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86화 (386/500)

제 5장

드루와 (1)

정우는 태원 지부에서 풍족함을 누리 고 있었다. 올 사람은 온다는 심정으로 현실을 충실히 즐겼다. 팽가에 무력 지 원은 요청하지 않았다. 다만 지부에서 소모되는 모든 비용은 팽가에서 처리하 기로 약속을 받았다.

한가로운 휴가를 즐기며 만찬으로 배 를 채웠다.

아주 노났다.

남의 돈이라 더더욱 즐겁다.

산서성에서 이름난 최고의 요리를 최 고가로 주문했다.

돈이라는 게 그렇다. 내가 사고를 내 면 카센터를 가고, 남이 사고를 내면 사 업소를 가고 싶은.

우적, 우적!

흑금단도 만찬에 동참했다.

요리의 천국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겠다. 태국과 더불어 중국은 다양한 요리의 보고다. 기실 못 먹는 거 빼고 다만든다.

“이게 샥스핀이이?”

“별걸 다 먹네.”

“중국은 개고기 축제도 있던데.”

“문화는 욕하지 말자, 영국년이 세계

1위 개 소비국인 베트남이나 중국은 안 가고 우리나라에서만 소리치는 걸 보면 웃기지도 않더라.”

“이 새끼, 별걸 다 아네, 그건 또 어떻 게 안 거야?”

“어쨌든 먹지 마, 개는 인생의 반려자

라고.”

“개한테는 물어본 거냐? 네 면상을 쳐 다보고나 싶겠냐!”

혹금단은 사형수의 마지막 음식처럼 폭식을 즐겼다. 이럴 때가 아니면 먹기 힘든 요리라서 탐욕을 더 부렸다.

쓰담쓰담.

정우는 정원에 앉아 낚시를 즐기며 고양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3일 동 안 비단잉어를 시식했던 고양이는 지부 의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저벅, 저벅!

정원으로 세 사람이 들어왔다.

이극으로부터 세가에서 사람이 온다 고 했으니 놀라진 않았다. 그리고 면식 이 있었던 자들을 보냈다.

“가문에서 버렸나, 요건 쓸모가 없 군.”

정우의 나직한 중얼거림이었다.

보통 사람은 듣지 못하겠지만 무인의 청각은 남다르다. 고수의 반열에 들수 록 감청 범위가 넓어졌다. 충분히 얼굴 을 알아볼 거리이기에 못 들었다면 거 짓말일 수밖에 없다.

빠직!

세가에서 보낸 자들, 하북삼도다.

건천도 팽우진, 맹호도 팽기성, 혼전 도 팽준경이 함께했다. 그들은 흑금단 주의 말에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 골적으로 자신들을 비아냥거리고 있음 을 모르지 않았다. 성질 급한 팽기성이 언성을 높였다.

“말을 삼가지 못할까!”

“제일 약한 놈이 목청은 크네.”

팩트가 핵폭탄급이다.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막돼먹은 말에 팽기성은 말문이 늦어졌다. 약하다니, 팽가의 장로에게 누가 감히 그런 소릴 할 수 있단 말인가. 발끝에서 머리끝을 강타하는 분노가 토해졌다.

“네놈이 감히 팽가의 장로를 업신여 기는 것이냐!”

“그래서 해보자고?”

맹호라 불리는 팽기성은 정파임에도 성질이 고약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성질도 사람 봐가면서 부려야 했다. 정 우는 면식이 있다고 해서, 신분이 높다 고 해서 어물쩍 넘어가지 않았다. 하물 며 굳이 숨겨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 라면 더더욱. 막말로 거짓말도 아닌데 울컥했다면, 정곡을 찔렸다는 걸 시인 하는 셈이다.

찌릿, 찌릿!

정우의 무심하고 서늘한 기세는 냉혹 했다.

육식과 영혼을 옥죄는 무형지기에 팽 기성은 더 나가지 못하고 말았다. 자존 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의지가 꺾이고 있었다.

‘큭…… 사실이란 말인가!’

팽기성은 하북삼도의 맏형인 팽우진 의 패배는 물론 남궁세가의 검호를 제 압했다는 걸 믿지 못했다. 하지만 현실 은 강요를 하고 있었다. 더 호기를 부린 다면 황천길로 직행할 거라고. 한국에 있을 때 놈은 본인을 철저히 숨기고 있 었음을 깨닫게 했다.

“그만하게, 실수였네.”

“전장에서 실수는 죽음으로 직행하 지.”

