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16화 (416/500)

제 6장

안휘풍운 (4)

여운랑은 철저한 실리주의자다.

어쭙잖은 정의를 부르짖지 않았다. 그 리 산 자들치고 오래가는 꼴을 보지 못 했다.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지 만, 세상일이라는 게 항상 선의가 되진 않는다. 싫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었 다. 혼자 고고한 척, 명예로운 척하는 거야말로 위선이다. 모두를 위해서 똥 물이라도 뒤집어쓸 각오야말로 진정한 용기다.

“미리 밝히지만 이건 내 자랑이 절대 아니야. 그러니까 아주 객관적인 판단 이란 걸 명심해줬으면 해. 그럼 말한다. 아직 적수다운 적수를 못 만나봐서 모 르겠어. 이게 솔직한 내 답변이야.”

“본인 포장의 달인이시네요.”

“강한데 약한 척하는 게 더 꼴 보기 싫지. 그런 거 있잖아. 숨기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실력을 발휘해서 눈에 들려는 거.”

정우도 전생에서 무지하게 많이 겪어 봤다.

협객 나부랭이들이 여자 꼬이는 수법 중에 하나다. 객잔 혈풍 편에 나오는 내 용으로 꼭 가만히 있다가 결정적인 순 간에 나와서 삼류 건달을 처리하고 여 자를 꿴다.

그때는 어렸는지 몰라도, 배알이 꼴려 서 협객 나부랭이를 살려두지 않았다. 같잖은 실력으로 우쭐대는 꼴도 보기 싫었다. 당당한 척해도 본인이 당할 거 라고 생각을 하지 않기에 배짱을 부렸 던 것이다. 최후에 가면 살려달라고 울 며불며 지랄을 떨었다.

“주변은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거야 그쪽 사정이지, 내가 강하다 고 동네방네 소문낼 수도 없는 노릇이 고.”

나 이 정도로 강하니, 알아서들 내 밑 으로 기라고 하면 잘도 말을 듣겠다. 설 령 그렇다고 한들 대부분은 굴복하지 않는다. 본인들이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내 사람들만 알면 되지, 굳이 남까지

알 필요가 있겠어. 우물 안 개구리가 불 행할 거란 판단은 오만이야.”

사람들은 말한다.

넓은 세상을 보고 오라고. 그럼 식견 이 달라질 거라고 한다.

한데 넓은 세상을 보면 과연 행복할 까? 우물 안에 있다고 해서 마냥 불행 하진 않다. 행복은 다수가 아닌 개인의 관점이 작용한다. 세상이 능력을 인정 해줘도 내가 불행하면 어쩔 것인가? 다 수가 행복할 거란 예시는 가정에 불과 하다.

“모르는 게 약이라 이건가요.”

과연 모르는 게 약일까?

돌려 말했을분.

내 사람일 때는 약일지 몰라도, 돌아 서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여운랑은 만약에라도 배신하면 지금 처럼 어설픈 농담 따먹기나 하진 못할 거란 확신이 섰다. 대호법은 겉으로 보 이는 게 전부가 아닌 자다. 언제든 마음 만 먹으면 잔혹해질 수 있었다.

지금도 봐라, 수많은 시체가 쌓여가고 있는데도 태연하기만 하다.

“나는 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면 그 만이야.”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네요.”

좁은 우리 안에서 행복해지고 싶다는 어감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여운랑은 대호법의 세상 밖으로 벗어 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괜히 눈 밖에 났다가는 편히 저세상 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욕심난다.

‘배꼽 부딪치고 살다, 애라도 생기면 그땐 어쩌겠어.’

설마 자기 자식인데 모른 척하지는 않을거라고본다.

여운랑은 본심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여자는 외모, 남자는 능력이라는 속물 근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들, 돌아가는 현실은 원초적일 분이다. 개중에 아닌 자들이 있지만, 절대 다수라고 할 순 없으니까.

‘그럼 뭐하냐고. 제기랄!’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현재로서는 자빠뜨릴 방법이 전무했 다. 平]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나, 당문 의 독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위인이 었다. 통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 불성설이다.

“쟤들도 다 봤을 테니, 슬슬 연락을 해봐야겠군.”

“왜요? 저들도 검지로 희롱하게요?”

“내 검지는 여성용이야.”

“그거 남녀 차별에 성희롱이에요.”

