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개전(開戰) (3)
다다다다!
사방에서 살기충천한 기운이 뭉쳐져 서 달려 나온다.
듬성듬성 빛의 물결을 이루고 있어, 밤이 깊은 시각임에도 시야 확보는 되 었다. 물론 무인에게 있어 어둠은 큰 장 애가 되지 않기는 했다. 다들 그 정도의 안법은 확보하고 있었다.
차자자작!
가슴에 고고한 백학을 수놓은 푸른색 제복을 입은 자들, 신속히 공간을 차지 하며 기세를 드러낸다. 고도로 정련된 살의가 군집이 되어 일대를 지배했다.
남궁세가의 정예 무력단인 창천검대 의 본모습이었다. 언제라도 검을 봅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벅, 저벅!
지부가 공격받은 와중에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걸음걸이마다 시선을 집중시 키는 박력이 있었다. 사위를 지배하는 제왕의 묵직함이다.
철면이라 불린 검호.
남궁진이 침입자를 확인했다. 분노로 철면이 깨지기 직전이거늘, 침입자를 확인하니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
“애송이가 공에 눈이 멀어 기도 안 차 는 짓을 벌이는구나.”
팽가의 3공자 팽세기가 떡하니 자리 하고 있었다. 태원에 당도했다는 걸 방 금 보고를 받았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 몸을 사려도 부족한 판국에 되레 습격 을 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 했 다.
그래서 더 기가 차다.
부르르!
의외성은 인정했다. 전혀 감지를 못 했으니.
남궁진은 자존심이 상했다.
팽가의 가주도 아니고, 이제 막 핏기 가 가신 애송이에게 무시당한 것이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내가 뭘?’
팽세기는 억울했지만, 말도 못 했다.
그때.
“철면이라며, 사람 가리나? 감정 풍부 한데.”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여 붙은 철면의 검호, 이를 비웃기라도 하 듯 평가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들렸으니 시선의 집중은 당연했다. 하물며 시정잡배처럼 건들거 리기까지 하니, 굉장히 거슬렸다.
“네놈은 누구냐?”
“사전 조사가 느리네, 전호경이시다. 잘 기억해둬라.”
정우의 친절함이었다.
문제는 있다.
남궁진과 창천검대는 이름만으로 정 우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정보 담당을 했던 자가 있다는 점이다.
“저자입니다. 절명사신이.”
“반도의 오랑캐가 한 줌의 명성을 얻 더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지.”
남궁진의 심기가 더더욱 불편해졌다. 자신이 직접 태원에 왔음을 팽가에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팽가의 정 예가 아닌 반도의 오랑캐를 앞에 세웠 다.
명백한 무시에 창천검대도 분노를 드 러냈다.
“됐고, 판단 잘해야 할 거야. 말한 마 디에 생과 사가 갈릴 테니까.”
마치 너희들 생사 여부는 내 손에 달 려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남궁진은 기 도 안 차는 헛소리를 어디까지 하나 지 켜볼 요량으로 답해주었다.
“어디 한번 해보거라.”
“태원에서 꺼져, 그럼 너희들의 안전 은 보장해주마.”
“허! 이놈이 돌아도 단단히 미쳤구 나!”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도 부족한 판국 에 협박을 해.
남궁진으로서는 점입가경의 끝을 보 고 있었다. 절명사신이란 놈은 제정신 이 아니었다. 반도의 오랑캐를 믿고 습 격을 한 팽세기가 불쌍했다.
“거절이냐, 후회할 텐데.”
“헛소리, 곧 피눈물을 흘리게 해주마. 놈들을 쳐맛!”
더 듣고 있기도 귀찮아진 남궁진이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기습도 아니고, 정문으로 습격을 했는지 확인 했을 뿐이다. 하물며 다른 이들도 아닌, 팽가의 애송이다. 죽이는 것도 아까웠 다. 사로잡아 팽가에 수모를 줘야 했다.
그편이 훨씬 낫다.
우우우웅!
전의와 살기가 뒤섞여 팽팽한 긴장감 을 자아냈다.
정우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후후.
거절은 당연하다.
사실 그냥 해본 말이다. 다만 증명은 필요했다. 선택의 기회를 줬다는 것을. 전생엔 기회는커녕 죽이고 봤으니까. 솔직히 귀신한테 물어볼 수는 없잖은가. 저승구경 하기 전에 선택 잘못하면 어 떻게 되는지를 보여줄 필요도 있고.