미세먼지의 제국이라 불리는 중국에 서 오늘 같은 화창한 날씨는 오랜만이 다. 하물며 태원 지부는 고요했다. 전장 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엄연히 전장의 한복판이다. 당 장에라도 남궁세가가 쳐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예측 불허다.

하북삼도는 흑금단주의 말을 부정하 지 못했다.

“난 주제를 모르는 자들을 오냐오냐 받아줄 만큼 마음이 넓지 않아. 설마 그 때의 일이 실수였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물론이네.”

“그렇다면 다행이고.”

팽우진은 무너진 자존심으로 인해 눈 가가 파르르 떨렸다.

본심을 드러낸 흑금단주는 신랄했다. 상대에 대한 배려 따위는 존재하지 않 았다. 놀랍게도 저 오만함이 처음 만났 을 때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그렇다 면 저 모습이 흑금단주의 진실한 실체 라는 뜻이 된다.

“?…"형님!”

“그만해.”

팽기성과 팽준경은 팽우진의 굴욕적 인 태도에 분노했다.

무공이 무인을 증명하는 척도가 된다 고는 해도, 자신들은 팽가의 장로다. 최 소한의 예의를 차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사람으로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이다. 반도의 오랑캐가 무공이 세다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억울하면 덤벼. 단, 살려주진 않을 거다.”

정련된 살의는 차가웠다. 분노하지 않 은 살의임에도 거짓이 아님을 하북삼도 는 체감했다. 가벼운 언행에 가려져 있 을 분, 허투루 대해선 안 되었다. 혹금 단주는 자신의 말로 인해 사태가 더 악 화된다 해도 반드시 지킬 것이다.

“우린 가주의 명을 받고 왔네.”

“역시 버려졌군.”

끝까지 자존심을 뭉개버렸다.

하북삼도는 참기 힘든 모멸감에 몸을

떨었다.

“말이 심하지 않나, 우린 자네를 지원 하기 위해 온 것일세.”

“알면서 그러는 거면 위선이고, 정말 로 모르면 병신인데.”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친절하기는커 녕 비수처럼 하북삼도를 난도질했다.

특히 팽우진의 심기는 두 동생보다 더 좋지 않았다. 혹금단주의 독설이 틀 리기를 바라지만, 돌아가는 정황은 잔 혹했다.

그래서일까, 대답이 궁색하다.

“세기는 팽가의 후계자네.”

“끝까지 위선을 떨겠다는 거야. 팽가 의 목적이 본진 털이라는 걸 모르는 사 람이 없을 텐데. 여긴 그저 시선을 끌기 위한 위장 책일 뿐이잖아. 그런 곳에 보 내진 자들이 과연 쓸모가 있어서 왔을 까?”

정우의 독설에 하북삼도는 숨이 턱턱 막혔다.

반박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지원이라고 해봤자 자신들뿐이다. 하물 며 감시 책으로 보내졌다. 혹금단주가 뭘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보고하라고 했다. 이런 일을 세가의 장로에게 시켰 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방법을 말해보게, 이대로 앉아서 당 할 순 없지 않나!”

“살고는 싶은가 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네.”

흑금단주에 대한 소문이 났다. 남궁세 가는 반드시 태원 지부를 탈환하기 위 해서 가볍지 않은 전력을 투입하게 될 것이다. 지부에 있는 무력만으로 막아' 낼 수 있다 장담하기 힘들다.

“살고 싶으면 돌아가.”

“그걸 말이라고!”

“팽가에서 지원하지 않을 권리가 있 듯, 난 요청하지 않을 수 있지. 이는 협 상에도 있는 내용이야.”

금강문과 하북팽가가 협상했을 시, 지 원 요청에 대한 목록이 있었다.

하북팽가에서 대체적으로 지원을 하 겠지만, 세가의 중차대한 현실을 고려 한다고 적혀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지 원해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지원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예외조항이다. 실로 교묘해 보인다. 그렇다면 정우가 이걸 몰라서 서명을 했을까? 절대 그렇 지 않다. 이 조항을 반대로 하면 지원을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혼자 죽겠다는 뜻인가? 금강문을 위 해서!”

“맘대로 생각해.”

세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만 태 원 지부를 사수할 수 있다.

하북삼도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 만 혹금단주는 협상을 들먹이며 거부하 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이대로 돌아가 도 되었다. 가주에게는 흑금단주의 발 언을 그대로 전하면 된다.

한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가주는 절대 신뢰 하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는 즉시, 가문 의 핵심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현실 이다.

“우린 돌아갈수 없네.”

“그건 당신들 사정이고.”

정우는 할 말을 다 했다.

돌아가지 않겠다는 건,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팽가의 장로로서 명예를 내려놓기 싫은 욕심의 발로다.

