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11화 (411/500)

제 5장

간 보기 (2)

“이쯤 해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왜?”

“같은 편이잖아요.”

“자기 식구라고 오냐오냐하면 버릇없 이 기어오른다고. 싹수가 노란 것들은 처음부터 뽑아버렸어야지.”

정우의 패도에 다들 질린 기색이 완 연했다. 외인으로서 팽가의 대호법이 된 까닭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는 능히 강자라 불릴 힘을 지녔다.

주르르!

심맥에 상처를 입은 당무정의 입가로 핏물이 홀러내렸다. 조금 더 했다면 기 혈이 찢겨 나갈 수도 있었다.

“이쯤에서 끝내는 걸 감사히 여기고, 버러지 같은 목숨 잘 간수하도록 해.”

공간을 장악했던 기세가 사라지자 숨 통이 트인 당무정이다. 그러나 자존심 에 상처를 입었는지 잔경련을 일으켰 다.

“억울하냐. 그게 바로 약자의 설움이 다. 난 모르지만.”

“암천대주는 약하지 않아요, 대호법이 지나치게 강한 거예요.”

당명희는 대주의 부상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호법의 강함이 예상을 넘어선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작금의 구도는 어느 정도 연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암천대 주에게 사전에 귀띔을 주어서 도발해보 라고 했었다.

‘이젠 군소리하지 않겠지.’

당명희로선 내부적인 단속과 단합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이번 계 획은 가주의 명으로 이루어졌지만, 장 로들이 마냥 협조적이지는 않았다. 그 러나 팽가의 대호법이 예상보다 더 강 하다면, 더 이상은 거론하지 않을 것이 다.

“손속에 사정을 두어줘서 고마워요.”

“식사하는데 피를 보고 싶진 않았으 니까. 아, 조금 봤나. 솔직히 그 정도는 버틸 줄 알았거든.”

당명희는 예상을 했으면서도 헛바람

을삼켰다.

본인을 띄우면서도 상대방을 찍어 누 르는 솜씨가 상당했다. 말로써 천 냥 빚 도 갚는다는데, 채무를 억만 냥으로 늘 려주었다. 태생이 상당히 오만하다는 걸 체감했다.

베드득!

평소와 달리 이를 바득바득 가는 당 무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의 성정을 알기에 당명희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그는 이렇게까지 감정이 풍부한 자가 절대 아니다. 암천대는 본 가의 주력 중에 하나로서 그 위상이 남 다르다. 그런 암천대의 대주를 아무나 앉히겠는가. 당가에서도 재능이 충만하 고 경험과 연륜이 쌓인 자에게만 주어 지는 자리다.

“밥맛 떨어지니까 이는 딴 데 가서 갈 아.”

정우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노려보는 당무 정은 처연히 돌아서야 했다. 그로서는 오늘의 원한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계획의 일부라 해도 이토록 처참하게 당할 줄은. 그것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다음에는 오늘 같지 않을 거다.’

당무정은 속성과 비장의 무기를 꺼내 지 않았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우는 식사에 열중했다.

“맛있네.”

“어때요, 이만하면 시집가도 행복하겠 죠?”

“나이가 너무 많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그건 네 생각이고.”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동안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동안이라고 해서 나 이가 사라지나. 세월은 원래 야속하다.

언제 자신이 이렇게 늙었나 싶었을 때 쯤 되면, 주변의 애들은 커서 어른이 되 어 있을 거다. 그럼 시선은 분명하다. 행복의 관점이 다를 순 있지만, 남의 시 선에서 초연하지 못하면 초라해질 수밖 에 없다.

‘보통이 아니긴 해, 이쯤 되니 총관이 되었을 테지.’

정우는 지속적으로 당명희의 속을 긁 어대고 있었다.

당명희는 내색하기는커녕 표정조차 변하지 않는다. 그저 농담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었다. 냉철한 심기를 지닌 여 인이다. 적이 아니라면 맘에 드는 성정 이었다.

후르륵, 후르륵!

정우는 식욕을 주저하지 않고 드러냈 다.

식탁에 놓여 있던 음식들이 하나둘 빈 접시가 되었다. 남기지 않고 빠른 속 도로, 그러면서도 게걸스럽지 않았다. 마치 기계처럼 흡입하는데 일정 속도와 박자까지 탔다.

음식 고유의 특성을 음미하며.

“밋있네.”

당명희는 속속 비워지는 접시를 보며

혀를 찼다.

“본문이 독으로 유명한 걸 모르셨나 요?”

