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19화 (419/500)

제 7장

물고 물리는 (2)

바르르!

숨통이 조여지기 시작했다. 발이 허공 에 뜬 당명희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 다. 삶을 위한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어떻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독을 개무시하는 데다가 뒤통수를 더 싫어했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다 같이 죽자고 할 위인이다. 이토록 막무가내 의 인간유형은 처음이었다. 숨이 막히 며 의식이 가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살아서 목적을 완수해야 한다.

그녀는 머리를 굴렸다.

‘?뒤통수?’

불현듯 떠오른 희망.

당명희는 숨이 막히는 와중 외쳤다.

“……당신 배신당한 거라고!”

“알아, 이렇게 뒤통수 제대로 맞았잖

아. 방심한 내 잘못이지. 속이라도 후련 하게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일 거야. 우 선 사지를 꺾고, 혈맥을 자근자근 찢어 줄게. 그 예쁜 얼굴이 흉악하게 변했을 때를 죽어가면서 기억하라고.”

일의 선후가 중요하다.

당명희는 그 점에 주목했다.

“……우리가 아니라…… 팽가가 먼저 라고!”

“생긴 거와 달리 구질구질하네, 정말! 내가 팽가의 대호법이야. 말 같지도 않 은 개소리는 그쯤 해줘.”

살려면 뭔 짓을 못할까?

당명희의 절박한 심정을 알기에 정우 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물론 그 바 탕엔 너 따위는뭘해도안된다는 우쭐 함이 섞여 있었다.

다급해진 당명희의 말투가 빨라졌다. 숨이 막혀 더듬거리면서도 해야 할 말 을 끝내 완성하는 삶에 대한 집념을 선 보였다.

“팽가가 당신을…… 이용하기 위해서 준 자리야……!”

“나' 그렇게 통수 맞고 다니는 호구 아 닌데, 좀 이상하긴 해.”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들게 하는 어

투다.

정우는 고개를 살짝 기웃했다.

“……이대로 복……수도 못 하고…… 죽을 거야? 당신…… 말대로 속은…… 후련해야지...

“그건 그렇지.”

대호법의 수긍에 당명희는 삶의 희망 을 봤다.

한편으로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독 으로 협박을 할 때는 콧방귀도 뀌지 않 은 자가, 배신당했다고 하니 180도로 달라졌다. 상식적으로 대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자임을 직시했다. 언제 어 떤 짓을 할지 예측 불허의 존재였다.

“……우리와 함께……한다면…… 복 수할 수 있게 도……와주겠어!”

“좋아.”

손아귀에서 힘이 풀리는 걸 느낀 당 명희는 안도했다.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기는 했어도, 설득을 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 하나. 가슴에 응어리진 화는 폭발하기 직전이 었다. 간신히 억누르고 있을 뿐.

“그 전에.”

정우는 풀어주는 척하며 당명희의 육

신에 금제를 가했다.

당명희는 또다시 손을 써보기도 전에 금제를 당하고 말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다. 무인으로서 수치스러운 일 이다.

찌릿!

그녀는 독기 가득 찬 눈으로 대호법 을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 봐, 혹시 아무런 조치도 없이 풀어줄 줄 알았어? 한 번은 실수 지만, 두 번은 상병신이잖아.”

“무슨짓을 한거죠?”

“내 특제 혈맥술이지, 풀지 못하면 피

가 썩어가며 곪아가는 걸 네 눈으로 직 접 봐야 할 거야. 사내보다 여인에게 효 과 만점이지.”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여인의 희망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점혈법이다. 남녀 성비를 따져보면 여자의 경우 절망감이 훨씬 컸다.

당명희도 무인이기 전에 여인이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무덤덤해질 거 란 생각은 착각이다. 오히려 아름다움 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그런 식으로 처 참하게 죽을 바에는 자결을 택할 것이 다.

“후회할 거예요!”

“그건 내가 할 소리고.”

당명희는 육신에 가해진 금제가 보통 이 아님을 직감했다. 마냥 허튼소리로 치부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뼈아프다. 이자를 보다 더 자세히 파악하고 일을 벌였어야 했다. 순간의 울화를 참지 못 하고, 자제력을 잃어버렸다.

“자, 그럼.”

“뭐…… 하는 거예요?”

금제도 했겠다, 당명희는 협상이 끝났 다고 여겼다. 한데 대호법이 뭔가를 더 하려고 했다.

그가 당화운과 당무정을 향해 걸어갔 다.

“뭐 하긴, 이놈들도 금제를 걸어놔야

지. 너희들을 뭘 믿고 그냥 방치해.”

≪..2”

당명희는 말문이 막혔다.

협상에도 도(道)가 있거늘.

그딴 것 없다.

본인 하고 싶은 걸 반드시 한다.

성격 정말 거지같다.

