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엉망진창 (4)
바르르, 바동바동!
참으려고 해도 참기 힘들다.
당화운과 당무정은 발동된 금제로 인 해 당명희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바닥 을 내리구르며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그 광경을 당문의 무인들은 지켜봐야 했다.
“자, 덤비고 싶으면 덤벼도 좋아.”
황보세가와 제갈세가의 협공으로 궤 멸되어 남아 있는 무인은 고작 100명이 다. 하물며 가주와 독봉마저 제압되었 다. 싸운다 한들 승산이 없음을 직시해 야 했다. 그러나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명문의 자부심이 용납하지 않 았다.
“감히 대당문을 건드리고 무사할 성 싶으냐! 결코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 …… 크악!”
당문의 무사는 그 말을 남기고 장렬 히 가루가 되었다.
푸스스!
그야말로 촌음.
빗살이 스치고 지나갔을 때 무사는 혼적도 남지 않았다. 극강의 파괴력과 소멸력을 갖춘, 무형권강의 파괴력이다.
“자, 다음.”
정우가 또 할 말 있는 놈은 나오라고 했다.
부르르!
당문의 무사들은 발이 떨어지지 않았 다. 조금 전 죽어버린 자는 일반 무인이 아닌, 독인대의 대주 당인혁이었다. 그 가 단 일격에 혼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 다. 가주를 때려눕힌 실력이 요행이 아 님을 재확인했다. 하물며 손속마저 잔 흑함의 끝판왕이다. 자신들을 사람으로 대하고 있지 않음을 체감했다.
“그거밖에 안 되는 놈들이 사람들을 무시하며 살아왔던 거냐. 이거 아주 쓰 레기 같은 놈들이구먼.”
정우는 끊임없이 자극했다.
어서 도발에 넘어와서 황천길로 직행 하라고. 지금 가는 편이 나중에 가는 것 보다 편할 수도 있었다.
끝내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나선다 한들 의미가 없었다. 그야말로 개보다 못한 죽음이었다. 당인혁과 같 은 최후를 맞고 싶지 않았다.
“병신들이네.”
“단주님이 죽여준다면 예, 고맙습니다! 하고 받을 것이지.”
“하여간 복을 찬다니까.”
“무사란 것들이 겁도 드럽게 많아요.”
정우가 무대를 만들어놓자, 혹금단이 비트를 넣었다.
오랜만에 스웩, 박자, 딕션, 텐션까지 완벽하다. 이대로 쇼 미 더 구걸에 나가 면 부자 되겠다. 하긴, 혹금단이 흉악한 얼굴 내밀고돈달라고 하는데 안줄간 큰 위인들이 얼마나 되겠나.
부들부들!
하나같이 비수가 되어 당문의 무사들 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이대로 무사의 자존심까지 버려가면서 살아야 하는 것 인지 의문이 들었다. 삶보다는 죽음으 로 명예를 지켜야만 했다.
그들이 결심을 하고 나서려는 찰나.
“안돼!”
의식을 회복한 당명희가 무사들을 만 류했다.
굴욕, 분노가 뒤섞여 있어 인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서면 안 된다. 당문의 참화를 일으킨 자는 자비를 모 른다. 그는 저항하면 반드시 죽일 것이 다. 당가타가 어찌 됐는지 알 수 없는 현실, 자신들마저 죽어버린다면 당문은 영영 사라져 버린다.
“살아야 해요.”
겨우 정신을 회복한 당명희의 한마디 가 무사들의 굴욕을 뒤덮었다. 그들은 느낀 것이다. 화가 나는 대상이 자신들 만이 아님을.
인사불성이 된 가주를 대신해 당명희
가나섰다.
“좀 가라앉았나?”
“어째서죠?”
“알잖아, 명분이 중요한 걸.”
“고작 명분 때문이란 말인가요?”
“고작이라니,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 이 남의 걸 탐하는 사람인 줄 알아. 난 분명 당문에도 선택의 기회를 줬어.”
당명희는 숨이 턱 막혔다.
정파라면 명분을 중요시해야 한다. 그 러나 현실적으로 명분보다 힘이 더 중 요했다. 힘없는 명분은 허울뿐이었다. 흑금단주의 무력은 일반적인 선을 넘어 섰다. 대륙 전체를 따져봐도 혹금단주 와 견줄 자는 혼치 않았다. 그만한 무력 을 가지고 있으면, 처음부터 강하게 나 갔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데 그는 명 분을 위해서 기다렸다고 한다. 곧이곧 대로 믿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솔직히 이쪽이 더 재밌기도 하거든.’
