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85화 (385/500)

제 4장

개미지옥 (3)

정우는 팽가의 태원 지부에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 그 지역은 팽가와 연 계한 중소문파에 전적으로 맡겨놓고, 남궁세가의 태원 지부에 엉덩이를 붙였 다.

부서졌던 정문은 복구되었고, 미리 제 작한 현판이 아름답게 설치되었다. 웅 장한 필체로 써 내려간 현판은 눈에 잘 들어왔다.

-금강문으하북팽가

-태원지부

더스트패치에 빼박 사진이 찍힌 연예 인 커플처럼, 이제는 아예 대놓고 밝혔 다. 거리끼지 않는 금강문의 기조를 고 스란히 담아놓았다. 한국이었다면 누구 라도 그리 생각하겠지만, 되놈의 눈에 는 가시처럼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쩌실 작정입니까?”

“어쩌다니 뭘?”

“남궁세가는 절대 이번 일을 좌시하 지 않을 겁니다.”

“당연하지, 가만있으면 호군데.”

호구는 멸종되어야 하는 종족임에 부 정하지 않는 정우다.

이극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대비 는 고작해야 결계를 설치하는 게 전부 였다. 팽가에 지원도 하지 않고. 이 와 중에 한가롭게 정원에서 낚시를 할 때 는 아니지 않은가. 하물며 관상용으로 키우고 있는 특이종 비단잉어를 잡아서 길 고양^에게 식사대용으로 주고 있었 다. 최소 한 마리당 12만 위안(약 2천만 원)을 호가하기로 알고 있거늘. 그것만 골라잡는 것도 신기했다.

“내가 왜 잡은 잉어를 고양이한테 주 는 것 같아?”

갑자기 뜬금없었다.

근데 왜 이렇게 궁금하냐? 12만 위안 짜리 관상어를 길 고양이에게 주는 것 부터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왜입니까?”

“남의 거잖아.”

“예‘?”

“농담이야. 크크크!”

이극에겐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마 치 중요한 맥락을 얘기하고 있는 듯했 다. 하지만 누가 봐도 실없는 소리처럼 들린다. 여기에서 단서를 찾기란, 무에 서 유를 창조하기보다 더 어려워 보인 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원.’

이극은 살아오면서 이토록 판단이 서 지 않는 인간을 처음 봤다. 팽 가주도 어느 정도는 파악이 되는 유형인데, 흑 금단주는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했 다. 항상, 어떤 상상을 하든 그 이상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었다.

‘내 것이 아니면 아쉬울 이유도 없지. 후후후.’

무소유의 무서움이기도 하고.

정우는 솔직하게 말을 해주었다. 다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느냐의 신뢰가 발목을 잡을 분이다. 상황에서 따라서 진실도 거짓이 되는 현실이다. 절절히 믿어달라고 해도, 강요한다고 해서 신뢰를 얻진 못한다. 거짓도 진실 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고. 판단하기 모호한 싦의 연속이다.

“세가에 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지원하면?”

“주위의 이목도 있으니, 지원을 해줄 겁니다.”

“그래봤자, 쭉정이겠지. 아마 오는 놈 들은 네가 그동안 포섭했단 자들이 전 부일걸.”

정우의 팩폭에 이극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 말 그대로다. 여전히 가주의 신뢰 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3공자조차도 가 주의 눈 밖에 난 것이나 다름없는 현실 이다.

“공녀와의 혼약이 이루어진 이상, 토 사구팽은 하지 않겠지요.”

“그것도 전쟁이 끝난 이후잖아.”

강천과 세경의 약혼이 성사는 되었다. 공식적으로 언급은 되지 않더라도, 가 문과 문파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사람 의 약속은 언제든 깨질 수 있었다. 무엇 보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이혼이 큰 흠 이 되지 않았다. 혼인을 하고도 헤어지 는 마당에 약혼이 대수일까. 금강문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안 제약이기도 했 다.

“걱정할 거 없어.'

“남궁세가는 자존심이 강합니다. 단주 님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전력을 다할 게 분명합니다. 이는 다른 세가와의 관 계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 다.”

이극도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하고 있 었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직책에서 밀 려나 있다고는 해도, 세가의 책사를 도 맡아 해왔다. 그 정도 혜안을 가지고 있 었다.

“그러라고 밝힌 거야.”

“단주님이 강한 건 압니다만, 이건 너 무 무모합니다.”

“무모하긴, 설마 검호 따위를 상대하 는 데 내가 전력을 썼다고 보는 거냐. 이거 꽤 자존심이 상하네.”

“하오나, 저들은 그마저도 감안을 해 올 겁니다.”

“보면 알아.”

이극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 돌아섰다. 자신이 말을 한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 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귀영각의 정 보력을 총동원해서 남궁세가의 움직임 을 빠짐없이 파악해야 했다.

‘아무 계획 없이 움직일 사람이 아니

니까.’

