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드루와 (3)
그때.
“크하하하하!”
한 방 제대로 먹은 남궁민의 입꼬리 가 올라가더니 참지 못하고 토해냈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막말에 미치기라도 했나? 그렇지는 않았다. 마치 다른 사람 이 된 듯, 웃고 있지만 분위기는 차갑 다.
“재밌군, 재밌어!”
“더 재밌게 해줄까? 이쪽도 내 전문분 야거든.”
원한다면 얼마든지 풀어줄 무궁무진 한 썰이 있었다.
반면 단주의 자신감에 혹금단은 입을 닫았다. 다른 건 다 인정하지만 재미는 예외조항이었다. 치고 빠질 때를 모르 고 계신다. 적의 혼을 빼놓는 데는 일가 견이 있지만.
“죽기 전에 할 말은 그것분이더냐.”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되놈들의 허 세는 천하무적이라니까, 그리 원하면 버킷리스트에 적어주마.”
정우는 되놈의 허세에 기가 찼다.
신비주의 콘셉트로 본인을 치장하려 는데, 실상 까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쭉정이가 허다하다. 이것이 정확히 말 하면 중화의 실체다. 겉만 번지르르하 고 속은 쭉정이인. 자신들이 아무것도 아니기에 주변을 오랑캐라고 매도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위대한 존재는 결코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자연히 우러러보게 되니까. 혼 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쓰레기 같은 놈 들이 땅덩어리와 인구만 믿고 설치니 밸이 꼴린다.
“편히 죽기 싫다면 하는 수 없지, 갈 가리 찢어주마. 그때 가서 어떤 표정일 지 궁금하군.”
“뚫린 주둥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않는 게 좋아. 내 앞에서 설레발친 놈들 치고 멀쩡히 죽은 놈이 없거든.”
남궁민의 허세를 지적하기엔 정우도 만만치 않다. 허풍이 천하무적이다. 다 들 벙찌고 말았다. 누가 있어 권패 앞에 서 저처럼 말을 함부로 할 수 있을까? 시원시원하기는 한데, 너무 시원해서 속이 다 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빠직!
권패의 미간이 내 천(川) 자를 그렸다.
검호를 10수 만에 죽였다고 했다. 그 런데 막상 대면한 절명사신은 한없이 가볍다. 한 줌의 명성에 들떠 주제를 모 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속임수?’
창천검대를 무너뜨린 흑금단은 시정 잡배 중에서도 상(上)잡배다. 저런 놈들 이 오랜 고련(苦線)으로 단련된 창천검 대를 쓰러뜨리고도, 아무런 피해를 입 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설령 속임수라 해도, 불가능하다.’ 오랑캐라 불렀다가 흑금단주에게 한 방 먹기는 했지만, 권패는 냉철했다.
혹금단의 수는 2백에 불과했다. 수적 인 차이까지 고려하면 전검대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창천검대는 일 방적으로 패배했다.
변수가 있을지 몰라, 무턱대고 공격하 지 않고 남궁경과 백유진에게 주변 탐 색을 맡겼다. 그들은 탐색 능력에 관해 서는 일가견이 있었다.
‘아니라고?’
적백검은 고개를 저었다.
진정 이들만으로 검호와 창천검대를 쓰러뜨렸다는 결론이 나온다. 차라리 속임수가 있기를 바랐거늘, 남궁세가의 자존심을 흔들어놓았다. 이쯤 되니 단 순히 이기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압도적인 힘으로 남궁세가의 위엄을 만 천하에 알려야 했다. 그래야 손상된 자 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
“탐색 끝났으면 드루와.”
“확실히 예사놈은 아니구나.”
이런 와중에도 배짱을 부린다? 미친 놈도 살고 싶다는 본능은 있기 마련이 거늘.
남궁민도 더 이상의 시간은 끌지 않 았다.
그들만의 신호를 보냈다. 적백검과 전 검대, 귀창대를 동시에 움직였다. 변수 가 발생할 상황을 모조리 다 차단했다.
