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25화 (425/500)

제1 장

연출 실패 (1)

장원 전체에 진법이 설치되었다. 일반 적인 형태였다면 무력으로 부숴 버리면 그만이나, 결계는 예사롭지 않았다. 진 법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과 창의적인 응용력 없이는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기본을 따르되, 방향을 달리했다. 실상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 좌 우한다지만, 달리 보면 1%의 영감이 전 체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결계를 친 자는 능히 천재의 반열에 오른 자다.

‘그러나 나에겐 통하지 않는다.’

진법 앞에 선 사내.

천재의 가문인 제갈세가에서도 최고 의 두뇌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런 그에 게도 진법을 파훼할 시간이 필요했다. 단숨에 해결했으면 좋겠지만, 결계는 수십 가지의 흐름과 복잡한 수식이 갈 퀴처럼 엉켜 있었다.

“거, 너무 시간을 끄는 거 아닌가?”

“결계를 펼친 자는 진법에 대한 이해 와 깊이가 입신의 경지에 도달한 듯하 네.”

“그래 봤자 하찮은 결계일 분이지. 비 켜 보게.”

“얼마든지.”

제갈성은 황보무진에게 순순히 양보 했다.

‘홈.’

황보무진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공연 히 꾸물대기에 한번 찔러 봤거늘, 지나 치게 쿨해서 찜찜하게 만든다. 그러나 자신을 막아서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결계는 나약한 놈들의 얄팍한 수작에 불과했다.

‘맘대로 해 보게. 후후후.’

순순히 양보한 제갈성은 속으로 황보 무진을 비웃었다.

천권(天호)。] 자타 공인 무공의 천재 라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지만, 진법을 우습게 여긴다면 큰코다칠 것이다. 어 중이떠중이가 대충 만들어 놓은 진법과 제갈세가의 진법은 천양지차다. 하물며 그에 비견되는 진법이 장원을 둘러치고 있었다. 천재를 상대하려면 천재를 넘 어선 천재가 나서야 하는 법, 범인의 두 뇌는 빠져 주어야 했다.

‘속셈을 모를것 같으냐.’

황보무진도 단순히 무공만 뛰어난 자 가 아니다.

근육만 들어차 있을 것 같은 외형에 속으면 안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능구 렁이처럼 머리를 잘 굴리는 편에 속했 다. 막말로 무공이 절대고수급에 이르 려면 육체만 뛰어나서는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들다. 두뇌가 뛰어나다고 해서 깨달음이 자연히 오진 않겠지만, 무능 한 자에겐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그렇다 해도 제갈세가와 머리싸움은 하지 않는다. 재능은 혈족으로 타고나 기에 인정은 하고 있었다.

제갈세가와 황보세가가 협약을 맺고 는 있으나, 속셈은 달랐다.

비서에서 벌어진 과정도 석연치 않았 다. 하북팽가와 사천당문을 제압한 이 후에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차 후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선 기선 제압도 필요했다.

우웅

황보무진의 단전에서 웅후한 공력이

샘물처럼 솟구친다. 범상치 않은 기운 이 기세를 형성한다. 직계 혈족에게만 전승되는 파천신공(破天神功)의 공능。] 다.

“부숴 주마!”

황보무진은 절기라 불려도 손색없는 파천육식(破天A式)의 삼식, 파천멸세(破 天滅世)를 사용했다. 하늘을 부수어 세 상을 멸하는 경세적인 기공이 절대의 권형으로 완성되었다. 권공으론 능히 으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혈독수 당화운의 오른팔을 빼앗은 초식이기도 하다.

꽈아아아앙!

낱알처럼 모여든 거력의 권형이 일대 를 잠식한다. 가공할 흡입력이다. 말려 들어 갔단 피륙마저 온전하지 않을 것 이다.

휘이이잉!

파철멸세는 결계를 두드리며 거대한 와류를 형성했다. 기경의 소용돌이는 범위를 넓히며 장원을 뒤흔들었다.

쿠아아앙

결계와 권강의 충돌은 격렬한 소요를 일으켰다.

‘과연 대단하군.’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천은 권형에 실 린 위력이 가볍지 않음을 간파했다. 천 권이 황보세가를 지탱하는 두 기둥 중 하나임을 깨닫게 해 준다. 아직 한창인 걸 감안하면 경시해선 안 되는 요주의 인물이다.

‘무공만이 능사는 아니지.’

천권의 무력과는 별개로 결계는 호락 호락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요동쳤던 결계 가 어느새 본래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 었다. 곧이어 원상태로 돌아와 버렸다.

마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평온

한 나날처럼.

‘이럴 수가!’

황보무진을 비롯한 무인들의 두 눈에 당혹감이 맺힌다. 산산이 부서져도 이 상하지 않을 결계가 N극과 S극처럼 갈 수록 촘촘해졌다. 실로 믿어지지 않는 충격 홉수력과 강인한 응집력이다.

‘안돼!’

일권(一포)으로 끝내려던 황보무진에 겐 수치스러운 결과다. 집중된 시선 속 에 쪽팔림이 태풍처럼 밀려온다. 결계 의 응집을 순순히 두고 보진 않았다. 공 력을 재차 운용하여 파천무쌍(破天無雙) 을 출수했다.

파천무쌍은 기운을 파괴하는 데 특화 된 권공이며, 연속 사용이 가능하다. 일 격보다 이격, 삼격, 사격이 강력한 파괴 력을 형성해 나간다. 촘촘히 연결되는 결계의 응집력을 깨기 위한 파멸식(破滅 式)이다.

꽈아아앙, 퍼어엉!

