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입질이 오다 (2)
밀폐 공간의 증심에 탁자가 있다. 그 위에 사람이 놓여 있었다.
의식을 잃은 중년의 사내는 정우의 손짓에 깨어났다.
“좀 몽롱하지. 괜찮아. 약을 썼으니까,
정상적인 현상이야.”
환자에게 약을 쓴 의사처럼 다정하게 말하지만, 사지를 제압당하고 혈맥에 금제를 당한 중년 사내는 분노에 사무 친 듯 앙심을 품었다.
“……이거 풀지 못하느냐! 오랑캐 …… 따위가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
“자유의지란 건 이렇게 좋은 거야. 그 런데 어쩌냐? 다음부터는 내가 개밥을 처먹으라고 해도 맛있게 먹을 텐데, 안 타갑게 되었다.”
팽우경은 협박보다 더한 공포를 맛보
고 있었다.
그 순간 상상을 하고 말았다. 놈이 시 키는 대로 개집에서 자고, 개밥을 먹고 있을 자신이. 그런 상상만으로도 전신 에 소름이 쫘악! 끼친다. 차라리 욕을 했으면 이렇게까지 두렵지는 않았다.
“……차라리 날 죽여맛!”
“죽일 거면 진작 죽였지, 귀찮게 살려 서 귀한 약품을 쓸까. 참고로 이거 만드 느라 제법 심혈을 기울였다. 노력에 대 한 대가는 있어야 하잖아. 그러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진 마. 설마 진짜로 개 밥을 처먹으라고 하겠어.”
“……하늘이 널…… 용서치 않을 것이 다!”
“인간이 이래요, 평소에는 신도 개무 시하고선! 이럴 때만 하늘을 찾고. 하늘 이 설마 너 편할 때만 찾으라고 있는 거 냐. 서운해서라도 날벼락을 내리겠다.”
인간은 약해질 때 신을 찾는다. 그러 나 그럴 때만 찾는 게 신이라면, 신도 삐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참고로 신은 자비롭지 않다. 인간이 자비롭기를 바 랄 뿐이지. 예로부터 믿지 않으면 싸그 리 다 몰살시켰으니까, 그게 전매특허 다.
“……네놈을 죽어서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가 멸망해도 넌 죽지 않을 테니 까, 그럴 걱정은 없을 거야.”
죽은 놈이 용서고, 저주고 될 성싶은 가. 죽어버리면 고깃덩어리가 되어 썩 어갈 뿐이다. 원념이 남아봤자, 심력이 약한 사람한테나 통하지, 정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귀신도 잘못 찾 아왔다고 리턴할 거다.
“……크。}아O]아아’! 죽여버릴 테다!”
“여기까지.”
정우는 아혈을 제압해버렸다.
마지막으로 떠들고 싶을 만큼 떠들었 을 테니 이제부터는 내 맘대로 할 계획 이다. 준비는 완벽했다. 지금을 위해서 몇 차례나 실험을 해야 했었다.
그 대상이 천혈강시였다.
스윽!
정우는 옆에 선 5명의 천혈강시를 보 았다.
그녀들은 전과 달리 표정이 조금씩 있었다. 물론 가녀린 여인처럼 두려움 이나 공포를 느끼고 있진 않았다. 그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호기심이 묻어 나 왔다.
“인성이 완벽히 깨어나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테니, 기다려줬으면 해. 알겠지?”
끄덕!
천혈강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은 살아 있으나, 강시다.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고 통제를 받는다. 그 런 그녀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조금이나 마 표현한 것이다. 이는 대단했다. 강시 는 만드는 과정도 어렵지만,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설령 되 돌린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모습이 될 거란 보장은 하지 못한다.
“최소한 인간적인 삶은 살도록 해야 지.”
정우는 준비 과정에서 천혈강시를 이 용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그 녀들에겐 선택의 기회가 없다. 강제로 잡혀 와 강시가 되었고, 의지는 삭제되 었다. 그녀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후에는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할 거다.”
그걸로 만족을 해야 한다.
그녀들이 불쌍하기는 해도, 정우는 책 임을 질 마음이 전혀 없다. 그녀를 강시 로 만든 대상은 팽우경이다. 그녀들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양심의 가책은 받지 않는다. 노력을 했음에도 실패했다면, 순응을 하는 수밖에.
“자, 나의 가장 완벽한 강시가 될 준 비는 되었겠지?”
……이 악마 같은!
팽우경의 동공은 거세게 혼들렸다.
“실수, 가장 완벽한 건 아닐지 모르니 까.”
진정한 악당을 몰라보고 그 앞에서 헛짓거리를 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자 신은 강시가 될 테고, 팽가는 놈의 수중 에 넘어갈 것이다.
팽우경의 두 눈에 피눈물이 흘렀다.
“허락한 걸로 알고, 그럼.”
정우는 팽우경의 눈물에 코웃음을 쳤 다.
반성과 회한의 눈물, 그딴 걸 왜 이제 야 흘리는 거야. 처음부터 하지 않았으 면 될 일을 가지고. 선택을 했다면 책임 은 당연했다. 이 모든 결과는 팽우경의 선택이고, 업이었다.
