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엉망진창 (3)
어둠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원투, 원투, 잽, 라이트, 훅…… 목소 리 테스트, 잘 들리나? 뭐, 들리는 걸로 알고.
짧게 말한다. 지금 이대로 돌아서 가 면 넓은 아량을 베풀어 없던 일로 해주 마. 내가 지금 통수부터 해결해야 하거 든.
-하나, 귀찮게 하면 오늘을 잊지 못하 게 해주겠다. 이상.
사내는 장원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 다.
휑
허공으로 까마귀와 펭귄이 지나가면 딱 알맞은 정황이다. 다들 잠시 동안 넋 이 나갔었다. 제대로 보고 들었는지 고 막과 동공을 점검해보아야 했다.
“황당한 놈이군.”
“가벼이 여기지 말게, 그는 팽가의 대 호법이네.”
“그래봤자 오랑캐일분이지.”
“잊지 말게, 우린 피해를 최소화해야 만해.”
제갈천에게는 방금 엉뚱한 짓을 한 자, 흑금단주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반 도의 무인으로 폄하만 해선 안 될 자다. 팽가의 대호법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만 봐도 범상치 않은 이력이었다.
‘호기 일까‘?’
팽가의 주전력은 남궁세가와의 결전 에서 상실되었다. 당문과 협상을 하지 않았다면 안휘성을 탐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한데 이 찜찜한 기분은 뭐지?’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기운, 마치 호 굴을 향해 제 발로 들어가는 느낌이랄 까?
제갈천은 고개를 저었다.
‘허튼소리.’
그는 상념을 떨쳐내며 제갈성에게 명 을 내렸다.
“결계를 해체하라.”
“존명.”
천기수사라 불리는 그의 능력이 쓰일 때다. 가로막고 있는 장원의 결계를 푸 는 즉시 당문과 팽가를 제압한다.
정우는 장원 안으로 돌아왔다.
당문의 무인들은 잔뜩 경계심을 드러 냈다. 당장 공격을 할 것처럼 흉흉한 기 운이 흘렀다. 그러나 누구도 섣불리 나 서지 않았다. 가주를 전투불능으로 만 든 괴물인데다가 손속까지 사나웠다.
“새끼들, 눈깔 찢어지겠다. 억울하면 노려보지만 말고 덤비든가.”
정우는 기어오르는 걸 봐주지 않았다.
명분이 손에 들어왔고, 심지어 한 번 은 참아주었다. 이만하면 무한한 인내 심을 발휘했다. 그런데도 눈깔 바르게 뜨지 않으면 예의를 가르쳐주는 것이 도리였다.
스윽!
시선이 닿은 지점, 당명희가 움찔했 다.
“약속을 어겼으니, 대가는 받아야겠 지.”
“장원 밖에 황보세가와 제갈세가의 주력이 도착했어요. 이 와중에 잘잘못 을 따지겠다는 건가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나중에 해도 되잖아요!”
“선후는 제대로 따져야지.”
당명희는 답답했다.
이 인간이 막무가내로 나올 거란 예 상은 했지만, 적이 코앞에 다가왔다. 단 합을 해도 부족한 판국에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정말 상식이 통하지 않는군요.”
“통수나 치는 주제에 이제 와 상식을 따지겠다는 거냐.”
“계속 이런 식이면 무형지독을 발동
시키겠어요.”
“해봐.”
“같이 죽자는 건가요?”
“혼자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 말에 흑금단이 깊이 수긍했다.
홀로 대의를 위해 장렬히 희생하는 영웅심리는 개한테나 줘버렸다. 그런 일은 하고 싶지도 않다.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왜 버려, 그건 신체발부수지부 모를 역행하는 행위다. 그리고 자기 목 숨 소중한 줄 알아야 남의 목숨을 챙길 수 있는 거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같이 죽으면 행복하지요.”
“원래 혼자 죽으면 억울해서 저승에 도 못 간다고 했지요.”
