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안휘풍운 ⑵
“들어가 보실까.”
“……예?”
“예상했으면서 멍을 왜 때려.”
“때릴 만하니까 때리죠.”
“별거 아냐. 고작 진을 부순 건데,
뭘.”
고작?
표현 참 소박하다.
겸손의 미학일까? 여운랑은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겸손과는 차원이 다 른 자랑질이다. 본인 포장을 하는 데도 서슴지 않았다. 어떤 면이 진짜인지 사 람 헷갈리게 하는 재주를 지니고 있었 다. 가벼운 언행은 진신(眞身)을 숨기기 위한 위장전술처럼 느껴졌다.
‘숨기려면 숨기고, 밝히려면 밝히지.’
자랑은 하고 싶은데, 하기 싫은.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이 떠오른다. 여하튼 문제는 그게 아니다. 방금 보여준 한수, 범상치 않은 수준을 넘어섰다.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평하지만 실제로는 경이 롭다는 표현마저도 부족했다.
‘ 나라면?’
말도 안 되는 설정이다.
절대 못한다. 저걸 할 수 있는 자는 대륙에서도 찾기 힘들다. 무공도 뉴턴 의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힘들다. 힘을 적당히 썼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대규모의 진을 단 일 격으로 부수어 버리려면 내공이 어마어 마하게 필요할 것이다.
그 엄청난 내력을 권형으로 완성하여 발출시켰다는 것만。-루.두 대단한데, 깔 끔하게 회수해버렸다.
단체로 단합대회를 가서 실컷 놀고, 자리를 완벽하게 치우고 돌아간 것처 럼.
본국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을 당 연하게 해낸 것이다. 어딜 가든 난장판 으로 만드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만, 치 우는 건 젬병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전력이 아니란 소리잖아.’
출회수가 완벽하다. 달리 보면 내외공 을 완벽히 컨트롤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컨트롤이 되려면 규정된 한계 안 에서 사용해야 한다. 벗어나면 완벽함 이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이는 불변의 진리다.
‘……무서운 사람이네!’
안 본만 못하다고 해야 하나.
적당히 무서우면 이런 말 하지 않는 다. 여운랑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 은 닳고 닳은 여인이었다. 어지간한 일 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녕 검제와 검왕을 동시에 상대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늑대를 피하려다가 용을 불러들 인 거 아냐.’
용도 용 나름이지만.
무공이면 무공, 전략이면 전략,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이뿐이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정해놓지 않았 다. 어떤 일이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 다는 점에서 무섭게 다가왔다. 경직된 사고를 지닌 자는 절대 하기 힘든 일이 다.
‘안놀라?’
여운랑을 놀라게 하는 또 다른 이유 는 혹금단에게 있었다.
이 놀랍고도 엄청난 광경을 보고도 흑금단은 일상처럼 행동했다. 한편으로 매일 봐서 지겨운 권태로운 시선까지 비쳐진다.
‘이 사람들이 더 이상해’
여운랑이 본 혹금단은 절대 정상이 아니다. 함부로 대하기도 껄끄럽다. 이 상성향으로 무장하기는 했는데, 무공까 지 이상하진 않았다.
저들이 하는 대화를 잠깐 들어봤다.
“오늘은 뭐가 나오려나?”
“고가장비로 도배했으면 좋겠다.”
“그거 다 우리 거지.”
“템 먹는 재미가 쏠쏠했지.”
이거 봐.
정상 아니잖아.
전투를 눈앞에 두고 전리품부터 탐하 는 자들이 정상으로 보이긴 쉽지 않았 다. 저들이 정상이라면 본인도 정상이 아님을 인정해야 했다.
‘그런 능력이면 굳이 장비를 탐하지 않아도 되잖아. 기간트도 있으면서.’
여운랑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간트는 인류가 개발한 장비 중 최 강의 병기로 손에 꼽힌다. 하물며 전번 에 사용한 기간트의 전투력을 감안하면 부르는 게 값이다. 그토록 대단한 장비 를 가지고 있으면서 쪼잔하게 남이 쓴 중고품을 탐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무 엇보다 흑금단의 무력이면 어딜 가도 대접을 받는다. 1년에 수억은 더 받을 텐데. 고작 몇십만 원에 행복해하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
‘설마 박봉은 아니겠지.’
박봉이라도 최소 1억 이상이어야 한 다. 1억 주고 부릴 수 있으면 여운랑은 저들을 당장 고용했다.
두 배로 쳐줘서.
‘헤프게 쓰나?’
