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91화 (391/500)

제 6장

포식자 (2)

태원 지부는 전쟁이 벌어지는 격전지 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전쟁 대비를 하고 있지 않아, 지부를 둘러친 담벼락 이 허술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언제든 격전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반면 안휘성과 하북성이 시끄러웠다.

-반도의 오랑캐를 앞세워 대륙의 기 상을 훼손한 몰염치한 하북팽가를 단죄 하겠다!

-남궁세가는 야욕에 눈이 멀어 오대 세가의 율법까지 어겼다. 그런 주제에 누굴 단죄하겠다는 소리냐!

남궁세가의 가주가 직접 산서성과 하 북성을 공략할 거란 소문이 돌았다. 하 북팽가는 올 테면 얼마든지 오라며 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신경전은 자존심 싸움이 되어가며 치열해졌다. 하지만 선뜻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태원 지부를 불바다로 만들겠다, 대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강호 무림의 검협 으로서 천명하는 바이다.

-그런 어설픈 수작에 놀아나지 않는 다.

전장을 바꿔 가며 정보전이 치열하게 오고 갔다. 태원 지부를 노리고 있는 남 궁세가의 발언에도 하북팽가는 거짓 뉴 스라며 약을 올렸다. 앞선 패배를 거론 하지는 않았지만, 남궁세가를 흔들기 위한 수였다.

그런와중.

폭탄이 투하되었다.

-하북팽가의 배후는 금강문이었다.

-남궁세가는 일본무가의 부탁을 받아 전쟁을 일으켰다.

예상을 상회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북팽가와 남궁세가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즉시 반박문을 내 놓았지만, 그보다 앞서 증거자료가 배 포되었다. 어디서 그런 정보가 나왔는 지 몰라도 신빙성이 있었다. 하북팽가 와 금강문이 맺은 협상 내용과 남궁세 가로 홀러들어간 일본무가의 자본 흐름 이 상세히 기록된 것이다.

소문을 막기 위해서 애를 썼지만, 지 나치게 빨리 퍼졌다. 당국을 이용해 막 는 것보다 더 빨랐다. 상황이 아주 더럽 게 꼬이며, 감정마저 악화되었다.

-남궁세가는 유언비어에 강경하게 대 응을 하겠다!

-하북팽가는 이와 같은 날조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끝장을 보지 않고서는 물러서기 어려 운 현실과 직면하게 되었다. 서로 본가 를 치려고 한다는 소문이 번졌다. 단숨 에 끝내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 었다.

후르륵!

정우는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 놓았다. 입에 텁텁할 땐 녹차만 한 음료 가없다.

탁자의 맞은편에는 캐주얼룩으로 차

려입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전형적인 중국의 미인과는 달리, 한국에서 봤다 면 한국인으로 착각할 수 있었다. 그녀 는 뜨거운 차를 불어가며 고유의 향과 맛을 음미했다.

“의왼데.”

“어째서요?”

“짱개는 믿을 게 못 돼서.”

“다 그렇지는 않아요.”

짝퉁의 천국, 중국.

보통은 화가 날 만한 발언임에도 그 녀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백치 의 순진무구한 여인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그녀는 평범한 여인과 달랐 다. 정보를 분석하고, 시류를 판단하는 혜안을 지니고 있었다. 가볍게 치장한 모습과 그녀의 눈빛은 대조를 이루었다. 한데 그마저도 자유자재로 변화를 주었 다. 어떤 모습이 진정한 실체인지 구분 이 되지 않는다.

“애국심이 투철하신가 봐요.”

“너는 아닌가?”

“저야 제 식솔 챙기기도 버거운 여인 에 불과하죠.”

“보통은 나라가 있어야 내가 있다고 하지 않나?”

“그 나라에 나와 제 가족이 없으면 무 슨 의미가 있죠.”

변절자의 그럴듯한 변명에 불과하다. 어쨌거나 본인의 선택이다. 이를 탓한 다면 정우는 위선을 떠는 게 된다. 어쩌 면 선택을 한다 해도 대륙이 변하진 않 을 거란 믿음이 깔려 있을 수도 있다.

“나 하나쯤이란 생각이 나라를 망치 곤 하지.”

“예로부터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 면 역모라고 했어요. 나대는 자치고 중 간은 없었잖아요. 하지만 우리 같은 소 인들은 어느 쪽을 선택해도 항상 위험 했어요.”

