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13화 (413/500)

제 6장

안휘풍운 (1)

전략은 낮에 세워도 되나, 작전은 밤 에 이루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훤한 대 낮의 전투는 여러모로 부담스럽다. 과 거처럼 전쟁이 비일비재했던 시대는 지 나갔다. 언론의 통제도 엄연히 한계가 있으니 되도록 이목집중은 피해야 한 다.

정우는 혹금단과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서현의 외곽, 도로가 발달되어 교통 의 요지에 속한다. 그렇다 해도 인근에 최근 상급 케이브가 오픈되었고, 새벽 시간이라 사람이 많진 않았다.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세가들도 사람들이 희생 되기를 바라진 않기에 연막을 쳐놓았 다.

“굳이 따라올 필요 없다고 했잖아.”

“와도 상관은 없다면서요.”

정우의 옆으로 다가온 여인, 하오문주

여운랑이다.

그녀는 직접 대호법의 역량을 확인하 고 싶었다. 말로만 전해 들은 내용만으 로 문파의 사활을 걸 수는 없었다.

“날 시험하고 싶나 보군.”

“살기 위한 약자의 자구책이라고 예 브게 봐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박쥐는 오래 못살던데.”

“그건 동화 속의 얘기일 뿐이에요.”

의리를 지킨답시고 망할 걸 뻔히 알 면서도 동조하는 건 어리석은 선택이었 다. 수장이라면 개인의 알량한 정의보 다 문파의 보전과 문도의 안전을 최우 선으로 해야 했다.

“당문은?”

“지금쯤 전략을 실행하고 있을 거예 요.”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 쪽으론 우리가 제법 해요.”

“이간질이 특기라고 광고하는 거야?”

“이간질이 아니라 고도의 전략이죠.”

소문을 낸다고 해서 덥석 물 거라고 본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상대가 생각 없이 사는 족속들이 아니라면, 의심은 인지상정이다. 지략이 뛰어난 자들이 책사로 있을 테니, 사전 검증은 필수다.

확실한 믿음을 가지도록 유도했다는 점 에서 여운랑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빈틈을 파고드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당가타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당가타는 당문의 근원이며 성지다. 찾 는 걸 간단히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든 사람이 사는 곳, 하오문의 정보 력이라면 가능했다.

“그런데 괜찮아요?”

“뭐가?”

“당문이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맛이야.”

그걸 맛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운랑은 알면 알수록 이 사내를 두 려워했다. 지닌 무력만 믿지 않는다. 심 기 또한 누구도 따르지 못할 만큼 괴물 같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상상만으루.두 오싹하다. 이 두려 움과 공포가 때론 짜릿함을 주기도 했 다.

“이러고 보면 우리가 아주 잘 맞는 거 같지 않아요?”

“두렵지는 않나 보네.”

“두려워요, 그런데 기대가 돼요. 그거

알아요, 여자는 그럴 때 흔들려요.”

“혼들리든 말든, 내알 바 아니지.”

“여자 맘을 1도 모르면서도, 방심을 잘도 흔드네요.”

인간은 남녀를 불문하고 가지지 못할 때 더 애가 탄다.

여운랑이 경험한 대호법은 여자에 대 해서 잘 모른다. 그러나 모른다고 해서 탐이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압도적인 강함과 가공할 심계, 거짓말 같지만 정 의로움까지 갖추었다. 충분히 탐을 내 고도 남을 매력을 지녔다.

무엇보다 한 여자만을 위하는 일편단

심이 여운랑의 방심을 흔들었다. 그녀 가 겪어본 사내들 대다수는 미녀의 유 혹을 거절하지 못했었다. 하물며 협의 를 내세우는 협객이나 영웅들은 현 시 대에도 삼처사첩을 당연하게 받아들였 다.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복 받았네.’

다른 정보는 다 알아냈지만, 대호법의 실체는 오리무중이다. 금강문의 흑금단 주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었다.

‘하라는 속 터진다고 만날 한소리 하 던데.’

여운랑의 태도를 보면 여자들도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하라는 살짝 다 른 미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 약간의 차이가 마음을 이끌었다.

“얼마나 대단한 함정이 있는지 궁금 하군.”

그녀의 두 눈은 의혹을 담았다.

어느 정도 방비는 되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확 한 날짜와 시간을 모르고선, 이런 식의 대비는 불가능하다. 하물며 전혀 의외 의 변수가 작용하고 있었다.

‘천기신술?’

천기신술(天氣神術)은 제갈세가의 삼 대진법이다.

자신들이 공략한 비동현의 장원은 황 보세가의 구역이었다. 합비를 장악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준비한 비밀 장소다. 황보세가는 하북팽가와 더불어 진법에 는 젬병이었다. 중간에서 정보가 잘못 되었거나, 누군가 정보를 홀렸을 공산 이 크다.

‘이럴 때 아냐.’