“우리 죽을 때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 습니다.”
정우가 히죽이자, 당명희의 안면이 무 참히 일그러졌다.
빠드득!
위험이 닥쳐오면 설득이 가능할 줄 알았거늘, 벽창호가 따로 없었다. 자기 자존심을 위해서는 허튼짓도 서슴없이 할 위인이었다. 별종이 존재한다 해도, 이렇게까지 말이 통하지 않는 위인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그를 움직일 유일한 방법이 있었다.
“팽가에는 복수를 하지 않을 건가요?”
“복수는 당했을 때나 하는 거고.”
“그게 무슨 말이죠?”
“난 여전히 팽가의 대호법이란 소리 지.”
당명희는 선뜻 이해를 하지 못했다. 팽가는 배신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팽 가의 대호법이란 거지? 상관관계가 일 치되려면 배신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암제가 이리로 오는 중이겠지.”
“……그걸 어떻게?”
화들짝 놀란 그녀다.
암제는 그녀와 가주의 아버지인 전대 가주다.
암제로서 활동한 시기가 벌써 30년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격변의 세상 초기 였다. 당가타로 들어가신 이후 대회적 인 활동을 하지 않으셨기에 무림은 암 제가 죽었다고 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아니다. 아버지는 독인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선택을 하신 것이다.
“독인을 완성하고 노후를 편하게 보 내려고 했을 텐데, 안타깝게 되었네.”
“?당신!”
당명희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 었다.
제갈세가와 황보세가를 공략하기 위 해서 독인을 사용했으니, 소문을 들었 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암제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아는 사람도 가문의 사람을 제외하면 없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렇게 나와야지, 본성 숨기고 살면 암 걸린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하면 시원하지만
사회생활이 어려워진다. 반대로 혼자 끙끙 앓으면 다른 이보다 암 걸릴 확률 이 높아진다. 아이러니한 현대인의 고 달픈 인생이다.
그 중간을 적절히 찾아야 행복해진다.
“말하지 않으면 무형지독을 발동시키 겠어!”
“어휴, 화내니까 무섭네. 확실히 나이 많은 노처녀는 건드는 게 아니야.”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바른대로 말 해!”
“원한다면 말해주지. 지금쯤 당가타는 불바다가 되었을 거다.”
“웃기지 마라, 그딴 허풍을 믿을 것 같아. 당가타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사천성과 섬서성의 경계, 수로가 이 어지는 지점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면 헛다리짚은 거겠지.”
...
당명희는 부정하지 못했다. 세간에 알 려지지 않은 당가타를 정확히 찾아냈다. 이런데도 아니라고 해봤자, 꼴만 우스 워진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팽가의 대호법이라니까.”
“...설마?”
“밎아.”
정우는 당문의 주력이 빠져나가고 난 후를 노려 팽가를 움직였다.
팽가에 공연화와 천혈강시를 남겨두 고 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분이랴, 공식적으로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 강시 로 만든 팽우경을 동원했다.
강시가 된 팽우경의 무력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무력분만 아니라 생 명을 도외시하는 성향까지 갖추어졌으 니 대적할 자가 많지 않다. 그나마 있다 면 당문의 숨겨진 존재, 암제가 유일했 다. 하지만 암제마저 이곳으로 오고 있 으니 당가타는 물론 당문까지 텅텅 비 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참혹한 짓을!”
“내가 말했지, 후회할 거라고.”
당명희는 격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도 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심계와 전략에 관해서는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 지 않는다고 자부했거늘, 저자의 손바 닥 안에서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하면 가문의 동선을 노출시킨 것도?”
“이제 좀 머리가 돌아가나 봐.”
오대세가의 수장을 넘어 대륙 전체를 지배하려던 당문의 오랜 염원이 하루아 침에 박살이 나버렸다. 당문의 주력을 궤멸시킨 제갈세가와 황보세가보다 흑 금단주가 더 무서운 자였다. 모두가 저 자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춘 광대에 지 나지 않았다.
