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통수는 5번으로 족해 (1)
풍파가 휩쓸고 지나간 하북팽가, 웅장 함을 자랑했던 터전은 융단폭격을 맞은 듯 처참하게 망가졌다. 멀쩡한 건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부분 상처를 입었고, 절반에 가까운 건물과 장원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하나 건물이야 다 시 지으면 그만이다. 세가를 구성하는 가솔 중 살아남은 수가 3분지 1에 불과 했다.
습격을 당한 팽가의 분노는 엄청났다. 남궁세가의 살아남은 자들을 도륙했다. 결과적으로 남아 있는 포로의 수는 많 지 않았다. 복수를 했음에도 침통한 분 위기가 가시기는커녕 허무함이 자리했 다. 수백 년의 세월을 굳건히 버텨왔던 하북팽가의 역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다들 움직이세요.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세가의 수뇌부 대부분이 남궁세가를 치기 위해 안휘성으로 떠났다. 총관이 살아 있었다면 사태를 수습했을 테지만, 그는 죽었다. 총관부와 산하 단체가 모 조리 다 궤멸당해 정상적인 운영이 불 가능했다.
“아가씨, 말씀대로 움직여, 세가를 수 습해야지.”
“맞습니다. 이대로 있어선 안 됩니 다.”
현재로선 팽세경을 중심으로 사태 수 습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남궁 세가의 침입을 막고, 남궁호를 제압했 으니 명분은 충분했다.
팽세경은 강천과 함께 움직였다.
강천의 협조를 부각하기 위해서라는 건, 포장이고. 한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금강문과의 공 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그림이 나왔다.
밤중의 습격으로 오전은 충격에서 벗 어나는 데 힘썼고, 오후는 정비에 들어 갔다. 인원이 부족해 시간이 오래 걸렸 다.
그나마 온전한 별채에서 팽세경을 중
심으로 회의가 진행되었다. 강천도 자 리는 차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돌아오겠다 고 하셨습니다.”
남궁세가를 공격하기 위해 떠났던 팽 우경과 연락이 되었다. 하지만 안도도 잠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남궁 세가의 함정에 걸려 2천의 무인 중 고 작 6백만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자들 중에서도 절반은 부상을 입어 오랜 시 간 요양을 해야 했다. 세가의 전력 중 대부분을 잃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회복할수 있을까요?”
“가주님이 살아 계신 이상, 팽가는 건 재합니다.”
총관부와 북무원, 내원에 소속된 열 명, 원래라면 중간 간부 역할도 벅찬 자 들이다. 그런 이들이 임시지만 현재의 수뇌부를 구성했다. 그만큼 많은 무인 이 죽어 나갔고, 유능한 인재를 잃었다 는 의미다. 특히 총관의 부재는 상당히 큰 타격이었다. 그가 있었으면 보다 더 체계적으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팽세경이 나름 선방을 하기는 했어도 연륜과 경험에서 부족함이 있었 다.
“복구 시간은요?”
“하아; 최소한 반년은 필요합니다.”
그것도 다른 세가나 문파에서 방해를 하지 않았을 때의 얘기다. 현재 세가의 상태가 외부에 정확히 알려지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실 상 당을 통한 압박도 통하지 않을 가능 성이 컸다.
“현재로선 가문의 안위가 가장 중요 해요, 최선을 다해주시고요. 외부에 새 어 나가지 않도록 단속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강천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바뀌 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도 무문과 세가의 결합에 다소 의문이었으나. 이제는 강 천의 존재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 가왔다. 금강문에서 파견된 흑금단주와 흑금단이 아니었다면 세가는 대륙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상황이 이래서 대접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 다. 최대한 불편함이 없도록 지시를 해 놓겠습니다.”
“말만으로도 고맙네요.”
강천의 겸손한 태도와 세가를 구하기 위해 나타난 감투로 그들의 눈빛은 굉 장히 부드러워졌다. 한편으로 그를 반 드시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세가의 안위를 위해서 금강문과의 결합 이 중요했다.
회의가 끝날 즈음.
정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집이 다 싶은 여유가 철철 넘친다. 주객이 전 도 되었음에도 자연스러움이 지배한다 .
크홈.
모두의 시선이 정우를 향해 있었다. 이번 습격을 막아낸 일등공신이 흑금단 주였다. 존재감이 회의실 안을 가득 메 우며, 답답하게 만들었다.
‘검왕은 둘째 치고, 검제까지 제압하 다니!’
‘겁천마검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검왕만 해도 감당이 되지 않는데, 전 대의 절대고수인 검제까지 동시에 상대 했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임에 도, 혹금단주는 당연한 상황으로 만들 어버렸다.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가 주에 대한 신임이 절대적임에도 불구하 고, 흑금단주를 위에 놓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일개 단주가 절대고수를 죽일 정도면, 금강문주는 대체 어떤 사람인 거지?’
‘감이 오지도 않는구나!’
