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통수무정 (3)
금강문
웅장하고 강인한 필체로 음각된 현판 을 올려다보는 건장한 체구의 청년들.
평소에 입지 않는 정갈한 슈트와 매
끈하게 불광(火光>을 낸 구드를 갖췄다. 다들 초조함이 한가득이다. 얼굴만 봐 서는 소도 때려잡게 생겼지만, 긴장한 기색이 완연했다.
이해는 간다.
다른 데도 아닌 금강문이다.
한국제일의 무문이며, 유니크를 통틀 어서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 다. 유니크 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이라 면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
“추천장하나로 될까’?”
“그 자식이 된다고 했잖아.”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성의가 없는
데.”
추천장에 자기 이름 하나 달랑 쓰여 있었다. 이걸 들고 가야 하는 심정이 오 죽하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든다.
“안 되면 어쩌지?”
“벌써부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라.”
연락을 넣어놨으니, 제 날짜에 가서 추천장을 보여주면 된다고 했다. 지나 치게 간단해서 제대로 추천을 해준 건 지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두근, 두근!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심장
이 뛰는 소리가 고막을 강렬히 울린다.
“안 되면 우리가 뭘 어쩌겠냐.”
“그건 그래.”
상대는 괴물이다. 추천서를 잘못 써줬 다고 왈가왈부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 을 거다. 도리어 해줘도 지랄이라고, 처 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마법사라면서 주먹이 더 강하냐.”
“딱 봐도 마법사 체격은 아니지.”
마법사라면 호리호리한 체격에 늘어 진 긴 후드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어야 했다. 요즘 들어 고정적인 이미지가 사 라졌다고는 해도, 19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에 모세 근육으로 가득 들어찬 몸 은 누가 봐도 마법사 이미지가 아니잖 아. 하물며 마법보다 주먹이 먼저 나간 다. 이런 마법사는 세상 처음이다.
“그 자식은 인간 자체가 강하다고.”
“금강문에서 무공을 배운 거겠지.”
“우리도 강해질 수 있는 거 아니겠 어.”
자칫 망신만 당하고 쫓겨나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서는 인권 패밀리다. 덩치 에 비해 작은 상징이 더더욱 오그라든 다. 이럴 때일수록 각오를 다져야 했다. 한때나마 우정을 의심하기는 했지만, 한번 패밀리는 영원한 패밀리라고 다짐 을 되새겼다.
“너희들 뭐야?”
정문을 지키고 있는 금강문의 무인이 다가오자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헛소리 했다가는 쫓겨나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다.
“공고 낸 적이 없는데.”
“……없다고요?”
일개 문지기라고 폄하해선 곤란했다.
인권 패밀리도 덩치가 큰 편인데, 금 강문의 무인은 더 컸다. 머리 하나는 기 본으로 더 큰 자들이 수두룩하다.
우르르!
언성이 커지자 주변으로 무인들이 몰 려들었다.
“왜 그래?”
“뭔 일이야?”
“침입잔가‘?”
하나같이 기본 이상의 위세를 뿜어내 고 있었다. 금강문이 한국 제일의 무문 이 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죽는 거 아냐!’
취업하기 위해 왔다고 했더니, 공고 낸 적이 없다고 한다. 이대로 뒤로 돌아 서 무사히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냥 간다고 곱게 보내줄 것 같지도 않 았다.
“추천서를 누가 써준 건데?”
“정우가 가보라고 했습니다!”
살기 위해 정우를 팔았다.
목숨은 소중하니까.
“누구?”
“하정우요.”
덩치는 산만 한 인권 패밀리의 목소 리가 기어들어 갔다.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야지, 어서 들 어와.”
“예‘?”
“들어오라고.”
“……고맙습니다.”
태세전환이 빠르다고 봐야 하나, 정우 를 언급하자 무인들의 반응이 180도로 바뀌었다. 어색하지만 환하게 웃으며 응대하려고 노력했다.
“난 청금단을 맡고 있는 황우철이라 고한다.”
“단주님이셨어요?”
“왜 단주는 정문을 지키면 안 되는 거 냐?”
“그런 건 아니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니까, 이상하게 보
진 마라. 요즘 문파를 염탐하는 놈들이 많아져서 경계를 강화한 거다. 너도 알 다시피 문주님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바람에 시끄럽잖아.”
“아, 그렇군요.”
총관실로 안내를 한 후 황우철은 돌 아섰다.
“무운을 빈다.”
“합격하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뭐……그러든지.”
황우철은 살짝 걱정이 되었다.
금강문이 대외적인 이미지가 좋기는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로 착각해 선 곤란했다. 내부 사정은 직접 겪어봐 야알수 있었다.
작금의 금강문으로 재탄생되기까지 고생이 상당했다. 험로를 이겨내고 버 텨낸 자만이 금강문의 당당한 무인으로 서 꼽히게 된다. 실상 지원자 대부분이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그다음 날 연락 이 오지 않았었다. 열려 있는 취업문과 달리 버티기 힘든 업종에 속했다.
‘정우가 소개시켰으니, 기본은 하겠 지.’
