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93화 (393/500)

제’7장

엇갈림 ⑵

쿠아아앙!

화르르르!

폭발로 인한 화기가 용권풍을 이루며 공간을 마구잡이로 불태웠다. 연쇄폭발 이 일어나며, 정점에 달한 화기가 소용 돌이를 이룬다. 빠져나가려고 하나 공 간 전체가 결계에 사로잡힌다. 결계는 내부의 온도를 급속도록 올리는 화염의 진을 형성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걸 불태운다.

살이 타는 매캐한 죽음의 냄새가 사 방에 진동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벌어 진 참화에 아연실색했다. 작금의 현실 이 지독한 악몽으로 다가왔다. 주검은 온전하지 않았다. 찢겨지고, 불에 타고. 도저히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 었다.

악몽은 끝나기는커녕 남아 있는 생명 마저 잡아먹으려고 했다.

빠드드득!

도를 들고 선 중년의 사내.

호신강기로 육신을 보호하고 있지만, 그의 분노까지 가라앉히진 못했다. 주 변을 돌아본 팽우경은 끓어오르는 분노 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남궁처一一어언!”

오늘을 기점으로 남궁세가를 지우려 했거늘, 오히려 함정에 빠졌다. 역대 최 강의 전력을 구축했음에도 팽우경은 참 화의 주역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진정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팽세운은 가주라는 호칭도 잃어버린 채 조바심을 냈다. 지체하고 있다가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진이 조여 오자 화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이놈이!”

아들의 두려움을 읽은 팽우경은 더욱 분노했다.

세력의 절반, 아니 그 이상을 잃었다. 온전히 남아 있는 무인은 겨우 6백이 넘지 않았다. 그마저도 화력에 잠식되 기 직전이었다. 천혈강시조차 화기에 당해 4기를 잃었다.

“분노를 가라앉히게. 세운의 말대로 이대로는 전멸이네.”

“……제기랄!”

팽우경을 다독이는 자, 근래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하지만 그를 필두로 여덟 명의 노인이 팽가의 가장 큰 힘이 었다.

팽우경은 애써 심신을 다독였다.

가문의 수장이 갈피를 잡지 못하면 희생만 커진다. 하물며 여기 있어봤자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궁세가는 현재 빈 껍데기였다. 피라미들 몇을 더 죽인다고 분이 풀리지도 않는다. 후일 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남궁세가의 결 계를 빠져나가야 했다.

‘절대 오늘을 잊지 않겠다!’

복수를 다짐했다.

육신이 철갑옷처럼 단련된 무인, 난전 이 펼쳐지는 와중 군계일학의 도격을 부렸다. 하늘과 땅을 잇는 건곤의 묘리 를 도에 실었다. 완성되었다고 봐도 무 방할 만큼 틀이 잡힌 건곤연환팔식이었 다.

꽈아앙

진력이 실린 도경에 튕겨 나간 무인 들이 바닥을 내리굴렀다. 압도적으로 밀어붙였던 그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사 태였다. 그러나 딱히 위기의식을 느끼 진 않았다. 혼자서 자신들을 이길 수 있 을 거라고 보진 않았다.

“이 여자 같지도 않은 괴물이!”

“누구보고 괴물이래! 내가 바로 하북 제일화야!”

“하북에 여자가 다 뒈졌냐! 줘도 안 먹는다!”

“다 죽었어!”

팽세경은 그 말을 듣고 참지 않았다. 공력을 대주천하여 도강을 그려내었다. 그녀의 나이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 였다.

“살려둬선 안 되는 놈이구나!”

“년이거든, 이 새끼야!”

성별 정정을 바라는 세경의 발악은 상당했다.

스무 명이 검진을 이루면서 공수를 주고받는데도 승패가 나지 않았다. 놀 랍다 할 수 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그 들은 검협단에 소속된 남궁세가의 정예 다.

퍼퍼퍼퍼펑!

고수를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검형 진(劍形陣), 세경을 괴롭힌다. 도강을 붐 어내곤 있지만 완성도 면에서 많이 부 족했다. 다행이라면 흑금단주의 도움을 받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버티지도 못 했다.

“하아.”

기력이 딸린 세경의 도강이 흐릿해진 다. 비틀거리는 신형은 땀으로 번들거 린다. 이때를 놓치지 않는 검협단이다.

“끝이다!”