사회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자 중에 서도 최악일 것이다.

당화운과 당무정도 당황하기는 마찬

가지다.

당황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마치 자 신들을 언제든 금제할 수 있다는 말처 럼 들렸다. 당문의 장로와 대주를 제멋 대로 할 수 있다 여기다니, 자존심이 상 했다. 무인은 자존심 빼면 시체였다. 자 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다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누구긴, 패잔병에 버려진 패지. 안 그래?”

하북삼도를 데리고 올 걸 그랬다. 왔 으면 동류의 더러운 기분을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

이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본인 딴에는 중요한 위치라고 봤겠지만, 직장에서는 실상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은 극심한 좌절감과 허탈감을 맛보게 된다. 사회든 직장이든 인간의 존엄을 잃어가 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네놈, 죽고 싶은 것이냐‘?”

“협박은 우위에 있을 때나 하는 거고, 순순히 당할래? 맞고 당할래?”

“오냐! 죽여주마!”

협상이고 나발이고, 사람을 이토록 개 무시하는 종자와 대화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장 죽이지 않으면 죽어서도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병신은 이래서 안 돼, 주제 파악을 못하거든.”

당화운과 당무정은 대비를 했다.

이가 부러지도록 화가 치밀지만 놈의 능력까지 의심하지는 않았다. 당 총관 을 제압한 것 이전에 황보세가와 제갈 세가의 협공을 막아냈다. 그것만 봐도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벅!

한 발을 내디뎠다.

휙!

공간이 빈다.

“?아니?”

“사라졌어!”

당화운과 당무정은 눈앞에서 목표물 을 잃어버리자, 당황하고 말았다. 시야 를 벗어나는 고속이동이었다. 하물며 감각마저 흩어놓았다. 깔아놓은 제공권 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눈먼 장님이 되어버렸다.

“……뒤예욧!”

당황한 외침.

당명희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등지고 있었던 대호법이 어느새 당화운 과 당무정의 배후를 간단히 제압했다. 당문이 비록 독으로 유명하다 하나, 무 공이 약하진 않았다. 무공으로도 능히 다른 오대세가보다 우위에 있다 자신했 다. 하물며 당문이 배출한 최고의 기재 로 꼽히는 당화운과 당무정이었다.

‘저럴 수가!’

비현실의 극치,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꽈아아앙!

정우는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패잔병을 상대로 두 수 이상 할애할 만큼 번거로운 짓을 하지 않았다. 통수 에는 통수로 대응을 해주었다.

배후를 장악한 후 제공권을 통제했다.

가차 없이 권공을 날렸다.

사각으로 돌아서지 못한 당화운과 당 무정은 권공에 맞아 튕겨져 나갔다. 인 공호수의 수면장력이 발생해 물수제비 를 그리며 장원의 외벽까지 날아갔다. 고속주행 시 빗길에 미끄러진 자동차처 럼 제어를 잃었기에 방비는 불가능했 다.

쿠우웅!

외벽에 부딪친 당화운과 당무정은 극 심한 충격에 객혈(略血)을 했다.

심각한 내상을 입었는지 붉은 선혈이 얼굴을 적셨다. 볼썽사나운 꼴은 거울 을 굳이 보지 않아도 파악이 된다. 육신 의 통제력이 9할 이상 사라져 버렸다. 남아 있는 1할도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 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 회복하려면 시간이 간절하다.

“……이럴 수는…… 없어!”

“……우리가…… 단 일……격에!”

육신의 층격보다 정신이 입은 타격이 더 컸다.

나름 당문에서 핵심 멤버인데다가 강 호무림에서도 명성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일격에 내외공이 무용지물로 변했다. 당하고 나서도 믿 어지지 않는 충격적인 현실이다.

까딱, 까닥!

정우는 검지를 좌우로 와이퍼질하면 서, 심심한 위로를 해주었다. 마치 비 오는 날 길 고양이에게 오늘의 일기예 보를 친절히 설명해주듯.

“일격은 아니니까, 자존심 상하지 않 아도 돼.”

“?그게 무슨?

곧 그 말뜻을 깨닫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족영促影)이 시야를 가

렸다.

퍼퍼퍼퍼퍼퍽!

쿠웨웨웩!

찰진 타격감을 자랑하는 정우의 발길 질이었다.

그냥 냅다 후렸을 분인데, 무영각(無 影脚)을 이루었다. 초월경에 이르면 어 떤 행위를 하든, 오의가 저절로 따라오 기 마련이다.

하수는 느끼지 못하는 많이 다른 격 차, 경지에 오른 자만이 행하는 일종의 특권이다. 이는 옆에 밥숟가락이 있음 에도 굳이 강기로 수저를 만들어 먹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아까부터 거슬렸거든, 속도 뒤집히 고.”

