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401화 (401/500)

제1 장

통수무정 (2)

꽈아아아아앙!

공간을 휘어잡으며 소용돌이치는 격 렬한 와류는 일대를 휩쓸었다. 주변에 있던 장로들은 느닷없는 공격에 대비를 하기는커녕 말려들어 가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써야 했다.

“……저럴 수가!”

“단…… 일격에!”

공수의 전말!

경악이 소용돌이친다.

본능적으로 도를 들었던 팽무경은 벽 면에 처박힌 채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 전이었다. 전신은 강기에 박살이 난 도 의 파편이 꽂혀 붉은 선혈로 도배가 되 었다.

간헐적으로 숨이 헐떡일 때만 핏줄기 가 흘러나오는 장면이 섬뜩하게 다가온 다. 모두에게는 자신들의 말로처럼 보 였을 것이다.

“자, 다시 말해봐.”

협상을 하고 싶으면 하면 된다

하나 어느 누구도 쉬이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선혈이 난자한 참혹한 공간, 죽음만이 자리했다. 자격이 되지 않는 자, 함부로 입을 열어선 안 되었다. 흑금단주는 대등함을 용납하지 않았다.

격의 차이를 체감한 그들은 전의를 잃었다.

냉혹한 현실이 자리했다.

“우리가 어찌하기를 바라는 것이오?”

“알잖아.”

혹금단주는 타협이 아닌 굴종을 원하 고 있었다. 치욕스러운 현실이다. 오랑 캐라고 무시했던 반도의 무인에게 고개 를 숙이고, 살려달라고 빌어야 했다.

“처음도 아니면서 어려운 척하기는.”

하는 말마다 비수가 되어 장로들의 속을후벼 팠다.

세상의 중심은 중국이라고 하지만, 실 상 정복당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몽골 에게 지배를 받았고, 영국에게도 수모 를 겪었다. 홈 없이 완벽한 국가도 아니 면서 그런 척하는 꼴이 역겹다. 물론 우 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일본을 왜라고 하여 비하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겪어야 했었다. 서로의 유전자가 더 우월하다 고 도토리 키 재기를 한들, 역사는 언제 나 순환을 이루었다. 항상 강하지도, 항 상 약하지도 않았다. 돌고 도는 반복되 는 역사를 피하기 위해서 애쓴다 해도 결국은 무의미했다.

‘미리 준비를 한다고.’

과연 역사가 바뀔까, 의식을 가지고 실천하는 자들이 많아야 이루어지는 기 적이다. 그러나 소수의 기득권이 지배 하는 세상이다. 그들이 변화를 받아들 이지 않는 이상, 역사는 되풀이될 분이 다. 지배자는 언제나 현실에 만족하며 갈수록 타락해왔다. 그들이 청정했을 때는 혁명을 이루기 전까지다.

‘어쩌다, 이런!’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장로들은 치를 떨어야 했다. 빠져나가기 힘든 절망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되돌리는 건 불가 능했다. 최소한의 아량^라도 베풀기를 소원해야 할 궁색한 처지였다.

“다른 식솔들은 죄가 없소이다!”

“그딴 개소린 하지 마, 팽가의 혈통으 로서 받아온 게 있다면 외면해선 안 되 는 거잖아. 받고선 모른 척하는 건 배은 망덕한 행위지, 안 그래?”

“우리로서 끝을 내주시오, 제발!”

장로들은 사정했다.

어떤 수를 써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 었다. 처음이야 방심을 했다 쳐도, 팽무 경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를 일격으 로 저항불능의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가주라 해도 하지 못할, 개세적인 무력 이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자의 무력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속성까지도 무시해버리는 가공할 무력은 인간인지 의구심이 들게 했다.

“그건 당연한 거고.”

사람의 목숨은 중요하다, 그러나 때와 장소에 따라 달랐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이 상, 굳이 협상이나 타협을 할 이유가 없 다. 하물며 목숨 빚은 목숨으로 갚아야 했다. 하찮은 목숨으로 가문을 연명케 해주는 것만.。-루-두 감지덕지할 은혜다.

부들부들!

공연화에 제압당한 팽우경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얼굴은 일그러질 대 로 일그러져 분노를 담았다.

“아직도 모르겠지?”

팽우경은 여전히 의문을 해소하지 못 했다. 어디서부터 틀어진 것인지 판단 이 서지 않았다. 분노 이전에 의문이 드 는 것도 당연했다.

“천혈강시는 사흑문을 처리할 때부터 알고 있었어.”