“병기는 많을수록 좋지.”
다다익선을 지향했다.
이극을 중심으로 장로원이 체계가 잡 히면서 팽가는 원래의 자리를 잡아갔 다.
파손되었던 가문의 건물도 대부분은 복구했으며, 자잘한 부분은 시간이 지 나면 해결될 부분이었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팽가는 무림의 문파다. 전력의 대부분 을 소실하면서 무력이 익화되었다. 이 를 보전하려면 하루속히 무공을 향상시 켜야 한다. 약세를 보이면 언제든 잡아 먹히는 세상이 무림이었다.
“방계와 중소무문에서 인력을 수급하
자는 것입니까?”
“맞아.”
“그리되면 가문의 혈통이 흐려집니 다.”
“배가 불렀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야. 혈통이 좋으면 뭐해, 가문이 사 라지면 말짱 도루묵인데.”
정우는 무력을 복구하는 방법으로 인 재등용의 폭을 넓히자는 제안을 했다.
가문에 소속된 무인으로만 구성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사방에 서 적아를 가리지 않고 세가를 노리고 있었다. 이런 때일수록 가려졌던 인재 를 봅아 가솔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의 중화라고 말로만 떠들지 말 라고, 실천을 해야지.”
정작 하나가 되려면 차별하지 않는 정책이 필요하다. 소수민족을 압박하고 탄압하는 행위는 이중적인 행태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현재의 전력으 론 다른 가문을 대적할 여력이 되지 않 습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후일 하북성마저 내어주어야 할지 모릅니 다.”
이극이 대호법을 대신해 방안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그로서도 반드시 타개해야 할 일이었 다. 가문에서 가장 많은 일을 했음에도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하여 차별을 받 아야 했었다. 능력에 따른 대접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본문에서 연락이 오면 언제든 돌아갈 수도 있어, 잘 생각해보고 결정 해.”
“예, 대호법.”
정우는 말이 안 통하면 돌아간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팽가에서 정우와 혹금단이 빠지면 종 이호랑이만도 못했다. 다른 세가의 공 격을 막아낼 여력이 없다. 하루라도 빨 리 예전의 반만이라도 회복해야만 한 다.
“하온데 세경 아가씨와 강천 공자의 혼인은 어찌하실 요량이신지?”
“인륜대사를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하오나 굳건한 신뢰 확립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절차입니다.”
“좋아, 올해 안에 마무리 짓도록 해.”
“그러시다면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 하겠습니다.”
“맘대로.”
금강문의 저력을 알기에 팽가로서는
쌍수를 들고 반겼다. 장로들 대부분이 정우의 금제를 받고 있기는 하나, 별개 의 사안이다. 가문의 유지 보존을 위해 서는 금강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 다.
‘좋았어.’
정우는 회의를 이극에게 맡기고 장로 원을 나왔다.
내원을 지나, 후원(後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시선이 쏠렸다.
대호법의 지위를 얻게 된 이후로 분 위기가 바뀌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불편한 시각이었지만, 가문을 구 한 은인으로 존경심이 깃들었다.
‘진실은 서글픈 법이지.’
작금의 시선 변화에 정우는 일희일비 하지 않았다.
사람의 감정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작은 편린이 모이고 쌓여 어느 순간 파격을 이루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재의 감정만으로 우호적일 거란 판단은 어리석다. 하물며 진실을 알게 된다면 호의적인 감정은 분노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지.’
후원에 들어섰다.
‘슬슬 입질이 올 때가 됐는데.’
정우에게 하북팽가의 사정은 관심 밖 이었다. 그보다는 주변의 변화를 파악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하오문의 여운 랑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정보를 분석 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걸려든 세가는 황보세가다. 하북팽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으 니 실상 당연했다. 제갈세가와 사천당 가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머리가 잘 돌아갈수록 이리저 리 재고 신중하다.
선택에 의한 결과가 과정을 증명해 왔다. 신중함이 독이 될 때도 있고, 성 급함이 복이 될 때도 있다. 그래서 인생 은 새옹지마라고 하지 않던가.
‘누가 됐든 외인으로 보일 테지.’
후원에서 들려온 대화가 정우의 상념 을 박살 낸다.
-자기야, 사랑해!
- 나도.
-얼마만큼 사랑하는데?
-하늘만큼 땅만큼!
귀가 무척이나 밝은 정우는 오그라드 는 손발을 만끽해야 했다. 人}지가 사라 진 채 지렁이로 퇴화한 기분이다. 후원 을 들여다보기가 겁부터 난다. 이걸 봐 야 하나. 안구테러는 기정사실화되었다.
‘설마 나 잡아봐라, 는 안 하겠…… 이런!’
후원을 들여다본 정우는 망연자실할 뻔했다.
정원 내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을 서 슴없이 들어가서 마구 밟아놓았다. 곳 곳에 폭탄투하를 당한 듯 움푹 파인 곳 도 있었다. 연인들의 특권, ‘나 잡아봐라’ 는 끝난 지 오래다.