혹금단이 돈 쓰는 광경을 본 적이 없 어서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는 중국과는 다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 박봉은 아닐 것이다. 기간트를 쓰라고 내주는 대호 법이다. 하오문은 그럴 만한 역량도 배 포도 없었다.
“안 가고 뭐합니까?”
“아!”
상념이 길었다.
여운랑은 앞서 가고 있는 대호법을 서둘러 따랐다.
“같이 가옷!”
정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진을 부수고 천천히 장원으로 걸어갔다. 진법에 가 려져 있던 장원의 정문이 보인다.
“정문은 부수라고 있는 거니까.”
정문 까기 전문가로서 정우는 망설이 지 않고 권형을 뻗었다. 여태까지 꽤 많 은 정문을 부수었으니, 예브게 잘 부술 수 있었다.
툭
살짝 공간을 툭 쳤을 뿐인데, 웅장하 고 단단했던 정문이 직선으로 관통됐 다.
직경 20미터의 너비였다. 장원 내부 가 훤히 비추어졌다. 기다리고 있는 자 들을 위한 화려한 축포다. 마치 나 지금 왔으니까 다 일어나서 마중 나오라는 뉘앙스다. 안 나오면 관심종자로서 서 글픈 심정까지 담았다.
커험.
정우는 목을 다듬고 보란듯이 경고했 다.
“다들 맞고 항복할래, 안 맞고 항복할 래? 양자택일해라, 기타는 없다!”
소리를 치지 않아도 내공을 조율하여 파동을 형성하면 고함괴성을 지르는 것 보다 훨씬 쩌렁쩌렁 울린다.
한밤중에 이런 짓을 벌이면 우리나라 같으면 칼부림도 일어날 수 있었다. 살 다 보니 분노조절장애자들이 꽤 많았 다.
헐!
장원의 내부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제 갈세가와 황보세가의 무사들은 황당함 에 혀를 차야 했다. 호랑이 굴에 제 발 로 들어온 먹잇감 주제에 도리어 짖고 있었다.
이건 둘 중 하나다.
사태파악을 못하는 멍청한 놈이거나,
본인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치게 높은 정신병자이거나. 둘 다 해당되는 중증 말기 허언증 환자였다.
“비천한 오랑캐놈이 한 줌의 명성을 얻더니 정신 줄을 놓아버린 모양이구나. 이제라도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면 그 알량한 목숨만은 연명시켜 주마!”
장원의 책임자인 제갈명과 장무기의 당연한 일갈이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 지, 끝까지 주제를 모른다면 뼈아픈 대 가를 치러야 한다.
“그럴 줄 알았어, 이해한다.”
예상되는 식상한 반응에 정우는 시큰
둥했다.
똥인지 된장인지 맛을 봐야 알겠다면, 푹 담가주는 수밖에. 고약한 악취에 발 버둥을 친들, 담가진 똥 더미는 변하지 않는다.
“시원하게 한판 뜨자고.”
정우는 시답지 않은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우웅
기운이 응집되어 손 위로 떠오른다. 현천공을 아낌없이 머금은 기운은 구체 를 형성했다. 강력한 빛을 토해내며 시 야를 괴롭힌다.
휘익!
기다리지 않고 강환을 냅다 집어 던 졌다.
쌔0쩽
느닷없는 강환의 발출에 제갈명과 장 무기가 황급히 기운을 끌어올려 막으려 고 했다. 평범한 강환이 아님을 몸이 느 꼈다. 애초에 강환이 평범한 수법도 아 니고. 무방비로 맞으면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스왕!
막으려고 했던 제갈명과 장무기는 멈 칫했다.
강환이 지척에서 위로 뜨더니, 허공으 로 날아가 버렸다. 막으려고 했다가는 허공에 삽질, 자다가 이불킥을 해야 하 는 꼴사나운 광경을 맞이할 뻔했다.
“어디로 날리는 것이냐?”
“라이징 패스트볼이거든.”
시속 150킬로미터가 넘어가면 마구 처럼 홈 플레이트 부근에서 떠오르는 볼 실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회전수 와 부력이 맞물리면 발생하게 된다. 그 러나 강환은 공이 아니라 기운의 결정 체이며, 일류 투수의 최고 속도보다 몇 배나 더 빠르다.
“그리고 목표는 너희들이 아냐.”
“?뭐?”
장무기와 제갈명이 홈칫했다.
설마?
뒤늦게 사태를 깨닫게 된 그들이 다 급히 외쳤다.
