다. 웃기지 않는데 웃어야 하는 불합리 함의 결정판이다. 그러니 오빠가 여전 히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 어지간한 급식이면 먹는 시늉이라도 할 텐데, 냄 새만 맡아도 몸서리가 처진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수연은 오빠가 출장 간 사이에 10번 의 대시를 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10 번 모두 퇴짜를 맞았다. 처음에는 뭉그 적거리기에 설레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떨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두렵다고 사내자식이 벌 벌 떨어?
“아, 쪽팔려. 소문내면 알지?”
“알았어.”
수연에겐 예상치 못한 퇴짜였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남자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자신했었다. 왕성했던 자신감이 퇴보하 는 느낌이다. 이러면 진짜로 인기가 없 어서 여태 솔로라는 견적이 나오게 된 다. 그것만은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 았다.
“내가좀 커서 그러나?”
“그 정돈 아냐.”
아니라니, 192cm인데, 소영도 178cm 이긴 하다.
“그렇지.”
“네가고른 애들이 작은 거야.”
“귀엽잖아.”
수연의 취향은 작고 아담하며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내다. 피부가 희면 더 좋다. 품에 꼬옥! 안고 다니면 딱 좋잖 아. 포켓남을 선호하는데, 우락부락한 인상을 가진 녀석들이 다가오면 끔찍하 다.
그때.
두둥
수연과 소영의 얼굴에 그림자가 새겨 졌다.
“왜 남의 일조권을 박탈하고 지랄이
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는 거냐?”
수연의 노려보는 시선 속 사내는 심 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소중한 마음을 배신당한 분위기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연에게는 그저 얼굴에 그림자를 새 겨 놓은 귀찮은 존재였다.
“내가 뭘어쨌다고 앙탈이야?”
“무려 3년이나 널 바라봤어.”
“그 나이 먹고 중2병 오지네. 바라보 면 뭐 어쩌라고?”
“나한테도 기회를 줘야지.”
“처음부터 넌 아니라고 했다.”
수연은 단호박이다.
여지, 주지도 않았다. 괜히 어장 괸리 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아니면 아닌 거고. 남자나 홀리면서 기회를 주 는 척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여자들 때 문에 대다수의 평범한 여자들이 욕을 먹는거다.
사내는 무척이나 억울했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넌 너무 커. 취향이 아니야.”
“그러는 너는?”
사내는 울먹였다.
살면서 처음으로 맘에 드는 소녀를 봤는데, 시작도 못 해 봤다. 원체 남자 를 가까이하지 않아서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3일 동안 무려 10명에게 대시했 단다. 그 말을 듣고 참을 수가 없었다. 학기 초에는 남자를 싫어하는 줄 알았 거늘, 그런 것도 아니었다.
“나도 알아, 나 큰 거. 지금 디스하는 거야.”
“너야말로 그렇잖아.”
“시비 터는 거면 그냥 가라, 처맞을 래?”
“내 마음 알잖아.”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둘의 티격태격을 소영은 대수롭지 않 게 바라보고 있었다. 학기 초부터 여태 까지 몇 차례나 본 적이 있는 장면들이 다. 거칠게 티격태격하지만 둘 다 악의 가 있다기보다는, 원래 성격이 그렇다.
사내는 정령학과 3학년, 장철수.
잠재 등급 6급이며, 최상급 정령을 다 룰 줄 안다. 집안도 나쁘지 않다. 독문 무문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는 황 룡문債龍問)의 후계자이기도 하다. 정 령학과를 단숨에 최고의 학과로 발돋움 하게 한 인재다.
수연과 더불어 쌍두마차였다.
장철수는 198cm의 거구이지만, 체격 은호리호리하다.
말라 보임에도 안을 들여다보면 혹독 한 훈련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 다. 그야말로 모델 포스가 좔좔 흐르고 있는 간지남이다. 실상 수연이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성격도 꼬이지 않 았고, 면상 대비 친절한 편이다.
벌떡!
수연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192cm에 도달한 수연과 철수가 서자,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었다. 호수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처럼 아름다운 영 상을 자아냈다.
수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어딘가 이상했었다.
“너지?”
“위협하진 않았어, 나도 널 좋아한다 고 했을 분이야. 선의의 경쟁을 하자 고.”
“그 얼굴로 다가가서 선의의 경쟁 좋 아하시네.”
“나한테도 최선을 다할 기회를 달라 니까.”
“난 아담한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넌
아니잖아.”
그러자 철수가 몸을 웅크리면서 두 손을 편 채 턱을 괴고, 순진한 눈망울로 수연을 올려다보았다.
“나도 자세히 보면 귀염귀염하다욤 으”
“죽을래?”
못 볼 거 본 수연은 안 본 눈이 있으 면 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런 식으로 안구 테러를 당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나만 가지고 그래!”
“너 잘생긴 거 알아. 근데 사람마다
취향이 있는 거잖아.”
“취향은 맞춰 가는 거라고 했어.”
철수는 수연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 다. 그녀가 있어서 행복하고, 슬펐다. 하지만 다른 놈한테 간다고 하니 참을 수가 없다.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포기 해야겠지만, 여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만 봤었다.
‘끈질기네.’
수연도 보는 눈이 있다.
국어책의 고인(故人)이 되신 철수라는 촌스러운 이름과 달리 굉장히 세련되게 생겼다. 조각 미남,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지간한 남자 탤런트는 처바를 외모를 지녔다. 몸까지 좋아서 따라다니는 여 자들이 꽤 있었다. 바람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데, 지고지순한 성 향에 의외로 상처를 잘 받아서 아닌 척 해도 티가 난다.
“조건이 있어.”
“뭔데, 다 말해. 하늘의 별이라도 따 줄게.”
지금이 쌍팔 년도도 아니고, 그딴 말 들어서 좋아할 여자가 얼마나 될까? 말 발만 보면 오빠랑 닮았다. 그래서일까? 더 거리감이 생긴다.
“까는 소리 말고, 우리 오빠의 일수만 막아봐.”
“잠깐, 일합을 말한 거야?”
“그래.”
“그럼 오늘부터 1일이네.”
철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동안 철벽을 치기에 굉장히 까다로 운 조건인 줄 알았는데 간단했다. 비록 4년의 차이가 있기는 해도 자신 있었다. 설마 한 수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질까? 이건 해 보나 마나 한 조건이었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철수였다.
“너도 마음에 있었구나?”
“맘대로 생각해.”
수연의 조건에 소영은 할 말을 잃었 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정우 오빠다. 철 수가 학과 톱을 달리는 정령술사이며 무인이라 해도, 터무니없는 조건이었다.
‘오빠의 일수가 호락호락할 것 깉지?’
안심하는 철수를 보고 있자니, 수연은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저리 좋아하는 데, 조건이 좀 심했다는 후회가 밀려온 다. 들이대지만 않으면 성격은 좋은 놈 인데.
‘죽이진 않겠지?’
왠지 모르게 어둠의 포스를 풍기며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오빠가 연상 되었다. 우주에서 온 데빌처럼 무형강 기를 줄기줄기 부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