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03화 (403/500)

제 2장

물밑작업 (1)

하북팽가는 대대적인 인사개편을 단 행했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사전에 계획되었 던 것처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가 주는 내상이 악화돼 치료 중임에도 불 구하고, 가문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 가고 있었다.

개편 인사의 중점은 대호법, 후계자, 총관의 선출이었다.

좌천되다시피 했던 이극이 총관으로 재신임 되었고, 흑금단주는 대호법이라 는 새로운 직위를 받게 되었다.

대호법은 가주의 명을 제외하고, 가문 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후계 자도 대호법의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실로 파격적인 인사다.

혹금단주는 가문의 직계도 아닌 외부 인사다. 대호법의 직위를 주었다는 사 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가주와 장로들이 승인을 한 이상, 반발은 용납 하지 않았다.

물론 모두가 Yes를 외칠 때 홀연히 No를 선언한 이도 있기 마련.

“이건 말도 안 돼! 이따위 엉터리 인 사를 내가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아!”

“받。}들이지 않으면?”

“네놈 따위가 대호법이라니, 아버지를 뵙겠어!”

“안 된다고 했다. 어서 산서성으로나 가라.”

팽세운은 자고 일어났더니 봉변을 당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인사 개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봤다. 길길이 날뛰는 것도 당연했다. 하물며 그간의 공을 인정받은 팽세기가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다.

그로서는 납득할 수 없었다. 비록 남 궁세가의 공략에서 공을 세우지 못하기 는 했어도, 아버지가 직접 신임했다. 또 한 계획의 진두지휘는 자신이 아닌 아 버지의 의견이었다. 실패를 자신에게 뒤집어씌우고 산서성으로 좌천시킨 것 이다.

“네 말은 믿을 수 없어! 아버지를 뵙

고 직접 말하겠어!”

“거, 말귀를 못 알아듣네.”

“네놈이 뭔데 막아, 어서 비키지 못 해!”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머리가 없으니 까, 몸이 고달픈 거야.”

“?뭐?”

“아플 거다, 아니면 막아보든가.”

의문이 들기도 전, 팽세운의 고개가 팩! 하고 젖혀졌다.

눈앞에 깜깜해지면서 수많은 별들이 허공에서 맴돌다가 사라졌다. 의식을 다시 차렸을 때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 었다.

크윽!

극심한 고통에 눈을 만졌더니, 더 큰 고통에 휩싸였다.

처맞은 거다.

사태를 파악하게 된 팽세운이 벌떡 일어나 으르렁거렸다. 가문 내에선 아 버지에게도 맞아본 적이 없기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비겁하게 기습을!”

“개나 소는 기습해도, 넌 아냐.”

정우에게 팽세운은 핏기도 가시지 않 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주제에 가주를 노리는 걸 보면, 욕심 이 과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 팽세천이 야 시간이 지나면 하북팽가를 담을 그 릇은 되겠지만, 팽세운과 팽세기는 역 량부족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대가리가 부족하면 아랫사람들이 고생하기 마련이다. 일찌 감치 제 주제를 깨닫게 해주는 편이 집 단을 위해서도 효율적이다. 호랑이의 자식이 호랑이라는 말은 그럴듯한 포장 일 뿐, 실제로는 10분지 1도 안 된다.

“외인 주제에 날 이렇게 대하고 무사 할 성싶어!”

“그러는 넌 대호법인 날 무시하고 무 사할 성싶으냐.”

“누가 대호법이야, 난 인정 못 해!”

“자격도 안 되는 버러지가 인정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

권력은 언제나 현재를 대표한다. 죽어 버린 과거의 권력이 현재의 살아 있는 권력을 이길 순 없다.

정우는 대호법임을 공표했다.

하물며 그간 해온 업적이 공개되었다. 산서성의 지부를 지키고, 본가를 남궁 세가로서부터 구했다. 남궁세가를 무너 뜨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충분 히 대호법의 자격을 논할 근거가 되었 다. 반박하기에는 남아 있는 가문의 혈 족들이 증인이 되었다.

팽세운이라고 그걸 모르겠나, 알기에 아버지를 뵙겠다고 길길이 날뛰는 것이 다.

“이 자식이, 죽엇!”

“그런다고 죽겠냐.”

팽세운이 재빠르게 도를 뽑아 들어 수직으로 베어냈다.

휙!

깔끔하게 돌아선 정우, 회전력을 실은 팔꿈치로 대가리를 가격했다.

퍽!

고꾸라진 팽세운은 정신이 혼미했다. 관자놀이 부분을 제대로 저격당하고 말 았다. 일어서려고 할 때 발이 시야를 덮 었다.

퍼어억!

공을 차듯 팽세운을 걷어찼다.

쌔애앵!

맹렬히 날아간다.

팽세운은 믿어지지 않았다. 검제와 검 왕을 제압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코 웃음을 치며 믿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로 경험해보니 진실을 강요했다.

스륵!

정우는 찾아가는 서비스를 마다하지 않았다. 팽세운을 주먹으로 잡아채며 공중에서 먼지를 털었다.

퍼퍼퍼퍼퍽!

대충 형식 없이 휘두르는데도 백팔 개의 주먹질이 완성되었다. 번뇌를 잊 고, 새사람이 될 강력한 위력이다.

정신없이 처맞는 팽세운은 요단강 근 처에서 목욕하는 기분이었다. 조금 더 가면 아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살려!”

“겁 많네.”

그러니 살아 돌아왔겠지만.