정우는 받은 대로 해주었다.

협상은 협상이고, 깝죽거리는 걸 용납 할 만큼 도량이 넓진 않다. 멍청하게 팔 이나 잃고 돌아온 패잔병에게는 더더욱 가차 없다.

“영광으로 알아. 내 발길질을 이렇게 까지 많이 받아본 자는 드무니까.”

일격으로 끝내면 서운하다고 했으니, 작은 호의는 남겨두었다.

다만, 처맞고 있는 당화운과 당무정은

고통과 동시에 울화가 치밀었다. 일격 이 서운하다고 무자비한 구타를 당하고 있으니. 이건 서운한 것도, 괜찮은 것도 아닌 게 되었다.

“……그만하세요!”

“너도 처맞을래.”

당명희는 더는 말리지 못했다.

저 인간은 충분히 그럴 위인임을 깨 달았다. 협상을 했다고 안심하면 위험 했다. 수틀리면 판을 뒤집어버릴 자다.

“찾았어요.”

“어딘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와 닿는 곳 이에요.”

“가깝나 보네.”

“장원에서 2천 킬로도 안 돼요.”

“스케일 자랑하는 거냐.”

대륙의 거리 스케일을 보여주는 대목 이었다. 한국에서 400킬로미터만 해도 서울과 부산 거리다. 그 정도면 굉장히 멀다고 난리가 날 텐데. 중국의 땅덩어 리에 비교하면 서울, 부산은 지척, 인근 도시였다.

“판을좀 더 키워보자고.”

“위험하지 않을까요?”

“감수해야지.”

“자기 일 아니라 이거죠.”

“하오문도 이제 큰물에서 놀 때가 됐

지.”

여운랑에게도 이번 일은 위험했다.

하오문의 특급 정보원을 동원하고서 야 알아냈다. 그만큼 베일에 싸여 있었 던 것이다. 자칫 모르고 지나칠 작은 단 서를 통해 간신히 찾아냈다.

“그러다가 판이 아예 없어질 수도 있 어요.”

“오만하네.”

“뭐가요?”

“세상에 공백은 없어.”

공백이 생길 거란 기대는 하지 마라, 본인이 아니면 안 되는 일도 아니다. 비 워진 자리는 항상 채워진다. 이는 개인 뿐만 아니라 단체, 더 나아가 국가도 마 찬가지다. 세상은 공백을 허용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빈자리는 항상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그것 이 어떤 세상이든.

“이번에도 3할 주지.”

“자꾸 이런 식이면?”

“이런 식이면, 뭐?”

“사랑할지도 몰라요.”

기회를 봐서 안기려고 했으나, 철벽이 었다.

이득의 3할이면 적지 않았다.

남궁세가가 가지고 있던 자금의 3할 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하오문 으로서는 10년 치에 해당되었다. 당분 간은 자금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 데 또다시 3할을 약속했다. 아무나 하 기 힘든 배포였다. 재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는데 신기할 지경이다.

‘약속은 칼이라니까.’

여운랑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화장실 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른 건 인 간의 본성이었다. 하물며 막대한 금액 이면 대다수가 어떻게 해서든 깎으려고 한다. 반면에 대호법은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본인 입으로는 두말도 한다고 하면서.

“받은 만큼만 해. 나는 더 열심히 하 라고도 안 해.”

“그 말이 더 무섭네요.”

이만큼이나 받고 모른 척했다가는 어 떤 사달이 벌어질지, 여운랑조차도 상 상불가였다. 적당히 먹었으면 입 씻고 모른 척할 텐데, 그러기에는 액수가 허 벌나게 크다.

“적당히 정보를흘리도록 해.”

“걱정 마세요.”

“가봐.”

“그냥요?”

“뭐?”

“작별의 키스라도.”

여운랑은 도톰한 입술을 내밀며 한껏 순수함을 표현했다. 나이가 30이 넘었 을 텐데, 나름 소녀감성을 가지고 있었 다. 수수한 모습만 봐서는 절대 산전수 전 다 겪은 여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 자란 동물이 변신의 귀재임을 새삼 느 낀다.

“대신 방금 만들어놓은 뜨끈한 죽빵 은줄수 있는데, 먹고 갈래?”

“배불러요. 헤헤!”

새침하게 미소를 지으며 사라지는 여 운랑이다.

마치 벽에 흡수되듯, 극성에 도달한 잠입술. 그녀의 성취가 굉장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결코 가볍지 않 았다.

‘깜찍하군.’

순수 능력으루.두 그녀는 약하지 않았

다.

하오문이 아닌 정종무문에 속해 있었 다면 여제(女帝)가 될 상이다. 그렇다 하 나 그녀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자기 가 가진 신분과 배경 속에서도 그녀는 꿋꿋하다. 그런 여인에게 동정은 사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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