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통수무정 (1)
배신에 이은 반전.
돌아가는 정황이 빠르게 전환되어 망 연한 사태를 양산했다. 목표물을 함정 으로 불러들였을 때만 해도, 작금의 현 실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 연예인들이나 자주 걸리는 공황장애를 일으켰다. 범죄만 저지르면 이상하게 마음이 약해지는 심신미약과 정신질환 까지 겸해서.
“……어째서?”
통수에 제대로 저격당한 팽우경의 충 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내외상도 엄중하지만, 심적인 충격이 더더욱 컸다.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놈은 함정 에 걸려 허우적거리다가 강시의 재료가 되어야 했다.
“재밌네.”
정우는 통수의 재미를 한껏 만끽하고 있었다.
한편으로 진강백의 심정이 이해가 되 었다. 왜 그토록 끈질기게 막아섰는지, 중독성이 꽤 강하다. 이걸 통수잼이라 고 해야 하나. 가장 득의해했을 때 나락 으로 떨어뜨려야 제맛이고, 효과가 극 대화된다.
‘진강백, 이놈도 성격은 별로였네.’
다 된 밥에 잿밥을 뿌리기 위해 목숨 까지 거는 놈이 성격 좋을 거라고 보긴 어렵다. 통수 하나만 보고 살아왔다는 의미가 되니, 인간관계는 더더욱 척박 했겠지. 인생을 재밌게 살진 않았을 터.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는데, 진강백은 무슨 낙으로 사는가였다.
‘하긴, 내 인생도 아니고.’
나의 찬란한 인생을 망가뜨린 진강백 의 고약한 심보를 단죄하고 싶은 마음 이 굴뚝같으나,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 능한 일이다.
‘이때까지 안 나타난 걸 보면 기우일 지도:
돌아가는 사태를 모르는 불쌍한 중생 들의 가련한 눈빛이 집중되었다.
저들은 여전히 왜? 라는 의문에 휩싸 였다.
“그러게 후회할 거라고 했잖아.”
지금에 와서 후회를 해봤자 늦었다. 현실을 돌이키진 못한다. 그럴 의향도 전혀 없고. 선택에 대한 대가는 뼈아프 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늦었다는 걸 알았을 땐 정말로 늦은 거니까.’
늦으면 늦은 거지, 가장 빠른 때는 되 지 않는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과 함께 정우가 신용하지 않는 속담이다.
‘시작은 시작일 뿐이지.’
히죽거리는 정우의 태도에 팽우경의 언성이 과격해졌다. 그로서는 납득할 만한 근거가 있어야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하지 못하겠느 냐!”
“벽창호냐!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 는 모양인데, 넌 지금 물어볼 입장이 아 니야. 주제 파악을 좀 해라.”
“네놈이 감…… 커억!”
뭣도 아닌 놈이 끝까지 허세를 부린 다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된다. 친절히 현실을 되새겨주었다.
사삭!
팽우경의 등 뒤로 다가온 공연화가 목을 잡아챘다. 가녀린 손목과는 어울 리지 않게 팽우경을 공깃돌처럼 들어올 렸다. 워낙 덩치가 좋아서 지면과 5센 티미터를 두고 바동거리고는 있으나, 어울리진 않았다.
백옥처럼 하얗고 가녀린 손이 숨통을 조였다.
크으으윽!
동공에 핏발이 서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튀어나온 핏줄이 견디지 못하고 선혈을 만개하려고 했다.
부르르르!
팽우경은 숨이 막히는 고통보다 치욕 스러운 현실에 분노했다.
자신은 팽가의 가주이자, 대륙을 호령 할 지배자다. 반도의 오랑캐에게 당한 것도 수치스러운데 계집의 손에 생사가 결정되어야 하다니 치욕스러웠다.
하나 자존심에 입은 상처도 닥쳐오는 죽음의 숨결에 점차 지배되어 갔다. 한 가닥의 숨통마저 막히게 된다면 육신은 서늘한 주검으로 변할 것이다.
“가주님을 놓지 못하겠느냐!”
“멈추지 않으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 겠다!”
돌연한 사태에 우왕좌왕하던 장로들 과 무인들이 가주의 위기에 살기를 드 러내며 엄포를놓았다.
혈통이 꼬일 대로 꼬인 잡종 똥개도 제집에서는 3할을 먹고 들어간다고 했 던가. 꼴에 짖기는 아주 잘 짖는다.
큭
정우는 헛웃음이 나오는 걸 감추지 못했다.
하북팽가의 종특인가, 상황 파악 못 하는 건 가주나 식솔들이나 매한가지네. 이쯤 되면 견적이 나와야 하거늘, 두뇌 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증명해주었 다.
단, 가주에 대한 순수한 충성심이라면 인정은 해준다.
하지만 그분.
내 집도 아니고, 남의 집 개들의 충성 심을 칭찬해줄 이유가 없다.
“할수있으면 해봐.”
정우는 무릎을 꿇은 우호법 팽우원의 가슴을 발로 짓눌렀다.
그는 가주와 동시에 기습을 당해 전 력의 대부분을 잃고, 심각한 타격을 입 었다. 결국 맥없이 짓밟혀 바동거렸다.
꾸욱, 꾸욱!
정우는 보란듯이 짓누르며 주변을 돌 아보았다.