의혹에 휩싸여 시간을 소비할 순 없 었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진법에서 벗어나 야 한다. 다른 진법과 달리 제갈세가의 천기신술은 만만히 봤다간 큰코다친다. 그러나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공간이 다각도로 변화를 일으키고, 기운을 흩 어놓는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 말을 따르세 요.”

“알겠네.”

당명희는 독공분만 아니라 기관진법 에도 능통했다.

어지간한 진법은 파훼할 능력을 갖추 고 있었다. 일단 대형을 유지해야 한다.

공간마다 흐름이 왜곡되고 있었다. 조 금이라도 혼들리면 진의 환영에 심혼이 먹힐 수 있었다.

“오행의 화, 팔괘의 태, 사상의 역 ……

흐름을 읽어내며 파훼법을 찾아내고 있었다. 천기신술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제갈세가를 공략하기 위해서 연구를 거 듭했었다. 그를 토대로 천기신술을 역 산해나갔다.

설상가상, 펼쳐진 천기신술은 연구했 을 때보다 개량^ 되어 있었다. 읽어내 는 순간 변화를 일으켜서 역산을 방해 했다.

‘진법을 조절하고 있어.’

짜증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당명희는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과 무력대를 믿고 있었다. 당문의 무력은 알려진 것보다 몇 배는 더 강하 고, 견고했다. 이런 정도로 흔들릴 거였 으면 거사를 도모하지 않았다.

“흐름을 비틀고, 축을 흔들어야 해 요.”

지시한 대로 장로들과 무력대가 움직 였다.

변화무쌍한 기운을 일일이 선점해서 공간이 왜곡되지 않도록 유지했다. 그 러자 서서히 진법의 흐름이 공간에 갇 히면서 제압되어 갔다.

크어어엉!

거친 맹수의 울림이 울렸다.

“환영에 속지…… 피해욧!”

환영인 줄 알았는데, 실체를 지녔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흉포한 기세 를 뿜어내며 무력대를 덮쳤다. 신속히 방어진형을 취했지만, 워낙 강력한 소 환술이다. 더욱이 천기신술과 조화를 이루어 위력을 더했다. 환영과 실체를 뒤섞어놓아 집중하지 않으면 속수무책 으로 당한다.

‘이토록 수준 높은 진법과 소환술이라 면 흉내로는 불가능해.’

반신반의했지만, 만약 그렇다면 최악 의 구도다.

당명희는 최대한 빨리 진법에서 벗어 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 서는 감추어놓은 능력을 꺼내야 했다.

그녀의 숨겨진 속성 중에 하나.

소성개방, 공간파괴술

그녀가 인지한 범위를 부숴버리는 속 성이다. 속성능력치만 놓고 보면 그녀 는 당문에서 최강이었다.

꽈아0}0}앙’!

귀를 찢어발기는 가공할 폭발과 함께 반경 100미터에 달하는 공간이 소멸해 버린다. 무지막지한 위력이 아닐 수 없 었다. 사물과 생물을 가리지 않고 소멸 시키는 그야말로 극강의 파괴력을 갖추 었다.

후아앙

공간이 뚫렸다.

“축을부수세요.”

시간 싸움이었다.

공간을 부수었지만, 분포된 천기신술

의 4분지 1에 불과했다. 재빨리 부수지 않으면 천기신술에 또다시 갇히게 된다. 그리되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공 간파괴술은 단발성 속성이다. 한 번 사 용하면 재차 사용할 때까지 쿨타임이 필요했다.

당문의 무사들은 허둥대지 않고 총관 의 명을 수행해나갔다.

우웅, 파앗!

당무정이 선두에 나서서 축을 부수면 서 천기신술에서 해방되었다. 진법에 뭉쳐져 있던 기운이 퍼지자 소요가 발 생했다.

후아앙

소요가 진정되고 풍광이 드러났다. 고요한 밤의 정취하곤 거리가 멀다.

두둥!

당명희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치를 떨어야 했다. 천기신술을 파훼하면서도 불안했었거늘, 예상이 현실이 되었다.

“당문의 총관께서 밤중에 어인 행차 신가.”

정면에 나선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황보세가의 서열 3위, 천권(天筆) 황보무진이었다. 권으로는 적수가 없다 고 정평이 나 있는 권법의 대가다.

그 옆으로 나란히 선 자는 제갈세가 가 자랑하는 진법가, 천기수사(天氣修士) 제갈성이 서 있었다.

그분이랴.

일대를 포진하고 있는 무인들은 제갈 세가와 황보세가의 주력부대였다.

‘함정이었어!’

제갈세가와 황보세가가 손을 잡다니,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안휘성을 차지 하기 위해서 다툼을 벌이고 있던 그들 이다. 몇 차례의 전투가 있었고, 서로 간에 사상자까지 발생했었다. 그것까지 예측을 하고 움직였었다.

당문으로서 최악의 악수(惡手)가 되고 말았다.

“치사하군요.”

“그 말은 우리가 하고 싶군.”

“무슨 말인가요?”

“팽가와 손을 잡은 건 당문이 먼저 지.”

