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29화 (429/500)

제 2장

자, 벌레 묵자 (2)

차자자작!

검진을 그린다.

정우의 평온함이 비위를 거슬렀던 것 일까? 주제를 모르는 부나방들이 튀어 나와 검을 휘두른다. 검형은 제법 완숙 하고, 실전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검에 실린 살의가 뜨겁다기보다는 차갑 다.

난전 중에 숨어 있는 세가의 병기들.

즉, 암살자 집단이다.

현란함을 배제하고, 회피 동선을 차단 했다. 검극에서 전해지는 살의에 수많 은 죽음이 느껴진다. 하루아침에 완성 되지 않는, 상당한 실전을 겪은 살검(殺 劍)이다.

공기 차단.

-중력 강화.

"인형의 술.

-정신착란.

살검에 특화된 속성도 인상적이다. 무 인에게 있어 호흡은 동작을 완성하기 위한 강약 배분에 중요한 요소다. 한동 안 숨을 참을 수도 있으나, 생명체인 이 상 무한한 시간을 제공하진 않는다. 중 력을 강화하여 운신의 폭을 죽이고, 인 형의 술로 발을 묶는다. 여기에 판단력 까지 흩트려 놓기 위한 속성을 썼다. 도 저히 빠져 나가지 못할 완전무결한 살 법 (殺法)이다.

‘칠살을 쓰게 될 줄이야.’

칠살(七殺), 제갈세가에서 은밀히 키

운 암살자들.

제갈세가의 미래에 방해가 될 만한 위험 분자를 골라서 죽여 왔었다. 살왕 (殺王)의 후예들이기도 하고. 살수에 관 해서는 누구보다 뛰어났다. 여태 실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갈세가는 백도 명문의 세가다. 정파의 기둥이 살객을 키우고 있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지탄 을 받게 된다.

제갈천은 가급적 저들의 실체를 드러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적의 수법이 예 상을 훨씬 넘어섰다. 제갈성의 기관진 법을 능가하며, 기간트를 보유했다. 당 문까지 포섭한 걸 보면 결코 호락호락 하게 봐선 안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해낸 자가 혹금단주다.

‘놈만 죽이면 된다.’

전장의 지배자이기보다는, 한량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갈천은 흑금단주가 전장을 지배하는 조율자임을 파악했다. 그가 죽어야만 밀리고 있는 전장의 흐 름을 바꿀수 있다.

스왁!

살검은 유형의 기운을 외부로 뿜어내 지 않는다. 완벽한 살검은 그 어떤 의지 도 깃들지 않는다. 죽음마저 잊어버린 무념무상, 물아일체의 살수였다. 목표 지점에 도달한 칼은 멈추지 않고 사각 을 역으로 파고들며 숨통을 끊어 놓는 다.

휘익!

찰나, 촌음이라는 시간도 길게 느껴진 다.

난전이 벌어지는 공간과 격리된 정우 와 살수들, 고요함이 자리했다. 언제 뽑 아 들었는지 모를 칼이 정우의 손에 잡 혀 있었다.

뚜르르!

한 방울의 붉은 선혈이 도신을 타고

흘러내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질식할 듯한 적막을 깨뜨리기에는 충분 하다.

풀썩, 털썩!

썩은 짚단을 베어 낸, 실이 끊어진 인 형처럼 칠살이 쓰러진다. 미간, 명치, 심장을 비롯한 사혈에 붉은 점이 새겨 졌다.

“저럴 수가!”

제갈천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오싹한 전율과 소름이 교차한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다. 칠살의 강함 은 단순 수치로만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저들의 살격은 완벽함을 추구했다. 절 대고수를 죽이기 위해 모진 고련을 마 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당연하다 싶을 지경 이다.

‘……완벽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 놈의 도법 은 가장 완벽한 살수였다. 칠살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수준의 차이가 있 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칠살보다 완벽 한 살법은 없다고 자신했거늘, 각인된 현실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저벅저벅!

제갈천은 발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 는 축축이 젖어 오는 육신을 느꼈다. 어 이가 없는 현실이다. 육신이 먼저 긴장 하고, 정신이 압박감을 받고 있었다. 그 제야 감추어졌던 실체가 나타났다.

“이제 좀 감응이 오냐‘?”

히죽이는 정우.

제갈천은 오늘의 운이 좋지 않음을 직감했다. 80년생 잔나비는 밖에 돌아 다니지 말고, 집에서 쉬라는 오늘의 운 세가 나왔었다.

1000 대 200의 수적인 차이에도 불 구하고 전장은 유리하지 않았다. 제갈

세가와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기간트의 무지막지함을 경험하고 있었다. 죽어 가는 장면도 섬뜩했다. 세가의 장로들 이 결전에 참여하면서 밀리는 전장을 겨우 되돌리고 있었다.

“합공하세.”

“그러지.”

황보신황은 제갈천의 제안을 거절하 지 않았다.

그도 칠살이 죽는 광경을 똑똑히 지 켜보았다. 칠살의 암살검은 약하지 않 았다. 그럼에도 혹금단주의 칼에 맥없 이 무너졌다. 당문의 가주가 굴복한 이 유를 알 것 같았다.

“얼레, 합공하려고?”

소국의 무인을 합공해야 하는 제갈천 과 황보신황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 존심이 상했다. 그래서일까? 반드시 죽 여야겠다는 결의가 전해졌다. 자고이래 로 소국은 대국을 넘어서선 안 되었다. 그것이 대륙의 정의다.

“결국 쪽수였어, 대국의 자존심이라는 게.”

“전장은 승자가 지배하는 법이다.”

“솔직하네.”