“네놈은 친히 상대해주마, 영광으로 알거라.”
“좋지.”
정우와 남궁민이 마주하며 전투의 시 작을 알렸다.
1천의 전검대와 귀창대가 흑금단을 향해 쓰나미처럼 돌진해 들어온다. 길 게 늘어서며 전열을 정비한 흑금단은 연신 컴온(Come-on>을 외친다. 노도와 같은 기세를 발산하는 적을 앞에 두고 도 태연하다.
‘떠그럴!’
‘망할!’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하북삼도는 저승길의 동반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와락 인상이 구겨졌 다. 짓쳐들어오는 전검대와 귀창대만 해도 벅찬데, 그 앞을 남궁경과 백유진 이 자리하고 있었다. 빠져나갈 구멍을 원천봉쇄했다.
스르렁!
남궁경과 백유진이 적0}(赤芽)와 백아 (白따를 꺼내 들었다.
그들의 별호처럼 붉은 검신과 백색의 검신이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낸다. 적 백이 교차하면 생명이 사라진다는 말이 회자될 만큼, 강력한 검수다.
“검과 도, 누가 더 우위에 있는 가려 보자.”
“오냐, 얼마든지 오너라.”
도망친다 한들 불가능하다.
하북삼도는 찰나간 마음을 정했다. 팽 가의 장로로서 목숨을 결기로, 결코 허 투루 죽지는 않을 것이다. 저들만은 데 리고 갈 것이다. 또한 도객으로서 검객 에게 지지 않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다. 항상 검이 도보다 우위에 있다는 세간 의 시선을 무너뜨릴 기회이기도 하다.
‘죽더라도 네놈들과 죽겠다!’
정우와 남궁민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마련되었다. 시간이 정지된 둣 묵직함 이 자리했다. 내외경이 경지를 벗어난 자들, 의기가 공간을 좌지우지하고 있 었다.
푸스스!
어디선가 날아온 나뭇잎이 공간으로 들어왔다, 형체도 남기지 않고 가루가 되었다. 마주 선 채 움직임을 보이고 있 지 않지만, 무수히 많은 무형의 기세가 오갔다. 가벼운 수 싸움을 벗어난 고도 의 정련된 공수였다. 벽을 넘지 않은 자 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다.
정우는 지겨운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패도무쌍이라며, 이러면 실망인데.” 남궁민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무형지기는 상대를 파악하기 위한 고
도의 수 싸움이다. 이를 가벼이 여기는 놈의 시건방진 태도가 마음에 들진 않 지만, 대응은 범상치 않았다. 주둥이만 산 놈■이 아니다. 어지간한 수로는 결판 이 나지 않을 것이다.
“원한다면 끝내주지.”
결심을 굳힌 남궁민의 내외공이 만전 의 상태가 되었다. 공간이 무형지기에 일그러지며 비틀린다.
그것이 시발점이다.
번쩍!
찬연한 빛이 눈을 어지럽히는 순간, 권형이 나아갔다.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다.
-구벽신권, 육뢰(M).
?■?벽력강(M 剛).
뇌공벽(雷公身)으로 운용된 뇌기가 혈 맥을 대주천하여 무형의 뇌강을 완성했 다. 실(實)과 허(虛)를 운용한 변(變)과는 질이 다른 그야말로 극강의 패권이다.
꽈아아앙!
접점의 폭발.
응축된 진력이 방향을 잃으며 제멋대 로 천지사방을 흔들어놓는다. 지면을 파고든 파장이 빠른 속도로 주변을 먹 어치우며 위력을 증명했다.
후아앙
후폭풍이 거대한 먼지구름을 형성하 며 홑날린다.
잠잠해지기도 전.
슈슈슈숭!
권풍이 연이어 충돌했다. 고막을 찢어 발기는 폭발은 지부 전체를 흔들어놓기 에 충분하다. 파생된 기의 폭풍이 날카 로운 나선의 와류를 형성하며 먼지마저 갈라놓는다. 휩쓸고 지나간 공력의 파 장에 전투를 벌이던 자들마저 영향을 받았다.