정우의 말에 다들 놀람을 감추지 못 했다.

천혈강시를 본격적으로 사용한 시기 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완성되기 전부 터 알고 있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강시를 조종할 때 특별한 파동을 쓰 더라고. 혹시나 해서 한번 흉내를 내봤 는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전혀 몰랐 지.”

모르긴 뭘 몰라.

정우는 공연화를 슬쩍 쳐다보며 미소 를 지었다.

그제야 멈추었던 사고가 맹렬히 돌아 갔다.

전말을 알게 된 팽우경과 모두는 오 싹한 한기에 분노마저 잊고 말았다. 사 혹문과의 대결이 끝난 시점부터 계획은 진행되었고, 그 올가미에 하북팽가는 걸려들었던 것이다.

공연화를 조종할 때 파동을 홀린 건,

실수가 아니라 고의였다. 이를 까맣게 모르고 함정으로 끌어들였다고 착각을 했다.

그야말로 흑금단주의 손바닥 안에서 철저히 놀아난 꼴이었다.

“……나를 속여…… 반도의 오랑캐 따 위가 대하북팽가의 가주를……!”

“신의를 배신하고서 할 소린 아니지.”

속였다고 볼 수 있을까? 굳이 말을 해 야 할 이유도 없지. 이는 귀중품을 길가 에 놓아두었으니 가지고 가도 된다는 범인의 주장과 다르지 않았다. 해서는 안 될 짓인 줄 몰랐다면 모를까, 알고서 행한 일이다.

“처음부터 네놈이 벌인 간교한 함정 이지 않느냐!”

“그러게 멈추랄 때 멈췄으면 험한 꼴 안 당했을 거 아냐. 그럼 본문과 화목하 고 우호적인 사돈관계를 맺었겠지.”

팽우경은 참을 수가 없었다. 혹금단주 에게 철저하게 농락을 당했다. 육체적 인 고통보다 치욕스러운 현실이 더 고 통스러웠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이용이 나 당하는 그런 하찮은 놈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용서하지 않겠다! 죽여버릴 테다!”

“용서는 강자가 하는 거야. 그리고 난 관대하니, 죽이지는 않을 거다.”

히죽이는 정우의 두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무심함을 넘어 무의미, 아무런 의미를 담지도 않았다. 마치 너희들 따위가 뭘 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그저 대가를 달게 받으라는 경고다. 물론 이제부터 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 되었 다. 나가고 싶다고 해서 나갈 수도 없는 영원불멸의 수렁이다.

“안 죽여? 나를 설마……?”

“천혈강시는 생강시더군.”

생각시보다 나으니 괜찮잖아.

팽우경의 분노는 공포로 물들어갔다. 사람도 아닌 강시가 되어 살아 있으면 무엇 한단 말인가. 이는 죽느니만 못한 처지였다.

“그런 짓을 하곤 무사할 줄 아느냐!”

“무사하겠지, 네가 어쩔 건데. 아니면 천혈강시를 세상에 공개해버릴까?”

천혈강시를 공개하겠다고?

모두는 깜짝 놀랐다. 만약 그리된다면 팽가는 두 번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 이 미 막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니, 노리고 있는 자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 할 것이다.

실로 무지막지한 협박이었다. 오래전 부터 천혈강시를 알고 있었다면 상당한 자료를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하다. 단순 협박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자,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순순히 강시가 되어 금제를 받고 인형으로라도 살아남든가. 끝까지 싸우다 장렬히 산 화를 하든가. 물론 팽가도 남아나지 않 을 거다. 난 내 것이 아니면 남겨두지 않는 편이거든.”

너희들만 금제를 받으면 나머지는 살 려주겠다는 그럴듯한 회유책이자, 엄포 다. 또한 자신감의 발론이기도 했다. 너 희들이 발악을 하든 발버둥을 치든 결 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가문이라도 온전히 보전하고 싶으면 알아서 땅바닥을 기라는, 굴욕적인 항 복을 원했다.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현 시대를 역행한다.

‘……지독하구나!’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어디를 가도 사면초가, 진퇴양난다.

장로들 가운데 온전한 자 중 연륜이 가장 높은, 팽무천이 침통한 표정을 지 으며 말문을 열었다.

“순순히 금제를 받으면 진정 가문을 보전시켜 주실 것이오?”

“물론이지.”

장로들의 의견이 일치되자, 팽우경이 반발했다.

