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87화 (387/500)

제 5장

드루와 (2)

늦은 밤.

먼 거리에서 태원 지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먹이를 노리는 굶주린 매처럼 날카로운 안광이 어둠을 투영하 여 공간을 밝혔다.

일대는 빛이 거의 없는 지대로 변했 다.

장원을 제외한 그 주변까지도.

태원에 지부를 마련하기 위해 장원을 매입하고, 그 주변까지도 사들였기 때 문이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소문을 차 단하기 위해 구역을 넓힌 것이다. 그로 인해 애초의 비용보다 더 소모되었다.

한데 그 장원을 얼마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홀라당 빼앗기고 말았다. 고생 은 자신들이 하고, 단감은 딴 놈이 따 먹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짜증나는 상 황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오늘을 기점 으로 상황이 반전될 것이다.

“놈의 동태는?”

“장원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원은?”

“하북삼도가 도착했습니다.”

팽가의 장로가 지원을 했음에도, 그들 에겐 가소로울 따름이었다.

최소한 팽가의 전대장로와 5개의 무 력대 중 2개 이상이 파견됐어야 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전력에는 한참 미치 지 못한다. 하북삼도가 눈에 차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다른 변동사항은 있나?”

“장원 주변에 진법을 설치했습니다.”

“종류는?”

“환영진과 미로진의 일종입니다.”

“가소로운 짓을 하는군. 그걸로 우릴 막을 수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오늘 이 가기 전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 다.”

결계와 진법은 방어전술의 기본이다. 당연히 이를 부수기 위한 연구는 예전 부터 꾸준히 해왔다. 그들 역시도 노하 우가 충분히 쌓였고, 결계와 진법에 능 한 자들을 양성해놓았다. 기실 뚫지 못 하면 까다로운 방어진형이지만, 뚫기만 한다면 승패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송수신은 차단했겠지.”

“그렇습니다. 외부 수신은 유무선 모 두불가능합니다.”

속성차단능력자를 외부에 배치했다. 돌발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팽가 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정보력을 태 원을 기점으로 거미줄처럼 연결해놓았 다. 곳곳에 공간굴곡을 일으키는 장치 를 설치해 함부로 공간을 이동했다가는, 현실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었다.

“오랑캐 주제에 까분 대가를 치러주 지.”

대륙은 대중화의 것, 오랑캐가 나댈 장소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오랑캐 는 천하고 비루한 족속에 불과했다.

정우는 넓게 펼쳐진 태원 지부의 정 문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황제를 상 징하는 누런 용이 웅장하게 조각된 의 자로 멍청(명청)시대만 해도 황제가 앉 아 있던 자리다. 그 시대에 앉아 있었으 면 황제가 좋게 보지는 않았을 거다. 물 론 그래봤자 전생의 나한테는 안됐지만. 진강백을 제외하면 황제도 내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미물이었다.

후비적.

어디서 되놈들이 뒷담화를 까나, 고막 이 간지럽다. 특제 양념이 잘 밴 닭 꼬 치를 하나물다, 귀를 후볐다.

“이거저거 섞인 잡종들 주제에, 누구 한테.”

정우는 중화의 굴기를 믿지 않는다.

하나의 중화? 기가 찬다. 한족이라고 해봤자, 소수에 불과하거늘. 티베트를 비롯한 소수민족은 동양인으로 보이지 도 않는다. 그저 권력자들이 다스리기 편하도록 정한 우매한 국가정책일 분이 다. 결국 하나가 아니면, 아무 힘도 발 휘하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비루한 것들이 덩어리가 되니 뭐라도 되는 양 짖는 꼴 이다.

정우는 저들의 행태가 맘에 들진 않 지만, 전략적으론 아주 이상적임을 인 정한다.

‘나쁘진 않지.’

조각조각 나누어진 후, 하나씩 먹어치 우는 방법도 있었다. 냉전시대를 끝낸 미국의 전략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소 련의 붕괴가 단순히 경제적 측면만 있 을까? 두 국가 간에 보이지 않는 암투 에서 소련이 패배를 한 것이다.

*남궁세가의 주요전력.

-남궁민, 남궁경, 백유진 장로.

-전검대, 귀창대.

정우의 손에 은밀하게 전달된 손바닥 크기의 쪽지가 있었다. 장원의 잡역부 중에 한 명이 전달을 해 왔다.

“영리한데.”

손을 잡을지 말지를 결정하기 전에 보내왔다.

하나 시간이 애매하다. 적이 태원 지

부를 감싸기 직전이었다. 물러설 시간 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었다. 그 중간을 예리하게 찔렀다.

“간을 보시겠다.”

머리 쓰는 솜씨가 보통은 넘었다.

계략 대결을 벌인다면 굉장히 까다로 운 상대다. 그러나 정우는 머리싸움을 하지 않는다. 잔머리 굴리는 자들을 상 대할 때 적합한 무기는 정해져 있었다. 또한 시간을 끌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만큼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저울질과 투자의 기본맥락이다.

‘기회에 대한 비용은 경제의 당연한

이치니까.’

임무를 마친 양용익이 정우에게 다가 왔다.

