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안휘풍운 (3)
“오랑캐 따위가 상국의 무인을 해한 죄 저승에 가서 사죄해라!”
“그건 죽은 다음 일이고.”
저승은 죽어야 가는 장소잖아.
정우는 버러지에게 죽을 만큼 안이하
게 살아오지 않았다.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이 남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려 고 하는 것부터가 같잖다.
그러니까, 허망하게 뒈지지.
“?아니?”
“초식 한번 거창하네.”
장무기는 등골이 오싹했다.
정우가 장무기의 뒤를 장악했다.
“어떻게?”
“막아내고 환영을 일으킨 후, 방심한 사이에 걸어 나왔어.”
당연하다는 듯 설명하지만, 장무기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빠져나가는 걸 감지조차 못 했다. 제 공권과 기감을 완벽히 무력화했다는 의 미다. 이는 자신보다 몇 수 위가 아니고 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작 부리지 마…… 커억!”
장무기가 성급히 돌아서려는 찰나, 정 우의 발이 더 빨랐다.
가랑이를 사이에 두고 발이 수직을 향했다. 급소를 제대로 처맞았다. 제아 무리 절대의 고수라도, 불알을 직격당 하면 참기 힘든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 이다. 하물며 터지는 걸로 끝나지 않을 파괴력이었다.
“앞으로는 남편 노릇도 못 하겠네.”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같은 남자로서 고통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부르르르!
너무 아프다.
아픈 정도를 벗어났다.
장무기와 같은 고수조차 동공이 급속 히 충혈되며 실핏줄이 터질 듯이 팽창 했다. 경직된 육체가 원래대로 돌아오 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스륵!
정우는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고 장 무기의 목을 움켜쥐었다.
꽈악!
숨통을 잡아챌 때의 쾌감이 만족스럽 다. 목이 손에 쫙쫙 감긴다. 이걸 두고 잡고 싶은 목상(顔部)이라고 해야 하나.
커어어억!
손아귀를 통해 침투한 내경이 공력 운용을 위한 기맥을 막아 세우고, 목구 멍까지 조였다. 그러자 장무기는 비폭 력주의자가 되었다.
“죽어맛!”
배후를 노리는 날카로운 기검.
제갈명이 장무기를 구하기 위해서 사 각을 노렸다.
‘말도 안 돼!’
그는 장무기가 사로잡히는 과정에 소 름이 돋았다.
잘 짜인 틀처럼 공격했으며, 파괴력도 최적화를 이루었다. 절대급의 고수라도 빠져나가기 힘든 연계 공격이었다. 자 신들의 합격을 빠져나온 것만 해도 귀 신이 곡을 할 노릇인데, 장무기의 배후 를 장악하다니.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그러나 놀라고만 있을 순 없었 다. 놈이 방심하는 이때가 아니라면 어 떤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
-칠현무형검의 극의, 칠현망혈(七W
血).
무형기검이 거미줄처럼 퍼지며 정우 의 배후를 노렸다.
기검은 빠져나갈 구멍을 원천 봉쇄했 다. 실상 장무기를 구할 수 있으면 구하 고 싶으나, 그렇지 못하면 같이 죽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쏴아악!
고기를 잡는 어부가 투망질을 하듯 퍼지다가 일정 지점에서 모아지며 잡아 챈다.
“?아니!”
피했다.
칠현망혈이 목표물을 잡아채며, 조각 조각으로 분해시킨다. 그러나 환영을 잡아챘을 뿐. 어느새 돌아선 정우가 제 갈명을 마주했다.
“어떻게……?”
“어떻게라니? 내가 분명 검왕을 죽였 다고 했잖아. 그런데 고작 너희 둘이서 날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본 거야? 그 런 자신감이면 여태 남궁세가를 장악하 지 않고 뭘한 거냐.”
정우가 일보를 내디뎠다.
스륵!
공간이 접혔다.
헙!
제갈명이 황급히 보법을 사용해 물러 섰다. 너무 빨라서 반응조차 하기 힘들 었다. 더군다나 대호법은 한 손에 장무 기를 잡고 있었다. 장무기는 살아 있지 만, 동공이 돌아가고 게거품을 물었다. 의식이 있는 사람보다 의식불명인 사람 이 무겁다고 했다. 속도에서 차이가 난 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파앙!
