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통수는 5번으로 족해 (3)
“숨겨둔 돈이 꽤 많군.”
“명색이 오대세가를 이끌었던 남궁세 가니까요.”
“눈치채지 않았겠지?”
“저희가 그런 쪽으로는 일가견이 있
거든요.”
“그럼 다행이고.”
정우는 한 달 동안 놀고 있지 않았다.
귀성을 통해 알아낸 정보를 이용해서 남궁세가가 감추어놓은 자금의 6할을 하오문을 통해 은밀하게 회수했다. 돈 이라는 게 외부에 드러나면 세금이 된 다. 중국의 부정부패가 엄청나기는 해 도, 실제 법은 강력하다. 탈루를 했다가 제대로 걸리면 그에 대한 책임이 우리 나라보다 세다. 그래서 남궁세가는 자 금을 세탁해서 은행이 아닌, 세가의 비 밀 금고나 케이브에 분산시켜 놓았다.
“남은 건 찾기 어렵나?”
“은행 자금도 꽤 있어서 어려워요. 정 체가 발각될 우려가 크거든요.”
남궁세가의 숨겨진 재산 중 6할만 해 도 천문학적인 액수다. 한데 남은 4할 까지 탈탈 털려고 하다니, 남궁세가로 서 환장할 일이다. 실상 남궁세가의 재 산을 아는 존재는 검왕과 귀성이다.
검왕이 죽고, 귀성이 백치가 되면서 남궁세가는 숨겨진 재산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안휘성의 곳곳에 분산시켜 놓 은 재산을 정우가 홀라당 털어먹었으니, 재기가 어렵게 되었다.
“사람을 믿었어야지.”
재산을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았으 니, 다 털리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본 인도 사람을 다 믿지 않으면서 그런 말 을 하다니, 뻔뻔하기는 지상최강이 었다.
“3할 어때?”
“정말이요?”
“거짓말을 뭐하러 해.”
“고마워요.”
남궁세가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낸 여 운향은 인간적으로 고민했었다. 돈 앞 에 인간은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러나 순순히 바치기로 결정을 내렸다.
욕심을 부릴 때 부려야 한다. 그 점에 있어서 그녀는 생존 감각이 뛰어났다. 어디에 선을 대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욕심을 부려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저, 단주님!”
“왜?”
“전 첩으로도 만족해요. 파트너도 좋 고요.”
“자신의 가치를 함부로 여기진 말지.”
“단주님과 함께할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해요.”
여운향은 다른 때와 달리 솔직하게 감정을 털어놓았다. 혹금단주에 대한 감정은 사실이기도 했다. 하오문은 항 상 강자를 동경해 왔다. 아무리 정보력 이 뛰어나도 결국에는 강자의 발아래 있을 분이다. 그녀가 보기에 혹금단주 는 세상을 좌지우지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 발이라도 더 가까 이 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싫진 않지만, 난 일편단심이라서.”
“안 돼요, 그건. 정말 나쁜 짓이에요. 단주님은 모든 여자의 로망이라고요.”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하는군.”
“사실이니까요.”
여운향은 더더욱 욕심이 났다. 저 나
이에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 여자만을 바라보다니, 도대체 어떤 여 자일까? 한편으로 궁금하다.
“아참, 조심하세요.”
“알아.”
“역시, 대단하세요.”
“잠자코 있어, 유통망은 줄 테니까.”
“아무렴요.”
은근슬쩍 치파오를 들어 올리며 옆자 리로 이동하려던 여운향은 정우의 눈짓 에 뻘쭘히 제자리로 돌아가고 말았다. 확실히 틈이 없이 완벽하다.
‘이럴 때는 방심해도 되는데.’
한국도 아니고.
늦은 시간 하북팽가로 돌아온 정우는 가주의 부름을 받았다. 세가를 복구하 느라 늦어진 논공행상에 관해서 의논을 하자고 했다.
“왜 이런 늦은 시간에 부르는 거지?”
“대외적으로 공을 논하기엔 힘들다고 하셔서요.”
“반도의 오랑캐다 이건가.”
“절대 아닙니다! 세가의 사정이 어렵 다 보니, 너그러이 이해를 해주십시오!”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하는 신임 북무
원주 팽명수였다. 그는 가급적 흑금단 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 노력이 통했을까, 흑금단주는 준비를 한 후 가주의 내당으로 가겠다 고했다.
‘어떤 선택인지 궁금하군.’
진정 궁금해서 짓는 표정인지는 의문 이다.
정우는 가기 전에 거처에서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연화를 불렀다.
공연화는 남궁세가와의 결전에서 얻 어낸 공력을 순환하여 융합진기로 완성 한 상태다. 공력만 놓고 보면 대적할 자 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에서 공력 은 전력의 일부일 분, 전부를 담아내진 못한다. 그것이 아쉽지만 정우의 눈높 이였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 차이가 보 이지도 않는다.
