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개전(開戰) ⑴
-하북팽가는 정파로서 하지 말아야 할 금기에 손을 댔다.
-금지된 마물, 천혈강시를 제조했다.
금강문이 하북팽가에 당도하기 직전
소문이 파다하게 번졌다. 이전에도 언 급되었던 소문이기는 하나 증거는 없었 다.
이번은 좀 다르다.
강시 제조에 필요한 재료의 일부가 유출되었다. 팽가에서는 사태의 심각성 을 인지해 즉각적으로 부정했지만, 소 문은 일파만파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남궁세가에서 선전 포고를 했다.
-오대세가는 하북팽가의 불미스러운 소문으로 인해 정파로서의 위상이 추락 했다. 소문의 진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하북팽가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소문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지 않는 다면, 본 세가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 이다.
남궁세가의 선전 포고는 하북팽가의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트집이었다.
그 말 그대로 해석하면 가문의 심처 를 남궁세가에 공개하라는 뜻이다. 그 것도 팽가의 의지가 아닌, 남궁세가의 강압에 의해. 그리되면 세간의 시선이 하북팽가를 어찌 보겠는가. 하북팽가와 연관된 중소문파와 사업장까지도 신뢰 를 잃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북팽가와 금강문이 손을 잡았다는 소식이 번졌다. 반한정서가 날이 갈수 록 심해지는 가운데, 금강문이 하북성 에 도착한 증거사진이 공개되었다.
파아앙!
내리친 탁상이 맥없이 부서져 나갔다. 소문을 확인한 팽우경의 분노가 고스란 히 전달되었다. 일전 사흑문을 처리할 때처럼 금강문을 이용해 은밀하게 처리 하려고 했거늘, 시작부터 비걱대었다.
“증거를 남기지 말라고 했잖아.”
“송구합니다. 하오나, 일전의 의심이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가문의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는 의심 을 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밝히기 어 려운 사실들이 외부에 공개되었다. 문 제는 당장 간자를 잡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남궁세가가 선전 포고를 해 왔 다. 이런 와중에 간자를 색출하는 것은 내부의 혼란을 일으켜 자중지란을 자초 하는 격이다. 어쩌면 이마저도 남궁세 가의 노림수일 수 있기에 답답함만 가 중되었다.
“다른 세가는?”
“남궁세가와 입을 맞춘 듯합니다.” 남궁세가의 선전 포고대로 가문의 빗 장을 푼다 해도 증거는 나오지 않는다.
어떤 병신이 증거를 버젓이 내버려두 고 문을 열겠나, 사전에 다 처분하고 지 워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선전 포고에 문을 열어주었다는 꼬리표 가 남게 된다. 이는 하북팽가는 남궁세 가의 아래임을 확인 사살하게 되는 격 이다.
“금강문과의 협상이 드러나는 바람에 꺼리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금강문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 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시간이 걸리더 라도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했었다. 산동성을 지나 산서성에 흑금단이 도착 해 있었다. 그들의 동선을 수시로 확인 했기에 탓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돌이키기에는 늦었겠지?”
“그렇습니다.”
금강문과의 협상을 물릴 수도 없다.
선전 포고를 한 이상 남궁세가도 이 전처럼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않을 게 분명하다. 둘 중 누가 됐든 항복을 할 때까지 끝장을 볼 수도 있다. 제갈세가, 사천당가, 황보세가가 중립을 지키겠다 고 했으니 협조를 바라기도 어렵게 되 었다.
“흑금단주는 강합니다. 그는 능히 남 궁세가의 전력을 충분히 약화시킬 겁니 다.”
“확실히 위험한놈이야.”
팽우경을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근본 적인 이유는 금강문이 결코 호락호락하 지 않다는 사실에 기반한다. 특히 30대 에 절대의 경지에 도달한 흑금단주는 보통 놈이 아니었다. 시험 삼아 보낸 팽 우진이 힘도 써보지 못하고 당할 정도 면, 능력은 차고 넘친다.
“난 놈이 맘에 들지 않는다.”
“당연합니다.”
“그런데도 믿어야 하나?”
“도구일 분, 감정을 이입할 필요는 없 습니다.”
“내 아들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불가능합니다.”
