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물고 물리는 (3)
방 안에 모인 일녀이남.
당명희의 부름을 받은 당화운과 당무 정이 자리했다. 분위기는 어두웠다. 반 도의 오랑캐한테 처참하게 발렸으니 당 연했다. 상대를 업신여기다 당해서 뼈 아프다.
그들은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속수 무책으로 당하고, 3일간 요양을 해야 했 다. 그럼에도 복수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는 강해요.”
당화운과 당무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은 수긍을 담는다. 방심을 하기는 했어도, 다시 덤빌 엄두가 나지 않을 격 차를 체감했다. 대륙을 통틀어도 당문 의 장로와 대주를 단 일격으로 무력화 시킬 무인은 흔치 않았다.
‘가주라도 어려울 것이다.’
‘반도에 어떻게 그런 자가!’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다.
가주는 당문의 상징이자, 최고의 고수 다. 그럼에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을 참담하게 만들었다. 불 가능한 명을 받기는 했어도, 그들은 여 전히 당문의 혈족이었다.
“그를 어찌할 참이십니까?”
“당문을 위해서 싸우게 해야지요.”
“그는 고개를 숙일 자가 아닙니다.”
“알아요. 그러니 각오를 하세요.”
당명희의 분위기에서 결의가 전해졌 다.
그건 목숨까지도 걸라는 의미가 담겼 다. 당화운과 당무정은 묵묵히 받아들 였다. 개죽음은 원하지 않지만, 가문을 위해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문의 혈족은 당가의 부속품이었다. 그들은 가문의 번영을 완성하는 소모품이었다.
“그가순순히 따르겠습니까?”
“자존심이 강한 자니 목적을 이룰 때 까지는 함께하게 될 거예요.”
독으로는 협박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 다.
당장 발작을 일으키도록 할 순 있지 만, 그리되면 당문의 주력이 위험해진 다. 무엇보다 놈의 무력을 가벼이 버리 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위험한 놈임과 동시에 판을 바꿀 중요한 패였다.
“금제는 어때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걸린 건지 아 닌 건지. 총관은 어떻소?”
“저도 그래요.”
“우리가 모르는 혈맥술이 있다고 보 진 않습니다.”
“그래도 당분간은 조심해야 해요.” 당문은 독문이다.
독을 다루기 위해서는 인체에 대한 연구가 수반되어야 한다. 당연히 의술 에도 대가(大家)를 이루었다. 당문만큼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는 무문은 없 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불구하 고 대호법의 혈맥술을 파악하기가 어려 웠다. 이런 종류의 혈맥술이 있다는 말 을 들어보지도 못했으니, 허장성세라고 치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똑똑!
방문을 노크한다.
혹금단의 부단주, 양용익이었다.
“단주께서 부르십니다.”
“알았어요. 곧 갈게요.”
명령을 하달한 양용익은 돌아서 나갔
다.
당명희는 작금의 대화를 찬찬히 살폈 다. 중요한 변화가 있다는 걸 파악했다. 특히 호칭이 바뀌었다. 그는 분명 대호 법이 아닌 단주라고 했다. 팽가의 대호 법이 아닌 흑금단의 단주라고 지칭한 것이다.
또한 일개 단원이 아닌 부단주가 직 접 전하러 왔다.
“확인이 끝난 모양이네요.”
당명희의 두 눈이 요사스럽게 빛났다.
그녀도 간단히 혹금단주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 가 바보가 아니라면 분명 따로 조사를 했을 터. 확신이 생겼기에 손을 잡은 것 이다.
정우의 방으로 당명희와 일행이 찾아 왔다.
-이강천의 목숨을 살리고 싶으면 내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것이다. 허튼짓을 벌였다가는 이강천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
당분간은 당문과 협조를 하면서 정보 를 캐내고…… 내가 정한 시기에 당문 의 뒤를 노리도록.
팽가에서 보내온 동영상 메시지를 보 여주었다.
당명희와 일행은 흑금단주가 돌아섰 음을 확신했다. 금강문과 하북팽가 간 에 보이지 않는 골이 생겼다. 금강문과 혼약까지 맺었기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 았다. 길길이 날뛰는 흑금단주의 반응 이 이해가 되었다.
‘효과적인 방법이지.’
금강문주의 혈족을 인질로 삼아 혹금 단주를 협박한 수는 나브지 않았다. 단, 하북팽가 역시 혹금단주의 자존심을 가 볍게 여겼다. 그는 질질 끌려 다니는 걸 원치 않았다. 설령 금강문주의 자식이 죽더라도, 복수를 단행할 자다.
운이 좋았다.
팽가의 협박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 와 더불어 혹금단주는 팽가와의 밀담을 털어놓았다. 함께하고자 하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이 빌어먹을 되놈들이, 아주 통수에 는 일가견이 있어!”
당명희와 일행은 낯빛이 붉어졌다.
하북팽가의 행위가 괘씸하기는 했어
도, 싸잡아서 욕을 먹은 꼴이다. 듣는 되놈들로서는 굉장히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구도 혹금단주를 컨트 롤하진 못했다. 성난 사자의 코털을 잘 못 봅?았다가는 날벼락을 맞을 수 있었 다.
“왜 내 말이 틀려?”
“다 그런 건 아니에요.”
“개소리는 집어치워, 독이나 쓰는 주 제에.”
똥 뭍은 개는 닥치라는 정우의 호통 에 당명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말이 심하네요.”
