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18화 (418/500)

제 7장

물고 물리는 ⑴

어딜 가나 장원에는 꽤 큰 규모의 정 원이 있었다.

정우는 터를 잡고 강태공이 되어 낚 시를 또 즐겼다. 안타깝게도 정원의 물 고기는 일전에 잡았던 비단잉어보다는 못했다. 한 마리에 고작 10만 원을 넘 지 않았다. 2천만 원짜리 대어를 잡아본 천생(자칭) 강태공으로서는 무척이나 아 쉬웠다.

고양이를 데리고 오지 못한 것도 마 음에 걸린다. 2천만 원의 비단잉어에 익 숙해지면, 다른 물고기는 눈에 차지도 않을 텐데.

여하튼 낚시라는 게 참 오묘하다.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지루한 행위 처럼 보이는데, 해본 사람일수록 참맛 을 느끼게 한다. 한밤중 고요한 호수에 홀로 텐트를 쳐놓고, 의자에 앉아 낚시 를 하며 밤을 새울 때의 쾌감이란. 특히 아침에 먹는 매운탕과 라면은 별미의 끝을 달린다.

‘이럴 때는 믹스커피가 최고지.’

일명 다방 커피, 그 외의 커피는 참맛 이 안 나온다. 그 맛은 당구장에서 짜장 면을 시켜 먹었을 때와 비슷하다.

“어, 왔어.”

낚시를 한참 즐기던 정우가 고개를 돌려 당명희를 알은체했다.

오가다가 간혹 만나는 사람처럼. 부르르!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는 정우의 무위

자연(無爲自然)에 당명희는 열이 뻗쳤다.

‘ 이자가!’

정문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들어가 기 위해 실랑이까지 벌였다.

간신히 들어와 홀대했던 문지기를 단 죄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우르르 몰려 든 혹금단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었다. 알고 봤더니 문지기가 혹금단이었다. 사방을 포위하며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 며 위협을 가하니 답답함이 밀려왔었다. 싸워봤자 이득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분노가 치밀었다.

그 일만 해도 짜증이 극에 달했거늘.

그 주인이란 놈은 더하다.

개고생을 한 자신과 달리 한적하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얄밉다. 맘 같아서는 독을 써서 한 줌의 혈수(血水)로 녹여버리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가주의 명을 이행 하기 위해서는 이 빌어먹을 오랑캐 놈 이 필요했다.

마음을 다독였다.

그럼에도 당명희의 말투엔 가시가 돋 쳤다.

“여기서 뭐 하는 거죠?”

“뭐 하긴. 열심히 일한 자, 낚시하라

는 유명한 격언도 있잖아.”

열심히 일한 자를 모욕하지 말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당명희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한 겹으론 저 렇게까지 하지 못한다. 최소한 열 겹 이 상의 강철로 이루어진 후안무치의 철면 피였다.

“지금이 한가히 낚시나 하고 있을 때 인가요?”

“남이 바브다고, 나까지 바빠야 하는 법 있나.”

정우는 놀 때 잘 놀고, 일할 때는 빡 시게 하는 스타일이다.

남이 편한 일을 하고 돈 많이 번다고 해서 배 아프지도 않다. 본인이 힘들게 일하면서 박봉에 시달린다고 해서, 남 을 무조건 시기해서는 발전하지 못한 다.

부들부들!

말이나 못하면.

당명희의 냉철한 이성은 무너지기 일 보 직전이었다.

사람 속을 이렇게까지 잘 뒤집어놓는 인간은 처음이다. 한국과 중국을 넘어 세계를 뒤져봐도 이런 유형의 인간은 찾기 힘들 것이다.

“곧 황보세가와 제갈세가의 주력이 이곳으로 몰려올 거예요. 그런데도 괜 찮은 건가요?”

“당문의 주력은 언제 도착하지?”

오면 오는 거지, 호들갑 떨지 말라는 대범함.

그런 대범함마저 당명희에게는 짜증 유발행위였다. 당황하는 모습을 꼭 봐 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저희가 다예요.”

“장난하는 거야? 그리 나오면 나도 물 러설 수밖에 없어.”

지원도 없이 싸우지는 않겠다는, 태원

지부에서와는 딴판인 정우다. 반드시 지원을 받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피력했 다.

정우가 슬쩍 운을 띄우자, 당명희는 추임새를 바로 넣었다.

“그럴 수 없을걸.”

“뭐?”

“당신 요즘 미세하게 균형이 어긋나 고 있지‘?”