차륜검진을 이룬 검형진이 공격 형태 로 바뀌었다.

속성개방, 원상복귀!

세경의 속성이 발휘되었다.

“걸렸다, 쌍놈!”

“?아니!”

세경은 지체하지 않고 건곤연환팔식 의 육식, 건곤천하(乾博天下)를 부렸다. 진기가 만천하를 투영하여 도법을 완성 한다. 반경 10미터 이내를 초토화시킬 수 있었다.

푸아아아앙!

굉음이 터지고 파장이 일정 공간을

맹렬히 뒤흔든다.

검협단 일곱 명이 륑겨 나가 선혈을 토했다. 기맥에 상처를 입는 바람에 거 동이 어려워졌다. 예상치도 못한 반격 에 된통 당한 것이다. 특히 성별 차별을 했던 검협단원, 이경운은 심각한 상처 를 입었다. 한 놈만 팬다는 정석을 보여 준 것이다.

“하아, 하아!”

세경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원상복귀 를 사용했다 해도 쏟아낸 진력이 만만 치 않았다. 아직 남아 있는 수가 너무 많다.

짝짝짝!

박수 소리에 돌아본 세경의 고운 얼 굴이 일그러졌다. 얼굴만은 정말 청순 미녀라불려도손색이 없다.

“팽가엔 용이 아닌 봉황이 있었군.”

“비겁한 새끼가 눈은 제대로 박혀 있 구나.”

“하지만 그 몸으로 하북제일화는 심 하지 않느냐.”

“조까!”

시원하게 욕을 하지만, 세경은 선뜻 공격하지 못했다. 나타난 상대가 쉽지 않았다. 그는 남궁세가의 대공자, 남궁 호다. 칩룡의 일인으로 제왕검룡으로 불린다. 차기 검왕으로 불릴 만큼 재능 면에서 따를 자가 없다고 알려졌다.

“몸만큼이나 입이 거칠구나.”

“넌 매끄럽게 생겨서 좋겠다, 이 새끼 야!”

남궁호는 살면서 이토록 드센 계집은 처음 봤다. 사내처럼 생겨가지고, 사내 보다 더 거칠다. 그런 말을 듣고서 가만 히 있을 만큼 남궁호는 맹물이 아니었 다. 제왕검가의 후손답게 검으로서 화 답했다.

채채채

검과 도가 합을 이룬다.

세 번의 공수가 이어지자 세경의 안 색이 돌변했다. 원상복귀를 쓰고, 공력 까지 소모된 상태라 평소와 달리 몸이 무거웠다. 하물며 상대는 차기 검왕의 후계인 제왕검룡이다. 부딪칠 때마다 침투한 내경이 육신을 괴롭힌다.

비틀!

세경의 신형이 흔들렸다.

남궁호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검형 이 흔들린 궤적을 정확히 갈라냈다. 신 속히 재정비를 했지만, 세경의 도는 타 이밍이 늦었다.

꽈아아아앙!

검폭이 터지며 공간이 쩌렁쩌렁 울린 다. 파장에 휘날리며 머리카락이 거세 게 흔들렸다. 만만치 않은 파장이었다.

꿈틀!

도화의 육신을 사선으로 베어내려고 했던 남궁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목표 지점에서 열 발자국이나 밀려 나가 있 었다. 밀리는 와중, 위험을 감지하고 물 러선 일곱 발자국을 제외해도 세 발자 국은 타의다. 그만큼 막아낸 경력이 상 당하다는 반증이었다.

팽가의 숨겨진 고수일까?

그런 것치고는 지나치게 젊었다. 자신 보다 어려 보이는 자의 병기도 아니고 맨주먹에 밀린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 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웬 놈이냐?”

그 순간 정체가 밝혀진다.

“자기야!”

“우리 자기 잘 있었어.”

강천이 환하게 웃자, 세경이 달려와서 품에 쏘옥…… 아니고 투우웅! 안긴다. 몸과 몸의 만남에도 쇳소리는 여전하다. 내 여자, 내 남자임을 확인하는 순간이 다. 이 몸만큼은 변신이 불가능하다. 은 근슬쩍 중요한 곳도 확인은 마쳤다.

“흐응, 몰라, 몰라!”

“큭! 괜찮아, 내가 왔으니까.”