“진을 가동했습니다.”

“알았다.”

장원의 밖에 설치한 조화만상진(造化 萬狀陣}을 구성하는 48개의 축을 발동 시켰다. 외부에서는 태원 지부를 투영 하지만, 결계에 진입하면 환상과 미로 가 오감을 비틀어놓는다. 시간이 많지 않아 완벽하다고는 못해도, 이만하면 충분히 위협적이긴 하다.

TT tZ T三

팽세기와 이극, 하북삼도가 뒤늦게 호 출을 받고 왔다.

늦은 시각까지 같이했는지, 호출을 여 러 번 할 필요가 없었다. 작당모의의 결 과는 분명해졌다. 팽세기를 대하는 하 북삼도의 태도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어쩐 일입니까?”

“어쩐 일은, 당연한 걸 왜 물어.”

남궁세가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국면이다. 한가로이 낚시와 만찬을 즐 기던 정우의 만행을 보았던 이극과 하 북삼도다. 그러나 호출을 했다면 이유 는 하나밖에 없다. 남궁세가와 연관된 사안이 분명했다.

“남궁세가의 습격입니까?”

“그래.”

이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금단주와 흑금단의 무력은 인정하 고 있었다. 심기도 깊고. 그러나 정보력 은 또 다른 차원이다. 남궁세가의 동선 을 파악하려면 흑금단만으로 불가능하 다. 귀영각의 정보망과 총관의 정보망 에도 잡히지 않은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정보망이 더 있나?’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기에 이극은

머리가 아파 왔다.

흑금단주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 록 두려움은 커지고 있었다. 이제는 안 다고 생각을 할 때마다, 그 이상의 능력 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었다.

“남궁세가의 전력은 확인이 됐습니 까‘?”

“남궁민, 남궁경, 백유진은 이름만 대 도 알 만하다고 하니 생략하고 무력대 는 전검대와 귀창대가 온다더군.”

“..2”

이극과 하북삼도는 입을 벌린 채 굳 었다.

조금 전 제대로 들은 건지 고막을 점 검해봐야 했다. 혹시라도 잘못 들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혹금단주는 쪽지 를 친절히 건네주었다. 내용을 확인해 보니 청력은 이상이 없었다.

“권패에 적검과 백검!”

“전검대와 귀창대라니!”

“?망할!”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적백검(赤白劍)이라 불리는 남궁경과 백유진만 해도 벅차거늘, 패도무쌍의 권을 자랑하는 권패(= 남궁민까지 합세하다니. 작정을 하지 않고서는 보 내지 않을 막강한 전력이다.

권패에 대한 무명은 간단하지 않다. 검의 제왕가에서 권공으로 인정받고 있 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문 최초로 구 벽신권(九野神m 대성한 유일무이한 존재다.

이 셋만 해도 엄청난데, 남궁세가의 5 개 무력단 중 2개나 출전했다.

전검대와 귀창대는 전투에 관해서는 귀신같은 놈들이었다. 전귀들이 따로 없는, 악명이 자자하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풀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떠돌았다. 오히려 다수의 결 전에서는 장로들보다 더 무시무시하다.

다급해진 하북삼도가 물었다.

한시라도 빨리 대비해야 했다. 이만한 전력이라면 어지간한 대문파도 한 시간 안에 초토화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지 원을 요청한다고 해도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다는 현실이다. 남궁세가가 이 렇게까지 작심하고 쳐들어올 거라고 예 상 못 했을 공산이 크다.

“시간은 어찌 되는가?”

“지금.”

“..

고민을 확 날려버리는 정우의 대답이 었다.

습격을 알면 뭐하나, 당장 공격을 해 오면 방비는 불가능했다. 장점은 지원 요청을 위해 세가를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아마 요청한다고 해도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냐고, 사사건 건 따지고 들 게 분명했다.

“그런데 이리 한가하게 있어도 되는 거요?”

“한가하다니, 난 그 어느 때보다 진지 해. 이런 말 내 입으로 하기 창피하지만, 내가 꽤 진지한 사람이거든.”

진지하단 놈이 건방지게 다리 꼬고 앉아 닭 꼬치를 먹고 있나, 세상 걱정 없이 사는 한량이 따로 없었다. 마치 지 금까지 자신들을 놀리기 위해서 쇼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과거를 돌 이켜 보면 충분히 그럴 위인이기도 하 고. 진지함과 사악함, 잔인함이 제멋대 로 공존하고 있어 판단을 모호하게 했 다.

“먹고 싶으면 얘기를 해, 뭘 그렇게 꼬나봐, 하나 줘?”

“됐네!”

하북삼도는 혹금단주와 생사를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부터 홀러나왔 다. 당장은 혹금단주의 말이 거짓이기 를 바라야 했다. 만일 사실이라면 오늘 태원 지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살 아남기 힘들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 가뜩이나 열 받은 남궁세가다. 전투가 벌어지면 유혈사태는 당연했다.

애써 평정심을 유지한 하북삼도는 고 개를 흔들었다.

‘거짓말이겠지.’

‘우릴 우롱하려고!’

팽기성과 팽준경은 믿지 않았다.