“어떻게 알았지?”

기선을 잡았다 여긴 당명희는 득의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상 계속 밀리고만 있었다.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알려줄 때가 되었다. 노예가 주인을 몰라보고 설치면 매질을 당해도 싸다. 앞으로 이자 쳐서 갚아나 가야할것이다.

하나 손은 주둥이보다 빠르다.

꽈악!

당명희가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

꾸욱!

목이 잡혔다.

당명희의 목은 가늘고 긴 편이었다.

정우는 손안에 착 감기는 그립감을 맛보았다. 물렁한 살가죽을 투영하여 톡 하면 부서질 둣 연약한 목뼈가 손끝 으로 느껴졌다. 이거야말로 손맛의 표 본. 사내 목은 둔탁해서 그립감이 좋지 는 않았다.

잡는 맛이 있어야 부러뜨릴 맛도 있 는 법.

“씨부랄! 뭣 같은 년이 잘도 장난을 쳐놨네. 어째 며칠 전부터 오줌발이 가 늘다 했어. 전립선에 이상이 있나 비뇨 기과에 가보려고 했더니. 깜찍한 짓을 벌였겠다!”

평소 포스코 강철도 거뜬히 뚫어내던 오줌발이 며칠 전부터 공중 소변기조차 부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흠집을 내 는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아차!

‘3일동안물 안마셨구나.’

실언했네.

개소리를 정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뇌 리를 스쳤으나, 이미 내뱉은 말은 어쩔 수 없다는 무책임으로 나섰다. 사람이 살다 보면 사소한 이야기는 잊어먹을 수도 있는 거다. 그냥 그런 줄 알고 넘 어가라는 엄포가 담겼다.

여하튼 적반하장 하면 어디 가서 빠 지지 않는 정우다.

네가 그런다고 어쩔 거냐, 라는 의미

도담긴다.

“어린년이 오냐오냐하니까, 세상이 만 만히 보이냐!”

숨이 막혀 말문이 막힌 당명희는 울 화가 치밀었다.

나이는 자신이 훨씬 많았다. 몰라서 그런다면 모를까, 알고 있으면서 그러 니 더더욱 짜증이 난다. 그렇다고 내가 더 나이가 많다고 외칠 수도 없는 노릇 이다.

화를 토해낸 정우는 손을 살짝 풀었 다.

“해독제 내놔.”

“……줄 것 같아!”

“어쭈, 죽고 싶다 이거지.”

“……죽이려면 죽여! 하지만 너도 죽 을 거다!”

“내가 못 죽일 거라고 봤다면, 오산인 데.”

정우의 눈을 본 당명희의 동공이 흔 들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죽이고 말겠다는 무 덤덤함이 비쳐졌다. 하지만 그보다 놀 란 점은 반항조차 못 했다는 사실이다.

‘……잘못 생각했어!’

당명희의 무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제갈세가와 황보세가의 합공에서도 홀로 빠져나올 만큼 무공 역시도 뛰어 나다. 절대급의 고수와 맞붙어도 패배 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방심한 면이 없 지 않아 있다고 해도, 이토록 간단히 목 을 잡힐 줄은 몰랐다. 비서 장악을 운으 로 치부하기 힘든 무력을 가지고 있었 다.

그렇다 해도.

당문이 자랑하는 무형지?독無形之毒) 에 중독되었다.

무형지독은 무음, 무형, 무취로만 세 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독 이 아닌 합일독이다. 당문의 절대십독 (絶代十毒)을 소량으로 나누어 천독공으 로 융화, 무형지독을 완성한다.

일단 중독이 되면 완전한 해독은 불 가능하다.

한 달에 한 번, 당문에서 제작한 해독 제를 복용해야 운신이 가능하다. 더욱 이 천독공을 운용하게 되면 즉시 독을 퍼뜨릴 수 있었다.

“……내가 죽으면 넌 반드시 죽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뒤통수

맞으면서 질질 끌려 다니는 게 죽는 것 보다 더 싫어.”

정우는 히죽거렸다.

어디 죽일 테면 죽여봐라, 라는 뉘앙 스다.

‘……이 미친놈!’

기세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걸 알지 만, 당명희는 혼들렸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몰 아쳤다. 천독공으로 단숨에 독을 퍼뜨 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다고 자신이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멈추지 못할까!”

“당장 그 손 놓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당화운과 당무정이 나타나 흉흉한 기 세를 끌어올리며 엄포를 놓았다.