돌아갈 곳이 없어 선택을 한 이극이 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흑금단주를 믿 었다. 그는 자신이 내뱉은 허황된 발언 을 반드시 실천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 지고 있었다.

“통제는 잘되는군. 그렇지?”

야옹,。왕

정우는 멀어지는 이극을 뒤로한 채 한 손으로 낚시를 즐기며, 다른 손으로 고양^를 쓰다듬었다. 고가의 비단잉어 를 먹어서일까, 주인처럼 잘 따른다.

“나브진 않아.”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다. 따 라서 정보의 통제가 심각하다. 보통은 이쯤 되면 각 언론사에서 대서특필을 해도 부족한데, 잠잠했다. 팽가와 남궁 세가가 주도해서 언론을 막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륙무림에서도 전쟁이 번져 나가기를 바라진 않고, 외신마저 통제하고 있었다.

정우는 고맙게 받아들였다.

난장판을 쳐도 시끄럽지 않아서 아주 편안했다. 알아서 정보를 차단하고, 정 보를 담당하는 부류 사이에서 알게 모 르게 퍼졌다. 일반인은 전혀 모르는 가 운데, 무림 간의 쟁투로 남게 될 거다.

실상 남궁세가와 팽가의 쟁투는 공공 연한 비밀이 되어 있었다.

무림에 속한 가문이나 문파는 귀추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 정우는 금강문임을 알렸다. 당연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로 만족하면 섭섭하지.’

정우의 행보는 이제까지와는 사뭇 달 랐다.

사혹문을 상대할 때와는 정반대로 흔 적을 남겨놓았다. 마치 물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도록, 시빗거리를 양산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남궁세가와 팽가 만을 염두에 둔 것 같지 않았다. 중국의 민족정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대 륙인들이 바라는 중화사상의 근간을 흔 들어댔다. 이는 자존심이 강할수록 반 발이 심해진다.

‘먹잇감은 늘어날수록 좋고.’

남의 나라라서 더 좋다는 금강문주의 말씀을 상기했다.

다만 절대 먼저 나서진 않는다. 그것 이 어떤 일이든, 위선이라 욕해도 사실 할 말은 없다. 건드릴 수밖에 없도록 만 들고선, 먼저 하지 않았다고 정의라고 표방하진 않는다.

정우는 다수의 정의를 따를 생각이 전혀 없다.

“설치 끝냈습니다.”

“잘했다.”

양용익은 정우가 내준 장치를 태원 지부 전체에 설치했다.

지부에 거주하고 있는 남궁세가가 고 용한 인원은 밖으로 내보냈다. 남아 있 는 인원은 흑금단과 이극이 데리고 온 귀영단이 전부다. 지부 전체의 5분지 1 도 다 쓰지 못할 만큼 자리가 남는다. 서울에 이만한 크기의 장원이 있다면 월세만 받아도 평생 돈 걱정 하지 않아 도 될 정도다.

스윽.

정우의 시선을 끄는 게 있었다.

“시계 좋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용익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흐 뭇해했다.

죽어버린 유진룡이 차고 있던 밴드형 손목시계다. 알고 봤더니 일반적인 고 급 시계가 아니고, 전투장갑으로 활용 이 가능했다. 일종의 기병이다. 공력을 주입하면 변형되어 병장기로도 변형이 된다.

“앞으로도 전리품은 너희들 거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단주님!”

양용익의 활활 타오르는 의지를 보고 있자니, 정우는 입맛이 좀 썼다.

어떤 의미로 동기부여는 확실한데, 주 인으로서 좀생이가 된 기분이다. 그렇 다고 내 돈을 주자니, 이건 좀 아닌 듯 싶다. 아쉬운 대로 통에 잡아 놓은 잉어 한 마리가 보인다.

“자, 받아.”

“예?”

“성과급이다, 팔면 2천만 원은 될 거

다.”

“감사합니다.”

손에 들린 비단잉어의 가치에 놀란 양용익이다.

자신들의 연봉과 비슷했다. 길고양이 가 뼈만 남기고 다 처먹은 이유가 있었 다. 정원에 비친 모든 것들이 다 돈이라 는 생각에 탐욕이 또다시 스멀스멀 밀 려온다. 어차피 죽지도 못하는 인생, 치 장이라도 잘하고 싶은 욕구가 팽배했다. 마치 남성을 상실한 내시가 돈과 권력 에 환장하는 것처럼.

“다 잡진 말고.”

“……아무렴요.”

잡는다고 다 2천만 원을 호가하진 않 는다.

“여기 만두 3인분.”

“여기요.”

여인이 어느새 만두를 가져와 식탁에 올려놓는다. 뚜껑을 열자 손으로 직접 빚은 먹기 좋은 만두가 고운 빛깔을 내 며 향기를 풍긴다.

“맥주도 하나 줘.”

“준비했죠, 헤헤!”

