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26화 (426/500)

제1 장

연출 실패 ⑵

당명희가나섰다.

가주의 모독은 당문 전체를 매도한 행위다.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최소한의 대우는 받아야 했다.

“항복했잖아요. 대체 왜 이래요?”

“그거야 네 사정이고, 저놈은 아닌 모 양이지.”

당명천에게 심어 놓은 벌레는 주인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원했다. 안타깝게 도 사태 파악 못 하고 분노를 표출하려 다가 벌레의 심술이 발동하고 말았다.

자기 스스로 자초한 격이 없지 않아 있었고, 정우는 모처럼의 실험체를 방 치했을 뿐이다. 절대의 고수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관찰해 볼 귀한 장면인 데, 굳이 손을 쓸 필요는 없지.

“저분은 당문의 가주예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주세요. 하물며 사람을 이 토록 잔인하게 대할 수 있는 건가요?”

“인간은 존중받아야 마땅하지만, 너희 는 아니잖아.”

“무슨 말을 하시는 거죠?”

“별의 별걸 다 하는 너희 되놈들조차 경멸하는 독인을 제조해 놓고, 이제 와 인간으로서 존중해 달라는 거면 염치가 없는 거지.”

“그들은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어요.”

“나도 그래.”

당위성을 찾으려고 했던 당명희는 본 전도 봅지 못했다. 독인을 완성하기 위 한 실험체의 대부분은 사형수들이었다.

하지만 사형수만으론 독인을 완성하기 어려웠다. 의도치 않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죽어 마땅한 놈들은 죽어야지, 안 그 래?”

“……제발 용서해주세요!”

당명희는 저항 의지를 잃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는 완전무결한 악마다. 그 앞에선 그 어떤 저항도 의미 가 없다. 악의(惡意)를 대하는 최선의 방 법은 용서라고 포장하나, 실제로는 악 의엔 악의다.

‘ 어쩌자고?’

그녀는 하북팽가가 원망스러웠다. 통 제 불능의 악마를 대륙으로 끌어들인 격이다. 그는 공평무사한 정의를 원한 다고 하지만, 세상은 정의롭지 않았다. 과연 어느 누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겠는가. 대륙은 그의 영향력 아래 거대한 파격을 이루게 될 것이다.

부들부들!

겨우 고통에서 해방된 당명천의 눈빛 은 죽어 있었다. 땀에 젖은 육신은 쇳덩 어리를 얹어 놓은 듯 무거웠다. 살아생 전 느껴 보지 못한 생소한 감정이 찾아 왔다. 그것은 공포다. 저항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우릴 어쩔 셈이오?”

당명천의 목소리만 들어도 감정을 알 수 있다. 짧은 시간 그는 모든 걸 내려 놓았다. 저자의 말 한마디에 자신은 물 론 당문의 생사가 결정될 것이다.

“말 잘 들으면 수명대로 사는 거고, 아니면 단명하는 거지.”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당명천과 당가의 무사들은 수치심에 파르르! 몸을 떨었다. 황보세가와 제갈 세가에 패해 도주했을 때보다 더한 자 괴감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는 무력함에 눈물을 쏟아 내는 자도 있 었다.

“괜찮아, 외롭지 않을 테니까.”

혼자만 당하면 억울하니, 동참시켜 주 겠다는 정우의 개떡 같은 논리다.

그런다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거늘. 한데, 의외로 설득력이 상당하다.

인간의 심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 었다. 어느 누구도 본인만 억울하게 살 고 싶어 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럴 바에 야 다 같이 억울해지는 게 심적으로 위 로가 된다. 현대의 고질적인 병폐 중에 하나인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 주었다. 달리 보면 혼자 죽기 싫어서 물고 늘어 지는 물귀신 작전이기도 하다. 우리나 라도 다 같이 못살 때는 상대적인 박탈 감이 적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빈 부의 격차가 커지면서 박탈감은 커지고, 부자에 대한 반감이 나날이 증가했다.

‘사람은 혼자 안죽거든.’

죽더라도 같이 죽어야 행복하지.

이른바 행복 수비……가 아니고 해피 엔드.

