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엇갈림 (5)
현세를 갈라버릴 무시무시한 강기가 난무하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럴 때마다 공간이 황폐화되었다. 하북팽가 를 무대로 거리끼지 않으며 전투를 벌 이는 정우와 남궁휘, 남궁천이다. 격돌 의 진행상황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돌아가는 정황을 파악한 남궁휘와 남 궁천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전 장의 흐름이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그 원흉이 눈앞에서 히죽거리고 있었 다.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좀 전보다 훨씬 인간다워졌네.”
네놈들도 인간이면서 우쭐대지 말라 는 정우의 이죽거림이었다. 사람은 우 아하고, 폼 있고, 쿨하게 살고 싶어 한 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항상 쿨하고, 항상 폼 잴 수도 없고. 설령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 도, 결국에는 인간군상을 가지고 있었 다.
부들, 부들!
남궁휘는 냉철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 다. 하지만 돌아가는 정황이 궁지로 몰 아갔다. 성공적으로 홀러갔던 전황이 반전을 이루며, 세가의 안위가 위태로 워졌다. 지금도 수많은 세가의 무인이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 때 문에 화를 내는 건 아니다. 놈은 작금의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서 대결 장소를 수시로 바꾸었다.
“시간을 끌수록 더 많이 죽을 거야.”
“……이 악마 같은 놈!”
남궁휘와 남궁천 부자는 모골이 송연 해졌다.
흑금단주의 의도가 뻔히 보이는데도 화를 억누르기 힘들다. 팽가를 지우기 위해서 가문까지 버리면서 실행한 계획 이었다. 이대로라면 설령 팽가를 점령 한다 해도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그 러면 다른 세가가 가만히 있는다고 보 장하기 힘들다. 무림은 세가 약해지는 순간,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양육강식의 세상이다. 결코 약자를 내버려두지 않 았다. 그걸 너무도 잘 알기에 작금의 사 태에 대한 분노가 대단했다. 반도의 오 랑캐로 인해 그간의 모든 계획이 물거 품이 되어버릴 처지였다. 냉철해지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네놈을 잘근잘근 씹어 먹어주마!”
“바라던 바야.”
부자는 제왕검형을 꺼내 들었다. 남궁 세가 역사상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검의 완성형이다. 제왕검형은 딱히 초식이 있지 않았다. 검을 쓰는 기본이 곧, 검 형의 진체였다. 의지로 완성된 검형이 기에 검의 최고 경지인 심검에 맞닿는 다.
두응
검을 마음에 담자, 공간에 검이 완성 되었다. 보이지 않기에 더더욱 위험하 다. 부자의 의지는 분명했다.
명백한 살의.
제왕검형은 살검이 되어 흑금단주를 꿰뚫었다.
카아앙!
감각에 잡히자 정우가 칼을 휘둘렀다. 쇠를 긁는 시끄러운 울림이 퍼져 나가 기도 전, 재차 폭발이 일어난다. 찌르고, 베고, 폭발시키고. 촌음 사이에 합을 세 기도 어려운 충돌이 일어났다. 정우의 칼이 바브게 움직였다.
“심검지도라, 나쁘지 않아.”
“건방 떠는 것도 얼마 안 남았다!”
의지를 담은 수많은 검이 촘촘히 엮 이더니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제왕검법 의 극의, 제왕혈우가 심검으로 완성되 었다. 제왕검형은 남궁세가의 어떤 검 과도 조화를 이룬다.
투아아아앙!
일직선을 이룬 칼.
단순한 베기로 보면 오산이다. 보이지 않는 칼의 의지가 공간에 방패를 세운 다. 순식간에 무형도막(W刀膜)이 완성 되어 제왕혈우를 분쇄했다. 이어서 현 현보가 공간을 벗어났다. 남궁천의 제 왕혈우에 이은 남궁휘의 창천대검강(蒼 天大劍剛)이 정우의 잔상을 꿰뚫었다.
휘리리릭!
천지사방에 잔상을 부리자 거짓과 진 실이 뒤섞인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 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모두 다 막 대한 기운을 품고 있어 감각을 홑트려 놓았다.
스왁!
제공권을 파고든 정우의 잔상을 제왕
검형으로 베어냈지만, 연기처럼 사라질 뿐이다. 이어서 사방에서 남궁휘를 짓 쳐들어 가는 정우였다.
쿠아앙
정우와 남궁휘의 병기가 맞닿자, 역량 이 우열을 가리며 연쇄폭발을 일으킨 다.
남궁휘의 입꼬리가 얇아진다. 검형을 통해 천뢰제왕신공으로 완성된 천뢰폭 (天雷爆)을 일으켰다.
속성개방
-방어력 저하.
-피해량 증가.