“독 따위가 뭐라고, 그딴 시답지 않은 수작에 당하는 놈이 병신이지.”

만독불침지체이기에 독이 통하지 않 는다고 하자 당명희는 비릿한 조소를 감추었다. 그리 자신한 자들치고 당문 을 온전히 걸어 나간 자가 없었다.

실례로 독이 통하지 않는 신체란 존 재하지 않았다. 그건 당문의 숨겨진 독 에 당하지 않았기에 나온 헛소리에 불 과하다.

‘독이 통하지 않기는 해.’

당명희는 은밀하게 삼보절명산(三步絶 命散)을 하독했다. 무형, 무색, 무취의 독으로 삼보를 걷기 전에 목숨을 끊어 놓는다 하여 붙여졌다.

‘이제 시작일 분이야.’

당문 최고의 독은 하나의 독으로 이 루어지지 않는다.

“성의 동태는 어떻습니까?”

“팽가를 제외하고 다른 세가는 들어 와 있는 상태입니다.”

그들은 침통함에 빠져 있었다. 세가의

주력을 모두 잃어버리고 가주와 전대가 주마저 잃었다. 뼈아픈 현실이다. 그나 마 다행이라면 숨겨둔 세가의 힘이 상 당하다는 점이다. 힘을 집중시킨다면 과거와 비교하진 못해도, 일정 부분 영 향력을 행사할 규모는 되었다. 단, 이전 까지 교류했던 소속문파들이 세를 보태 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 전에 그들은 체계부터 정리했다. 계획을 주도하려면 내부적으로 정비를 할 필요가 있다.

“승산은 있겠습니까?”

“어렵습니다. 당장은 세를 불리고 힘

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때입니 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남은 전력 이 웬만한 중규모의 문파보다는 위에 있을지 몰라도, 건재한 다른 세가와는 그야말로 이란격석이었다. 실제로 수가 아무리 많아도, 절대고수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는 한계가 뚜렷했다.

“세를 불리도록 저들이 가만히 놔두 진 않을 겁니다.”

“비록 많은 걸 잃었지만, 여력은 충분 합니다.”

“그사이에 저들은 더 커지겠지요.”

“가주께서 고심하는 바를 모르진 않 습니다만, 가정일 뿐입니다.”

성을 차지해 규모가 더 커지면 원상 복귀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리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삼파전이 되 어가고 있었다. 서로를 견제하고 대치 중이라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여력 이 많지 않았다.

“장로님의 말씀대로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반대일 가능성이 더 커요. 보 다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 필요해 요.”

“가주께서 염두에 두신 방법이 있는

겁니까?”

“우리에겐 명분이 있지요.”

“명분은 힘이 있을 때나 발휘되는 겁 니다.”

무림에 적을 두며 살아보면 알 수 있 다. 명분이 중요하긴 해도, 절대적이진 않았다. 힘이 없는 정의와 명분은 허울 뿐인 가치에 불과했다.

“적의 적은 아군이지요.”

“혹시‘?”

“맞습니다.”

가주의 파격에 장로들은 놀람을 감추 지 못했다.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사항 이다. 한데 가장 현실적이며, 어려운 대 승적 결정이었다.

혈족을 잃은 그들에게 철천지원수임 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가문을 위해 원한을 내려놓았다. 그것이 더 놀라웠 다. 아무나 그리할 수는 없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 이상.

“많이 달라지셨군요.”

“가문을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가주의 희생에 감탄하지 않을 수없었다.

가주는 가문의 생사를 책임진다. 설령 굴욕적인 타협이라 할지라도 선택을 하 고 감내해야 한다. 그것이 가주로서 가 져야 하는 책임이었다.

‘그렇게 보지 말아주십시오.’

경외의 시선에 가주는 괴로웠다.

혹금단은 정해진 시간에 당문의 안가 에 도착했다.

200명이나 되는 무인을 한 장소에 수 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스케일이 남달랐다. 안가의 지하는 지상보다 족 히 열 배가 넘는 규모였다. 충분히 수용 하고도 남았다. 지하에 아예 다른 세상 이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스케일에 있 어서는 남다른 중국이었다.

혹금단은 충분히 쉬고,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그 주인에 그 수하답게.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쉬라고 하니, 정말 내 집처럼 막 사용하고 있었 다. 혹금단에 소속되고 누려보지 못한 호사를 타지에서 만끽하고 있으니 기분 이 묘하다.

“이게 뭐라고 좋냐.”

“사는 게 다 똑같다는 말이 제일 싫 어.”