정우는 시계를 보며 황보세가와 제갈 세가를 기다렸다. 모든 일은 결과가 중 요하다. 화룡점정을 완성하려면 두 세 가가 장원으로 들어와야 했다.

“지금쯤 들어와야 하는데 왜 이렇게 늦지‘?”

양용익이 사태 파악을 한 후 보고를 올렸다.

“단주님, 결계가 너무 튼튼한 것 같습 니다.”

튼튼하다고?

모처럼 신경을 쓰기는 했어도 황보세 가의 무력과 제갈세가의 지략이 합쳐지 면 충분히 뚫어내고도 남는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직접 확인해 보

기로 했다.

“설마 못 뚫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 정도로 멍청한 놈들일 리가…… 망할!”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며, 예상과는 달 리 견고한 결계가 되어 갔다. 지금쯤 거 의 다 부수고도 남을 시간이거늘.

“삽질 오지네.”

결계는 기운을 흡수하고 강화하는 성 질이 있다. 얼핏 들으면 대단해 보이지 만,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결계를 구성하는 연결 고리를 느슨하게 해서, 한두 개만 파훼하면 전체가 영향을 받 는다. 이때 무력을 동원하면 깔끔하게 파훼할 수 있었다.

“멍청하긴.”

두 세가의 자존심 싸움으로 인해 진 법을 더 강화해 버리고 말았다. 애초에 제갈세가가 나설 거라고 예상하고 설계 했거늘, 황보세가가 먼저 나대는 바람 에 상황이 꼬인 것이다. 반대로 했으면 황보세가가 진법을 무너뜨렸을 텐데, 병신 같은 짓을 해 버렸다.

“애새끼들도 아니고, 손이 많이 가 네.”

정우는 연출의 실패로 인해 자괴감을 느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러운 맛이 없어진다. 결국 설계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증권가 작전 세력의 말로처럼.

우웅

정우는 진법의 강화된 축을 약화시기 위해 흡성대법(吸性大法)을 사용했다. 진 에 축척된 기운이 상당히 많았다. 부수 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들이다. 인과를 바꾸었으면 손쉬울 텐데, 이래서 고정 관념이 무섭다.

“번거롭게 하기는.”

정우는 재설계를 한 후, 아닌 척 돌아 와서 태연히 앉았다.

‘완전 자연스러웠다.’

그 일련의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본 당명천과 당명희는 할 말을 잃었다. 저 망할 악마는 인간의 머리 꼭대기 위에 서 놀고 있었다. 그 안에서 제 잘났다고 설쳐 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만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우웅! 파앗!

결계는 기어이 부서졌다.

장원을 감싸던 기운이 퍼져 나가며 흉흉한 기세가 덮쳐 온다. 결계 때문에 정심(精心)을 낭비한 제갈세가와 황보세 가의 분노가 휘몰아친다. 자칫 문 앞에 서 깔짝대다 제풀에 지쳐 쓰러질 뻔했 기에 기세를 토해 낼 제물이 필요했다.

우르르!

몰려들어 오는 일천의 무인들.

선두에 선 황보무진과 제갈성의 만감 이 교차했다.

‘망할!’

‘제기랄!’

결계를 부순 선봉장들의 표정이 심하 게 일그러져 있었다.

황보무진이 결계를 부수지 못하자, 제 갈성은 제갈세가의 위엄을 보여 줄 절 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웬걸! 기회는 커녕 망신살이 제대로 뻗쳤다. 결계를 파악하고 분해한 직후, 끝났다는 선언 이 무색하게 진법은 건재했다.

한 번은 실수라 여기고, 다시 했음에 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변하지 않는 진실이 기다렸다. 사태가 심각해졌다는 걸 깨달은 황보세가와 제갈세가의 가주 는 같이 해 보라고 명을 내렸다.

‘빌어먹을 빵즈!’

‘가만두지 않겠다!’

둘이 해서 잘되면 그나마 면이 서겠 는데, 그것도 용이치가 않았다. 결계가 더 강해지는 바람에 낭패의 연속이었다.

재수 없게도 결계는 보이스피싱처럼 남 의 공력을 꿀꺽하고 보란 듯이 막아섰 다.

그제야 제갈성은 진법의 속성을 정확 히 파악했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진법 을 풀어 틈을 벌려 놓은 직후, 무력을 썼다면 생(生)고생은 하지도 않았다.