“이 악마 같은 놈! 절대 살려두지 않 을 거야!”
“세상이 원하는 대로 되면 절망이란 단어도 존재하지 않았겠지.”
“아무리 네놈이 강해도 무형지독에서 벗어나진 못해!”
“해보라니까.”
“하라면 못할 줄 알아!”
당명희도 이판사판이었다.
이대로 살아서 돌아간다 해도 모든 걸 잃었다. 살아서 가문의 선조를 볼 면 목조차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놈 에게 속았다는 사실이 분했다.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천독공 개방, 무형지독 발현.
무형지독의 화룡점정이 천독공에 있 었다. 무형지독은 해독이 불가능한 독 이며, 중화제로 억제할 뿐이다. 천독공 을 운용하면 무형지독을 즉시 발동시킬 수 있었다.
우웅
파동과 함께 번져 나간 기의 바람이 정우를 스치고 지나갔다.
시간이 흐른다.
분노했던 당명희의 얼굴에 당황의 빛 이 형성된다.
무형지독이 발동하면 육신이 녹아내 리며 한 줌의 독수로 화한다. 한데 칠공 에서 피를 토하기는커녕 흑금단주는 태 연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짓말, 분명 어지러움을 느꼈을 텐 데.”
“빈혈이 좀 있어서.”
“피부를 긁는 걸 봤다고!”
“미안, 씻어야 했는데. 요즘 게을렀 지.”
“균형이 깨졌다고 했잖아!”
“독 먹고 균형이 유지되면 그게 더 이 상하지.”
당명희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무형지독에 중독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놈의 저급한 연기였다. 말을 하면 할수록 가지고 있는 수가 전 부 박살나고 있었다.
“……불가능해, 무형지독은 해독이 안 된다고!”
“하나하나가 이어지면 위험한 독임에
는 분명해. 그러나 합쳐지지 않으면 그 저 당문의 혼한 독일 분이지.”
정우는 처음부터 당명희가 독을 쓴 줄알았다.
그러나 단일 독으론 힘을 쓰지 못한 다. 열 개의 독이 합쳐져야만 무형지독 이라는 희대의 극독이 되었다. 독이 합 쳐지는 길목에서 차단하고, 한쪽으로 몰아넣고 연구를 했다. 무형지독이 되 는 과정을 소량으로 테스트하며, 본인 의 독공까지 발전시켰다. 그야말로 일 석이조의 수완이었다.
“……죽여버릴 거야!”
모든 수가 읽혔고, 가지고 있는 걸 모 두 잃었을 때 인간의 반응은 대동소이 했다. 냉철한 이성이 망가져 버린 당명 희는 달려들었다. 승산의 유무는 그녀 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작금의 분노를 해소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살아갈 수가 없었다.
“멍청하긴.”
정우는 피식, 웃음이 절로 나왔다.
본인의 처지를 알아야지.
“까아아악!”
듣기 싫은 고음이 당명희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달려들던 그녀가 바닥에 쓰러지며 발 작을 일으켰다. 파르르! 떠는 그녀는 거 의 숨이 넘어갈 듯이 고통스럽게 발버 둥을 쳤다. 전신을 날카로운 바늘로 지 속적으로 찌르고, 칼로 베는 느낌이 멈 추지 않았다.
“놈! 멈춰라!”
“너는 아닐 것 같냐.”
당화운과 당무정이 나서자, 정우는 금 제와 벌레를 동시에 발동시켰다.
본인들의 처지를 알고 덤비라는 경고 의 의미도 담는다. 그런데도 말을 안 들 으면 죽어도 아깝지 않았다. 사람 목숨 은 소중하지만, 뒤통수나 치는 놈들은 벌레보다 못한 목숨이었다. 죽어버리면 그걸로 가치가 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