8급의 유니크인 남궁휘의 속성이 정 우의 방어력를 약화시키고, 피해량을 증폭했다. 전달된 천뢰폭이 내부를 사 납게 휘저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속성 을 꺼내 들지 않고, 이때를 기다린 남궁 휘의 인내심이 빛을 발했다.
비틀!
휘청거린 정우가 제공권에서 밀렸다.
그 순간에 남궁천이 검형을 일으켜 정우의 등 뒤를 공략했다. 남궁휘는 벗 어나려는 정우를 잡아채며 아들이 공략 할 수 있도록 제공권을 확보해놓았다. 부자의 연수합격이 놀랍도록 정교한 합 을 이루었다. 평소에도 이럴 때를 대비 해놓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왕검법 극의, 제왕무적검강(帝王無 敵劍剛).
속성개방, 기경무력화!
돌아선 정우의 중심을 파고들어 온다. 심혼이 극에 도달한 그야말로 완성된 무적의 검강이었다. 회심의 일격이기에 속성까지 가중시켰다.
“죽어탓!”
찌르고 들어갈 타이밍이 최적화를 이 루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보유 하고 있더라도 절대 빠져나가지 못한다.
절대고수라면 두르고 있을 강기를 무력 화하면 육체를 단련한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슈아아앙!
꿰뚫었다.
남궁천의 눈빛에 서렸던 승기가 빛을 발하기도 전, 어둠이 그를 뒤덮는다. 그 러자 등을 보였던 정우가 정면을 바라 보고 있었다.
휘잉!
와류.
현천의 어둠이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 켰다. 공격이 무용지물이 된 남궁천이 신속히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어둠은 놔주지 않았다. 마치 깊이를 알기 어려 운 늪처럼 남궁천을 끌어당긴다. 제공 권이 잠식된 남궁천이 벗어나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어둠은 집요했다.
“이놈!”
당황도 잠시, 남궁휘가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설마 했거늘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진실을 목 격하고 말았다. 아들의 공격으로 끝을 낼 거란 확신은 어느새 불신이 되었다.
스와왕!
남궁휘가 검을 휘둘렀다. 멀찍이서 검
폭을 시전할 수도 없었다. 아들과 절명 사신이 엉겨 붙어 있었다. 천풍이 아닌 무한보(無限步)로 거리를 좁힌 후, 절명 사신의 팔을 노렸다.
파앗!
검이 베고 지나간 궤적, 남궁휘의 눈 꺼풀이 경련을 일으킨다. 절명사신의 팔이 잘려 나가야 하거늘, 그 자리에 아 들의 팔이 있었다. 궤적을 바꾸기에는 늦어버렸고, 결국 팔이 잘려 나가며 바 닥에 떨어진다.
“왼팔은 괜찮잖아.”
“비겁한!”
남궁휘는 침착했어야 했다.
정우는 남궁천의 제공권을 장악하고, 남궁휘를 유인해냈다. 성과를 내기 위 한 계책,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라면 손 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적을 상대함 에 있어 자비만큼 어리석은 선택은 없 다.
푸욱
칼이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피하지 못하고 타이밍을 놓친 남궁휘가 휘청거 렸다. 그러나 물러서진 않았다. 다가서 며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정우는 끝까지 남궁천을 놔주지 않았
다. 왼팔이 잘린 남궁천이 충격을 회복 하기도 전에 하나 더 잘라냈다. 이어서 단전에 백 원짜리 동전 크기의 구멍을 뚫었다.
크어억!
공력을 잃어버린 남궁천이 몸을 떨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의 모든 것이 한순 간에 망가져 버리고 말았다.
“?…”이 악마 같은!”
“그러지 마, 합공은 아니잖아.”
합공하는 주제에 비겁을 운운하는 것 부터가 난센스다. 일 대 이를 흔쾌히 허 락해준 걸 고맙게 여기지는 못할망정 적반하장이다. 그러나 놀랍진 않다. 되 놈의 적반하장은 많이 겪어봤으니, 얼 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죽인다, 죽여버리겠다!”
성난 황소처럼 남궁휘가 돌진해 왔다. 그를 나타내는 검제라는 위명과, 전대 가주의 직위는 사라져 버렸다. 아들을 잃기 직전의 부모의 절박한 얼굴이 되 었다.
휙!
정우는 초지일관 냉철했다. 인질이 된 남궁천을 놓아주지 않았다. 남궁휘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패로 활용했다. 적 을 적으로서 골로 보내버리는 이이제이 의 수법을 현실적으로 부합시켰다.
움찔!
아들이 정면에 있자, 남궁휘는 공격을 비틀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흑금단주의 도격이 제공권 을 뚫어내며 상처를 남긴다. 강기공인 천뢰기(天雷氣)를 대성한 이후로, 피를 본 적이 없었던 남궁휘로서는 생전 당 해보지 못한 비참한 처지에 몰리게 되 었다.