“어, 왔어?”

정우가 정문을 부수고 달려드는 황보 세가와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왜 이제야 오느냐는 제스처 까지 완벽하다. 진법을 약화시키고 돌 아온 직후의 태연함을 연장선상 안에 두었다.

‘하아, 뻔뻔하기까지!’

‘무서운 놈이구나!’

당명천과 당명희는 애써 태연한 척하 는 대호법의 언행에 혀를 내둘렀다. 저 뻔뻔함은 지상 최강이었다. 다 알고 있 는 자신들마저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그럼 뭐 하나?

황보세가와 제갈세가는 아무것도 모 른다. 그러니 호기롭게 쳐들어와 서슴 없이 막말을 내뱉지. 호랑이 굴에 쳐들 어간 쥐새끼가 가진 거 다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꼴이었다. 고생하지 않은 척 하는 제갈세가와 황보세가의 삽질이 안 스럽다.

“결계는 제법이다. 많은 공을 들였을 테지. 그러나 본 세가를 막아서진 못한 다. 순순히 항복하지 않는다면 대국의 위엄을 몸소 체감하게 될 것이다!”

황보무진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장원 전체가 들썩인다. 자존심에 상처 입은 맹수의 포효였다. 어지간한 무인은 심 혼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을 만큼 강력 했다.

‘저런 멍청한.’

‘말려도 소용없겠어.’

당명천과 당명희 남매는 고개를 떨어 뜨렸다. 자초지종을 모르고 하는 저 행 동이 어찌나 자신들과 똑같은지, 답답 함이 밀려온다.

“정말 대단하군. 진법을 깨뜨릴 줄이 야.”

아니라고 반박을 해야 하거늘, 정우는 맞장구를 쳐 주었다. 같은 편의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망언이었다. 뻔히 다 아 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부정해 버리 는 압도적인 클래스다. 정치인들의 뻔 뻔함도 월등히 넘어선다.

큭……큭……크

키득, 키득!

압권은 웃음을 참지 못해 간헐적으로 숨넘어가는 신음을 내는 흑금단이었다.

웃겨 죽겠는데, 단주의 눈치가 보여서 시원하게 웃지 못하는. 장단을 맞추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혹금단이 애처롭 게 느껴진다.

‘야, 웃지 마.’

‘웃긴 걸 어떡해.’

‘차라리 배꼽을 떼 줘.’

‘더러운 배꼽을 어디다 들이대?’

‘깨끗한 척은, 송곳 좀 줘 봐.’

음성 지원이 불가능하기에 흑금단의 전음이 난무한다.

전음의 지역 방송화다.

‘역시 단주님은 상황을 옷기게 만든다 니까.’

‘작위적이면 재미가 없어.’

‘특히 되놈들과의 케미가 죽인다.’

‘맞아, 찌끄레기들이 있어야 살아.’

혹금단의 진심이 담긴 전음이다. 단주 는 작위적인 설정을 하면 안 된다. 말로 써 웃기려고 하는 행위는 천벌 받을 짓 이다. 지금처럼 멋모르는 놈들이 게스 트 형식으로 나와야 재미가 산다. 그래 야 천지 분간못하고 날뛰는놈들을밟 아 주는 재미가 있었다. 양학과 사이다 의 기본은 되놈과 쪽발이를 끼고 산다.

‘빌어먹을 인간들!’

‘이런 황당무계한 자들을 봤나!’

‘나,사천성으로 돌아갈래!’

당문의 무사들은 살다 살다 이토록 미친놈들은 처음 봤다. 제정신이 아닌 걸 떠나서, 상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벗어나고 싶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할, 낚인 인생이다. 생각날 때마다 영원히 고통 받아야 했다.

‘우리만 당할 순 없어.’

‘그래, 맘껏 비웃어라.’

‘그것도 얼마 못 간다!’

하늘이 내린 악마, 천마(天魔)도 반도 에서 찾아온 악당에 비하면 귀여울 따 름이다. 무력이면 무력, 암계면 암계,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상종 못 할 최악.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 마주하지 않았 을 것이다.

정우의 연기가통했을까?

황보세 가와 제갈세가는 기세등등해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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