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개미지옥 (2)
푸아앙!
다른 한쪽에서도 일방적인 학살이 자 행되었다.
팽세기의 보디가드, 공연화가 남아도 는 공력을 발출하며 일대를 파괴했다.
발출한 공력이 닿은 공간은 건물과 함 께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달려들던 열 명의 검대원은 공연화의 흡정 속성에 미라처럼 생기가 빨려나간 채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이건 꿈이야?”
하오문의 태원 지부장 공명추.
꿈을 꾸는, 지독한 악몽을 경험하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차가운 호랑이가 맥락 없이 죽고, 창천검대마저 나체로 무너졌다. 그것도 30분이 채 지나가기 도 전에 벌어진 대참사다. 계획대로 되 는 인생은 없다고 하나, 이건 그마저도 벗어나는 일이었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까지 했다.
“꿈 깨고.”
등 뒤에서 들린 저승사자의 진언(R 言).
공명추는 놀라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도망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발에 강력 한 아교를 발라놓았는지 지면에서 떨어 질 생각을 안 한다. 사신의 목소리가 이 럴까, 마른침이 절로 넘어간다.
“어때, 내 솜씨가‘?”
“……굉장하십니다.”
말투에서 장난기가 다분하다. 이 상황
이 재밌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평가를 부탁하고 있었다. 그게 지금 할 소린가? 제정신으로 보이진 않는다. 하나 방정 맞은 주둥이는 살기 위한 나불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하오문의 생존 본능은 남아 있었다.
“아부한다고 살려줄 거 같아?”
“……아부 아닙니다!”
“난 솔직한 사람이야.”
“……다 말하겠습니다, 싹 다!”
아는 걸 똑바로 말하지 않으면 살아 도 산 게 아닐 거라는 명백한 협박. 능 히 그리하고도 남을 위인임을 공명추는 확신했다.
‘……절명사신은 악마였어!’
겁천마검을 죽인 절명사신에 대한 평 가가 과대 포장되었다는 소문이 번졌다. 그 소문의 출처가 팽가다. 팽가에서는 절명사신이 겁천마검을 죽인 것을 달가 워하지 않았다. 당연히 소문을 축소하 려고 했겠지.
‘망할, 당했다!’
공명추는 팽가의 헛소리로 치부했다.
절명사신은 겁천마검과는 차원이 다 른 자다. 냉철한데다가 강했다. 그 앞에 서 그 무엇도 숨길 수가 없었다.
설령 숨긴다 해도 발가벗겨질 게 분 명하다.
“네가 보기에 팽가와 남궁세가 둘 중 누가 이길 것 같아?”
“……전에는 남궁세가였습니다.”
새끼, 눈치 빠르네.
동공 돌아가는 걸 보니, 머리도 잘 쓰 게 생겼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
“호오, 남궁세가가 꽤 하는 모양이 야.”
평소의 공명추라면 절명사신을 허풍
쟁이라 폄하했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단언하지 못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 한 파격적인 등장으로 판을 완전히 흔 들어버린 자다. 오늘을 기점으로 남궁 세가와 하북팽가는 거대한 폭풍 속으로 휘말리게 될 것이다.
절명사신으로 인해.
“하오문은 어느 쪽인데?”
“예?”
정체를 모를 거라 봤거늘, 공명추는 심장이 가라앉을 뻔했다. 솔직하게 말 하지 않았으면, 험한 꼴로 끝나지 않았 을 거다.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은 안 죽일게.”
“……남궁세가입니다.”
안심할 뻔한, 공명추는 이어지는 말에 얼어버렸다.
“나중엔 죽겠네, 싸그리.”
하오문에 소속된 문도의 수는 백만이 넘는다. 현재에 와서 개방이 거지소굴 에서 탈피하면서 교차되는 부분이 있지 만, 그만큼 엄청난 수를 자랑한다. 이를 다 죽이겠다고? 한데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무공을 모릅니
다.’
“무공을 모르는 게 어때서, 적이면 죽 이는 거지. 언제 그딴 거 따지면서 죽였 다고, 인권 타령할 거면 무림에 발을 들 이지 말았어야지. 너도 알잖아. 때론 아 무 죄가 없어도 죄가 되는 세상이라는 걸. 하물며 여긴 중국이잖아.”
전쟁에서 사람을 가려가며 죽인다고?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무공을 알 면 죽여도 되고, 무공을 모르면 죽이지 말라는 건가. 어차피 적으로 만나면 이 유 불문 가장 최적화된 방법을 사용해 야 한다. 대의명분에 목을 매, 어설픈 동정을 발휘하고 통수 맞지 않은 자가 없었다. 전쟁이란 어제의 친구가 적이 되기도 하고, 어제의 적이 친구가 되기 도 한다. 결국 승자의 역사를 위한 포장 된 위안에 불과하다.
‘나중에 그럴싸하게 포장하면 그만이 지.’
운 좋게도 중국은 문화혁명 이후로 통제된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습성 이 강해졌다. 중화라는 이름 하나로. 스 스로 미개함을 자처하면서 존귀한 척하 는 허세로 가득한 족속들이다.