“대국의 무인을 해한 죄, 뼈에 사무친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정우는 저들의 본심을 읽었다.

중화 이외에는 오랑캐라는 불편한 진 실을. 세계화 시대에 역행하는 논리다. 본인들은 부정하지만, 겪어 보면 안다. 중국인의 마음속에 자리한 중화라는 비 뚤어진 자부심을. 이성적, 논리적으로 파고들수록 괴이한 주장을 편다.

“지나친 국봉은 망국의 지름길이지.”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한국, 중국, 일본의 경쟁 심리는 상당하다.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역사적인 다툼과 상하 관계가 수직적으 로 작용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옳다 고 여기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 인 고찰은 난감하다. 자기 나라에 대해 객관적인 경우는 흔치 않다. 대립되는 역사와 공정을 통한 역사 왜곡이 지속 되는 한, 변하지 않을 간극이다. 역사 교육을 엉터리로 배웠으니, 논점 자체 가 달라질 수밖에.

‘그러니 마찰이 불가피하지.’

정우는 부정하지 않으며, 화해를 위해 노력할 마음도 없다. 역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고 바뀌는 현실도 아니고.

그리되면 지나치게 평화롭잖아.

분쟁이 있는 세상이라야 파격이 있고, 틈이 생긴다. 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정 의롭지 않은 세상이어야 했다. 모두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되면 삶의 중요 한 낙을 잃게 된다.

“국뽕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 보자 고. 크크크!”

정우는 현천공의 9단을 개방했다. 10 단에 오른 현천공은 각 단계별로 전투 력이 최소 1단계 이상 올라갔다. 과거 와 같은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후아아앙

감추지 않고 폭발시킨 현천공의 진력.

폭발적으로 상승한 기운이 장원 전체 를 뒤덮어 버린다.

찌릿찌릿!

협공해야 하는 현실에 내심 자존심이 상했던 제갈천과 황보신황의 동공이 경 악으로 물들어 갔다. 폭주하듯 솟구쳐 오르는 기세가 하늘을 관통하고 있었다. 인간인지 의구심이 드는 가공할 공력의 포화다.

욱신욱신!

심혼을 짓누르는 무지막지한 패도에 제갈천과 황보신황은 급히 가문의 신공 을 꺼내 들어야 했다. 더 이상 방치했다 가는 심맥에 상처를 입을 수 있었다.

10성의 대천성신공(大天星神功)과 수 미천왕신공(M天王神功)을 꺼내 들었 다. 그럼에도 압박이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인간이 담을 그릇을 넘어선다.

‘……괴물 같은 놈!’

‘어디서 이런 자가!’

하북팽가가 어처구니없는 괴물을 대 륙으로 불러들였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저자는 하북팽가가 감당할 그릇이 절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이용할 목적 이었겠지만, 최악의 화근을 불러들인 격이다.

“자, 그럼.”

정우가 한 발 내디뎠다.

일반적인 발걸음이라고 보면 오산이 다. 지면과 20cm도 안 되는 거리에 정 우의 의지가 실렸다. 천마의 발걸음으 로 불리는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도 정 우의 현천살형기(玄天殺形氣)를 기반으 로 한 현현보에 걸리면 경운기에 밟힌 개구리 신세였다. 혹시라도 정우가 클 럽에 가서 세 물[三水] 지난 셔플 댄스 와 경운기 춤을 추게 되면 몰살당할 수 도 있다.

크윽!

공간 전체를 짓눌러 버리는 패도.

제갈천과 황보신황은 육신을 옥죄는 강력한 일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 력을 극성으로 운용해 저항해 보지만, 무리가 따른다.

오히려 타격이 불가피했다.

꽈아0}아앙1

정제되지 않은 날 선 파공성이 일대 를 혼란스럽게 한다.

정우의 일보가 허공을 격해 반경 100m를 짓눌러 버렸다. 막아서는 걸 용납하지 않는 패도무쌍의 신위. 화강 암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바닥이 조각조 각으로 분해되어 날을 세웠다.

크윽!

제갈천과 황보신황은 끝내 저항하지 못했다.

결국 좌우로 튕기듯이 물러서고 말았 다. 육신을 보호하는 호신강기가 자칫 박살이 날 뻔했다. 그 망연한 현실에 치 가 떨린다. 강함의 척도를 벗어나는 압 도적인 격차였다.

“한눈을 팔 때가 아닐 텐데.”

정우의 신형이 목적지에 도달하기 직 전이었다.

작금의 일보로 숨통을 끊어 놓을 의

도였다면 10단의 현천공을 실었을 것이 다. 거리를 떨어뜨려 놓았을 분, 작금의 공격이 진짜였다. 현현보가 공간을 찔 러 들어가자 빛의 속도를 초월한다.

“?젠장!”

제갈천은 다급했다.

설마 이토록 빠르게 제공권을 파고들 어 올 줄은 몰랐다. 삶에 대한 본능일까? 검을 봅아내며 대천성검법의 천성일섬 (天星一閔)을 부렸다.

직선으로 공간을 밀어내듯, 빠르게 찔 렀다.

극속의 검형.

꿰뚫었다.

제갈천은 검병에서 전해지는 공허함 에 전율이 일었다.

“알지?”

등 뒤에서 들린다.

천공일섬을 피해 내고, 어느새 배후를 점했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궁극의 스 피드다. 회피할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 다. 발끝에서 머리끝을 강타하는 소름 은 죽음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제갈천은 속성을 꺼내 들었다.

꽈아아앙

칼에 실린 도경이 폭발하며 사납게 휩쓸었다. 한데 손맛이 부족하다. 완벽 한 사각에서 기회를 잡은 정우로서는 뜻하지 않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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