황우철은 관심을 껐다. 되고, 안 되고 는 마음가짐에 달려 있었다. 버티면 같 은 식구로서 대접을 해주면 된다.
인권 패밀리는 총관실에 들어섰다.
김 총관을 본 인권 패밀리는 지금까 지 본 무인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 았다. 기품과 연륜이 있어 함부로 대하 기 어려운 권위가 저절로 느껴졌다. 주 름살이 깊어 보이지만, 그마저도 살아 온 세월의 힘을 가늠하게 했다.
한 우물을 판 고고한 학자 이미지다.
인권 패밀리는 저절로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한편으로 걱정이 되 었다. 어떤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앞섰다. 길드에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볼 때보다 더 긴 장이 된다.
스윽!
김 총관은 지원자를 위아래로 한번 훑은 후 소개장을 확인했다.
-접니다.
정우다운 추천서다.
부연설명 없이 깨끗해서 확실하다.
“정우가 보냈다고?”
“그렇습니다.”
“합격.”
“예‘?”
“합격이라고.”
유니크 면접은 대부분 실전 위주로 진행된다.
금강문과 같은 대문파라면 상당히 어 려운 시험이 있을 거라고 보고 마음 단 단히 먹었거늘. 너무 쉬워서 사기당한 기분이 들 지경이다. 마치 하루 2시간 일하고, 월 500을 보장하는 다단계 영 업처럼.
“끝난 건가요?”
‘‘혹, 능력이 안 되는 거냐?”
“그런 건 아니지만, 보시지 않아도 되 는 건가요?”
“정우가 추천했으니, 능력은 있겠고. 중요한건의지지.”
“고작 그걸로요?”
“고작이라, 후후.”
김 총관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정우를 고작이라고 표현하는 것만 봐 도 견적이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게 분명하다. 본문에서 생활하다 보면 정 우의 실체를 조금씩은 알게 될 테고, 그 땐 입에 담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지금 이야 같은 학교 동기라고 격이 없겠지 만, 사회는 능력에 따라 단계가 있다. 언제까지 같은 급일 수는 없다. 물론 인 간 대 인간이라면 평등하겠지만.
“가봐.”
“감사합니다. 성심을 다해 보답하겠습
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 일이지.”
"한 입으로 두말하진 않습니다.”
“버티기나 해.”
금강문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들 어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버티느 냐, 버티지 못하느냐가 관건이다.
여하튼 정우가 추천했다면 사전 조사
는 이루어진 상태일 것이다. 아무나 막 들일 만큼 정우는 인정이 넘치지 않았 다. 박하다면 아주 박하다. 정말로 쓸모 가 있지 않으면 팽! 당할 수도 있었다.
‘차라리 팽당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 지.’
잡아놓은 물고기들이 어떤 삶을 사는 지 안다면, 작금의 결정을 후회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정우가 작정을 했다면 마수에서 빠져나오기는 어렵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
‘그나저나 팽가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
군.’
강천을 데리고 갈 때 자초지종을 들 었다.
설명을 들을수록 정우의 계략이 얼마 나 대단한지 체감하게 해준다. 가진 무 력을 참으로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문 주처럼 아무데서나 판을 벌이고, 힘을 쓰지 않았다. 진정 필요할 때, 빠져나가 지 못할 명분을 만들어놓고 무력을 쓴 다.
‘조용한 걸로 봐선, 끝났군.’
난장판이 된 팽가가 그려졌다.
아직까지 조용하다면 게임 오버됐을 공산이 크다. 내일 안으로 연락이 올 것 이다. 대답은 늘 그래왔듯이, 당연할 테 고.
‘일복 터졌구나.’
김 총관은 하는 일이 몇 배로 늘어나 고 있었다.
당을 만들고, 대선 출마가 확실해졌다. 늘어나는 양만큼이나 인원이 부족해서 안타깝다.
문파 내부적으로 무인은 이제 그만하 면 됐다.
머리 쓰는 사람이 현저히 부족했다. 사무직을 보충하기 위해서 지원자를 뽑 고는 있으나,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현 실이다. 사람은 많으나 필요한 사람은 적은. 업무를 가르칠 싹수가 있는 자를 찾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합격이닷!
-이거 꿈 아냐!
-드디어, 백수 탈출이다!
-백수는 아니지.
-학생이 백수지, 뭐냐!
합격했다고 들떠 있는 인권 패밀리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총관은 마냥 좋아하는 취준생의
미래를 걱정해주었다. 실상 취업했다고 끝나지 않는다. 사회는 전장이고, 살아 남기 위해선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아야 했다.
“나도 공부하고 있단다.”
그 녀석 때문이긴 하지만.
문주도 문서 외우는 데 하루를 소모 하고 있었다. 무공은 천재지만, 확실히 공부는 느렸다. 몇 번을 봤으면서 다시 해보라고 하면 매번 틀렸다.
“화가나네.”
지가 물어보라고 하고서, 무안하니까 사람을 팬다. 틀린 답을 간혹 맞았다고 할 때가 있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