“가봐.”
“……가도 되는 겁니까?”
“나중엔 죽겠지만, 지금은 안 죽인다 고 했잖아.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 람처럼 보여?”
“아닙니다.”
“틀렸어?”
“예?”
“난 때에 따라서 한 입으로 두말도 하 거든.”
“알……겠습니다!”
공명추는 살아생전 이토록 무서운 자 는 처음 봤다.
남궁세가의 가주도 이렇지는 않을 거 다. 무력의 수준이 아닌, 심기가 일반적 인 존재와 다르다. 정파 무림은 뒤에서 는 수작을 부려도, 이렇게까지 대놓고 말하진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거리낌 이 없었다. 무공이 높고, 명성이 높아질 수록 주변 체면을 감안하는 자와는 질 적으로 다르다. 수틀리면 체면이고 자 존심이고 가리지 않는다.
‘시험하는 거구나!’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한 다. 작금의 선택으로 인해 하오문의 생 존이 갈리게 될 것이란 강한 운명을 느 꼈다.
‘문주에게 말해야 한다, 반드시!’
하북팽가의 밀실.
조용히 처리할 사안이 있을 때면 사 용하는 팽가의 은밀한 심처다. 아는 사 람은 세가 내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가주 이하 직계혈족에게만 전해진 다.
팽가의 대소사를 맡고 있는 팽자겸이 은밀히 2공자를 불렀다.
가주의 명을 전하기 위해서고, 아는 자가 적어야 하는 일이다. 공식적으로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았기에 가주가 직 접 2공자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순혈을 이어받은 팽세운이 후계자가 되기를 바라고는 있었다.
문제는 3공자를 지지하는 세력도 과 거와 달리 많아졌다는 점이다. 그 중심 에 이극이 있고, 귀영각이 날을 세우고 있었다. 총관 중심으로 정보체계가 바 뀌기는 했으나,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 렵다.
“불편했나?”
“전 아버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마음 변치 않아야 하네.”
“당연하지요.”
팽세운은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작은 불안감이 있었다. 세기가 혹여 공 이라도 세우면 어쩌나 하는. 다행히도 세기에 대한 지원은 반도의 무인이 전 부였다. 주력은 세가에 온전히 보전되 어 있었다.
산서성에 남궁세가의 검호가 파견된 이상, 이 싸움은 보나 마나다.
‘세가의 주인은 나다.’
남궁세가와의 일전에서 공을 세워 세 가의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 해야 했다. 그 후 세기와 관련된 자들을 처리해버 릴 것이다. 특히 그 건방진 반도의 오랑 캐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날 주었던 모욕은 여전히 밤마다 상기되어 허공에 발길질을 하게 했다.
“전 언제 움직여야 합니까?”
“산서성에 이목이 집중되면 기회가 올 테니 경거망동은 금물이야. 남궁세 가와의 전쟁은 세가의 존폐가 걸린 사 안이다.”
팽자겸은 남궁세가와의 결전이 오대 세가의 미래를 결정지으리라 판단했다. 조금의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다.
‘흑금단주는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검 호라도 쉽지 않을 거다.’
산서성에 파견된 혹금단주가 얼마나
활약을 해주는가에 따라 전쟁의 성패가 달려 있었다. 당장은 지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어느 정도는 세가의 주력을 나 눌 필요가 있었다. 이번 작전은 사실 남 궁세가의 귀성도 알고 있을 거다. 불확 실성은 확실성으로 바꾸어야 했다. 세 가의 주력이 투입되었다는 확신을. 또 한 흑금단주가 전면에 나서줄수록 이득 이다. 남궁세가에서도 혹금단주의 정체 를 알고 있을 테니 방관할 수는 없을 것 이다.
띠링!
팽자겸의 휴대폰으로 동영상 메시지
가 도착했다.
-삼공자, 팽세기.
발신자를 확인한 팽자겸은 고개를 갸 웃거렸다.
이 늦은 시간에 연락이 올 거라고는 예상 못 했다. 지금쯤 산서성에 도착해 정비하기도 바블 텐데. 물론 딱히 이상 할 것도 없다. 이극과 흑금단주가 이끄 는 무력대만 달랑 보냈으니, 지원 요청 을 해달라는 걸 수도 있다.
“누굽니까?”
“세기네.”
“그 녀석이 애가 많이 탔나 보군요, 가자마자 연락을 하는 걸 보니. 지원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결정이 난 사안이네.”
“저런! 안됐군요.”
팽세운은 동생에게 심심한 위로를 했 지만, 팽자겸은 고소를 금치 못했다.
물론 내색하진 않았다. 가주의 의중이 팽세운에게 있는 이상, 세가의 일원으 로서 따라야 한다. 그것이 팽자겸의 의 무다.
동영상을 열었다.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보고는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말 보다는 영상이 훨씬 나을 테니, 보세요.
영상이 비쳐지고 있었다.
벌떡!