“가자.”
“예.”
매력만 놓고 보면 공연화는 그 어떤 여인보다 압도적이다. 여운향이 노골적 으로 나와도 공연화의 상대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이런 걸 바로 연륜의 미라고 해야 하는지는 고려해볼 일이다.
사분, 사분.
정우의 뒤를 따르는 공연화의 발걸음 은 조용했다. 밤이라면 있는지도 모를 만큼 한없이 가벼워 보인다. 배후에서 정우를 완벽하게 지켜주는 방수의 역할 을 해주었다.
내당으로 가는 길이 조용했다.
마치 단속을 해놓은 것처럼.
팽 가주가 한 달 동안 공을 들인 일이 세가의 외부와 내당의 공사였다. 외부 에 보이는 시선을 차단하기 위한 작업 이었다.
정우는 원상 복구된 내당의 담벼락 사이로 난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내당을 지키고 있는 무인이 문 을 닫았다.
우웅!
기의 파장이 번져 내당 안을 완벽히 감쌌다. 사람을 불러놓고 결계를 쳤다 면 당연히 이상한 일이다. 결계가 발동 이 된 직후, 팽우경과 장로들이 방에서 나왔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정우의 말투가 싸늘하게 식었다. 결계 를 치고, 현 가문의 고수가 한자리에 모 였다. 공적을 논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다가왔다.
“뭐하는 짓일 것 같으냐?”
‘함함정으로 유인해서 날 어떻게 해보 려는 수작 같은데.”
“바로 맞혔다.”
“날 제압할 수 있다고 보는 거야?”
“물론.”
팽우경은 속셈을 숨기지 않았다. 혹금 단주는 가장 위험한 놈이다. 어쩌면 놈 이야말로 금강문의 실세고, 금강문주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할 수 있었다. 그래 야 이야기의 앞뒤가 맞는다. 일개 단주 가 절대고수급 고수 둘을 죽인다는 게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있나. 자신을 숨 기기 위해서 단주로 위장했다는 게 훨 씬 더 타당했다.
“정파를 자처하는 놈들이 저열한 짓 을 잘도 하는군.”
“오랑캐 따위가 설치는 걸 두고 볼 수 없지 않나.”
중화의 그릇, 그들은 절대 오랑캐를 받0}들이지 않는다. 비렁뱅이처럼 살아 도 중화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최첨단 시대로 바뀌었음에도 되놈들의 뇌구조는 과거의 지배를 받았 다.
“뭐, 그렇다면 받아주지, 와봐.’
당황하기는커녕 대수롭지 않아 하는 정우의 행동에 팽우경을 비롯한 모두의 안색이 바뀌었다. 자신들 따위는 안중 에도 두지 않는 오만함이었다.
“검제든 검왕이든 별거 아니었거든.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별호 하나는 기 똥차게 만들어 논단 말이야.”
정우는 검제와 검왕을 허세만 가득한 겁쟁이로 비하했다.
팽우경의 미간과 검미가 살짝 일그러 졌다. 자신이 아닌 검제와 검왕이지만, 그들과 경쟁을 하고 이기기 위해서 오 랜 시간 공을 들였다. 결과적으로 그들 에게 패배한 꼴이다. 한데 저놈은 검제 와 검왕은 겁쟁이로 치부해버렸다. 그 런 겁쟁이에게 진 자신과 세가를 빗대 서 모욕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언제까지 건방을 떨 수 있을까.”
“넌 그럴 능력이 안 돼. 알잖아. 역량 의 차이를.”
정우는 숨기지 않고 본성을 드러냈다. 9단의 현천공이 육신을 회전하여 외부 로 기세를 발산했다. 기의 파장이 내당 안을 휘저었다.
꿈틀!
팽우경과 장로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반도의 애송이가 감히!’
설마 했었다. 검제와 검왕을 죽일 때 도 수작을 부렸고, 기간트가 아니었다 면 남궁세가를 막아내지 못했을 거라고 봤다. 한데 드러난 전력은 말하고 있었 다. 다가서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한다. 극성에 달한 혼원벽력신공이 위축되었 음을 직시해야 했다. 그것이 분하고 화 가 치밀었다. 대중화의 무인으로서 반 도의 오랑캐보다 아래라는 사실을 인정 하고 싶지 않았다. 이는 그분만 아니라 장로들도 마찬가지다.
“조무래기들만 상대하다 보니 진짜
왕이라도 된 줄 알아. 패배자 주제에 아 닌 척 위안을 삼으면 위로가 되느냔 말 이다.”
정우의 비아냥거림은 날이 잔뜩 들어 서 있었다. 팽우경이 가장 듣기 싫어할 역린이었다. 비수가 되어 그의 염장을 지속적으로 건드렸다.
“나불거리는 혓바닥부터 다스려주마.”