속도만이 아니었다.
가볍게 내지른 주먹에서 발출된 권형 은 무형권강이었다. 벗어나려고 하면 그 앞을 가로지른 무형권강이 막아섰다. 검으로 방어를 해보지만, 맥없이 튕겨 나간다. 대충 뻗고 있는데도 빈틈이 없 어 속이 터질 지경이다.
‘……이럴 순 없어, 이건 꿈이라고!’
제갈명은 살면서 오늘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자신이 누구인가. 제갈세가를 대표하는 장로로 서 절대급의 고수에 버금가는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런 자부심이 반도의 오랑캐로 인해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
“잘도 도망치네, 도망치는 법만 배웠 냐.”
정우가 히죽거렸다.
제갈명은 분노에 치를 떨다 빈틈이 발생했다.
꽈아앙
무형권강이 파고들어 와 폭발했다. 일 반적인 무형권강이 아니라 폭발성까지 갖추었다.
제갈명은 내가기공의 폭발로 인해 비 틀리며 튕겨졌다. 내동댕이쳐진 육체는 속도를 멈추지 못하고 볼품없이 바닥을 내리굴렀다.
저벅, 저벅!
정우는 쓰러진 제갈명을 향해 걸어갔
다.
파팟!
엎드려 있던 제갈명이 번개처럼 바닥 을 박차며 허공을 날았다. 이어서 일장 을 날렸다. 목표는 대호법의 바로 앞이 다.
푸아앙
거죽이 속살을 드러내 흙먼지가 가려 졌다.
속성개방.
?중력강화, 전력약화.
중력과 무공너프, 멀티 속성이 동시에 발휘되었다.
제갈명은 그 즉시 품에서 낙엽 모양 의 비도를 꺼내 들었다. 최후의 수가 아 니면 사용하지 않을 비도술, 적엽비화 (M飛花)를 펼쳐냈다.
슈슈슉!
비도는 바람에 홀날리는 꽃잎처럼 하 늘거리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진기로 그려낸 허상이 시야를 속인다. 실제로는 엄청난 속도를 지니고 있었다. 하물며 중력과 무공너프로 본래 실력을 반도 발휘하지 못한다.
크악!
비명소리가 들린다.
먼지가 가라앉고 그 자리에 선 그림 자가 시선에 들어오자, 제갈명은 기겁 했다. 비도에 적중당한 건 장무기였다. 그는 의식을 회복하기가 무섭게 자신이 죽어간다는 걸 알고, 공포에 젖어들었 다.
“?살려!”
“제기랄!”
목표물을 잃어버린 제갈명이 재빨리 물러서려고 할 때, 장력이 등 뒤를 강타 했다. 허리가 역으로 꺾이며, 척주가 부 서지는 경쾌한 골음이 들렸다.
부거거적!
바닥을 굴러서 장원의 벽면에 멈춰 선 제갈명은 넋이 나간 듯 정면을 바라 보아야 했다. 악마’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허리가 부서지면서 육신은 통제력을 잃 었다.
“?오?지 마!”
오지마 킥이라도 날릴 작정인가, 파득 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꽤나 안 스럽다.
당연히 정우에게는 감홍을 주지 않았 다. 두려움에 벌벌 떠는 인간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익숙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제갈세가의 정예 무력대인 청명대와 황보세가의 오행대도 혹금단에 제압되 고 있었다. 100대의 기간트를 타고 학 살했다. 적수가 되지 않았다. 기간트가 아니라도 혹금단은 강했다. 그런 자들 이 기간트까지 동원해서 잘근잘근 밟아 대고 있었다. 마치 인간이 재미 삼아 개 미를 밟아대는 것처럼.
크아아아악!
살려줘!
사방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온다.
제갈명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거봐, 항복하랄 때 했으면 평화롭고 좋잖아. 아까운 목숨을 쓸데없이 버리 려고 해. 어쨌든 무인으로서 싸워는 봤 으니, 억울하진 않겠지.”