세가가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앞선 걱정은 세가 내의 세력 구도가 전면적으로 개 편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2공자를 밀 던 세력은 줄을 잘 서야 했다. 당장 3공 자와 막내 아가씨에게 권력이 집중될 여지가 컸다. 가주의 의지가 가장 중요 하기는 하나, 과거처럼 힘을 행사하기 에는 명분에서 앞서지 못했다.
“태원으로 갈까 하는데.”
깜짝!
혹금단주의 발언에 강천을 제외하고 모두는 놀란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금 당장 그가 가버리면 간신히 찾은 세가의 안정이 무너져 버릴 수 있었다. 세경을 중심으로 모였음에도, 흑금단주 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의 존재 자체 가 세가의 안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 했다.
북무원에 속해 있는 팽명수가 나섰다.
그는 작금의 수뇌부 중에서 대표자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나름 팽가의 직 계이며, 북무원주를 대신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세가에 남아주실 수 없겠습니까?”
“애초의 계약은 태원 지부를 지켜달 라는거였어.”
팽명수는 난색을 표했다.
계약대로라면 태원 지부에 있을 혹금 단주가 본가에 있어선 안 되었다. 명백 한 계약 위반이었다. 하지만 흑금단주 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본가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빈틈이 없는자다.’
팽명수는 체감했다.
흑금단주는 혹시라도 있을 이후의 문 제에 대해서 확실하게 선을 그으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명분상 생명의 은인 이라는 감투만으로도 상쇄되고도 남을 일이기는 하나, 협상은 냉철흐}다. 후일 물고 늘어질 명분이 되기도 한다.
팽명수는 세경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작금의 세가에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건 팽세경분이었다.
“단주님, 본가는 그 일에 관해서 앞으 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 러니 도와주세요.”
“가주께서도 그리 생각을 하고 계셨 으면 좋겠지만, 태원 지부를 희생양으 로 내세웠다는 게 밝혀진 이상 신뢰하 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희생양3] 라니.
정파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다. 물론 대외적으로. 대를 위한 소의 희생 을 권고하는 정파의 이중적인 잣대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귀성이 그러더군, 태원 지부를 공략 하는 척하며 본가를 노렸다고.”
정우는 검제와 검왕을 처리한 후, 귀 성을 사로잡았다.
돌아가는 사태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 한 귀성은 도망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도망쳐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이었다. 사로잡은 후, 필요한 정보를 빼 내기 위해서 시간을 좀 소비했었다. 여 러모로 좋은 의견을 들었다. 아쉬운 점 은 그로 인해 폐인이 되어버렸다는 것 이다.
“그게 사실인가요?”
“작금의 사태만으로도 알 일이고, 조 사하면 나올 텐데 내가 왜 거짓말을 하 지. 무엇보다 본가에 있어야 할 팽가의 주인이 어째서 안휘성에 있을까? 이런 데도 아니라고 한다면 본문을 바보로 여기는 거겠지.”
세경은 깊은 한숨을 쉬어야 했다.
남궁세가의 습격, 안휘성에 있는 본가 의 세력. 그 두 가지만으로도 예측은 충 분하다. 그러나 인정은 하기 힘들다. 흑 금단주를 희생양으로 내세워 전쟁을 끝 내려고 했다는 걸 받아들이면, 세가의 명성은 바닥에 추락하게 될 것이다. 하 물며 태원 지부에는 팽가의 무인도 꽤 있었다. 그들 전부를 버린 꼴이다. 세가 의 무인으로서 엄청난 배신감이 들 수 밖에 없다.
주도권은 정우에게 있었다.
태원 지부를 제물로 버렸음에도 결국 팽가를 구했다. 금강문에 더할 나위 없 는 큰 은혜를 입었다. 이를 알고서도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냐고 한다면, 몰염 치한 짓이었다.
“원하시는 걸 말씀하세요.”
“난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야. 어설픈 수작으로 본문을 이용하려 들지 마. 차 후에도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내 칼이 어디로 향할지 장담 못 해.”
“알겠어요, 모든 일은 세가에서 알아 서 처리할게요. 아버지께도 설명을 드 리고요.”
“또한 공적에 관해서도 분명히 해야 겠지.”
“물론이에요.”
확답을 받고 나서야 정우는 세가에 남기로 결정을 내렸다. 기일은 팽 가주 가 돌아올 때까지다. 사실 태원 지부로 가지 않아도 된다. 남궁세가의 위협이 사라져 버렸으니, 산서성의 절반은 팽 가의 소유가 되었다.
“마저 할 얘기가 있을 테니, 빠져주지. 강천아.”
“ 나도?”
“귀찮은 일은 질색이지만 일어나게 해줄 순 있지.”
“간다고, 가!”
세경과 그들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우려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흑금단 주가 다소 무례하기는 했어도, 틀린 말 은 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신뢰를 어 긴 쪽은 세가였다.
검제와 검왕을 제압하기 전까지와는 달라졌다. 흑금단주의 엄포를 홀려들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아버지의 선택은 악수였어요.”
“하오나 가주십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요, 자칫 더 큰 화를 초래할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가문을 위한 일이다. 가주의 독단으로 가문은 큰 피해를 입고 말았다. 금강문 과의 협조를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해서 라도, 입장을 분명히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