“맞는 말이야, 뭐가 다 똑같아.”

“다르지, 다 달라!”

삼시세끼 정해진 시간에 먹고, 잘 시 간에 자고, 쉬는 이 기분. 좋아도 너무 좋았다. 별로 대단치 않음에도 행복감 을 느꼈다. 과거에 철없이 행동했던 시 절을 상기하면 달라진 현실이었다. 받 아들이고, 수긍하며, 적응해나가고 있는 지금이 거짓말 같다.

“음식에 독 있을 줄 알았는데, 없네.”

“독 먹는다고 안 죽어.”

“불사수라기공은 만독불침을 지향하 는 것 같아!”

“잠깐 아프고 말지.”

당문이라고 해서 독을 탈 줄 알았다. 아니라서 아쉬운 혹금단이다. 독을 먹 고 뒈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호상W喪) 은 없다고 봤거늘. 불사수라기공은 어 지간한 독에는 면역이 되었다. 그 예로 가보지 않은 지역에 가면 물갈이를 할 수도 있는데, 몸이 쌩쌩하다. 지나치게 강건해서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 팔자 다.

“큰 기대는 하지마라.”

"하긴, 딱 봐도 별거 아니더라고.”

“우리가 너무 강해진 거야. 쟤들도 좀 하는 편이라고.”

“강하면 뭐해, 쓸데가 없는데.”

자유시간에는 항상 푸념으로 점철이 되었다. 강해지고 있는데, 불행하다. 그 나마 남궁세가와의 전쟁에서 얻은 전리 품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다. 아주 좋은 물품으로 도배를 했다. 털어 놓으니 쓰 임새도 많고, 내구성도 뛰어나다.

“어째 다 외국산이야.”

“국산을 이용해야지.”

“지들도 국산이 안 좋은 거 아는 거 지.”

“우린 아니냐.”

외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족속이라는

힐난은 똥 뭍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 라는 격이다. 물론 자기 나라 물품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꼭 좋은 것만 은 아니다. 세계와 경쟁하는 시기에 자 국물품만 무조건적으로 사다 보면 오히 려 경쟁력이 약화되어 갈라파고스화되 어 버린다. 적절한 경쟁과 애국이 결합 되어야 올바른 소비형태다.

“우린 언제쯤 160만 원을 온전히 받 아보나?”

“꿈같은 얘기는 하지 마라.”

“박봉이라도 한번 제대로 받아보고 싶다.”

“우리도 알뜰살뜰 모을 줄 아는데.” 예전처럼 흥청망청 오늘 죽자는 식으 로 쓰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 달을 만 원으로도 살이본 자신들 이 아닌가. 160만 원을 온전히 모을 자 신도 있었다. 하지만 모든 월급은 단주 의 개인 통장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모든 소비가 이루어지고 있기에 만 원 한 장을 보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아무나 잡아서 삥을 뜯지도 못한다.

“단주님은 정의로운 분이시니까.”

“차라리 악당이 더 좋을 텐데.”

“정의로운 악당이 더 힘들다고.”

“따져보면 항상 옳잖아.”

혹금단이 환장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단주의 가치괸이다.

절대 먼저 건드리지 않는다. 솔직히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 굳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건드리지 못한다. 누가 감히 단주의 눈 밖에 날 짓을 하겠는가. 단주가 맘만 먹 으면 칭기즈칸도 이루지 못한 세계정복 을 하고도 남는다. 지금까지 당한 세력 들은 전부 단주를 건드려서 사달이 난 것이다. 애초에 상종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너라면 건드리지 않았겠냐?”

“그러게.”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나, 상대는 단주를 모르고 깝죽거렸 을 분이다. 실체를 알고 난 이후에 후회 를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다고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솔직히 건드릴 수밖에 없잖아.”

“기획과 연출이 신의 경지에 다다르 셨다니까. 그래서 존경스럽기까지 하 다.”

혹금단은 단주와 애증의 관계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악마에 비견되는 존재임에도, 믿고 의 지가 되었다. 점점 변태가 되어가고 있 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고.

간혹 집에 전화를 하면 부모님이 사 람 됐다고 하셔서 더 그렇다. 자신들의 삶이 결코 올바르지 않았다는 걸 깨닫 게되었다.

“그런 분을 존경하지 않으면 누굴 존 경하겠어.”

“그래도…… 응?”

좀 전부터 우호적인 반응이 계속 나 왔다. 어느새 그들 사이에 익숙하고도 소름 끼치는 존재가 섞여 있었다.

그제야 모두는 상대를 인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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