“..가문에서 너를 용서하지.. 꾸
웩!”
정우는 제갈명을 발로 밟아 목을 으 스러뜨렸다.
꾸욱, 꾸욱!
겨울 보리를 심어서 밟듯, 꼼꼼히 밟 았다. 간혹 이런 상태에서도 살아서 꿈 틀거리는 놈들이 있었다. 목뼈가 부스 러지면서 제갈명은 혀를 길게 내뺀 채 동공은 잿빛이 되어갔다. 칠현무적검이 라 불린 검객의 최후치고는 꽤나 허무 했다.
“비도도 꽂았고, 장력도 얼추 비슷하 니 재밌는 그림이 나오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손을 턴 정우가 돌아섰다.
아!
그 앞에 입을 벌린 채 굳어버린 여운 랑이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 다. 수백만의 단어들이 무작위 랜덤 상 태가 되어 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 다.
‘장무기와 제갈명을 가지고 놀다니!’
이번에야말로 대호법의 역량을 제대 로 검증해볼 기회라고 봤다. 함정을 판 제갈세가와 황보세가의 전력을 감안하 면 당연했다. 하지만 검증은커녕 더 모 르겠다. 직접 눈으로 목도를 하고서도 추측조차 되지 않는다.
‘이 사람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인간이 맞기나 한지, 의구심이 들 지 경이다. 검왕과 검제를 제압했다는 말 을 들었을 때도 반신반의했거늘.
이제는 확실해졌다.
우웩!
멍하니 있던 여운랑이 헛구역질을 하 고말았다.
놀라서 벌린 입 구멍으로 안면 있는 사내의 검지가 들어왔다 나갔다. 살짝 목젖만 희롱하고 빠졌지만, 그로 인해 헛구역질을 한 것이다.
“……뭐하는 짓이에요?”
“입을 하도 오래 벌리고 있기에 다물 라고.”
“벌리고 있으면 아무거나 막 넣어도 되는 거예요?”
“아무거나라니, 내 검지를 모욕하진 말아줘.”
“남의 소중한 목젖을 희롱하고 그게 할 말이에요!”
“신체발부수지부모라고 했어, 소중하 지 않은 내 몸이 없다는 말이야.”
“그럼 내 몸은요?”
“그거야 네가 알아서 챙겨야지.”
여운랑은 평소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 면피에 가까운 성향이지만, 지금은 굉 장히 수치스러웠다. 관심을 두고 있는 사내 앞이라 그런지 평소와는 달랐다.
‘그래도 그렇지, 나도 여잔데!’
한편으로 시답지 않는 말장난이나 치 고 다니는 사내가 황보세가와 제갈세가 의 절대급 고수를 가지고 놀았다는 사 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같이 다닐 때 보 면 고수가 맞나?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순수 실력만 놓고 보면 천하를 샅샅이 뒤져도 대적할 자가 있을 것 같 지 않았다.
‘내가 진정한 초월경의 고수를 못 만 나봐서 그런 건가?’
여운랑의 투철한 직업관이 꽤나 흔들 리고 있었다.
하오문의 문주로서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확고한 소명의식을 자부 했거늘, 직종 잘못 선택한 불길한 느낌 이 든다. 절대고수가 대호법처럼 다들 별종이면 별로 만나고 싶진 않다.
“이제 터를 마련해보자고.”
황보세가와 제갈세가는 합비 일대의 문파를 복속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었 다.
절반 이상 포섭이 되기는 했어도, 문 제가 되진 않았다. 어차피 중소규모의 문파는 힘이 있는 쪽을 택할 수밖에 없 다. 힘도 없는 주제에 고개를 곧추세워 봤자, 부러지기밖에 더 하나. 비굴한 모 양새가 좋지 않게 비쳐질 순 있어도, 세 상을 살아가는 지혜이기도 하다.
“대체 얼마나 강한 거예요?”
“알아서 뭐하게.”
“알아야 혹시라도 드는 반항심이나 저항심을 거세하죠.”
“약하면 배신하려고?”
“당연하죠. 저는 강자를 숭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