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81화 (381/500)

제 3장

개전(開戰) ⑵

혹금단주의 암계는 사흑문을 상대하 면서 봐왔다. 그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무공만이 아닌 지략까지도 뛰어 난 자다. 그가 허투루 말을 꺼낼 위인이 아님을 이극도 잘 안다.

“남궁세가를 경시하면 안 됩니다.”

“누가 누굴?”

정우는 존재감을 숨기지 않고 이극에 게 드러내었다.

흑금단주의 숨겨진 진력을 경험한 이 극의 온몸은 순식간에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도무지 닿지 않을 끝을 모르는 공능이었다. 숨겨진 힘이 더 있을 거라 고는 예상했지만, 흑금단주는 항상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왜 무력을 드러냈을 거 같아?”

“가주를 믿지 않았군요.”

“훗, 당신도 믿지 않잖아.”

“저는 단주께서 그 자리에 만족한다 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극은 소름이 돋았다.

그는 오랫동안 가주를 보필해왔다. 당 연히 그의 성향을 하나부터 열까지 알 고 있었다. 하지만 흑금단주는 짧은 시 간 가주의 심중을 꿰뚫어 보았다. 가주 는 한 번의 실패라도 오점이 남은 자를 신용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피를 나 눈 자식일지라도. 흠집이 있는 자는 가 문의 후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 었다.

결국 가주의 의중은 2공자였다.

“본인조차 지키지 못할 신뢰, 그걸 내 가 왜 지켜야 하지. 웃기지도 않은 개소 리지, 안 그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와 같았 다.

마주하는 이극은 숨조차 마음대로 쉬 지 못했다. 잘못 말했다가는 그 날카로 운 서슬에 베일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나 치게 시원하며, 통렬하다. 가문의 누구 도 말하지 못한 가주의 역린이었다.

가주는 완벽하기를 원하나, 결국 실패 를 하고 말았다.

오점이 남아 있음에도 본인은 아니라

고 부정하는 꼴이었다. 그러면서 실패 한 수하를 쓰다 버린 도구처럼 버렸다.

이극은 그것으로 인해 화가 났다.

“자, 이제 말해봐.”

“속일 수가 없군요.”

“속이고 싶으면 해, 난 강요는 안 하 거든.”

“차라리 강요를 하시지요. 당분간은 단주님의 전력을 확인하고, 소문을 낼 겁니다. 당연히 2공자님의 비밀 병기로 요.”

팽가에선 흑금단주의 전력을 겁천마 검 이상으로 보고 있지만, 남궁세가는 아직 모른다. 그 점을 십분 활용할 것이 다. 최대한 흑금단주를 팽가의 최종 병 기로 여기도록 노력할 게 분명하다.

“하나, 남궁세가의 귀성을 속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귀성?”

“귀신도 속인다고 알려진 자입니다.”

“원래 귀신은 속이기 쉬워, 차라리 사 람이 어렵지.”

정우는 죽은 자를 두려워해본 적이 없다. 사라져 버린 자를 두려워한다는 것 자체가 심중이 불안하다는 방증이다. 결국 살아 있는 자만이 적수일 분이다.

죽어버린 자는 허울뿐인 명성에 휩싸인 껍데기에 불과했다.

“어찌하실 요량이십니까? 아무리 계 획을 세웠다곤 해도 남궁세가의 주 전 력과 조우한다면 간단치 않을 겁니다.”

“아니, 아주 간단해.”

“그 무슨?”

“양쪽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면 되니까.”

이극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겠다니, 진의를 파악할 엄두가 나지 않을 지경이다. 과 연 그7}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일까?

겁천마검과 대공자를 엮어서 보내버 린 괴물이.

‘이런 괴물을 상대하겠다고?’

이극은 두려움과 동시에 안도감을 맛 보았다.

가주의 장막에 있을 때보다 더 신뢰 했다. 하지만 적이 되면 가장 무서운 자 였다.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 마음속 으로 몇 번이나 다짐을 했다.

“저, 단주님?”

“왜?”

“저 가주 안 하면 안 됩니까?”

“맘대로 해.”

“정말요?”

“팽가의 가주는 넉넉한 사람이니까.”

“그런.”

팽세기는 이쯤에서 빠지고 싶었다. 그 러나 빠질 수가 없다. 전장의 한복판으 로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야 하는 팔 자다. 강제로 탄 배에 내리지도 못하다 니, 답답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버 지는 가지 않겠다고 하는 순간 버릴 게 분명하고, 주인과 내통한 사실까지 드 러나면 살기 어렵다. 둘째 형도 순순히 놔주지 않을 테고.

우울해진 팽세기는 그 와중에도 미녀

탐지능력은 발동되었다.