명분을 만들어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 었다. 무작정 힘으로 지배할 때보다 더 한 쾌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지켜야 하 는 선은 정우 스스로 정했다. 현세에서 는 스스로 천명한 정의를 위배하지 않 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때에 따 라서 정해진 선을 융통성 있게 활용하 고 있기는 하지만.
“도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
다른 이도 아니고, 저 악마가 공평무 사한 세상을 원한단다.
당명희는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왔다.
“당한 게 있으면 갚아주고, 받은 게 있으면 돌려주고. 좋잖아.”
“실로 어처구니없는 믿음이군요.”
한데 들어보니 딱히 틀리지 않았다. 작금의 흐름을 읽어낸 당명희는 혹금단 주의 계획이 주고받음에 있다는 걸 깨 닫게 되었다.
그걸 눈으로 확인하게 되자, 당명희는 억장이 무너졌다.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어!’
흑금단주는 받은 대로 갚아주고 있었 다. 당문은 제 발로 악마의 코털을 봅아 버린 것이다. 하지만 당명희는 고개를 가로저어야 했다. 맞는 말처럼 들리지 만 헛소리이기도 했다. 당문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걸려들 수밖에 없는 치 밀한 함정을 만들어놓았다. 인간의 심 리를 이용한, 빠져나갈 수 없는 수렁이 었다.
‘?진짜?… 악마야!’
당명희는 보았다.
혹금단주의 육신에서 번져 나오는 어 둠의 기운을, 그건 평범한 인간이 감당 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의로 뭉쳐져 있었 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철저히 등가교 환의 법칙을 적용했다. 악의에는 악의 로, 선의에는 선의로. 말이 안 되지만 합리적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자, 벌레 묵자.”
정우는 인사불성이 된 당명천의 육신 에 금제를 가한 후, 당명희가 먹었던 벌 레를 입에 털어 넣으려고 했다.
“……뭐 하는 거예요?”
“뭐 하긴, 살려주는 거지.”
당명희는 저항하지 못했다. 살고 싶으 면 금제를 받아라, 아니면 죽이겠다. 뚯 이 너무나 분명해서 입이 천근처럼 무 거웠다.
히죽!
오싹!
정우가 웃자, 다들 한기를 체감했다.
“다 모였네, 이제.”
거대한 악의가 요동을 친다.
그 안으로 황보세가와 제갈세가가 난 입해 오고 있었다.
인천 중구에 초대형 최상급의 케이브 가오픈되었다.
금강문이 단독으로 마크를 하고, 금강 문주가 직접 마물 사냥에 나섰다. 케이 브 등급 9급이라는 초유의 사태다. 파 동이 이전과 비교하면 최소 3배에 달했 다. 금강문에서 중구 일대를 통제하고 있는 상태였다.
-거대 괴수형, 칼날 사마?귀.
-9급 마물.
근래에 들어 인간형이 자주 튀어나왔 던 것과는 달랐다. 어찌 되었든 한국 최 초의 9급 마물이었다. 일반적으로 상대 를 해서는 안 되었다. 금강문뿐만 아니 라 무문연합과 유니크 연합에서도 대비 를 위해 유니크를 파견했다.
“위험하니 다른 방향으로 우회하시기 를 바랍니다.”
“현재 마물의 난동이 심합니다.”
청금단이 주변 결계를 강화하며 사람 들을 통제했다.
초대형 최상급 케이브 오픈이라, 사람 들의 관심이 컸다. 기자도 문제지만, 관 심종자의 경우 하지 말라는데도 기어이 하고 마는 이들이 있었다.
오랜만에 등장한 청금단주 황우철은 나윤성 부단주에게 물었다. 서류 작성 이 필요해서 잠시 한눈을 팔았더니, 문 주님이 안 계신다.
“문주님은?”
“들어가셨는데.”
“말렸어야지.”
“이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
“이번은 다르지.’’
8급의 케이브만 해도 상당히 위험하 다. 하물며 오늘 열린 케이브는 9급이 었다. 진화가 덜 된 괴수형이라 해도 만 만히 봐선 안 되었다. 한두 마리만 튀어 나와도 도시 하나 박살내는 건 우습지 도 않았다.