강천은 몰라몰라권의 위력에 새삼 또 놀랐다. 이건 맞아도, 맞아도 적응이 되 지 않는다. 알고서 맞으니까, 그나마 다 행이지. 자다가 맞으면 비명횡사할 수 도 있겠다 싶다.

대롱, 대롱!

세경이 목을 휘감으며 매달렸다. 어지 간한 육체를 지닌 사내가 아니면 질질 끌려다녀야 하는데, 다행히 몸이 뜬다.

“보고 싶었쩌, 자기야.”

“나도, 그새 살도 많이 빠졌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다행이다.”

몰라몰라권에 이어 도리도리권과 코 맹맹이권까지 연결되었다. 삼중 애교 작살, 안구테러 필살기의 연환결이다. 건곤연환팔식의 응용진 결로 완성되었다 고 봐도 무방하다.

경직!

밧빳

그 압도적인 위용에 전의와 살의를 불태웠던 남궁호와 검협단마저 얼어붙 었다. 본인 입으로 하북제일화라며 떠 벌리던 광년이, 더 미친 줄 알았다. 보 고 있던 안구마저 썩어가는 기분이 들 었다. 안 본 눈 있으면 천만 위안이라도 사고 싶을 지경이다.

“어떻게 알고 왔어?”

“전 형이 말해줬어.”

혹금단주가 같이 왔다는 말에 세경은 안심했다. 솔직히 금강문주보다 흑금단 주가 더 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했었다.

“때마침 와줘서 고마워.”

“뭐…… 그렇지.”

생명의 은인이 애인이라서 위기 상황

속에서도 행복한 세경이다. 그 앙증맞 고 귀여운 애교에 강천의 눈동자가 살 짝 떨렸다.

‘사실대로 말하면 큰일 나겠다.’

현실은 영화처럼 극적으로 타이밍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제시간에 도착은커녕 늦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 라서 정확한 타이밍에 나타났다면 미리 도착했을 공산이 9할이다. 사전에 연락 해서 자리를 마련해준 정우가 고마운 반면, 떨떠름하다.

쿠다다당!

가는 길에 거치적거리기에 치워버렸 다. 짐짝처럼 던져진 건, 사람이다. 목 이 180도로 돌아간 채 직각으로 꺾였다. 살아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손속 에 여유를 두는 성격도 아니고. 가로막 는 대상은 무조건 숨통을 끊어주었다.

철퍼덕!

스무 명의 대원이 그처럼 비명횡사를 당했다. 대원들은 죽어가면서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몰랐다. 목이 잡히는 느낌 과 동시에 지면과 허공이 뒤바뀐 후, 영 원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 다.

그제야 습격자가 눈에 들어왔다.

“?웬 놈이냐?”

“이런 놈이시다.”

보면 모르나, 아군이 아니면 적이지. 전장의 기본도 안 된 놈들이잖아.

정우는 검보다 말이 빠른 놈을 잡아 챘다. 공간을 벌리려고 했던 대원은 허 무하게 잡히자 현실을 불신했다. 보법 엔 나름 일가견이 있기에 금나수도 아 닌 손짓에 허무하게 잡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부거적!

목의 뼈가 제자리를 이탈하면서 생기 는 기괴한 골음(骨音)이 당사자의 뇌리 를 천둥처럼 울렸으나 끝까지 듣지는 못했다. 생이 다한 육신이 싸늘하게 식 어간다.

목적을 달성한 정우는 손에 든 짐짝 을 치웠다.

“3 조장!”

느닷없이 나타난 자로 인해 주검이 되어 버려진 대원. 제왕검대의 3조장 뇌운검(雷雲劍) 이곽이었다. 그는 이처 럼 허무하게 죽어선 안 되는 검수다. 젊 은 나이에 절정의 검객이 되어, 차기 대 주에 오를 무인으로 평가를 받았다.

“감히 남궁세가의 무인을 해하다니!”

“놈을 죽여맛!”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무인들이 달려 든다.

훗!

정우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도망치지 않은 용기는 가상하 나,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전도유망하든 말든.”

적의 미래가치를 계산하지 않는다. 모 든 전투력은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 무 인에게 미래의 전투력만큼 허황된 계산 도 없다. 그게 뭐가 중요하지? 그런 말 을 해서 자기 위안을 하면 기분이 좋아 지나.

죽어서 사라지면 그만인 것을.

지금처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