단골손님도 아닌데 취향을 알고 있었

다. 마시는 맥주까지도 내놓는, 준비성 이 대단히 뛰어났다. 그러자 중년의 손 님이 여인의 엉덩이를 톡! 치며 묻는다.

“어이, 서방 없으면 난 어때?”

“밤일은 잘해요? 전 최고가 아니면 안 되거든요.”

보통 여인은 아니다. 수줍어하기는커 녕 대놓고 물어본다. 여인의 박력에 사 내가 오히려 움찔하며 말렸다.

“여기 만두 추가!”

“술도!”

여기저기서 음식주문을 해 온다. 개중 에는 희롱하는 손님도 있었다. 뒤죽박 죽이 될 수도 있는데, 30대 중반의 여인 은 일목요연하게 처리를 한다. 계산은 물론 접수까지, 늘어선 손님을 모두 응 대할 즈음 장사는 마침표를 찍었다. 30 명을 수용하는 가게임에도 장사가 잘돼 서 매출이 높았다. 이 일대에서 아는 손 님만 아는 맛집으로 유명했다.

스윽, 스윽!

가게 정리를 마친 여인은 차를 한잔 마시고, 주방의 통로를 지나 방에 들어 섰다. 식당 내부에 쉴 수 있는 방이 있 었다.

이제 쉬나 했더니.

드륵!

버튼을 눌렀다.

바닥이 열리며 지하로 연결된 계단과 긴 통로가 보였다.

그녀는 계단으로 내려가 통로를 통과 해 공동에 들어섰다. 지하에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공동에는 육 각의 탁자가 있고, 노인과 중년인 다섯 명이 먼저 자리했다. 그들은 여인을 보 자 자리에서 즉각 일어나 직각으로 고 개를 숙였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이렇게 다 모이기도 오랜만이네요.”

평범한 만두가게 여주인인 줄 알았건 만, 범상치 않은 신분을 지녔다. 가게에 서 손님을 맞을 때와는 다른 기품이 있 었다. 나긋나긋했던 목소리에 힘이 실 렸다.

“예상과는 다르게 홀러가고 있습니 다.”

“변수는 확실하단 말씀이네요.”

“파견된 정보원에 의하면 금강문은 어설프게 다룰 문파가 아닌 듯합니다. 이미 한국 전체를 통제한다고 봐도 무 방합니다.”

“우리가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

군요.”

산서성의 태원 지부가 팽가에 점령당 하면서 상황이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었 다. 선택의 기로에 선 느낌을 강하게 받 았다.

산서지부장, 공명추가 그 자리에 있었 다.

“공 지부장이 보기엔 어때요, 그 사 람?”

“그는 무서운 자입니다.”

“남궁세가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예요. 한데 그가 그렇게 무섭던가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 다. 그는 만족을 모르는 흉포한 포식자 입니다.”

공명추의 흔들리는 눈빛을 본 여인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보기와 다르 게 가볍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지 않았 다면 철면검호에게 붙이지도 않았다. 이렇게까지 동요를 한다면 혹금단주라 는 자, 절대 만만히 봐선 안 된다.

“그가 바라는 건요?”

“선택입니다. 잘못하면 하오문을 멸문 시키겠다고 했습니다.”

하!

그들은 헛기침을 했다.

하오문이 비록 무림의 밑바닥을 전전 긍긍하며 살고 있다곤 해도, 어느 시대 에도 멸문을 당한 적은 없었다.

광오하다 못해 미친놈이었다.

“그는 미쳤군요.”

“그는 광인이 분명합니다! 어찌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여인은 하오문의 문주.

독심호리OW®), 여운랑이다.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하오문의 문주가 되었으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자리를 공고하게 지켜냈다. 독심이 들어간 별호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 다. 그런 그녀에게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흐름을 읽는 재주가 탁월하다. 그녀는 느꼈다. 이것이 광인의 공허한 발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직접 봐야겠는걸요.”

“안 됩니다.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모 릅니다!”

“절 못 믿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그녀의 시선을 받은 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단순히 문주로서의 뛰어난 능 력 때문에 그녀를 선택하지 않았다. 하 오문도 엄연히 무림에 적을 둔 문파다.

“당장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한 번은 버텨주어야, 그래도 모험을 걸어볼 수 있다.

그마저도 해내지 못한다면 선택은 무 의미하다. 사실 이쯤에서 갈아탈 배가 필요하기는 했다. 남궁세가는 위험하다. 위선이든, 아니든. 남궁세가는 정파의 중추다. 그들이 오대세가의 수장이 되 어 백도의 중심으로 떠오른다면 하오문 과의 관계를 청산할 가능성도 없다고 부정하긴 힘들다. 미래를 대비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하오문이 오랜 세월을 멸문하지 않고 버텨온 진실한 힘이다.

‘팽가라는 그늘도 있고.’

하오문의 그늘은 항상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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