바르르!
남궁민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찰나지간 이어진 공수.
그걸로 끝을 내려고 했거늘, 끝은커녕 완벽히 막혔다. 이보다 더 완벽한 방어 가 있을 수 있을까? 막아낸 과정을 상 기할수록 기가 찼다.
“오랑캐 따위가 감히!”
평이했던 남궁민의 안면이 흉신을 그 린다.
구벽신권은 그만의 진신절기로 일생 을 관통한다. 그의 자존심이자 자부심 이다. 그런데 놈은 정면으로 받아냈다. 결과적으로 동수지만, 선수가 막히고 말았다. 후발제인에 완벽히 당한 것이 다. 먼저 공격하고도 이득을 챙기지 못 한다.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는 말을 부 정하고 말았다. 이는 권패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다른 수를 쓴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 다. 권패라는 이름 그대로 힘으로써 놈 을 굴복시켜야 했다.
“자존심 상할 만큼 굉장하진 않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남궁민의 속 을 긁는 정우다. 눈빛에 여유가 철철 넘 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염장은 제 대로 질러대고 있는 중이다. 너보다 훨 씬 위에 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포함한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구벽신권 팔뢰.
-팔황뢰(八荒雷)
방위를 무시하고 8방향으로 갈라진 뇌격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일점 사를 해 온다.
정우가 목표지점에서 방향을 틀자, 위 치추적장치가 달린 것처럼 추격해 온다. 광속의 빛이 궤적을 꺾어 가며 이리저 리 그물망을 순식간에 만들어놓자, 살 벌함과 달리 밤풍경이 굉장히 아름답기 는 했다.
“벗어날 수 없다!”
팔황뢰는 뇌공벽으로 조정이 되고 있 다.
이기어검을 다스리듯 주인의 의지를 받든다. 일점사가 되었던 뇌기에 다시 8개로 분사되어 방향을 차단해버린다. 이후 폭발하는 뇌기는 거대한 소용돌이 를 형성한다. 나선의 원형을 그린 바람 은 뇌공을 머금고 있어 다가서는 것조 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구벽신권 오뢰, 뇌공탄(雷公彈).
속^개방, 증폭!
뇌기가 튀는 와류를 향해 권격을 연 사한다. 수십 발의 뇌공탄이 와류 속을 뚫고 들어가 폭발을 일으킨다. 구벽신 권의 무서운 점은 연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뢰부터 구뢰까지 모든 초식 이 하나로 이어지기도 하고, 때론 분해 되기도 한다. 필요할 때마다 방법을 바 꾸어 가며 최적화된 권로(>路}를 완성 했다.
퍼퍼퍼퍼펑!
뇌공류(雷公流)에 휩쓸리면 살아남지 못한다. 현재의 권패를 만들어낸 진실 한 실체. 가히 절대의 경지라 해도 무방 했다.
한데 이를 부정한다.
“흉내는 흉내일뿐.”
10성의 뇌공에 속성까지, 남궁민은 승리를 확신했다. 범상치 않은 놈이기 는 하나, 흉내가 진짜를 이길 수는 없는 법.
‘ 응?’
끼어들어 오는 불협화음을 감지한 남 궁민의 안색이 변했다.
휘오오옹, 파앗!
격류처럼 휘몰아치던 와류가 일순 깨 져버리며 평온함이 감돈다.
남궁민의 미간이 일그러지며 떨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갈가리 찢겨서 온전한 형체조차 찾기 어려워야 할 목 표물이 버젓이 자리했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거든.”
정우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다양한 속성 중에서도 이토록 빼박으 로 닮은 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텐데. 과연 중국은 대가리가 많았다. 우연이 라고 하기에는 남궁민에게는 상성이 좋 지 않았다. 정우는 거의 매일 뇌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자와 사생결단을 벌여왔다. 결과적으로 익숙함마저 벗어 나 있다. 뇌공을 이보다 더 잘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세상 천지에 없을 거다.