정우는 남성용으로 발가락을 고민하 다가, 그것도 좀 이상해서 그만두었다. 소중한 발가락에 죄를 짓는 짓이다. 대 안으로 강기를 염두에 두었다. 어쨌든 여운랑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현 시대 에 부합한 상식대로 움직일 필요가 있 었다.

“미안하다.”

“……지금 사과한 거예요?”

“난사과하면 안되는 게유”

“사과할 사람은 아니죠.”

여운랑은 깜짝 놀랐다.

사과가 이토록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나 싶었다. 한데 대수롭지 않게 사과 를 하고 있었다. 그 점이 더 무섭게 다 가왔다.

‘두말한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주력이 궤멸된 남궁세가는 안휘성 내 의 지배력은 물론 정보력마저도 큰 손 실을 봤다. 남아 있는 정보 체계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크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현실이 었다. 정보체계를 새로이 구축하고 확 장해야 했다.

그러던 때.

하오문의 지부를 통해 정보가 흘렀다.

전의 일들이 미심쩍기는 해도 남궁세 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했다. 웅크리고만 있어서는 성과를 내기 어렵 다. 모든 일은 행동을 해야만 결과가 나 온다. 머릿속에서 계획을 세운다고 해 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사실이었구나.”

남궁세가에서 파견된 자들.

신영단(新營團)의 단주 천호승과 세 명의 단원.

그들은 몰래 숨어 전투가 벌어지는 광경을 주시했었다. 전해진 정보대로 황보세가와 제갈세가가 판 함정으로 팽 가의 대호법과 혹금단이 전면전을 벌였 다.

“저런 터무니없는 괴물일 줄이야!”

천호승과 단원들은 전장을 보며 소름 이 돋았다.

주검으로 화한 자들은 황보세가와 제 갈세가의 장로다. 그들의 면면을 알고 있기에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물며 혹금단의 전투력은 일 반적인 상리를 벗어났다. 기간트를 최 적화한 전투술은 소름이 끼쳤다. 그야 말로 잔혹한 학살극의 끝판왕이었다. 전장에서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게 전율 을 증폭시켰다.

“이제 어쩌지요?”

“어쩌긴, 선택해야지.”

답이 나오기도 전, 비집고 들어오는 목소리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낯선 그림자가 형태를 완성한다.

“?언제?”

“거리가 너무 가깝잖아.”

팽가의 대호법이 서 있었다.

천호승과 단원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 지 않았다. 저항도 어느 정도 비벼볼 여 지가 있어야 하지, 이건 계란으로 국내 생산 강철이 아닌, 포스코 강철을 두드 리는 격이다. 경직된 육신은 공포에 젖 어 땀으로 흥건히 젖어갔다.

지리고 오지는 현실.

절절히 싸고 싶다.

“우릴 어쩌려고?”

“죽이려고 했으면 굳이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었어.”

누군들 숨어서 지켜보는 자들을 좋게

보겠나. 목적이 없었다면 대화보다는 행동이 먼저일 것이다.

“난 안휘성을 누가 먹든 관심이 없어. 그러니 가서 잘 말해봐.”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걸로 충분할 텐 데.”

“설마?”

“황산의 절경이 아름답긴 하지.”

천호승은 마른침을 연신 삼켜야 했다.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도 지금의 자신에 비하면 행복할 지경이다. 팽가 의 대호법이 절대급의 고수라는 걸 알 면서도, 반도의 오랑캐라 하여 폄하했 었다. 이제는 그럴 수도 없었다. 마주하 는 것만。.루두 오금이 저려 온다.

“……대륙은 중화인의 것입니다!”

“누가 뭐래.”

중화인으로서 물러서고 싶지 않은 오 기가 발동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더 나아간다면 남궁세가는 혼적도 없이 사 라지게 될 것이다.

“전하겠습니다.”

“입단속도 하고.”

남궁세가는 오늘 일을 사실대로 전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소문을 낸다 해도 황보세가와 제갈세 가, 사천당문은 믿지 않을 것이다. 도리 어 세가에 대한 정보를 흘리는 꼴이 된 다. 제약이 많아진 현실이 처량하게 다 가왔다.

사천당문은 황보세가와 제갈세가의 협공에도 끈질기게 버텼다.

그 중심에 당명희와 당화운의 독공이 위력을 발휘했다. 하나 만반의 준비를 한 두 세가의 협공은 엄청났다.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활로를 열었다. 암 천대와 혈수단의 절반이 죽었고, 남은 절반도 부상자가 꽤 있었다.

그분이랴.

