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엇갈림 (4)
남궁휘는 도발에 분노하기보다는 검 을 꺼내 들었다. 의외로 검은 특별해 보 이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하고 모양조 차 흔했다.
스르렁!
지팡이로 쓰고 있었던 검이 검집에서 나오며 은백색의 날카로운 예기를 붐어 낸다. 평범해 보이는 장검에 불과하거 늘, 검에 힘이 실려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함께한 검제의 검, 신병이기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감이 좋네.”
“나이가 들면 삶이 무료해진다고 하 네만, 정작 죽음보다는 삶을 더 소망하 게 되네.”
“맞는 말이야.”
“오호, 그걸 알아듣다니 범상치는 않
군.”
늙으면 죽어야지, 라는 말만큼 허황된 망언도 없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 면 큰일 난다. 사람은 항상 삶을 소망하 고 노력한다. 죽음은 나이가 아닌 절망 에 굴복하느냐, 극복하느냐의 차이다. 물론 생물학적인 원인은 제외한다.
“태어난 순서가 죽음을 결정하진 않 으니까.”
“아깝군, 그 나이에 벌써 요절을 해야 하니 말이네.”
아버지의 진심을 읽은 남궁천은 인상 을 찌푸렸다. 어떤 능력인지 몰라도 아 버지를 찾아낸 감각은 인정하나, 그뿐 이다. 반도의 오랑캐가 아버지와 견줄 상대는 아니라고 봤다. 자존심이 꽤나 상하는 상황이다.
“반도의 오랑캐가 서푼의 재주를 믿 고 겁 없이 설치는구나.”
아버지가 나서기 전, 남궁천이 검을 봅아 들며 공간을 수직으로 갈랐다. 삽 시간에 운용된 천뢰제왕신공이 검형을 감싸며 완성되었다.
꽈아아아0 앙!
괴랄한 굉음이 울리고, 기파가 날카로 운 륜처럼 첩첩이 날을 세우며 공간을 넓힌다. 정련된 세월의 웅후한 공력이 실린 검형이다.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막아서기는커녕, 닿지도 않을 격을 체 감하게 해준다.
“막았어?”
“당연하지.”
검과 도를 앞에 두고 마주 선 남궁천 과정우.
남궁천의 검미가 무섭게 꿈틀거리며 일그러진다. 단순한 검형이 아닌, 중첩 된 공력이 실려 있었다. 이분인가. 검형 안에 검경을 숨겨두어 내부에 충격을 가했다. 막더라도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이탈하고, 심맥이 갈가리 찢겨 나가야 하거늘.
“이제 내 차례지.”
“건방진 놈’!”
정우는 칼에 힘을 주었다.
남궁천은 밀리지 않기 위해서 힘을 썼지만, 무용지물이 되었다. 신형이 흔 들리기가 무섭게 칼이 매섭게 파고들어 왔다. 사선으로 그어졌던 칼의 궤적이 어느새 직선의 찌르기로 변형되었다. 칼끝에 실린 힘이 범상치 않았다.
투아아앙!
좁은 공간을 밀어내는 즉시 이어진 두 번의 칼질, 틈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몸을 틀어내는 남궁 천 또한 검왕이라 불릴 만한 자질은 갖 추었다.
푸아아앙!
비껴내고 제공권을 확보했다고 판단 했던 남궁천의 예상을 벗어난 폭발이었 다. 공력에 잠식된 공간의 파괴라고 해 야 할까?
크윽!
정우는 단순한 찌르기를 하지 않았다.
벗어날 걸 예측한 후, 도극(刀戰)의 극 점에 내경을 실어 공파(功波}를 시전했 다. 공간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파장이 순식간에 번지며 초-진동을 이루었다. 공력과 파동이 동시에 폭발했기에 위력 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게 낄 때 끼어야지.”
칼은 주저하지 않았다. 의와 형을 초 월한 무형의 도강이 밀려나간 남궁천의 숨통을 노린다. 공파는 흔들기 위한 수 에 지나지 않았다.
제아무리 검왕이라도 위험한 도강이 다. 하물며 비틀린 궤적을 정확히 베어 왔다. 타격은 불가피했다.
그 순간.
스왁!
무형도강이 베어졌다.
정우의 보법이 신묘한 궤적을 그린다. 공격을 와해한 검이 멈추지 않고 궤적 을 따라왔다. 먹이를 노리는 사냥꾼, 뱀 처럼 집요하다. 극성마저 초월한 천풍 (天風)이 현현(玄玄)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러자 검은 하늘의 주인은 방법을 바 꾸어 공간을 흔들다. 극강의 무력을 이 룬 절대자는 조화지경에 도달해 주변을 제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었다.
투콰콰쾅!
검형과 도형이 충돌하자, 쇠공을 찢는 굉음이 세가를 진동시킨다.