“용익아.”
“예, 단주.”
“평소처럼 해라.”
“물론입니다.”
한두 개도 아니고, 나사 여러 개가 빠 진 채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흑금단. 단 주의 명을 받자, 감추고 있던 본성을 드 러냈다.
숨겨진 본성이 발산되자, 강렬한 살기 가 응집되어 귀왕의 상을 그렸다. 그야 말로 어둠을 지배하는 귀신의 그림자였 다.
흑금단은 아까부터 창천검대가 마음 에 들지 않았다.
비교가 돼서 더 짜증이 치밀었다.
‘다 명품이네!’
‘돈으로 처발랐구나!’
‘누군 만 원도 없어서 빌빌거리는데!’
‘신발하며, 시계하며!’
흑금단의 제복은 단복이며, 두 벌로 빨아가며 입고 있다. 수선이 필요하면 본인의 월급에서 차감이 들어간다. 그 에 반해 창천검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제복을 제외하고 명품으로 도배가 되었 다.
“전장의 부산물은 너희 거다.”
정우의 그 한마디가 도화선이 되어 흑금단의 살의를 몇 배로 팽창시켰다.
반드시 죽여야 할 불구지대천의 원수 가 되어버린 창천검대다. 창천검대를 향한 흑금단의 눈빛은 어두운 골목길에 들어선 순진한 어린양을 마주한 늑대와 같았다. 순화하면 배고픈 길 고양이 앞 에 놓인 감성돔의 처지랄까.
“제복좋네!”
“밴드 좋네!”
“신발 좋네!”
“반지 좋네!”
신병(神病) 걸린 사람처럼 구호마저 광신도다.
갑자기 치솟아 오르는 활화산처럼 흑 금단은 엄청난 기세를 발산했다. 상상 도 못 할 본인들도 모르는 미지의 능력, 잠재력까지 격발되었을 때 이런 기세를 발산할 수 있으리라.
결연한 기호지세.
응?
침입자를 향해 검을 봅아 들었던 창 천검대는 혹금단의 살의에 멈칫하지 않 을 수 없었다. 그들이 생각해도 이해 못 할 가공할 살기였다. 이건 뭐 용의 역린 을 건들린 듯 광기에 젖어 있었다.
‘……뭐야, 이것들!’
쳐들어온 놈들이 더 화를 내니, 적반 하장의 끝판왕이다.
무엇보다 저들의 광기에 젖어들어 떠 드는 소리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갑자 기 신발이 왜 나와? 그게 할 소린지, 단 체로 정신들이 나간 모*]다. 하긴 정 신이 나갔으니 정문을 부수고 쳐들어왔 겠지.
“속임수다!”
“허세에 속지 않는다!”
창천검대는 혼선을 주기 위한 수작으
로 봤다.
그들은 긍지 높은 남궁세가의 정예 무력단이었다. 반도의 하찮은 무인들과 는 격이 다르다. 곧 어처구니없는 수작 이 통할 만큼, 현실이 호락호락하지 않 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흥, 허튼짓을!’
마인에 비견되는 광기를 줄기줄기 뿜 어대고 있으나, 남궁진의 눈에도 허세 로 보였다. 그가 이끄는 창천검대를 굳 게 믿었다.
쿠아아앙!
수백의 검과 검이 부딪치자, 고요한
어둠을 찢어발기는 굉음이 연쇄적으로 토해진다. 200 대 500의 격돌. 숫자의 차이도 있었다.
누가 봐도 창천검대가 유리해 보였다.
“.아니?”
보나 마나 한 승부로 취급했던 남궁 진의 안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 도 그럴 것이 단 한 줌도 예상하지 못했 던 광경이 펼쳐졌다.
쿠다다당!
격돌의 흔적이 유화로 그린 그림같이 선명하다.
창천검대의 50명이 튕겨 나가버렸다.
절정 이상의 검수로 구성된 창천검대다. 창천검진(蒼天劍陣)을 형성하여 대적을 했음에도 밀려버린 것이다. 어째서일까? 방심? 그럴 리가 없다. 창천검대는 설령 적이 약하다고 해도 방심은 하지 않는 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적은 강하다.
기선을 제압한 혹금단은 수라대검진 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광기에 젖어 무 턱대고 달려들었던 선수洗手)와 달리, 단체의 난전이 펼쳐지자 검진을 효율적 으로 운용해나갔다.