혈독수 당화운은 오른팔을 잃었다.

황보무진과의 격전에서 경력이 실린 권강을 막아서다 그리되었다. 황보세가 내에서 서열 3위의 실력을 가진 황보무 진은 무공의 천재였다. 단순무식한 성 격이지만, 무공 하나만큼은 발군의 역 량을 갖추었다.

하아, 하아.

당명희로서는 살아생전 겪어보지 못 했던 낭패다.

안전한 상황도 아니다. 독공을 써서

시간을 벌기는 했어도 오래 버티지 못 한다. 지체하고 있다가는 목숨을 보장 하기 힘든 험로였다.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그녀는 팽가에서 소문을 흘렸다고 확 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작금의 상황 을 납득하기 어렵다. 오늘의 사태로 가 장 큰 이득을 볼 세력은 하북팽가다.

띠링!

휴대폰에서 동영상 메시지가 떴다. 송 수신을 방해하는 전파가 퍼져 있어 연 결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간간이 수신 지역이 있는 곳에서만 연락이 된다. 한 데 전파 구역은 제갈세가와 황보세가의 추적 범위에 속했다.

-어이, 끝났나?

팽가의 대호법이 보낸 동영상 메시지 다. 굉장히 여유로운 작태가 당명희의 현재 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여긴 점령 끝났는데, 거긴 어때? 이 거 연결이 되어야 뭘 하든가 할 텐데. 왜 이렇게 연결이 안 되는 거이? 통신 사는뭘하나 몰라.

끝났다고?

당명희로서는 뜻밖의 소식이다. 대호 법과 혹금단도 황보세가와 제갈세가의 협공에 궤멸지경에 처해 있어야 했다.

“어떻게?”

그녀의 물음에 대답이 들려오진 않았 다. 동영상은 찍어놓은 영상을 업로드 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질의응답을 하 려면 송수신이 되어야 했다.

-자신하고 있었으니, 그쪽도 끝냈겠 지. 난 식사 좀 하고 푹 쉴 테니, 나중 에 연락하라고.

일방적인 메시지만 전하고, 동영상은 끊어졌다. 용량이 큰 메시지는 보낼 수 없기에 용건만 간단히 전했다.

“쉰다고!”

알고 그랬다고 보긴 힘들지만, 당명희 는 약이 바짝 올랐다.

최악의 상황에 목숨마저 위태로운데, 놈은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농락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맘 같아서 는 놈을 잡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당장은 살아남는 게 급선무였다. 전력을 분산시키고 뿔뿔이 홑어지라고 명을 내렸다.

‘두고 보자!’

당명희는 찰나, 홈칫했다.

찌릿!

급작스럽게 날아온 권강을 방어해야

했다. 천독공(天毒功)을 운영하여 막아 섰다. 피하기에는 늦었다.

꼬H아앙

독기로 운용된 천독강기와 무형권강 이 맞부딪치며 격렬한 파장을 생성했다. 거친 파장이 휩쓸고 지나가며 일대를 주목시킨다.

휘이이잉!

기습적인 공격을 가한 자는 천권 황 보무진이다.

그가 추적을 멈추지 않고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물론 모든 동선은 제갈성 이 예측한 대로였다. 제갈세가는 만약 을 대비해서 당문이 도망칠 퇴로까지도 염두에 두었었다. 퇴로의 군데군데에 기관과 진법을 설치해 유도했다고 봐야 했다.

“독봉,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황보무진도 분노하기는 마찬가지였 다.

제갈세가의 의도대로 퇴로를 유도하 기는 했어도, 실상 함정에 끌어들인 후 무너뜨렸어야 했다. 그러나 당문의 독 공은 예상보다 더 지독했다. 해독약과 피독주를 사용했음에도 피해가 상당했 다. 추적이 늦어진 이유는 그 때문이었 다.

하물며 독공을 이용해서 자폭까지 서 슴없이 할 줄은 몰랐었다. 당문이 지독 한 이유를 몸소 체감했다.

“기어이 끝장을 보자는 것이냐, 좋다! 와라!”

“계집 주제에 배짱이 두둑하구나!”

당명희도 더 이상의 도주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동선이 지나치게 간단 히 노출되었다. 의도된 퇴로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도주는 무의미하다.

“죽여주마!”

“어림없다!

당명희와 황보무진이 전력을 끄집어 내며 손속을 겨루었다. 이 대결이 승패 의 향방을 가르게 될 것임을 모르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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