낚시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졌다. 허공으로 손을 저었다.

휙휙

하북삼도는 졸지에 생선에 달려드는 날 파리가 되었다. 팽가의 장로임에도 배제되어 버린 처량한 현실에 분노했다. 혹금단주의 신랄한 비판이 틀리지 않았 다. 가문에서는 자신들을 적당한 먹잇 감으로 던져준 것이다. 팽가의 직계이 면서 장로라는 타이틀을. 후일 가문에 서도 최선을 다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 한 긴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하북삼도의 어깨가 무겁게 가라앉았 다.

우연이었을까?

돌아가는 길, 마주 오는 3공자가 있었 다. 눈에 띄는 미녀가 호위를 하고 있어 더 잘 보이는 듯했다. 마치 기획 제대로 들어간 듯,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썩은 동아줄도, 줄은 줄이니까.’

이를 바라보는 정우의 눈빛이 굉장히 음흉하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면 사람은 절박 해진다. 하물며 같은 처지라면 동질감 은 필연, 더더욱 믿음이 생기기 마련이 다.

정우는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이 안에 들어온 이상 빠져 나갈 수는 없으니까.

팽세기는 하북삼도의 곁을 스쳐 지나 갈 때 멈칫거렸다.

전음이 오고 갔다.

-이따가 보지.

-그러지요.

정우는 전음을 듣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저 말 몇 마디 했을 분인데, 하북삼도는 덜컥 잡아버리고 말았다. 궁지에 몰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면 아주 간단했다. 차후 하북삼도의 미래 가 훤히 보인다. 그들이 과연 팽 가주가 원하는 정보를 세가에 전달해줄까? 자 기 살길을 만들기 위해서 타협하는 자 들이.

“또 낚았네요.”

“어차피 버려진 자들, 적당히 써주면 고마워해야지.”

팽세기는 단주의 무시무시함은 전투 력이 아닌 저 주둥이에 있음을 실감했 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바탕으로 약점을 여지없이 난도질해버린다. 말발로도 고 수를 조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 을 금치 못한다. 영원히 이 굴레에서 빠 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 해 왔다.

“그런데 이 여자 좀 어떻게 하면 안 되나요?”

“심력 단련에 좋지 않냐?”

“피가 몰려서 죽을것 같아요.”

“건강하다는 증거다.”

건강해서 빨리 죽을 것만 같다.

공연화가 착 달라붙어서 있으면 팽세 기는 미쳐 돌아가실 지경이다. 닿지도 않았는데, 기가 마구 빨려나가는 기분 이 들었다. 그렇다고 덮치기에는 뒷감 당이 되지 않는다. 창천검대를 보내버 릴 때 확실히 깨달았다. 단주가 다루는 병기 중에 허술한 병기는 없다는 사실 O

“넌 아니다.”

“……그래도 가주가 되면 또 모르죠.”

“넌 바지 가주가 될 거야.”

“첩!”

팽가의 가주를 바지 사장급으로 만들 어버리다니, 사고의 규모가 달랐다. 돌 아가신 조상님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귀신이 되어서도 통곡을 금치 못하겠 다.

“말 안 들으면 반바지로 만들 거고.”

부르르르!

무시무시한 협박에 팽세기는 몸서리 를 쳤다. 후회가 밀려온다. 어째서 흑호 문과 협조를 했을까? 그때 가지 않았으 면 단주를 만나지 않았겠지만, 이번 생 은 늦었다. 다음 생에는 단주와 만나지 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력이 늘었어.”

공연화의 공력은 나날이 늘고 있었다.

전투를 하면 할수록 공력이 강해지고 있으며, 융합진기를 통해 단일화된 공 력으로 흡수했다. 일전의 환환색정공은 융합진기를 운용할 만큼 완벽하지 않아, 북명신공의 장점을 봅아 새롭게 업그레 이드했다. 이제 진기가 혼합되지 않아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는 발 생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점은 파워는 강해졌지만, 경지의 상승은 더디다는 것이다. 주입된 경지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그러나 큰 상관은 없었다.

‘그거야, 쓰는 사람 맘이고.’

정우는 남궁세가와의 전투를 반기며 기대했다.

공연화의 활약상이 커질수록, 깔아놓 은 밑밥을 회수하기가 쉬워진다. 팽가 가 숨기고 있는 병기와 비슷하다고 알 고 있을 테니, 다음 타깃을 위한 씨앗을 부려놓을 수도 있다.

‘농부의 심정을 알 것도 같군.’

알기는 개불.

농사를 지어봤어야 알지, 앞으로도 지 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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