말이 되는 소린가. 권패와 적백검, 전

검대에 귀창대까지. 그만한 전력을 투 입할 만큼 태원 지부가 대단하지 않았 다. 자신의 위명을 알리기 위해서 허세 를 부리는 격이었다.

‘그런 헛소리를 순순히 믿을 것 같아!’

‘온다면 내 손에……?’

채 상념이 마무리되기 전.

태원 지부 전체가 들썩였다. 강력한 충돌로 인한 굉음이 울린다. 이어서 기 운의 파장이 지부를 흔들었다.

부르르르르!

퍼져 나오는 파장의 내력이 상당하다. 파괴력이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 있다.

무인이라면 충분히 감지가 가능하다. 하물며 버려진 패라고는 해도 하북삼도 는 팽가의 장로다. 이토록 노골적으로 습격을 해 오는데, 현실 부정을 하진 못 했다.

“..설마‘?”

“……정말로!”

“그럴 리가!”

지부를 감싼 결계는 강력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결계를 보강했다면 또 모를까, 단시일 내에 친 결계가 오랜 시간 버텨줄 거란 기대는 어불성설이다. 아니나 다를까! 결계가 마지막 용트림 을 하듯 큰 파장을 일으키다가 잔잔해 진 물결처럼 원래대로 돌아간다.

파장의 배후로 공간을 가득 채운 살 의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진짜였어!”

일반적인 살의를 벗어난다.

그들이 알기로 이토록 짙은 살의를 지닌 집단은 흔치 않았다. 하물며 남궁 세가라면, 전귀와 살귀의 집단으로 악 명이 자자한 전검대와 귀창대분이다.

“대비를 해야……?”

하북삼도는 느긋하게 앉아 있는 혹금 단주를 보고 헛바람을 삼켰다. 몰라서 그렇다면 이해라도 하지, 알면서도 그 러면 누구 환장하는 꼴을 보고 말겠다 는 심사인가.

“어서 와.”

적을 향해 손짓하며, 환영인사를 하고 있었다. 언제든 들어오면 자리 한쪽에 수북이 쌓아 놓은 닭 꼬치 하나 정도는 줄 수 있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두 개부 터는 생각을 해보겠다는 고민의 흔적도 담겼다.

……미친!

하북삼도는 세가로 돌아가지 않은 걸 벌써부터 후회했다.

가지고 있는 무력이 나이를 뛰어넘으 면 뭐하나, 미친놈인데. 저자와 함께 운 명 공동체가 되어 한 줌의 혈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장렬히 싸우다 죽으면 그나마 명예라도 챙기지. 이건 그냥 개 죽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위치를 포착한 성난 호랑이와 같이 맹렬히 돌진해 들어온다.

정파의 무인답진 않다. 정련되지 않은 살의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 살기를 드 러냄에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야 를 확보한 자들의 움직임은 흔들림 없 이 완벽했다. 야성과 단련이 하나로 융 합된 완전무결한 무력단이다.

차자자작!

당장에라도 달려들듯 무소처럼 돌진 하더니, 자리를 잡는다. 일사불란, 하나 의 덩어리가 되어 호흡이나 박동마저도 일치했다. 실로 놀라운 군집력이다.

무리에서 남궁민이 천천히 걸어 나왔 다.

저벅, 저벅!

패도무쌍의 권을 구사한다고 하여 우 락부락하게 생겼을 거란 예상과 달리, 남궁민은 한없이 평범해 보였다. 흔히 볼 수 있는 짱개 스타일처럼. 길 가다 스쳐 지나가면 다시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흐릿하다.

남궁민의 시선이 혹금단주를 향했다. 다짜고짜.

“네놈이 반도의 오랑캐구나.”

“그리 물어보는 되놈께선 권패냐?” 그런다고 정우가 당황할까?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정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살의가 요동을 친다.

헙!

이극과 하북삼도는 삼킨 헛바람으로

인해 폐에 공기가 가득 들어차는 기분 이었다. 다들 상상도 못 한 미친 발언이 다. 오랑캐라고 했다고 되놈으로 되받 아치다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수준마 저도 벗어났다.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는 1천의 전검대와 귀창대가 순간 병풍이 되어버렸다. 너희들 따위 가 짖어봐야 의미 없다는. 개가 미치면 몽둥이가 약이라는 설정이 깃들었다.

“그-그.그.그., 역시 단주님이셔.”

“감히 주둥이로 해보려고 한 것부터 가에러지!”

“어딜 감히 짱개 따위가, 분수를 모르 네.”

그 주인과 그 수하라고 했던가.

혹금단이 킥킥! 거리는 소리가 다 들 렸다. 저들끼리만 떠드는 게 아니라 보 란 듯이 떠들고 있다. 그러니 속이 타는 이극과 하북삼도다. 웃기긴 한데,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 이런 정신 병자들이 단체로. 정상인들까지 미치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리나! 정신병동에 정상인을 집어넣으면 미치는 이유가 있 었다.

제왕가의 권패가 참겠나, 당장 살육의

전장이 벌어지지 않으면 이상했다. 전 검대와 귀창대도 달려들 준비를 마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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