연이어 터지는 강력한 권형, 파멸을 위한 광시곡처럼 들린다. 귀를 찢어발 기는 파공성과 함께 결계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끝을 향해 내달리는 권형은 멈출 줄 모르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소모되는 진력이 상당했다. 황보무진 의 상기된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게 쪽팔려서 그런 건지, 전력의 과소 비인지는 나중의 문제다.

부르르르!

폭우가 쏟아지는 호수의 수면처럼 거 칠게 혼들린다. 황보무진과 결계의 자 존심 대결은 용트림을 하며 거센 포효 를 내지른다.

후아아앙

권강을 발출한 황보무진의 달아오른 얼굴은 굳어 갔다. 결계가 부서지기는 커녕 반발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 다. 권공이 강해질수록 응집력도 촘촘 해진다. 결계는 까다로운 데다가 부수 기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개 같은 일이!’

이렇게까지 신경질 나는 결계는 생전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진력(M方}을 거 둬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모두가 보 고 있었다. 여기서 그만둔다면 패배를 인정한 게 된다. 싸워 보지도 못하고 물 러선다면 두고두고 회자될 조롱거리였 다.

‘망할!’

파천신공의 극의를 개방하는 수밖에.

당문을 무너뜨릴 때도 전력을 사용하 지 않았다. 그럼에도 안심이 되지 않아 속성 개방까지 염두에 두었다. 광폭화 (狂暴化)를 펼치면 육체가 받는 반발력 이 상당해서 어지간해서는 꺼내 놓지 않는 다중 속성이었다.

“그만.”

“하오나.”

황보무진의 실태를 파악한 황보신황 이 만류했다.

무인에게 자존심은 목숨만큼이나 중 요하나, 지금은 손익을 따져 봐야 할 때 다. 전력을 사용하고 소모된 진력을 채 우려면 시간이 걸린다. 또한 비전절기 의 유출까지 고려해야 했다. 제갈세가 와 협력 관계라곤 해도 전부를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이쯤 했으면 다들 결계 가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결계가 낯선 모양이오, 부 탁드리겠소.”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지요.”

제갈천은 내심 고소한 심정이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진법을 해체하라고 제갈성에게 다시 명을 내렸다.

“진을 해체하라.”

“명을 받듭니다.”

형식적인 대화가 오갔다. 모두에게 보 여 주려는 의도가 다분하며, 황보세가 를 엿 먹이는 언행이기도 했다. 제갈세 가는 오대세가 내에서도 돌려 까는 재 주가 남달랐다. 확실히 머리가 좋으면 주둥이도 날카롭다.

하나, 결계를 친 인물은 돌려 까기에 관해선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걸 알 았어야 했다.

“충격을 흡수해 결계를 강화시키다니, 제법이군.”

제갈성은 황보무진의 언짢은 기분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의치 않고 읊었다.

마치 너같이 무식한 놈에게 제갈세가의 방대한 지식을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둣.

‘이것들이!’

황보무진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맘 같아서는 제갈세가의 꼴 같지 않은 행동에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으나, 가 주의 명은 지엄했다.

“결계의 축은 외부의 충격에 따라 변 화하는군. 그러니 축을 부숴 봤자 큰 의 미가 없지.”

천기수사(天氣修士)라는 별호에 걸맞 은분석력이었다.

제갈성은 거침없이 결계의 흐름을 읽 어 나가며 분석을 마쳤다. 이제 흐름을 역산해 파훼하기만 하면 끝난다. 처음 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점차 결계의 막 이 약해지고 있었다.

마침내

‘끝이군.’

제갈성은 하늘과 땅을 있는 건곤의 맥을끊어 냈다.

우웅, 팟!

기의 흐름이 끊어진다.

어째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한데 맥락 없이 고통스럽고 불안하다. 일련 의 인과를 받아들이려면 단절된 기억을 이어 붙여야 했다.

결과적으로 엄습했던 불안의 정체들 이 현실을 완성하자 분노가 치밀어 올 랐다. 반도의 오랑캐에게 일반적으로 깨지고 의식을 잃은 채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어두웠던 시야가 밝아지기가 무섭게 그림자가 묻는다.

“ 깼냐?”

“……네놈…… 크아악!”

상상을 불허하는 고통이었다.

당명천은 비명을 지르며 육신을 바들 바들 떨었다.

생소한 광경이다.

독공을 수련하기 위해선 고통에 익숙 해져야 한다. 하물며 독왕의 경지에 오 른 당명천은 어지간한 고통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 당명천이 온몸을 비 틀어 대며 어린애처럼 비명을 질러 댔 다.

크아아아악!

모두는 견뎌 낼 수준의 고통이 아님 을 직시하고 말았다. 살아만 있으면 해 독이 가능하리라는 한 줌의 희망마저 박살나는 광경이다. 독공에 관한 한 자 타가 공인하는 당문이 독(毒)과 고(씌에 당해 쩔쩔매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으 랴.

“?차라리 날? 죽여?

실핏줄이 지렁이처럼 돋아난 당명천 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삶마저 포기하고 싶었다. 인간에게 허락한 고 통의 한계치를 절묘하게 건드린다.

“효과가 별로네. 아니면 잘 참는 건 가?”

마치 실험실 안의 쥐를 보고 있는 연

구원처럼.

정우의 덤덤한 태도에 당문의 무인들 은 소름이 돋았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 지 않는 무심함 속엔 호기심만이 남아 있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를 꼼 꼼히 체크하는. 당문의 가주도 정우에 게는 도축하기 직전의 살아 있는 고깃 덩어리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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