약자는 권력자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핍박을 받아왔고, 틀을 벗어나면 배신 자의 낙인을 찍었다. 배신자가 성공하 여 새로운 세상을 열어도 약자의 삶은 큰 변화가 없다. 혁명을 일으킨 자의 틀 안에서 살아갈 분이지. 약자에게 권력 을 나누어 주진 않는다.

“날 잘 알진 못할 텐데, 괜찮겠어?”

“권패를 간단히 죽일 수 있는 자는 대 륙 전체를 따져봐도 열을 넘지 않아요.”

권패를 죽인 것도 대단하지만, 귀창대 와 전검대를 몰살시킨 전력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보고를 받고도 믿어 지지 않는다. 귀창대와 전검대는 남궁 세가의 주요전력 중에 하나다. 그들을 손실 없이 죽일 수 있는 세력은 대륙에 서도 거의 없었다.

“줄을 잘 서는군.”

“그게 제 역할이거든요.”

“可음에 들어.”

그녀가 넉살 좋게 웃으며 애교를 부 렸다. 처음 봤으면서도 남녀의 거리낌 이 없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좀 살살 해주세요.”

“세상에 적당이란 없어. 몰라서 그러

는거야?”

“없는 애국심이라고 하죠.”

“하나의 중화는 아니고?”

“그거야 당에서 만들어놓은 개수작에 불과하죠. 우리도 놀아나고 있는 거고 요.”

“사형당하기 좋은 자세군.”

그녀는 하오문의 문주, 여운랑이다. 독심호리란 별호와 더불어 천변호리(千 W®)라고도 불린다. 어떤 모습으로도 자유자재로 변화가 가능해 실제는 성별 마저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더욱 이 그녀도 소수민족에 속해 있었다. 하 오문의 대부분이 그렇다.

“바라는 건?”

“독자적인 세력구축과 전폭적인 지원 이라고 하면요?”

“욕심이지.”

여운랑도 얻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 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거래한 남궁 세가도 보호해주는 것으로 감사히 여기 라고 했으니까.

“대륙 전체의 정보망을 원해요.”

“개방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하오문과 개방은 경쟁관계다. 정보에 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신경전이 상 당하다. 하지만 개방을 무시하기 어려 운 점은, 정보력분만 아니라 무력을 갖 추었기 때문이다. 정보력이 아닌 무력 만 놓고 보면 하오문은 개방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

“제가 보기엔 단주께서 더 안달이 나 신 것 같은데요.”

“티 났나?”

“위험하세요.”

“충고 고맙게 받지. 하지만 시험은 한 번으로 족해. 난 그리 인내심이 넓지 않 아. 알다시피 가지지 못하면 부수는 걸 선호해.”

장난스러운 말투.

여운랑은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둣 한 기분을 맛보았다. 결코 허언이 아님 을 직시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며 본인 의 신념을 따른다. 그것은 힘의 유무와 는 관계없다. 그녀에겐 수많은 하오문 도의 생사가 달렸다. 누군가에는 비루 하고 초라한 인생의 군집이지만, 그녀 에게는 가족이었다.

“어떻게 해주길 바라세요?”

“팽가는 남궁세가의 본가를 칠 거야.”

그럼 답은 나왔다.

그녀는 선택을 했고, 결과를 내야 한 다.

“당신을 믿겠어요.”

“팽가가 아니고?”

“전 바보가 아니에요.”

“너무 똑똑해도 비명횡사하지.”

“멍청한 짓 하다 죽는 것보다는 낫 죠.”

최적의 선택을 해도 하늘의 운이 따 라주지 않으면 실패하기도 한다. 또한 아예 선택이란 것을 하지 못한 채 끌려 다니다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둘 다 좋지 않은 결과지만, 그녀는 스스로 의 선택을 더 신뢰했다.

‘괜찮은 여인이군.’

정우는 여인이라고 하여 차별하지 않 는다.

능력만 있다면 남녀의 차이는 무의미 했다. 불알 한 짝 차고 나왔다고 설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물론 얼굴만 믿고 주제를 모르는 계집도 마찬가지다. 성 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능력만 보았다. 정우는 냉철하기는 해도 합리적인 결정 을 내리는 성향이었다.

“괜찮다고 생각하셨죠?”

“아니.”

“거짓말.”

“내가 보기에 넌 비명횡사할 운명이 야.”

눈치가 너무 빨라서 좀 피곤하기는 하다. 해서 덕담을 좀 해주었다. 비명횡 사할 수도 있으니, 입 닥치고 있으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맘대로 해석하진 말지.”

정확히 꼬집은 통찰력은 독심술에 비 견되었다.