팽우경의 마음에 걸리는 점, 그것은 바로 팽세천의 죽음이었다.
흑금단주와 사흑문주를 함정에 빠뜨 릴 계획을 세웠거늘, 도리어 당해버렸 다. 그때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 데, 혹금단주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의 심이 든다. 놈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 한 것이다. 팽우진이 그리 간단히 당했 다면, 세천이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나 아무런 증거가 남지 않았다. 대 폭발을 일으켜 모든 증거가 산화되어 버렸고, 겁천마검과 세천의 주검만이 돌아왔다. 아들의 주검에 남겨진 흔적 은 분명 겁천마검의 절기였다.
“남궁세가의 선전 포고는 오대세가의 수장임을 공표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 다. 신중한 성향의 검왕이 전후 재지 않 고 선전 포고부터 하지는 않았을 겁니 다.”
“안다. 계획대로 모든 힘을 결집시키 고, 남궁세가를 유인하는 데 주력하도 록.”
남궁세가를 대적할 준비는 오래전부 터 세워졌다.
팽우경은 더 이상 남궁세가의 아래에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결판을 낼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검왕이여, 끝장을 보자!’
검과 도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 결과 가 과정을 증명할 것이다.
정우는 하북팽가의 정문에 당도했다.
웅장한 필체로 음각된 현판이 하북팽 가의 위세를 나타낸다. 그러나 세가 전 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일전 사흑문 때 와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의 하북팽가는 여유가 있었으나, 현재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오대세가의 주인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팽배했다. 세가 의 명운이 걸려 있음을 다들 알고 있었 다.
“되놈들이 면은 잘 만든단 말씀이야.
그래서 되면되면하다고 하는 건가, 크 하하하하하!”
데면데면 아닌가, 한국어를 잘못 배웠 나?
“혼잣말이고, 칭찬이다.”
“?(빠직)!”
정우는 팽가에 오기 전 탄탄면 열 그 릇을 가뿐하게 해치우고, 팽가의 목록 에 달아놓았다. 우연하게도 팽가가 운 영하는 직영 사업체였다.
“억울하면 너도 해. 대가는 알아서 챙 기고.”
“아닙니다.”
나도 했으니, 너도 해라.
상호존중처럼 보이나, 실상은 전혀 아 니다. 말은 내뱉어도 되지만, 책임을 온 전히 져야 했다. 무엇보다 성깔 더러운 혹금단주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이다.
장경은 팽가로 오는 여로가 평생을 합친 시간보다 길었다. 혹금단주는 언 제 터질지 모르는 시간폭탄과 같았다.
정문을 통과해 내당으로 들어갔다.
총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직접 나와 마중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혹금단주의 위상이 전과 다르다는 뜻이다.
그가 팽가의 중요한 손님임을 확인했 다.
“어서 오게. 오는 길에 불편하진 않았 나?”
“그럴 리가요, 교육이 아주 잘되었더 군요.”
팽자겸이 넌지시 맹호십도를 보았다. 담담한 시선. 자신의 의도를 완벽히 감 추고 있었다. 하나 그의 날카로운 통찰 력을 피하진 못한다.
‘죽여 달라고 했더니, 완전히 죽여 버 렸군.’
떠나기 전의 맹호십도는 기세가 상당 했다. 젊은 무인의 패기로 뭉쳐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마주한 맹호십도는 현실의 차가운 벽을 체감한 듯했다. 넘어서지 못할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를 경험했으 리라.
‘가지고 놀았군.’
세가의 젊은 무인을 대표하는 맹호십 도의 기가 꺾인 이상, 당장은 충돌이 일 어나지 않을 거다. 임시방편이기는 해 도 이제부터는 가주의 명을 받아 남궁 세가를 단죄하는 대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주께서는 안녕하십니까? 인사라도 드려야겠습니다.”
“공무가 바쁘셔서 당분간은 볼 수가 없네.”
“하긴, 이럴 때일수록 요양을 잘해야 하겠지요.”
“뜻 모를 말을 하는군. 난 분명 공무 라고 했네. 자자, 시간이 없으니 어서 내 집무실로 가세.”
팽자겸은 평상시처럼 털어내려고 하 지만, 입맛이 썼다.