“준비됐으면 들어가자.”
“그래.”
“문주님이 잘못되면 네 탓이다.”
“그 정도면 안 들어가는 게 낫지.”
“말이나 못하면.”
금강문의 최강자는 누가 뭐래도 금강 문주다. 공식적으로 한국 최강의 무인 이자 유니크다. 금강문주가 위험하다면 접근하지 않는 편이 이롭다. 가봤자, 전 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 이다.
200명의 청금단이 케이브 안으로 들 어섰다.
헐!
황 단주 이하 단원들은 망연히 바라 보아야 했다.
H의 괴수형 마물, 칼날 사마귀는 일 반적인 범주를 벗어났다. 몸짓에 비해 굉장히 빠른데다가 중력, 공간 격리, 디 버프 속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일대일 로 칼날 사마귀를 대적할 자는 흔치 않 았다.
“……사념파잖아.”
“정신 나갈 것 같다!”
경이로운 사념파다. 편린에 불과한데, 청금단원은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한 데 갑자기 사념파가 사라졌다.
원인은 저 앞에 있었다.
“사념파가 장난 아닌데, 영향을 안 받 으시네.”
“생각이 없으시니까, 그렇지.”
“그 말 그대로 전해드리면 되는 거 냐.”
“아, 사념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
다.”
사념파를 발동하는 칼날 사마귀의 비 명이 울린다.
꽈르르르르!
뇌성벽력이 울렸다.
케이브 전체를 뒤흔드는 무지막지한 뇌력의 폭주였다. 그야말로 성난 사자, 분노한 뇌신의 포효가 천지사방을 쩌렁 쩌렁 울린다.
“평소보다 더하시네.”
“열 받은 거 같은데.”
“가까이 가면 안 되겠지.”
“닿기만 해도 타 죽겠다.”
이호극의 난동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사념파를 줄기줄기 흘리며 첫 등장의 메리트를 살리려고 했던 칼날 사마귀는 시작부터 대략난감을 겪어야 했다.
■승룡파천.
-지룡분쇄.
- 일로금강.
-뇌정광폭.
금강의 기본에서 최강의 초식까지.
이호극은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듯 쏟 아내고 있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속성까지 증폭시켜 광뇌인을 이루고 있 었다.
“크하하하하, 다 죽어맛!”
끼요오요욧!
기이한 괴성이 울린 후, 칼날 사마귀 는 군단을 이루어 저항했다. 혼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 괴물이었다.
우우웅, 꽈아아앙!
칼날 사마귀는 강기와 비슷한 능력을 사용했다. 앞날을 낫처럼 휘두를 때마 다 공간이 맥없이 갈려나갔다.
뇌력을 전신에 두른 이호극의 뇌강과 격렬한 충돌을 하며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꾸웨웨웩!
일격을 허용한 칼날 사마귀가 괴성을 지르더니,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났다.
단순한 뇌공이 아닌, 전폭경이 사용되 었다. 정우와 대결을 펼치면서 교류를 했고, 서로의 무공을 보완했다.
그 결과 비슷한 수법이 되었다.
“아휴, 열 받아! 고 깜찍한 게 사람 속 을 잘도 뒤집어놓는다니까.”
이호극은 요즘 하라와 촬영을 하며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티격 태격하는 다툼이 시청자의 관심을 유발 시켰다. 하지만 실제 촬영 현장에서 이 호극과 하라는 상극 중에 상극이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다 들려요.
하라는 여우인데다가 신안과 천원일 기공을 극성으로 익히고 있어, 이호극 의 속을 그대로 투영했다.
매번 당하고 있었다.
그때 당한 원한을 풀 데가 마땅치 않 았다. 요즘은 무문연합의 수장들도 슬 슬 자리를 피했다. 경쟁 상대인 정우가 있다면 케이브에서 원 없이 생사대결을 펼치겠지만, 중국으로 가버렸다. 금방 돌아온다고 하고선 여태 소식이 없다.
때마침 최상급 케이브가 오픈되었다.
이호극으로서는 불감 청고 소원이다 .
“다 내 거다!”
물론 등장하자마자 퇴장당하는 칼날 사마귀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보란 듯이 이 세계로 진출해 인간들을 유린 하려고 했던 계획이 엉망진창이 되었 다.
찰칵!
한 마리를 죽일 때마다 이호극은 사 진을 찍어 깨톡에 올렸다.
“30마리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