사내의 시선은 항상 모르는 미녀를 향한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리 예뻐도 자기 여자가 되면, 미안하지만 시선처 리가 상당히 곤란해진다.

팽세기가 보기에도 그녀는 굉장한 절 세미녀다.

눈이 호강했다.

“한데, 저 여인은 누굽니까?”

“네 보디가드.”

“그럼 제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가 요?”

“할수있으면.”

뭔 대답이 그래.

해도 된다는 거야, 못한다는 거야. 이 상하게도 그녀와 마주했을 분인데, 힘 이 무척이나 빠진다.

마치 정력이 고갈되는 기분……이 아 니잖아.

“……흡정공!”

“같이 자든가.”

흡정공을 익힌 여인과 자라니, 그게 할 소린가. 공력이나 내놓고, 뒈지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안 잡니다!”

“자고 싶을걸.”

팽세기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평소 성욕이 왕성한 편이다. 저런 미 녀와 함께하는데, 무탈하면 그게 더 이 상하다. 한데 저 여인은 독을 품은 장미 다. 품는 순간 온몸의 정기가 쭉쭉! 빨 릴 거다. 여자에 환장한 사내도 당장 죽 는다고 하면 서지도 않을걸. 문제는 색 공을 발휘하지 않았음에도 무지막지한 색기를 홀린다는 사실이다. 성욕에 미 치면 간혹, 죽음도 불사하는 경우가 있 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면 이걸 배워야 해, 간단히 파동

을 발생하는 수법이니 너 같은 돌대가 리도 익힐 수 있을 거다.”

정우는 공연화를 조정하는 방법을 팽 세기에게 가르쳐주었다.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열 개의 파동으로 구현되는데, 내공만 조절하면 된다.

“자고 싶으면 자도 돼, 조절이 될지 안 될진 모르지만. 안 되면 발리기밖에 더하겠어. 더욱이 사내의 로망이라며.”

“차라리 다른 보디가드를 주면 안 됩 니까. 저번에 본 그분들로.”

팽세기가 보기에 최고의 보디가드는 실드였다.

얼방하게 생기긴 했는데 방어력 하나 는 최강이다. 살아오면서 그토록 안전 해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전장이 평온 했다. 마치 그 기분은 과학적인 침대에 누워 스프링의 탄력을 겸허히 받아들이 고 있는것 같달까.

“오냐오냐해 주니까, 끝도 없네. 신병 교육 다시 받을래?”

“감사히 사용하겠습니다!”

실드를 데려올 거면 공연화가 필요 없었다. 굳이 공연화를 데려온 이유는 바로 지금을 위해서다.

“한 가지 알려주지, 잘만 조절하면 공

력을 더 늘릴 수도 있다.”

“조절 잘못하면요?”

“누차 말하지만 남자의 로망이다.”

“그냥 안 할랍니다!”

“하게 될걸.”

잊고 있었다.

이 인간이 악마임을.

속삭이고 있었다.

네가 버틸 수 있을 거 같으냐! 이러면서 가주는 왜 시켜!

팽가의 동향은 남궁세가의 정보망을

벗어나진 못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하

오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일상 속 에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하오문의 정보원이다. 사회 곳곳에 녹아들어 있 기에 정확한 정보력과 방대한 조직망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뛰어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어 도, 힘의 논리 앞에서는 무용하다. 언제 든 뒤를 봐줄 배후와 끈이 있어야 했다. 실상 하오문은 남궁세가의 명을 거절하 지 못할 처지다. 남궁세가가 작정하면 하오문의 전체가 위험해진다.

산서성 태원, 남궁세가의 지부.

태원의 동쪽으로 하북팽가의 지부가

있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태원에 파 견된 남궁세가의 무력대는 창천검대이 며, 지휘하는 자는 철검검호 남궁진이 다. 그는 남궁세가를 대표하는 열 개의 검 중 하나다.

“팽가의 주력이라고?”

“그렇습니다.”

“반도의 무인이 섞여 있다지.”

“일전에 사혹문과의 결전에서 큰 공 을 세웠던 절명사신이라는 자입니다. 가벼이 볼 자는 아닙니다.”

“쯧, 팽가도 다됐군. 오랑캐를 끌어들 이고.”

금강문은 들어보지도 못한 문파에 불 과했다. 반도에서 이름이 알려져 봤자, 대륙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한국은 대륙의 지배하에 있는 신하국일 분. 소 국에 도움을 청하다니 대국의 무인으로 서 치욕스러운 줄 알아야 했다.

“이따위 유치한 전략으로 우릴 유인 하려고 하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남궁진은 팽가의 유인작전이라 판단 했다.