금강문이 팽가의 사정에 밝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떠보는 수작에 휘말릴 만큼, 그는 가볍지 않았다. 최대 한 빠른 시간 내에 혹금단주를 산서성 으로 보내야 했다. 그가 나서서 산서성 에 혼란을 일으키는 동안 팽가의 주 전 력을 움직일 것이다.
‘ 아!’
혹금단주의 뒤를 따르는 여인.
그녀를 본 팽자겸은 저도 모르게 탄 성을 삼켜야 했다. 이는 세가의 다른 이 들과 다르지 않았다. 여인으로서 가져 야 할 모든 미를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완벽했 다.
‘……그분이 아니다!’
미혼공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사내를 빨아들이는 마력을 지녔다. 여 인이 미혼공까지 사용한다면 과연 어떤 사태가 발생할까? 대륙의 사내들이 그 녀의 발아래서 개처럼 헐떡거릴 것만 같다.
“색기 그만 부려라, 처맞기 싫으면. 이게 툭하면 염기를 부리고 지랄이야!”
“죄송해요, 주인님.”
정우의 훈계에 병기로 개조된 공연화 는 전혀 다른 여인이 되었다.
좀 전까지의 색기 좔좔 흐르던 모습
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현숙 하고 현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여자의 변신은 범죄라고 하더니 무서울 지경이 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전혀 다 른 여인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한 가 지는 분명하다. 어떤 분위기를 풍겨도 아름답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못했다.
‘응?’
명령 시, 진동이 느껴진다.
팽자겸의 속성은 진의를 파악하는 눈 이다. 공간의 흐름이 선으로 표현이 되 었다. 선의 굵기와 색에 따라서 거짓과 진실이 구별된다. 혹금단주가 여인에게 명령을 내릴 때 미세한 파장이 있었다. 그 파장에 의해서 여인이 태도를 바꾼 다. 저급한 말은 마치 그 파장을 숨기기 위한 방편처럼 보인다.
‘뭔가 있군.’
익숙하기까지 한 파동이다. 물론 팽자 겸은 내색하지 않았다. 후일 어떤 식으 로든좀 전의 파동은 의미가 있을수 있 다. 어쩌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농 후했다. 굳이 지금 당장 밝혀 흑금단주 의 의심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분석해보면 알겠지.’
맹호십도를 보니, 같이 오면서 수상한
점을 발견한 듯하다. 지극히 사소한 일 이지만, 그는 무시하지 않았다. 작은 편 린이 모여 커다란 줄기가 되듯이, 큰 변 수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특히 혹금단 주의 여유가 굉장히 거슬린다.
혹금단주는 총관실에서 전략을 듣고 난 후, 3공자를 찾았다. 팽세기를 지지 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했기에 딱히 이 상하지는 않았다. 지극히 당연한 수순 이었다.
팽세기의 개인 집무실에는 이극이 미 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극은 완전 히 팽세기의 편이 되었다.
“앉아, 멀뚱히 서 있지 말고.”
팽세기와 이극은 굉장히 조심스러웠 다.
시간이 지날수록 팽세기와 이극은 흑 금단주의 무서움을 철저히 깨닫고 있었 다. 2공자와의 팽팽한 세력 대결은 이극 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후 에서 정우가 지원을 해줬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 서열의 정리는 당연했 다. 이극은 그 사실을 알고 절망했지만,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팽자겸이 뭐라고 했습니까?”
“예측한 대로야.”
이극은 팽자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자리를 빼앗은 당사자이기 때문 이다. 그러나 그의 능력까지 무시하진 않았다. 인정하긴 싫어도, 총관의 자리 에 앉을 만한 그릇이다. 결코 가벼이 여 겨선 안 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 이면서 은연중 소문이 돌고 있었다.
“후계자가 바뀔 거라고 하더군.”
“총관의 계략입니다.”
“어째서?”
“시선을 돌려야 하니까요.”
팽가의 후계 구도가 팽팽해지고 있는
가운데, 팽 가주의 의중이 팽세기에게 기울었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돌고 있었 다. 은밀하기는 해도 설득력 있는 소문 으로 위장되었다. 이번 기회를 빌미로 팽세기에게 힘과 명분을 실어주려는 의 도를 나타내었다.
“괜찮아.”
“예?”
“계획대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