“본격적으로 놀아보자고.”
남궁민은 진짜이길 원하나, 어차피 강 한 자가 원본인 잔혹한 현실이다. 정우 에게 있어 남궁민의 뇌공은 금강문주의 뇌공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무공은 상 대적일 수밖에 없다. 강한 무공이 아니 라, 강한 자의 무공이 강한 거다. 또한 강자의 무공이 진짜가 된다.
“너는 짝퉁이야.”
“헛소리 지껄이지 마라!”
전력을 다했음에도 결과를 얻지 못했
다. 남궁민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 의 내공을 이루는 근간인 뇌공이 격정 으로 치닫는다. 뇌기가 육신을 거세게 맴돌며 머리카락이 허공으로 날카롭게 치솟았다. 육신마저 황금색으로 변하며, 금황신(金黃身)을 이루었다. 그조차도 좀처럼 내보이지 않았던 전투체다.
피식!
정우는 웃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도금한다고 진짜가 되진 않아.”
“죽어맛!”
정우와 남궁민의 신형이 공간에서 사
라진다. 물론 진짜로 사라지진 않았다. 고속이동으로 인한 착란과 착시, 잔상, 환영이 교차했다. 여러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거리를 잰다.
사사사삭!
남궁민도 성급하게 공격하지 않았다. 금황신은 전력 소모가 큰 기술이다.
하물며 속성까지 개방했다. 잔여 시간 을 감안하면 승부를 빠르게 내야 하나, 간단히 끝낼 수 없다는 걸 체감하고 있 었다.
‘……익숙해!’
남궁민의 위기감은 익숙함에서 기인 했다.
뇌공은 천지간에 가장 강력한 기운이 다. 이를 완성하기란 각고의 노력만으 로 되지 않는다. 뇌공이 맞는 체질이어 야 하고, 재능을 타고나야만 했다. 그러 에도 뇌공을 대성한 자는 극소수에 불 과하다. 비슷한 수준이면 뇌공을 익힌 자가 압도적이야 하는데, 반도의 오랑 캐는 달랐다.
퍼퍼퍼펑!
고속이동으로 빈틈을 탐색만 하지 않 았다. 남궁민은 기뢰(氣雷)를 곳곳에 심 어 흑금단주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려고 했다.
흑금단주는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기뢰가 놓인 공간에 권격을 퍼부어 미 리 폭발시켰다. 보통은 기뢰를 예상하 지 못해 당하기 일쑤였거늘. 흑금단주 는 뇌공을 완성한 무인과 싸울 줄 알았 다.
“어째서?”
“너보다 강한 뇌공이 있으니까.”
“그럴 리…… 없다!”
“현실은 피한다고 달라지지 않아.”
남궁민의 수는 뻔히 보였다. 솔직히
안 보고두 다 읽힌다. 전투의 천재인 이 호극이 한 번쯤 해봤던 수들. 머리는 좋 지 않을지 몰라도 이호극의 전투센스는 누구도 따르기 어려울 만큼 뛰어났다. 남궁민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물며 지금처럼 자폭에 가 까운 수를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구벽신권 구뢰, 뇌공멸(雷公滅).
후후!
뇌공멸을 확인한 정우의 입술이 얄팍 하게 호선을 그린다. 저 수를 쓰기 전에 시간적인 틈이 존재한다. 이를 가리기 위해서 기뢰를 썼는지 몰라도, 어림도 없는 수작이다. 무엇보다 이호극은 이 보다 더 엄청난 위력의 수, 일명 동귀어 진을 사용했다. 본인이 죽든 말든 전력 을 뿜어냈다. 그런 미친 문주와의 결투 에서 항상 우위에 있었던 정우다. 하물 며 본인 딴에는 완성형일지 몰라도, 정 우에겐 한없이 미숙해 보인다.
스륵!
현현보를 밟았다.
속도가 빨라지는 한계를 단숨에 뛰어 넘어 점을 관통한다. 그리고 그 점의 끝 에 남궁민이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