50명을 쓰러뜨렸다곤 해도 수의 격차 는 줄어들지 않았다. 한 명이 두 명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단 체가 되면 산술적으로만 되지 않는다. 전장에 선 장수가 1만으로 10만을 상대 하는 전술로 한 명당 열 명씩만 죽이면 된다고 말했지만, 실제 전투는 그리 간 단하지가 않다. 그렇기에 다구리가 굉 장히 무서운 전술이다.
“어림없다!”
“두 번은 당하지 않는다!”
선공이 통하기는 했어도, 창천검대는 호락호락하게 당하진 않았다.
전열을 재정비하고 막아섰다. 그런데 도 전투의 흐름은 혹금단에게 있었다. 흑금단은 다구리 전술의 최적화를 이루 었다. 상대가 두 배가 되든, 열 배가 되 든. 공수(攻守)의 공간을 최적화 하여, 효율적인 전투를 만드는 데 탁월한 능 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수가 많아도 대적하는 공간은 한정되었다. 그 한정된 공간을 적에게 강압하여, 결과적으로 수의 이득을 챙 긴다. 이렇게 말하면 쉬워 보이나, 그걸 대수롭지 않게 해내고 있는 흑금단이 대단한 것이다.
큭
창천검대원 공수찬은 쾌검이 특기다.
그는 공격을 한 직후, 허리를 보았다. 붉은 실선이 점차 벌어지며 선혈을 토 해냈다. 섬전십삼검뢰(閔電十三劍雷)를 펼쳐냈기에 적의 숨통을 끊어낼 거라 확신했거늘, 웬걸. 검은 막히고, 뜨끔한 기운이 육신을 강타했을 때 사선(死線) 을 건너고 말았다.
믿어지지 않는 공수의 완벽함이었다. 막고 나서 밀어내는 찰나의 간격을 비 집고 들어간다는 건, 100년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수제 시계의 내부처럼 모 든 톱니가 정해진 규격처럼 맞아 들어 가고 있음을 뜻했다.
털썩!
전투의 개전처럼 50명이 한꺼번에 쓰 러지진 않았지만, 창천검대는 깨닫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해지기는 커녕 혹금단은 차곡차곡 시체를 쌓아갔 다. 시체 쌓기의 최적화를 이룬 무력단 임을 증명했다.
“……오랑캐 따위가!”
창천검대의 대주, 멸악검(滅惡劍) 유진 룡은 분노했다.
남궁세가의 검이 변방의 오랑캐가 휘
두르는 잡검(雜劍)에 밀린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대중원의 무인으로서 치욕스러운 결과였다.
“응‘?”
그그 그 그 그\
유진룡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기괴하게 웃고 있는 흑금단을 봤기 때문이다. 눈빛에 서린 탐욕이 어마어마했다. 그것이 향하고 있는 방향, 고가의 손목밴드가 있었다.
“밴드 좋네!”
“……뭐시라!” 기도 안 찬다.
물욕을 대놓고 드러내다니, 시정잡배 보다 못하다. 그렇다면 기만전술인가? 아니었다.
혹금단 전체가 탐욕에 찌들어 있었다. 반드시 가지고 말겠다는 광적인 기운의 집합체였다. 정말로 원하고 있어서 더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 다.
크억!
저런 시답지 않은 시정잡배에게 창천 검대가 무너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 가는 창천검대는 패배하게 된다.
반전을 만들어야 했다.
“헛소리, 남궁의 검은 무적이다!”
유진룡이 창천검대의 전열을 지속적 으로 다독이며, 속성 카드를 꺼내 들었 다.
공간의 지배력을 늘려 흑금단의 최적 화된 궤적을 비틀어야 했다. 전투를 통 해 그가 알아낸 정보였다.
이를 위해서…….
“……제기랄!”
창천검대의 공간지배력 속성을 가진 열 명의 검대원이 속절없이 죽었다.
흑금단은 기선 제압을 놔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창천검대의 활로(活路)를 차근차근 끊 어내며 궁지로 몰았다. 점차 압도적으 로 변해가는 전장의 흐름에서도, 흑금 단은 만약의 사태를 미연에 차단했다. 실로 놀라운, 그야말로 전투를 위해 태 어난 전귀(戰鬼)의 화신들이었다.
三7 三? 그三?!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친놈들의 되도 않는 광소(狂笑)였으나, 지금은 지옥에 서 올라온 악귀의 귀곡성(鬼哭聲)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