“할 수 있으면 해봐. 오라니까.”
그들은 깨달았다. 흑금단주의 패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패배라는 두 글자가 새겨지지 않았다. 정면으로 맞붙으면 어렵다는 걸 각인시킨다.
훗!
‘웃어?’
정우의 두 눈에 의혹이 깃든다.
“네놈의 오만함이 화를 자초한 것이 다.”
“헛소리 작작 하고 오라…… 응?”
정우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 등 뒤에 서 공력이 집중되었다. 엄청난 파장이 일어나며 강력한 내경이 발출되었다.
쿠아아아앙!
내당 전체가 크게 울리며 파장을 일 으켰다. 겹겹의 파장이 결계마저 흔들 어놓았다. 팽우경과 장로들도 미처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한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중첩된 경력이 연이어 공략을 했다.
퍼퍼퍼퍼펑!
무한의 공력이 연달아 심대한 충격을 주었다. 대비를 했다고 해도 막아내기 어려운 막강한 내경이었다.
하물며 방심하고 있는 등 뒤를 노렸 다.
후아아앙!
후폭풍이 일어나며 내당을 들썩였다. 주변까지 충격을 받아 가루가 되어 홑 날렸다. 먼지가 가라앉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폭풍이 지나가고 드러난 광 경은 팽우경과 장로들의 예상대로였다.
쿨러
벌려진 공간.
무릎을 꿇은 정우가 선혈을 토했다. 불신 가득한 시선이 공연화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해진 목적을 완수하 고, 주인의 곁으로 다가가 뒤를 지켰다.
“어떤가, 그대의 병기에 당한 소감 이?”
“치사한 수는다 쓰는군.”
“수단은 중요하지 않지, 결과가 이렇 지 않나.”
“어떻게 한 거지?”
“자네의 병기는 파동에 의해서 작동 을 하더군.”
우연의 일치일까, 천혈강시를 운용하 는 방식과 굉장히 흡사했다. 팽자겸은 죽기 전에 공연화의 이상한 행동을 감 지했고, 강시의 일종이라고 판단을 내 렸다. 팽우경은 총관이 마련한 계획대 로 준비를 했고, 흑금단주가 밖에 나가 는 동안 공연화에게 파동을 걸었다. 예 상대로 공연화가 반응을 하자, 계획을 진행시킨 것이다.
“날 죽인다고 해결이 될 일인가?”
“죽이다니, 난 그렇게 비합리적인 일 은 하지 않아.”
“설마 강시를?”
“과연 알고 있었구나.”
천혈강시와 비슷한 공연화를 보고, 팽 우경은 짐작하고 있었다. 금강문이 감 추고 있었던 걸 확인하게 된 셈이다.
오늘의 결정이 세가를 위해서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일임을 확신했다. 혹금단 주를 이대로 두게 된다면 세가는 금강 문의 차지가 되었을 것이다.
“고맙게 써주마, 너와 흑금단을.”
“비열함의 끝을 보여주는구나.”
“맘껏 욕을 해라, 넌 그럴 자격이 되 니까.”
“그만하는 게 좋을걸.”
팽우경은 가당치도 않은지 눈짓을 보 냈다. 흑금단주가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 농간을 부린다고 봤다. 놈은 간악 한 두뇌를 지니고 있었다. 방심하면 곤 란했다.
전대의 장로인 유금호와 강인혁이 나 섰다. 귀권(鬼筆)과 멸권(滅筆)으로 불리 는 그들은 권에 관해서는 자타공인 최 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파팟!
양옆으로 다가간 유 장로와 강 장로 가 수를 쓰려고 할 때, 정우의 손이 움 직였다. 귀신도 속일 만큼 빨랐다. 하물 며 등 뒤를 공격당해 충격을 받았으리 라 방심하고 있던 두 장로다.
컥!
사로잡힌 목이 좌우로 기이하게 꺾였 다. 숨통이 완벽하게 끊어져 버린 유 장 로와 강 장로였다. 전대의 장로라는 위 명도 죽음 앞에서는 다른 이들과 다르 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팽우경과 장로들이 당황하기도 전, 배
후를 장악한 공연화가 기습을 했다. 자 연스럽게 걸어가서 배후에 섰을 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꽈아아앙!
응축된 장력이 토해지며 배후를 기습 당하고 말았다.
크악!
팽우경과 팽우원이 충격을 받고 앞으 로 고꾸라졌다. 단발의 파괴력이 아닌, 연이은 공격이 이어졌다.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벌어진 찰나간의 기습은 완 벽에 가까웠다.
후아아앙!
후폭풍이 가라앉으며, 내당의 전경이 드러났을 때 모두는 경악을 담고 있었 다.
쿨러
선혈을 토해내는 팽우경의 두 눈엔 불신이 가득했다.
“어떻게?”
“통수는 5번으로 족하거든.”
그 앞에 웃고 있는 정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