반도의 오랑캐에게 고개를 숙이고 목 숨을 구걸하다니, 그럴 바에는 다 같지 죽는 편이 나았다. 하물며 자신은 강시 가 되어서 놈에게 충성을 해야 했다. 이 런 개 같은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라 고, 절대 그럴 수 없다.

“배신을 하겠다는 것이냐, 어서 놈을 죽이란 말이다!”

정우는 발악하는 팽우경을 신경 쓰지 않았다. 입만 나불거릴 수 있을 분, 육 체는 이미 금제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 였다.

“답답해할까 봐 전후사정을 말해줬으 면 고맙다고 할 것이지, 배은망덕한 놈 이네.”

아니까 더 발작하고 있는 거다.

팽우경은 쉬지 않고 발악했다. 최후까 지 자신의 명을 따라야 한다는, 이대로 무너지기 싫은 처절한 오기의 발동이었 다.

“오랑캐에게 가문을 내주겠단 것이냐!

너희들이 그러고도 팽가의 장로란 말이 더냐!”

“오늘의 사달은 가주께서 자초한 일 이오.”

“닥쳐랏! 나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모 든 걸 걸었어! 그런 나를 네놈들이 모욕 을해!”

“그 결과가 이거요!”

가주의 호통에 장로들도 화가 치밀었 다.

모든 일은 총관하고 의논해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명을 내리면 군말 없 이 따랐다. 하지만 과정일 분 결과가 따 르지 못했다.

가문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주를 두 었다고 자찬을 했거늘, 역사에 회자될 최악의 날을 완성했다. 그러고서 가문 을 위해서라고 하니 분통이 터진다.

“나의 결정이다! 내가 가주란 말이 다!”

“가주라면 가문을 위해 희생을 할 줄 도 알아야 하는 것이오!”

“닥쳐! 가문은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 고!”

“가주, 정녕 끝까지 이럴 것이오!”

가주의 발악에 장로들은 그나마 남은

동정심마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가문을 위한다는 명목마저도 개인의 영달처럼 느껴졌다. 자신들도 영달을 위해 나섰지만, 가문은 건사해야지 않 는가. 저런 자를 가주라고 하여 끝까지 모셨다니 후회가 되었다.

‘후후, 혼자만 깨끗한 척하더니.’

정우는 이렇게 될 줄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팽우경은 해바라기처럼 해를 향해 직 진하는 오롯이 똑바른 자가 아니다. 실 패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철칙도 본인에 게는 통하지 않았다. 방향이 그릇되어 도 끝까지 점철했다면 뚝심이라도 인정 하지, 기회주의자에 불과했다. 그런 자 가 순순히 항복을 하려고 할까? 개도 안 믿을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해, 소음공해야.”

“용서하지 않겠…… 꺼억!”

공연화가 팽우경의 아혈을 차단하고, 의식을 끊어놓았다.

강시의 원천 재료이니만큼 소중하게 대해줄 필요가 있었다. 굳이 천혈강시 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정우에게는 모 든 종류의 강시제조에 대한 방대한 지 식이 있었다. 아마‘ 천혈강시보다 못해 도 세 배 이상은 강할 것이다.

“너희들은 이것부터 먹어야겠지.”

정우가 손을 내밀었다.

꼬물, 꼬물!

손바닥 위에서 미세한 벌레들이 꿈틀 거리고 있었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 는 것 같아 귀여워 죽겠다는 정우의 표 정에 다들 식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악마다!’

장로쯤 되면 연륜과 경험이 차고 넘 친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저와 같은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최악의 악당이자, 악마를 보고 있었

다.

“알다시피 요건 머리가 폭! 하고 터질 때 아주 기가 막히지. 영화에서도 봤을 테니 어색하지 않을 거야.”

고(희를 이런 식으로 포장할 수 있다 는 사실에 더더욱 놀랐다.

이 인간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 는지 감당이 안 될 지경이다. 애초에 거 래를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깃들었다.

“망설이지 마, 팽우경과 같은 꼴이 되 기 싫으면.”

고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주춤했던

장로들은 주저하지 않고 먹었다. 정신 금제와 육체금제를 동시에 받았다. 그 꼼꼼함과 세심함에 다들 혀를 내둘러야 했다. 빠져나갈 여지 자체를 아예 주지 않았다.

“참고로 너희들이 모르는 금제가 있 으니, 해체하고 싶으면 한번 해봐. 어떤 꼴이 나는지 나도 궁금하거든.”

……하늘이시여!

다들 무릎을 꿇은 채 오늘의 악몽이 꿈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지랄하네.”

빌려면 나에게 빌어.

혹시 알아, 작은 은혜라도 베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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