가문의 직계를 내세운 건 속이기 위 한 기만책이었다. 결과적으로 놈들이 노리는 목표물은 다른 쪽에 있을 공산 이 컸다.

뻔히 보이는 기만전술에 속을 만큼 어리석진 않다.

“하나 날 노리고 왔다면 대접은 해줘 야겠지.”

설령 유인책일지라도, 도전해 온다면 싹을 지운다. 그는 항상 그렇게 해왔다. 철면의 검호라 불리는 남궁진의 서슬이 날카롭게 빛났다.

찌릿!

광폭한 기운이 찌르고 들어왔다.

남궁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위 험 신호가 육신에 경고를 주었다. 아니 나 다를까, 거대한 힘의 파장이 번져온 다.

정점에 도달하자.

꽈아아앙!

굉음이 토해지며 태원 지부가 크게 흔들렸다.

놀란 무인들이 폭발의 위치를 찾았다. 폭발이 일어난 지점은 정문이었다. 누 군가 정문으로 쳐들어왔다는 결론이 나 왔다.

그러자 놀람도 잠시, 분노가 팽창했 다.

“어떤 놈들이 감히!

남궁진은 차기 검왕의 후보로 평가받 는 절대의 고수다. 하물며 태원에 있는 창천검대는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5개의 검대 중 하나였다. 겁도 없이 습격도 아 니고,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다니. 검호 의 자부심이 살기로 돌변했다.

폭발에 의한 진동이 잠잠해질 무렵, 빛을 가렸던 먼지가 가라앉았다.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던 남궁세가의 태원 지부.

정문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부를 둘러싸고 있는 담벼락에 10미터에 달하 는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거힘 조절이 좀 안됐네.”

살짝 친다는 게, 힘을 좀 더 썼다는.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런 사소한 실수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뉘앙스다.

“그렇지?”

“……그렇지요.”

이극은 대답을 하면서도 기가 막혔다. 작전 자체는 기습이 맞는데, 아닌 밤 중에 정문을 부숴버렸다. 정문을 지키 고 있는 남궁세가의 무인과 함께. 습격

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벌써부터 지부 안에서 살의가 넘쳐흐 르고 있었다. 곧 준비를 하고 달려 나올 텐데, 이 느긋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전장에 나선 장수와는 거리가 멀다.

‘이놈들도 그렇고.’

2백의 혹금단이 대기 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대수롭지 않은 표정 들이다. 콧구멍을 후비고 난 후 털어내 며 건들거리는데 양아치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모르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었다. 알면서도 다 들 무사태평이었다.

혹 긴장을 풀기 위해서 태연한 척하 기는…… 개뿔!

‘남궁세가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구 나!’

이극은 이 자리에 팽가의 무인이 없 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장면을 봤다면 그리 맘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반도의 오랑캐라고 무시 했던 세가의 무인들은, 금강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아야 했다. 저 들은 대륙의 무인이든, 아니든 거리끼 지 않았다. 오만하다는 평가마저도 부 족하다. 얕보이고 있는 쪽은 오히려 대 륙 무림이다.

흑금단이 이럴진대, 흑금단주는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이극이다. 그가 보여주 었던 모든 것들이 가식이자 위장이었 다.

본래의 모습은 누구보다 오만했다.

“내 옆에 서.”

“예?”

얌전히 군중 속에 파묻혀 있으려고 했던 팽세기는 단주의 부름에 식겁했 다.

의도는 분명하다. 단주가 이 무리의 주인이기는 해도, 얼굴마담은 자신이다.

정문은 자기가 부수고, 항변은 자신보 고 하라는 거다.

“걱정 말고. 설마 나 못 믿는 거냐?”

“아닙니다!”

안이긴! 여긴 밖인데, 라고 하려던 정 우는 묵직하게 참아냈다. 시대에 뒤처 지지 않은 센스와 받아들일 줄 아는 포 용력이라 자찬했다.

‘역시 감이 죽지 않았어.’

정우는 뚫린 정문을 통과해 넓게 펼 쳐진 태원 지부를 보았다.

확실히 땅덩이가 크니 지부조차도 우 리나라의 본문보다 더 컸다. 규모의 경 제를 무시하기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 다. 과거에도 그렇고, 대가리로 밀어붙 이기에는 최적화를 이루었다. 중세 시 대에 사막이 가로막고 있지 않았으면 중국이 세계를 먹었어도 이상하지 않았 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미래가 어찌 변할지는 모르지만, 중국 의 사상은 문제가 있었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하여 주 변을 먹어치우려 한다면, 그 반대도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얌전히 주 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았으면 될 것을, 욕심을 부리니 기회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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