“모두 피햇!”
말이 떨어지기도 전.
허공으로 날아올랐던 강환이 초고속 으로 낙하하며 산탄총처럼 분사되었다. 분산된 강기는 강력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화기(火氣)를 응축 시켜 놓았다.
화아아아
화기가 공기와 만나더니 더욱 강력한 빛을 발산하며 일대를 밝힌다. 밤을 아 름답게 수놓은 장면, 결과는 아름답지 않았다.
마치 비핵무기 증 악마의 폭탄으로 불리는 백린탄과 같았다.
백린탄은 네이팜처럼 순식간에 5천 도에 달하는 화기를 발산하며 휘발성이 강해 공기에 닿기만 해도 발화한다. 하 물며 살을 파고들어 장기까지 녹여내기 에 국제적으로 사용을 금지시킨 악마의 병기다.
푸아앙, 화르르르!
응축된 화기는 불타오르며 제갈세가 와 황보세가의 무인들을 괴롭혔다.
방비를 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기에 피해가 컸다. 허 를 제대로 찔렸다. 차라리 처음부터 작 정하고 기습을 했다면 대비를 했을 거 다. 하지만 들어가겠다고 동네방네 광 고를 하고 느긋하게 걸어 들어왔다.
그 모든 과정이 인간의 심리를 꿰뚫 고 있었던 것이다.
크아아악!
화염에 휩싸인 공간, 무인들의 경악과 분노가 뒤섞였다.
동료의 죽음과 화염에 몸부림을 치며 신음하는 자들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삽시간에 절반에 달하는 무인들이 속절 없이 당했다. 살아남은 절반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생각보다 많이 뒈졌네. 너무 방심한 거 아냐.”
삼분지 일만 타격을 입었어도 성공이 었다는 정우의 언행은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실력도 없으면서 방심까지 했으니, 죽
어도 싸다는 것처럼 들렸다. 맞는 말이 지만, 당한 쪽 입장은 전혀 고려되지 않 았다.
“이노옴!”
“죽여버리겠다!”
제갈명과 장무기로서는 걸어가다 제 대로 똥을 밟고 말았다.
이젠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세가에 서 데리고 온 청명대와 오행대의 절반 이상이 타격을 입었다. 잠깐의 방심이 불러온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 대가치 고는 너무나 뼈아프다. 당연히 원흉에 대한 분노가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 다.
“네놈의 피륙을 갈아 마셔주마!”
“살아 있는 걸 후회하게 해주겠다!”
돌기 직전이니, 눈에 뵈는 게 있을까? 그러나 경시하진 않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놈의 강함을 시인해 야 했다. 어쩌면 소문대로 검왕을 이겼 을 수도 있었다. 가지고 있는 전력을 끄 집어내어 승부를 걸었다. 처음부터 합 공을 할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각자의 장기를 꺼내 들었다.
슈아앙
장무기의 성명절기 무극신장의 무극
섬(無極脚이 직선으로 뻗어나가 대호법 을 요격했다.
꽈아앙
장력이 폭발하며 기운이 응집되어 이 차폭발을 일으킨다.
장무기의 장력은 일타가 아닌 이타삼 타가 더 중요했다. 쌓이면 쌓일수록 위 력을 더해간다. 무극섬에 이어 무극파, 무극괴가 연이어 발출되었다.
퍼퍼퍼펑!
땅거죽을 감싸는 돌바닥이 부스러지 면서 돌가루가 시선을 가린다. 휘몰아 치는 장력에 의해서 거친 태풍이 되었 다.
쏴아아o}!
제갈명도 칠현무적검의 기검쌍파(氣 劍雙派)와 회륜분쇄(回輪粉碎)를 연이어 펼쳐내었다. 그의 검형은 기검으로 일 곱 개의 줄을 완성하고 있었다. 줄처럼 뻗어나간 기검이 원형을 그리더니 목표 물을 잡아채며 소용돌이를 이룬다.
휘아아앙!
통파(通m 격공(擊空)의 묘리가 섞 인 기검쌍파로 방어력을 무력화하고, 무방비한 목표물을 분쇄기처럼 갈아버 렸다.
쌔애행!
환섬행(幻閔行)을 펼치며 진격한 장무 기가 무극삼절기(無極三m의 마지막 초식인 무극천(無極身)을 광풍의 소용돌 이를 향해 출수했다. 관통력을 극대화 한 장력으로 설령 막는다 해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하물며 연속 공격으로 막 심한 타격을 입고 있을 터, 결과는 보나 마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