팽자겸과 팽세운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러난 광경은 말이 되지 않 았다. 상식적인 선을 확연히 벗어나 있 었다.
-보시다시피, 태원의 남궁세가 지부
를 공략했습니다. 여기 철면검호의 시 신도 있고요. 아무쪼록 가주껜 잘 말씀 드리세요.
“……말도 안 돼, 거짓말을!”
팽세운은 팽자겸이 있다는 사실도 잊 은 채 속마음을 드러냈다. 도착한 지 얼 마 되지도 않았거늘, 산서성 지부를 공 격하다니 납득 못 할 영역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팽자겸조차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 아들이지 못했다. 흑금단주라면 일정 부분 활약을 할 거라 보고, 이를 과대 포장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작금의 상 황은 계획을 훨씬 상회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안휘성 남궁세가의 본가에 비상이 걸 렸다. 하오문을 통해 태원 지부가 공략 당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남궁세가로 서는 전혀 뜻밖의 일이다.
산서성으로 파견된 팽가의 무력은 검 호와 창천검대로도 차고 넘쳤다. 하물 며 세가와 동조한 중소 문파도 꽤 있었 다. 당장 팽가에서 손을 쓰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가주의 명으로 수뇌부가 모였다.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혹, 우리가 모르는 팽가의 전력이 투입된 것인가?”
“확인된 바로는 아닙니다.”
팽가의 주력이 움직였음에도 몰랐다 면 정보력에 구멍이 있다는 뜻이 된다. 남궁세가의 전략을 책임지는 귀성*) 혁리무군의 책임이었다.
그는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서 팽가의 동향을 파악해놓은 상태였다. 이번 사 태에 다른 무력은 투입되지 않았다. 그 럼에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책사의 한계다.
“검호는 어찌 되었지?”
“죽었습니다.”
“팽가의 애송이가 검호를 대적할 수 있다고 보나?”
“팽세기가 아닌 절명사신이란 자입니 다. 하오문의 보고에 의하면 그가 검호 를 10수 만에 죽였다고 합니다.”
검호의 죽음도 불가능한데, 10수 만에! 도무지 믿기 힘든 결과다.
철면검호는 초입이기는 해도 절대의 경지에 발을 들였다. 세가의 장로급에 달하는 무력을 갖추었다. 그런 철호를 10수 만에 죽일 수 있는 자는 세가 내 에서도 흔치 않았다. 하물며 검호의 속 성은 무인에게 최악의 상성이다. 허를 제대로 찔리지 않는 이상, 동수의 무인 은 검호를 절대 죽이지 못한다.
“허, 팽가가우릴 속였군.”
“보고대로라면 운이 좋아서 겁천마검 을 죽인 게 아닙니다. 팽가에서는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 무리를 해서라도 반도 무림을 끌어들였을 테지 요.”
반한 정서가 팽배해지고 있었다. 소문
도 팽가에 좋지 않게 홀러간다. 굳이 반 도 무림과 손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그 럼에도 손을 잡았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란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그 결과 안일했던 작은 부분이 크게 다가오고 말았다.
“창천검대까지 무너뜨렸다면 팽가가 작정을 했다는 뜻으로 보이는군. 그렇 다면 물러설 순 없지. 총관, 반도의 오 랑캐에게 대륙의 기상을 보여줄 수 있 겠지?”
“조사를 해봐야 할 사안입니다. 성급 히 무인을 파견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아직 팽가의 주력이 산서성에 있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혁리무군은 좋지 않은 기분이 스쳤다. 빠진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 했다.
산서성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극 이 있었다. 가문의 혈족이 아님에도 가 주의 책사가 되었던, 대책 없이 움직일 만큼 어수룩한 자가 아니었다.
“그럼 반도의 오랑캐가 두려워 물러 서잔 말인가, 이 사실이 알려지면 세가 의 평판이 땅에 떨어지게 될 것이네!”
대장로 남궁환。] 귀성을 책망했다.
혁리무관은 강력하게 주장을 펼칠 수 없었다. 하필이면 반도 무림의 무인에 게 검호가 죽임을 당했다. 팽가라면 또 모를까.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남 궁세가로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대장로의 의견이 무시할 수도 없는 사 안이기도 했다. 그랬다가는 세가의 내 부 분열을 자초하는 격이 된다.
“대장로의 말씀이 옳아. 이번 사태를 조속한 시일 내에 수습하지 않으면 다 른 세가에서 본가를 우습게 여길 수도 있다.”
“확실하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
야 우리를 따르는 중소문파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여덟 명의 장로들도 의견이 일치했다.
혁리무관은 끝내 수긍했다. 자칫 사천 당가, 제갈세가, 황보세가가 입장을 선 회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압도적인 힘 으로 뭉개놓아야 했다.
‘의도한 것만 아니라면.’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팽가의 움직임 을 세세히 파악해야, 만약의 사태를 대 비할 수 있다. 현재 세가의 정보력을 총 동원하고 있는 중이다. 따로 정보망을 더 확보하려면 하오문의 도움이 필요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