설상가상, 번져 나가는 파장은 그 이 상이다. 일대를 모조리 다 박살내며 쑥 대밭으로 만들었다.
차작
초음속으로 이어진 공수공방의 놀라 운 향연, 짧은 시간에 벌어진 파장은 상 상을 초월했다. 반경을 무시하고 전체 로 퍼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절대 고수의 격돌, 그 파급력이 현실을 증명 한다. 누리꾼의 허무맹랑함을 벗어나 있었다.
그것이 시발점일까?
공연화와 장로들의 격전도 펼쳐졌다.
정우와 남궁천의 대결이 이루어질 때 공연화가 장로들을 향해 무지막지한 내 력이 실린 장력을 발출했다.
전장이 나누어지면서 서로의 영역이 생기게 되었다.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각자의 영역에서 승패를 가릴 수 있었 다.
휘이잉!
밤공기는 서늘하지만 대치 공간은 뜨 겁게 달아올랐다.
정우는 남궁가의 부자와 벌어진 간격 을 두고, 시선을 교차했다. 선수를 펼쳤 던 남궁천은 치욕스러운지 인상을 찌푸 렸고, 남궁휘의 두 눈은 놀람을 담고 있 었다. 어쩌다 보니 합공을 하게 됐음에 도 이득을 챙기지 못했으니, 등골이 서 늘해지는 건 당연지사.
‘팽가의 가주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남궁휘는 절명사신에 대한 평가를 수 정해야 했다. 아들이 공격을 할 때만 해 도 우려하진 않았었다. 한데 아들을 밀 어내고 역공을 펼쳤을 때 간담이 서늘 해졌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아 들은 낭패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기습적인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최선의 결과를 내놓는 절명사신 의 신묘한 수에 소름이 돋았다. 무력보 다 냉철한 판단력이 더 무섭게 다가온 다. 순간적인 전투센스는 그야말로 전 투를 위해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뛰어나다.
‘괴물이군.’
인정해야 한다. 반도의 오랑캐라 폄하 해선 안 되었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괴 물이라 불려 마땅한 무력을 갖추었다. 시간이 더 흐른다면 대적할 자가 없을 거다. 남궁세가는 물론 더 나아가 대륙 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뿌리를 끊어내야 했다. 대륙은 대륙인의 것, 오랑캐가 설 자린 없다.
우우웅!
남궁휘의 살심에 정우가 히죽였다.
저래야 되놈들답지. 소인배 주제에 대 인배를 흉내 내봤자, 본성은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점이 마음에 든 다. 정우는 대인배이고 싶지 않으니까. 소인배가 맘이 더 편하다. 명성이나 명 예가 무엇이 중요한가, 내가 답답하고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싹은 잘라주어야 제맛이지.”
9단의 현천공을 개방하여 본색을 드
러냈다. 감추어진 역량이 만개하여 공 간을 장악했다. 그 어떤 존재도 거스르 지 못한다. 이는 정우의 권능이다. 어쭙 잖게 수 싸움을 할 생각은 지웠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졌고.
움찔!
남궁휘와 남궁천은 경악했다. 역량을 감추고 있을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 다. 하지만 이건 그 이상을 훨씬 넘어선 다. 전신의 털이란 털은 모조리 다 곤두 설 만큼 무시무시한 역량이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잠룡이 아니라, 이미 다 자란 용이구
나’
조금 전의 공방만으로도 충분히 대단 했거늘, 부자(夫子)의 상식을 가분히 초 월했다. 저런 괴물이 반도에 숨죽이고 있을 줄이야. 하북팽가는 괴물을 자기 손으로 데리고 들어온 꼴이었다. 이는 대륙 무림의 안위마저 흔들 수 있었다. 이만한 능력을 갖추고도 팽가에 공을 전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더 큰 무 언가를 노리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을 것이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합공을 할 필요까지는 없을 줄 알았 다. 하지만 본색을 드러낸 괴물의 역량 은 합공을 강요했다. 홀로 상대하다가 각개격파를 당할 수 있었다.
“전력을 다하는 게 좋을 거야, 시간이 많지 않거든.”
“대단하구나. 그러나 나와 내 아들을 넘진 못한다.”
남궁휘와 남궁천은 천뢰제왕신공을 12성까지 끌어올렸다.
근간에 전력을 써본 적이 없었던 그 들이다. 하물며 합공을 하면서 전력을 끄집어낸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만큼 심리적인 압박감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퍼퍼퍼펑!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공 연화와 장로들의 전투와 별개로 벌어지 고 있는 일이다. 하북팽가 전체를 감싸 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가공할 위세와 위용을 자랑하며 삽시간에 공간을 장악 해 왔다.
어둠을 밝히는 붉은 안광이 섬뜩하다.
“..설마?”
“……기간트!”