전면에 나서지 않아 살아 있을 공산 이 컸다. 전장의 배후에 숨어 명령만 내 리고 이기는 전투만 해온. 지배자의 그 룻이 되기에는 한참 부족한 역량이다. 무릇 지배자란 때론 과감한 모습을 보 여야 할 때가 있다. 깜냥도 되지 않는 주제에 자리를 탐하게 되면 모두를 불 행하게 만든다.

‘..이때다!’

공격이 멈출 때를 팽세운은 기다리고 있었다.

속성개방, 공단(空斷).

공간을 쪼개버리는 속성, 7급의 위력 을 가지고 있었다. 나쁘진 않았다. 근접 거리라면 더더욱 효과적이다.

파아앙!

굉음이 분출되며, 희뿌연 먼지가 피어 올랐다.

팽세운이 득의한 표정을 짓기가 무섭 게 먼지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날아온 다. 위기감을 느낄 여지는 주어지지 않 았다.

뿌아아악!

예상대로 정우의 주먹이다.

크아아악!

이겼다고 방심할 때 맞아서 그런가, 더 아프다.

팽세운은 극심한 고통에 아우성을 쳤 다.

정우의 손속은 아량을 베풀지 않았다. 퍼퍼퍼퍽!

팽세운은 겁이 많은 놈들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살기 위해 비 굴함도 마다하지 않으며, 돌아서면 언 제든 뒤통수를 노린다.

“?살려, ?꾸웩!”

“앞으로 개길 거야?”

정우는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불쌍해서 살려주진 않는다. 팽세운은 산서성으로 반드시 가야 한다. 남아 있는 세력을 이끌고. 그래야 여러 모로 이후의 일들을 처리하는 데 명분 이 생긴다.

“두…… 번 다시…… 개기지…… 않겠 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래, 알아.”

안다면서 더 때리고 있었다.

한 대 맞을 거, 스피드가 업(Up)되어 두 대 더 맞았다.

“?…”왜?”

“아니까, 더 맞는 거야.”

너 같은 놈은 몇 대 맞았다고 반성하 지 않는다. 물론 반성하라고 때리는 사 랑의 매도 아니다. 이전에 건방지게 굴 었던 대가도 포함되었다. 다분히 악의 적이고, 감정 섞였으니 알아줬으면 하 는 바람이다.

정우는 항상 계산에 관해선 정확했다.

한참을 때린 후, 물었다.

“갈 거지?”

“..갈게요!”

팽세운의 의지는 거기까지였다.

팽세기는 가문으로 귀환한 후 졸지에 후계자가 되었다.

진인사대천명은 개불!

해야 할 일은 하지도 않고, 하고 싶지 도 않은데 하늘을 농락하는 인간에 의 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내 주제에 가주가 가당키나 하나!’

농담은 아닌 줄 알았지만, 이렇게나 간단히 후계자가 될 줄이야.

팽세기는 혹금단주의 심계와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불가능한 일을 대수롭 지 않게 처리해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씁쓸하다.

아버지와 형, 자신을 믿지 않고 차별 을 해왔다 한들 피를 나눈 혈육이다. 이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이고 자시고 내 코가 석 자라고 요!’

팽세기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간 자신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 뻔히 알고 있었다. 배다른 형들 은 자기들끼리만 놀고. 버려진 신세였 다. 지금에 와서 가족애를 바라기엔 어 불성설이다. 각자의 삶, 피를 나누었다 는 걸 제외하면 남남보다 못하다.

그뿐이랴.

팽세기는 혹금단주가 두려웠다.

그는 비현실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는 개새X…… 개세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 었다. 아버지와 형들, 가문도 가지고 놀 았다. 게다가 심신에 가해진 금제를 벗 어나기란 불가능했다. 시도를 하는 즉 시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될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후계자가 되신 걸 경하드립니다.”

“총관님도요.”

이극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본가로 돌아가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었다. 도대체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추측이 되지 않았었다.

산서성 지부가 공략당하지 않도록 대 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런 와중 본가가 남궁세가의 공격을 받았고, 막 아낸 자가 흑금단주였다.

‘검제와 검왕을 힘으로 눌렀어. 정녕 사람이 맞단 말인가? 대륙 전체를 따져 봐도 다섯을 넘지 않을 것이다.’

팽가의 후예로서 검(劍}을 도(刀) 앞에 두기를 꺼려하기는 해도, 검제와 검왕 을 가볍게 보진 않았다. 그들이 누구인 가, 검에 관해서는 자타공인 최강의 검 객으로 평가를 받는다. 하물며 남궁세 가의 주력까지 격파한 혹금단도 재평가 를 해야 마땅했다.

‘가주는 무리수를 뒀어.’

검제와 검왕을 쓰러뜨렸다면, 허튼수 를 써선 안 되었다. 흑금단주를 가볍게 여기고 계략을 쓰다 역으로 당해버린 것이다. 이제 세가는 흑금단주의 손에 장악되었다. 누구도 그의 뜻을 거부하 지 못한다.

“허어, 이를 어찌할꼬.”

“가문의 죄인이로다.”

“우리가 잘한 건지 모르겠소, 이 총

관?”

하북삼도는 장로로서 본가의 핵심수 뇌부에 꼽히게 되었다.

좌천되다시피 지부로 밀려날 때까지 만 해도 살아서 본가에 발을 디딜 수 없 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세상이 바뀌 었다. 팽세기는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 고, 자신들은 핵심 수뇌부의 자리에 올 라섰다. 인생사 새옹지마(寒a之馬)라고 한들, 이보다 더 파격적일 수가 있을까? 이 모든 일을 일상처럼 끝내버린 혹금 단주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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