그들로서는 뜻밖의 상황전개다.

무형지독에 중독된 이상, 총관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비웃듯 총관은 제압된 채 허공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병신이 어디서 주둥이를 나불대. 평 생 발가락으로 처먹게 남은 한 팔도 마 저잘라주랴.”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혼잔 안 죽어, 너희들 싹다 죽일 거 니까.”

“허튼소리 하지 마라!”

당화운은 당장에라도 놈을 죽이고 싶 었다.

팔을 잃은 것도 미쳐버릴 일인데, 병 신 취급까지 당했다. 같은 하늘을 두고 살지 못할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듯, 살 기가 충만해졌다.

반면 당무정은 달랐다.

상황을 냉철히 봐야 했다. 놈은 총관 을 순식간에 제압할 능력이 있었다. 허 튼소리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씨익!

정우는 히죽였다.

어차피 계집의 목이 손안에 있었다. 허투루 움직일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다. 그뿐인가? 당문의 가주가 명을 내렸 을 텐데, 선택은 정해져 있었다.

“해독제를 줄지 말지 잘 생각해, 난 진심이니까. 너희들 다 죽이고 당문의 가주가 안휘성으로 넘어왔다는 걸 황보 세가와 제갈세가에 알릴 거야.”

“그렇게 하도록 놔둘 것 같으냐!”

“설령 내가 죽더라도 당문은 회복하 기 힘든 타격을 받게 될 거야. 청성파나 아미파도 좋아할걸.”

“헛소리 지껄이지 마…… 아니?”

당화운과 당무정의 안색이 변했다.

제공권을 파고들어 오는 기운이 폭발 적으로 늘어났다. 어느새 주변을 가득 메우는 혹금단이었다. 흉흉한 살기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종류였다. 장원 에 들어올 때 보여주었던 삼류왈패와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 다.

“죽기 딱좋은 날씨지?”

“이러면 네놈들도 다 죽는 것이다!” 당화운과 당무정은 죽음을 거론하며 엄포를 놓았다. 주인을 따르다가 개죽 음당하기 싫으면 물러서라는 협박이다.

주군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나, 모두 다는 아닐 것이다. 어 느 한 부분이 파격을 이루면, 전체는 혼 란에 빠진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

흑금단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근래에 들어본 농담 중에서 가장 웃 기다. 아는 만큼 웃기다고, 누구 앞에서 죽음을 거론하는 건지 안다면 더 웃기 다. 단주는 사신도 찜 쪄 먹을 위인이다.

그런 단주가 죽음을 내리지 않는데, 누 구 맘대로 죽는단 말인가. 흑금단은 만 수무강을 따놓고 있었다. 절대 죽을 거 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웃지 밀자, 그런 분위기 아닌 것 같 다.”

“병신이 꼴값 제대로 떠는 거지.”

“팔 병신이 아니라 대가리가 병신인 가 보다.”

“병신, 병신 그러지 마라, 듣는 병신 진짜로 병신 같은 기분 일 거다.”

“장애인 혐오 발언 하지 마, 그거 차 별이야.”

“맞아, 맞아. 장애인도 존중해야지.”

이것들이 정말 제정신으로 지껄이는 것인가.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던 당화운과 당 무정은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 다. 그 주인에 그 수하라고 해도, 정도 가 있었다. 하나같이 정상적이지 않아 서 현실 부정을 하게 만들었다. 원래의 그림은 이렇지 않았다. 독에 중독된 이 상 살기 위해서 굴종을 해야 했다.

대호법의 자존심을 너무 가볍게 봤다.

미친놈인 동시에 자존심이 하늘을 찔 렀다. 저런 자들은 결코 누구의 밑에 있 을 그릇이 애초에 아니다. 지 잘난 맛에 사는 인간 외 규격의 별종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단체로 미쳐버리다니, 머리를 달고 사 는 종족이라면 미래를 걱정해야 정상이 다. 이놈들은 하나같이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 다. 관을 봐야 경을 친다는 협박이 애초 에 성립되지 않았다.

‘아, 죽고 싶다!’

‘죽을 수 있는 게 행복한 거다.’

‘복 받은 놈들!’

혹금단의 속마음을 당화운과 당무정

이 알았다면 애초에 협박을 하지도 않 았을 것이다. 근래에 들어 초창기보다 복지 면에서 개미 똥구멍만큼 좋아지기 는 했어도, 여전히 인간적인 삶과는 거 리가 멀었다. 삶보다 죽음에 마음이 기 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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