“뭐가 이렇게 많아”
남궁세가의 무인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검협단과 폭풍단은 경악을 금치 못했 다. 100대에 달하는 기간트가 등장해 전장을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현대의 무기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최종병기, 기간트의 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일 반적인 병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기간트를 조종하는 라이더의 능력치 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흑금단 내에서 도 상위 서열만이 탈 수 있었다. 일정한 경지에 오른 강자가 라이더를 타고 있 기에 막아서기가 쉽지 않았다. 하물며 기간트로 수라대검진을 펼치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검이 아닌 삽이 들려 있다는 것이다.
2백 대 1천의 대결임에도 불구하고 승부의 향방은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갔 다.
쌔애애앵!
기간트의 부스터가 작동하며 나아갔 다. 그와 함께 봅아 든 사람보다 더 큰 신병은 무리를 향해 거침없이 삽질을 해냈다.
쿠아아앙!
삽질이 궤적을 가르고 관통할 때마다 선혈이 난무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 든 광경의 연속이었다. 삽질에 당한 무 인은 병기와 함께 쪼개지고 짓뭉개졌다. 형체조차도 온전하지 않았다. 주검이 된 살 조각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장례를 치르려면 DNA감식을 통해 조 각을 모아야 할 지경이었다.
“물러서지 말고, 기간트를 막아!”
검협단의 단주, 정의검(正義劍) 고영광 이 악을 쓰듯 고함을 내질렀다. 평생의 심력을 쏟아' 완성된 검협단이 맥없이 무너지자 분노에 치를 떨었다. 무공 대 무공의 대결이 아닌, 신병에 의존하고 있어 더더욱 열불이 터진다.
-거, 말만 하지 말고 네가 나서지, 수 하들 뒤에서 소리 지르면 쪽팔리지 않 냐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기간트에 탑승 한 양용익은 삽에 붙은 살 조각들을 털 어내며 히죽였다. 이미 많은 주검이 삽 질에 당했다.
“비겁하게 기간트를 사용하다니! 이러 고도 네놈들이 무인이더냐!”
-멘트들이 왜 이렇게 식상해. 그리고 아닌 밤중에 남의 구역을 침입하고선 개소리를 잘도 지껄이네! 위선도 적당 히 떨어야지, 구역질이 날 것 같잖아!
오밤중에 기습은 되고, 기간트는 타지 말라니. 전쟁 중에 총 쓴다고 칼 쓴 놈 이 비겁하다 욕하는 꼴이다. 애초에 공 평한 전쟁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전쟁은 항상 불공평했다. 되 놈들이 인구발 믿고 인해전술을 펼치는 것처럼.
흥!
양용익과 혹금단은 콧방귀도 뀌지 않 았다.
오랑캐라고 욕하면서. 불리할 때 내로
남불은 국적불문인 모양이다. 습격이 성공할 때까지만 해도 남궁세가의 무인 들은 팽가의 무인들을 농락했었다. 같 은 민족이고 자시고. 그때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러고 보면 사람의 습성이 참 우습다.
좆까는 소리 하지 말고,이거나 먹어 랏
-스페이드 블레이드(Spade-Blade)!
기간트를 타는 김에 대충 하나 만들 었다. 물론 초식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 다. 그저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영어를 썼을 분이다. 가방 끈이 짧은 혹금단의 깨알 같은 지식 자랑이다. 양용익이 이 걸 만들어서 보급했을 때 단원들은 박 수를 치며 엄지척을 치켜 올렸다. 그만 큼 짧은 지식 사이에서 양용익은 나름 부단주로서 선방하고 있었다.
쿠아아아앙!
무식한 궤적을 그린 삽.
이를 막아서는 검협단주 고영광이 검 강을 뿜어냈다. 검폭의 원리를 이용해 서 삽을 튕겨내고, 반격을 취하려고 했 다.
쩌저적!
검강이 부서진다.
“?이럴 수가?…” 삽?…”에 강? 기를!”
삽강이다.
검강이 부서지고, 검이 박살나며 육신 이 무방비가 되었다. 고영광은 비명은 커녕 삽강에 맞아 그대로 짓뭉개져 버 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즐겨 먹는 쥐포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오오오오. 세다!
-역시 삽강!
-이 무식한 새끼, 스페이드 블레이드 라니까!
삽강의 위력에 만족하는 양용익과 혹
금단이다. 사실 순수한 강기라고는 하 기 힘들다. 기간트의 에너지 스톤을 기 반으로 하여 융합한 편법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위력만 놓고 보면 경시 할 수 없었다.
“……피해라!”
“……삽 날아온다!”
흑금단의 삽질은 오지고,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지렸다. 기간트가 터를 만들 어놓으면 100명의 흑금단이 남은 잔챙 이들을 양학했다.
-기간트 전용 삽법 극의, 스카이 콩 콩
말년병장만이 가능하다고 알려진 삽 질의 극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