당명희는 그제야 황보세가와 제갈세 가가 손을 잡은 이유를 깨달았다. 팽가 와 협상을 해 명분을 세우기는 했어도,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당문이 불리했 다.

‘어디서, 혹시?’

하북팽가에서 소문을 흘렸다면 당문 은 물론 대호법과 혹금단까지 처리할 수 있었다. 상상도 하기 싫은 결과가 눈 앞에 펼쳐졌다. 대호법이 팽가를 장악 한 줄 알았거늘, 그렇지도 않은 것이었 다. 어쩌면 팽가의 가주가 배후에서 조 종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건 팽가의 계략이에요.”

“그렇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지.”

“이쯤에서 멈추는 편이 서로에게 이 득이지 않겠어요.”

“계집이라 그런지 자기 편한 대로 상 상하는군.”

“우리가 상잔하면 팽가만 이득을 볼 거예요.”

“다 부서진 세가 따윈 알 바 아니지.”

“정녕 끝을 보잔 말인가요?”

“그렇다면?”

당명희의 두 눈이 싸늘하게 식었다.

타협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자신이라 도 오늘과 같은 천우신조(天?神助)의 기회를 놓치진 않았을 테니까.

“후회하게 될 거예요.”

“시간 끌 생각이면 헛수고야.”

황보무진과 제갈성은 당문이 독을 쓸 때를 대비해서 준비를 해놓았다. 해독 작용을 하는 피독주는 기본이고, 독을 무마하는 속성 능력자를 배치했다. 당 문의 독을 전부 막아낼 순 없더라도, 충 분한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다 주살 해라!”

황보세가와 제갈세가는 작정을 했다.

당문이 안휘성을 노리고 있는 이상, 온전히 차지하기는 힘들었다. 그 전에 예봉을 완전히 꺾어버려야 했다.

“맘대로 되진 않아!”

당명희도 포기하진 않았다.

비록 함정에 걸리기는 했어도 당문십

수의 절반이 투입되었고, 혈독수와 암 천대가 있었다. 호락호락하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혈화멸혼대진(血火滅魂大陣).

혼을 멸하고, 육신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진법을 장원 전체에 쳐놓았다. 허락받지 않은 자는 침입 즉 시 심혼이 갈가리 찢겨 나간다.

진법은 대단위 규모의 공격으로도 무 너지지 않을 견고한 방어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일단 갇히면 빠져나갈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헙!

가볍지 않은 신음과 탄성이 교차했다. 예상을 하고 있었음에도 놀람을 감추기 어려웠다. 특히 진법을 설치한 제갈세 가는 당혹감에 젖었다.

진법을 경시하는 무림의 성향과 달리, 제갈세가는 보다 더 발전시켜 현재에 이르렀다. 특히 현 시대에 부합하기 위 해 속성을 진법과 결합하여 완성도를 높였다.

그런 진법이 깨졌다.

외부의 충격에 박살나, 축이 제 역할 을 하기는커녕 방향을 잃어버렸다. 진 에 감금되었던 기운이 우리 안에 갇혔 던 야생동물처럼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 갔다.

“큭, 숨겨진 한수가 있었구나.”

진법을 관장했던 제갈명이 미간을 찌 푸렸다.

애초의 계획은 침입자를 가둬놓고 힘 을 뺀 후에 제압하려고 했다. 한데 시작 부터 어긋나버렸다. 설령 부수더라도 힘의 소진을 기대했거늘.

“기대가 컸나 보구려.”

옷을 투영하여 근육이 표출되는 기골 이 장대한 장년의 사내. 제갈세가를 지 원하기 위해서 온 황보세가의 장로다.

무극신장(無極神掌), 장무기.

일장(一掌)으로 거대한 암반도 산산조 각으로 흩어낸다고 알려진 장법의 대가 다. 사위를 압도하는 외관만큼 무시무 시한 실력을 소유했다.

그는 황보세가 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었다. 외인으로서 황보세가를 지탱하는 장로의 반열에 오른 것만 봐 도 실력을 가늠케 한다.

“운이 좋았을 분이다.”

장무기의 비아냥거림에 제갈명도 탐 탁지 않은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제갈명의 실력도 장무기에 비해 떨어 지지 않았다. 칠현무적검(七紋無敵劍)으 로 불릴 만큼 검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가‘ 휘두르는 기검을 제대로 받아낼 자는 대륙에서도 혼치 않았다. 그만큼 검에 관해서는 자부심이 있었 다.

‘폭약은 아닐 테고, 속성력을 쓴 건 가?’

폭탄을 사용했다면 매캐한 냄새가 진 동해야 했다. 그렇다고 무력을 썼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무공을 사용했다면 경력의 파장이 일대를 장악해야 했다.

‘입신을 넘어선 초월경의 고수라면 모 를까, 헛소리.’

절대고수를 상중하로 나누어 최상급 에 도달한 자라면 경력의 출회수가 완 벽할 순 있다. 하지만 그러한 자는 천하 를 샅샅이 뒤져도 다섯을 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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