“..아버지!”
제압당한 남궁천은 흐느끼고 있었다.
‘……이놈은 악마다!’
천뢰제왕신공은 천고의 신공이다. 기 운을 다스리기도 어렵다. 한데 절명사 신은 천뢰를 제압하고 있었다. 그 의미 를 되새겨 보면 답은 뻔히 나왔다. 압도 적인 강함. 이대로는 자신은 물론 아버 지도 죽는다.
“아직은 아니야.”
속삭이듯 전하는 절명사신의 울림에 남궁천은 소름이 돋았다. 악마는 끝까 지 자신을 인질로 삼아 아버지를 노리 고 있었다. 경이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 음에도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순 없다는 듯.
물론, 언제든 소든 닭이든 가리지 않 기는 하지만.
“내가말했잖아, 후회할 거라고.”
흑금단주의 만행에 남궁휘는 치를 떨 었다.
이럴 때일수록 냉철해져야 했다. 아들 은 단전을 잃었다. 이러다가는 둘 다 죽 는다. 남궁세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선택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호오, 결심을 굳혔나 보네.”
“남궁세가는 무너지지 않는다!”
남궁휘는 선천의 진기를 꺼내 들었다.
손실된 본원진기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 하다. 그럼에도 꺼내 들어야 했다. 목숨 을 잃는다 해도 가문의 미래를 위해서 라면 희생도 감수한다. 그것이 남궁휘 의 의지다.
“글쎄, 지금쯤 손자도 위태로울 텐 데.”
“……잔인한 놈!”
“원래 전쟁이란 그런 거잖아.”
냉철할 수 있으면 해봐라.
정우는 말하고 있었다. 아들을 버리고, 손자까지 버리라고.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다면 과연 어떨까?
인간은 한없이 강하기도, 약해지기도 하는 양면을 가지고 있다. 하물며 남궁 세가는 피로 이어지는 순혈의 가문, 그 것이 훼손되었을 때 버틸 수 있을 거라 보지 않는다. 핵심을 꿰뚫고 있는 정우 의 예리함은 전투에서 더더욱 빛을 발 휘한다.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예상대로다.
이성을 잃은 남궁휘가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현실 이 반전을 이루더니 최악으로 치달았 다.
스와
정우는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본원진기와 파동기를 꺼내 들어 원래 의 힘보다 훨씬 강해졌지만, 이성을 잃 은 검 따위 하찮을 뿐이다. 흔들리는 남 궁휘의 검보다 더 빠르게 심혼을 끊어 냈다. 검의 의지가 베이며 영혼이 갈라 졌다.
부릅
멈춰 선 남궁휘의 동공이 잿빛으로 변해가며, 육신에 붉은 실선이 새겨졌 다. 심장이 정확히 베어졌다.
“……이런 힘을 가지고서 어째서?”
“보여줄 필요가 있으니까.”
전투의 흔적마저 조정을 당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남궁휘는 죽어가면서도 전율을 감추지 못했다. 하북팽가와 남 궁세가의 전쟁이 흑금단주의 손바닥 안 에 놓여 있었다. 자신조차도 놈이 그리 는 큰 그림의 병졸에 불과했다.
“팽……가는 악마를 불러들였구나!”
“그건 패자의 구차한 변명일 뿐이야.” 죽고 죽이는 전투에서 예의 차리며 싸우기를 바라다니, 배가 불러 터졌다. 전투란 모름지기 최선의 효율을 기반으 로 해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한다. 잔 인한 게 어때서, 나와 내 주변을 안전하 게 지킬 수 있다면 수단방법은 가리지 않는다.
정우는 본인의 신념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이를 가지고 악마라고 한다면, 칼밥 먹고 사는 무림에 살 자격이 없다.
본원진기를 잃어버린 남궁휘는 애원 했다.
“……세가를…… 살려다오……!”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원.”
“?세가를”
남궁휘와 남궁천의 최후였다.
그들은 세가를 걱정했지만, 정우에게
는 무의미한 부탁이었다.
후환을 남겨두는 건 아주 멍청한 짓 이다. 하물며 팽가에서 가만있지 않을 거다. 함정에 빠지고 험한 꼴을 당한 팽 우경이 퍽도 얌전히 있겠다. 아마 죽자 사자 남궁세가와 연관된 모든 걸 지우 려고 애를 쓸 게 분명하다.
‘밴댕이 소갈딱지거든, 너희들은.’
남은 정보통만 찾으면 그만이다. 여태 잘 먹고 잘 살았으니, 가지고 있는 것도 아주 많을 거다. 이렇게 많이 움직였는 데 수고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비효 율의 극치다. 그건 신념을 위반하는 행 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