“뭐가심해, 되놈들종특이잖아.”
과거 우리나라의 배 농사꾼이 억울하 게 당한 일이 있었다. 30년을 임대하기 로 계약을 했는데, 도시화가 촉진되면 서 일대의 땅값이 올랐다고 임대료를 무작정 올린 것이다. 하물며 협상이 되 지 않자 마을 짱개들이 단체로 와서 배 나무를 잘라버렸다.
공안도 지들 편이라 손을 쓰지 못했 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놈들이 단체가 되니 막돼먹은 짓을 대수롭지 않게 벌였다. 그것이 소위 대국이라고 칭하는 짱개식 마인드다. 반대로 우리 나라가 그런 짓을 했다면 과연 되놈들 이 가만히 있었을까?
“도왕이라고 주변에서 치켜세워 주니 까, 지가 진짜로 왕인 줄 착각하는 모양 인데,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어쩌려고요?”
“어쩌긴, 지금 당장 북경으로 가야 지.”
“그러다간죽도 밥도 안돼요.”
“막지 마, 짜증나니까!”
“막무가내로 행동해선 아무런 이득도 없어요. 복수를 하다 말 건가요?”
당명희로서는 막아야 했다.
그가 같은 편이 되기는 했어도 당장 복수하겠다고 설치면 사태가 더 악화된 다. 지금으로서는 이곳에서 황보세가와 제갈세가의 주력을 분산시키는 데 최선 을 다해야 했다.
“너희들도 날 총알받이로 쓰겠다는 거잖아.”
“당문이 오대세가의 수장이 되면 복 수는 쉬울 거예요.”
“그걸 어떻게 믿어?”
“당신도 금제를 했잖아요. 우리도 목 숨은 소중하다고요.”
“그건 그렇지.”
수긍을 하자, 당명희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금제를 믿고 있는 모양이지만, 당문의 비맥술을 이용한다면 풀지 못할 점혈도 아니다.
“그런데 말이야.”
“왜요?”
“금제로는 안 되겠어.”
정우는 작은 통 안에 있는 미세한 벌 레를 꺼냈다. 불그스름한 빛까지 나돌 아 섬뜩한 모양을 취했다. 딱 봐도 좋지 않은 불길한 생명체라고 광고하고 있었 다.
다들 설마 했다.
“뭘 하려고요?”
“먹어.”
“우리보고 먹으란 건가요?”
“그럼 누가 먹을까? 난 징그러운 벌레 는 싫거든.”
“우릴 못 믿는군요.”
“당연하지. 맞고 먹을래, 그냥 먹을 래?”
정우가 사악하게 웃었다.
그들의 낯빛이 검게 물들어갔다. 먹지 않으면 신뢰가 떨어지고, 먹으려고 하 니 꺼려진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고독이 었다. 독과 달리 고독은 풀기가 굉장히 난해하다. 그러나 그들로선 달리 선택 할 방도가 주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어.’
당명희는 이쪽이 더 낫다고 봤다. 그 와 신뢰를 쌓고, 통제를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어중간한 수는 통하 지 않았다.
“먹겠어요.”
“같이 살아보자고.”
그들은 벌레를 먹은 후, 방 안을 나갔 다.
정우는 썰렁해진 방 안에 앉아서 히 죽였다. 고독을 두말하지 않고 먹었다 는 점에서 당문의 성향을 알 수 있었다.
독공이 발전한 만큼 혈맥술에 관해서 는 일가견이 있을지 몰라도, 고독은 다 르다. 성분을 알기도 어려울뿐더러, 어 떤 형태로 발동되는지도 확인이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안다고 해도 처리할 방법이 딱히 없다. 그럼에도 고독을 복 용한다면 둘 중 하나다. 철저히 굴복했 거나, 목숨을 버릴 각오를 했거나.
당명희의 독한 기질을 보건대, 굴종은 아닐 것이다.
“죽는 건 쉽지.”
정우는 곱게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다.
죽어서 환생하면 다시 살아갈 기회가 되잖아. 전생이 없었다면 이런 마인드 가 나올 수 없지만, 경험자로서 잘 알고 있었다. 배신자는 환생해서도 잘 살면 배가 아픈 법이다. 죽지 못하는 지옥의 수렁 속에서 무한히 고통을 받아야 한 다.
-누-누누, 이제는 그만月
벨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정우는 통화를 눌렀 다.
_ 야!
“왜‘?”
-멀쩡히 잘 놀고 있는 사람 인질로 만드는 법이 어디 있어!
“살다 보면 인질도 되고 그런 거지. 사소한 걸로 화내지 말자.”
-이게 어떻게 사소해, 하루아침에 인 질범이 된 세경이가 얼마나 놀랐는데!
강천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었다.
이극 총관이 찾아오더니, 오늘부터 인 질 10일째란다. 10일 동안 잘 먹고, 잘 놀고, 잘 먹었다. 귀빈 대접을 받고, 가 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갔다. 그런데 인 질이라고 하니,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 았다.
“당분간 세경이 방 안에서 나오지 마.”
-그건 쉽지 않다고!
“약한남자구나.”
어디가 약한지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쯤 말하면 사내라면 다 안다.
-어허, 나처럼 강한 남자는 없다고.
“그럼 됐네.”
되기는 뭐가?
사랑과 강함은 비례하지 않았다.
또한 상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