얼마든지 해보라고 시위하듯.
이는 공연화도 마찬가지였다. 팽우경 의 목을 고무호스처럼 쥐락펴락하고 있 었다. 당장 숨통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전개가 지속되었다.
“이놈, 멈추지 못할까?”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반도의 오랑캐 따위가 설치는 것이냐!”
“그 손 놓지 않으면 절대 살아 돌아가 지 못한다!”
살기와 분노가 뒤섞여 험악한 분위기
를 자아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가주 와 우호법이 인질이 되어 이러지도 저 러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정우가 보기에는 가당치도 앉은 짓이 었다.
“짖지만 말고 오라니까, 아니면 오지 못하는 건가?”
비릿한 조소와 함께 신랄한 비판이 작렬한다.
단순히 가주와 우호법의 안위 때문에 못 움직인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이건 누가 봐도 안 되는 게임이었다. 팽우경 과 팽우원이 제압되고, 전대 장로가 죽 으면서 상황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 다.
이중에서 가장 강한 네 명이 속절없 이 당했는데, 남은 쓰레기들이 뭘 할수 있단 말인가. 쓰레기는 모여 봤자 쓸모 없는 더미에 불과했다. 수적인 우위와 자기 집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있다면 더더욱 쓰레기였다.
“짐승은 말이야, 목줄을 풀어주면 진 짜로 자유로운 줄 알고 설치고 다니더 라고.”
“짐승! 감히 우릴 모욕하는 것이냐!”
그들은 고귀한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항시 자부해왔다. 언제 이토록 참담한 멸시를 받아봤던가.
“더 지껄여봐, 그럴수록 팽가에 남아 있는 게 없을 테니까.”
“설마?”
“걱정하지 마, 난 충분히 하고도 남는 놈이거든.”
“그런!”
히죽이며 웃고 있는 정우의 얼굴이 빛에 반사되어 음영을 새긴다.
그 모습이 절대 인간처럼 보이지 않 을 만큼, 더더욱 흉학해 보인다. 넘어선 안 되는 불가해의 영역을 멋모르고 넘 어섰을 때 단죄의 철퇴를 내리는 심판 자의 형상이다.
‘어떻게 이런 놈이 있을 수 있지?’
‘악마가 아니고서야!’
‘끌어들여선 안 될 자였구나!’
기습이었다고는 하나, 팽우경과 팽우 원은 하북팽가의 최강자다.
지닌 무공과 속성을 발휘하기는커녕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하물며 전대의 고수인 유 장로와 강 장로를 단 일 초식 으로 숨통을 끊어놓았다.
그런 자를 오랑캐라고 하여 폄하할 수 있을까? 대륙 무림에도 그런 자는 없다. 여기가 팽가가 아니었다면 소리 를 칠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흑금단주와 마녀, 저 둘만으 로도 차고 넘쳤다. 결계를 발동해 외부 와 차단했던 것이 도리어 족쇄가 되어 돌아왔다. 외부와 당장은 연결하지 못 한다.
“네놈들만 처리하면 남은 조무래기들 이야식은죽 먹기지. 안그래?”
“악마 같은 놈! 이런 참혹한 짓을 하 고 무사할 성싶으냐, 하늘이 결단코 용 서치 않을 것이다!”
“하늘! 웃기지도 않네. 사람 맘이란 게 화장실 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고 하더니, 그것이 너희가 허구한 날 주장 하는 대륙의 정의냐? 뭐, 이따위로 편한 정의가 다 있냐. 자기들 맘대로 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딴 개소리를 하면 내가 아, 예!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라 고 말해야 되는 거냐?”
“이쯤에서 멈춘다면 우리도 더 이상 은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전대장로인 팽무경은 타협을 원했다.
공연화의 무력도 무섭지만, 사태를 반 전시킨 혹금단주의 심기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작금의 현실을 이해하려면 그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가정을 해도 부족하다. 마치 이 상황을 유도한 것처럼 느껴졌다.
우드드득!
발에 힘이 가해진다.
크어어억!
거친 비명이 가주전을 시끄럽게 울린 다.
부르르, 컥!
가슴뼈가 함몰된 팽우원이 두 눈을 부릅뜨며 비명을 지르다 절명하고 말았 다. 팽가가 자랑하는 우호법의 최후라 고는 보잘것없었다. 보고서도 믿지 못 할 광경이었다. 타협을 제안했던 장로 들은 대경실색했다.
“이런 잔인한우?!”
“타협 따윈 안 해, 내가 왜 그래야 하 지?”
타협이란 서로 동등한 입장이었을 때 나 가능한 것이다.
세상이 책에 쓰인 대로 아름답게만 굴러갈 거라고 보는 건가. 나이를 처먹 었으면 동화 같은 세상이 아님을 알아 야지. 아니면 자신들은 절대 이런 상황 에 처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살아 왔나.
“결코 살아 나가지 못할…… 허억!”
대경실색.
팽무경의 정면을 가득 채우는 거대한 권형, 피할 곳도 없이 직선으로 치고 들 어와 공간을 장악해버렸다. 절대극강의 진의가 깃든 완성형의 무형권강, 힘의 편린은 생존본능을 자극했다. 살기 위 한 몸부림일까, 도를 들어 막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