-우리 세경이는 언제부터 이렇게 예
뻤지?
-전생 때부터, 그러는 천이는 언제부 터 그렇게 잘생겼어?
이 망할놈년의 토갱이와 호랭이.
저걸 또 하고 다녔단 말인가?
낯간지러운 대사를 주저하지 않고 남 발하는 강천, 세경 커플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미는 정우다. 하라와 함께 간 놀 이공원의 추억은 별개다. 내로남불이라 고 욕해도 하는 수 없다. 인간은 원래 그렇거든.
“어이, 왔어.”
“일단 맞자.”
“?왜?”
“화가 나거든.”
사람은 이유 없이 화가 날 때도 있지 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있었다. 응어리 진 화기가 주먹에 쏠려 있었다. 주먹을 뻗어야 할 분명한 목적의식을 지녔다.
다행히 얌전히 맞지 않아도 된다. 얼 마든지 피해도, 도망가도 된다. 자유의 사와 저항의지를 존중해주었다.
“억울하면 저항하든가?”
“그걸 말이라고…… 쿠웩!”
정우의 주먹이 작렬한다.
피하라고 하지만 권능의 영역에 도달
한 주먹질이다. 피한다고 해서 피할 성 질이면 강천이가 발악하진 않는다. 어 차피 피하지 못하기에 저항을 해봤자, 무저항 비폭력이 되어버리는 진기한 광 경이 벌어졌다.
“우리 자기 건들지 마요!”
“너도 맞을래?”
대호법의 무시무시함을 겪어본 세경 은 살길을 도모했다.
어쩌면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지도 모 를 생명을 위해서란, 그럴듯한 핑계를 댔다. 테스트는 하지 않았으니 추궁을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미안해, 자기야!”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매를 번다.
강천은 세경의 죄까지 홀로 짊어진 채 복날 개처럼 처맞았다. 필사적으로 저항해보지만, 무기력했다. 뇌기가 극성 에 이르렀음에도 전도되지 않은 채 고 대로 반사되어 육신을 괴롭혔다.
쿠우웅!
쇳소리가 가죽소리로 바뀔 때, 주먹질 이 멈췄다.
햇살 가득 나른한 오후, 달아오른 아 스팔트 위의 개구리처럼, 강천은 수분
0%의 상태에 도전했다. 이대로 건조실 에 들어가면 최상급의 잘 말린 건와물 (乾!姓物)이 되겠지.
“……도대체 왜?”
“그냥 꼴배기 싫더라고.”
“그걸 말이라고!”
“싫은 걸 어쩌냐, 거짓말보다 낫잖 아.”
너무 솔직해서 울화통이 터질 뻔한 강천이다.
너희들 하는 꼴이 눈꼴시어서 때렸다 니, 이토록 대놓고 디스를 하고, 사람을 패도 되나 싶을 지경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하기 싫은 말도 해야 할 때가 있거 늘. 이러고도 미안해하기는커녕 후련한 표정을 짓는 정우가 무척이나 얄미웠 다.
“올해 안에 혼인식을 하기로 했다.”
“……설마 그 말 전하러 온 거였어?”
“축하한다.”
“이런 미친놈!”
“어허, 말 곱게 해라.”
“싫다면?”
“감당할 수 있겠냐, 나를?”
강천은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닫았다. 이는 세경이도 마찬가지다. 여자라서 봐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이롭다. 남녀노소를 차별하지 않고 공평한 대우 를 하는 혹금단주다. 그 앞에서 나이나 성별로 특혜를 원하다간 따끔한 충고로 끝나지 않을 거다. 배알이 꼴린 대호법 은 비 오는 날 먼지가 날리도록 털 게 분명하다.
‘오늘 과부되는 줄 알았는데, 멀쩡하 잖아.’
처음에는 강천이를 때려죽이려고 하 는 줄 알았다. 한데 의외로 멀쩡해 보였 다. 경이로운 회복력 이전에 대호법의 신묘한 주먹질에 경탄이 절로 나왔다.
이상적인 권로를 설정해놓고, 강천의 발악을 철저히 봉쇄했다. 아무나 그렇 게 하기 어렵다. 권법의 극한, 신의 경 지에 도달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실상 대호법에게나 밥이지 강천은 강하다.
‘우리 자기 말 너무 편하게 하네.’
세경이는 대호법을 대하는 강천의 태 도가 살짝 이해가 되진 않았다.
대호법은 절대의 고수다. 나이가 열 살이나 더 많은 걸로 아는데, 강천의 대 범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이상하 진 않았다. 오랜 시간 함께 자라왔다면 납득이 될 부분이다.
“성대하게 치러주마.”
“됐거든, 작은 결혼식 할 거야.”
“문주님이 축의금을 많이 냈다는데,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알겠다.”
“하하, 농담이고. 크게 해야지.”
점차 작은 결혼식으로 바뀌는 추세이 기는 하나, 부모님의 결정을 외면하기 는 어렵다. 축의금을 많이 낼수록 부모 님은 가을걷이를 원하신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지 기대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