여운랑과 하라가 같은 공간에 있다면 꽤나 볼만할 듯싶다.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으며 연륜과 농염함을 갖춘 여운 랑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보만 담당하는 줄 알았는데, 제법 강한데.”

홀리듯이 말하는 정우.

여운랑은 굉장히 놀랐다. 자신이 익히 고 있는 현현무형공(玄玄無形功)은 드러 내지 않으면 절대 알기 어렵다. 작정하 고 감추면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 마저 모른다. 그런데 너무도 쉽게 현현 무형공을 간파했다. 그녀는 혹금단주의 드러난 실체마저 전부가 아닐 수 있다 는 느낌을 받았다.

여운랑도 보통은 넘었다.

겉으로 내색하기는커녕 되레 역공을 취한다.

“무공보다 입놀림이 훨씬 뛰어나요. 다들 껌벅 죽거든요.”

여운랑의 붉디붉은 혀가 벌어진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와 현란한 움직임을 보인다. 혀로서 그처럼 다양한 형태를 완성할 수 있다니, 대단했다.

“보여드릴까요?”

“그럼 날 한번 웃겨보도록.”

그게 아니잖아, 라고 받아치려던 여운 랑은 혹금단주의 무심한 두 눈을 보자 말문이 막혔다. 웃겨보라는 말이 농담 처럼 들리지 않았다. 웃기지 못하면 판 깨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진심인가요?”

“난 이런 걸로 농담한 적이 없다.”

왜 이런 걸로 진심이야? 라고 되묻고 싶은 여운랑이다.

그녀는 살면서 이토록 어려운 사람은 처음이었다. 어떤 모습이 진심인지 구 분이 되지 않는다. 단어 하나씩 따져보 면 농담인데, 분위기가 진심이다.

‘어째 낚인 거 같잖아.’

하오문주가 돌아 간 후 20일이 흘렀 다.

남궁세가와 하북팽가가 치열한 여론 전을 펼치고 있었다. 어떤 선택을 할지, 어떤 정보가 사실인지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다.

정우는 하오문을 통해 정보를 수시로 보고받았다. 여론전의 내용은 크게 다 르지 않다. 다만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 었다.

“대단하군.”

정우는 미묘한 차이를 알 수 있지만, 두 세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요점이 빗 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의심을 할 수 없도록 교묘히 비틀었다. 하오문의 정 보망이 예상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태원 지부를 남궁세 가가 차지하기 전부터 인원을 파견해놓 았으니, 판단과 예측에 관해서는 천부 적이었다.

정우는 이극과 하북삼도를 불렀다.

“당분간 여길 맡아줘.”

“지부를 비우려는 겁니까?”

“그래.”

“어째서요?”

남궁세가가 언제 다시 공격해 들어올

지 모른다. 흑금단주와 흑금단이 빠져 버리면 지부는 무주공산이 된다.

“결판을 내기 위해서지.”

“세가에는 알리신 겁니까?”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있어서 안 돼.”

“혹, 가주께서?”

“아직은 아냐.”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고 총관이 직접 색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극과 하북삼도는 깜짝 놀랐다. 남궁 세가와의 결전에만 신경을 쓰고 있을 줄 알았다. 내부단속을 하려다가 자칫 분열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알려줄 필욘 없지.’

정우는 흑막을 동원해서 정보를 지속 적으로 홀리고 있었다.

어그로의 당사자로서 팽가와의 기밀 협상까지도 까발렸다. 내부자만 알고 있는 정보가 알려졌으니, 배신자가 있 다고 생각할 게 분명하다. 그런 가운데 이극과 하북삼도는 정보를 홀리진 않았 어도, 가주의 결정에 반했다.

이극과 하북삼도는 걱정이 되었다.

“만약 노출이 되었다면요?”

“그보다는 전력 손실을 걱정해야지.”

정우는 선택을 했다.

이극과 하북삼도는 할 말이 많았지만, 다물었다. 흑금단주가 선택을 한 이상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 이제 와 틀렸다 고 한들 무의미한 논쟁이다.

‘어쩌려는 거지?’

이극은 답답함을 지우지 못했다.

귀영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 는 게 컸다. 총관이 수족을 다 잘라내는 바람에 정보 수집에서 뒤처졌다. 이대 로는 위험하다. 흑금단주는 능력 없는 자를 수용하지 않는다. 귀영각을 반드 시 원래대로 돌려놔야 했다. 하지만 그 것도 전쟁에서 이겼을 때나 가능한 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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