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79화 (379/500)

제 2장

금강문의 위엄 (3)

배를 탔다.

정우가 사비로 마련한 초호화 보트다. 나중에 하라랑 태평양 일주를 하려고 마련해놓은 것이다. 국제여 객선보다는 편하게 갈 수도 있고, 외부의 시선에서 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알려진다고 해도 이제는 상관하지 않 았다. 언덕 위의 바위는 구르기 시작했 고, 알력 싸움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고맙지‘?”

“……그렇습니다.”

“그래도 따로 청구할 거니까, 알아는 둬.”

“예‘?”

“공짜 좋아하지 마라, 머리 벗겨진 다.”

언제 적 유행어를. 맹호십도도 60년 전에나 들었던 머나먼 유행어다. 어떤 식으로 답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타이 밍까지 늦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나가지 못한 채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 니 더 답답하다.

‘우릴 얼려 죽일 심산인가?’

‘종잡을수가없잖아!’

‘설마 진심으로 웃기려는 건 아니겠 지?’

장경과 동료들은 흑금단주의 진지함 에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불과 며칠 전에 보여주었던 흉포함과는 너무나 대 비되었다. 이따위 허접하고 저급한 개 그를 당연하게 쏟아내고 있는 자와 동 인인물이란 것조차도 비현실적이다.

“날씨 좋네, 이런 날엔 낚시가 제격이 지만 팽가를 위해서 참는 거다.”

“……감사합니다.”

소풍이나 나들이 가는 복장을 하고선 개소리를 마구 지껄이니 맹호십도는 귀 를 틀어막고 싶었다. 저게 어떻게 전장 에 참여하는 무사의 태도랄 수 있겠는 가. 남의 일이라고 무성의의 끝을 보여 주었다.

“검왕의 대가리를 자르면 얼마를 줄

까나, 기대가 되는군.”

“예?”

“뭘 그렇게 놀라, 싸움의 기본은 수장 을 참수하는 거잖아. 안 그래?”

“그렇습니다만.”

이 미친놈을 봤나.

맹호십도는 숨통이 막히는 기분이다. 당장에라도 검왕의 목을 베어낼 수 있 다는 식의 발언이다. 검왕 따위는 안중 에도 없다는 뉘앙스까지. 대륙의 검호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검왕 을 저리 칭하는 자가 있다는 사실에 경 악할 따름이다.

세가에 대한 자부심조차 저자에 비하 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 앞에서 세가로 위협을 했으니 얼마나 하찮게 보였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불안감이 엄습한다.

‘검왕을 저리 본다면 세가는……!’

팽가의 가주는 검왕과 마찬가지로 오 왕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흑금 단주는 검왕을 일개 검객 나부랭이쯤으 로 취급하고 있었다. 세가 사람이라면 그리 생각하지 않겠지만, 대외적으로 검왕이 도왕보다 위에 있다고 보는 시 각이 강하다. 검왕이나 도왕이나 그 나 물에 그 밥이라는 뜻이 된다.

‘……이놈이 감히!’

맹호십도는 혹금단주의 발언에 화는 났지만,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 슴앓이를 했다. 결과론적으로 흑금단주 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 도왕도, 세가도 욕하지 않았으니까.

‘후후.’

정우의 돌려 까는 솜씨는 가히 예술 의 경지에 올라와 있었다.

비꼬기 신공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 중이다. 같은 오왕에 속하니 검왕을 욕 하면 도왕도 매한가지가 된다. 그러나 검왕은 팽가의 적이다. 그를 낮춘다 하 여 질책할 명분이 없다. 적을 두둔하고 높이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난 말이야, 남궁세가와 사생결단을 했으면 해.”

“사생결단이라니요?”

“이 기회에 씨를 말리자는 거야, 괜히 우환을 남겨둘 필요 없잖아.”

“하지만 그리되면 막대한 피해를 양 산할 겁니다!”

“압도적으로 이기면 되잖아. 설마 겁 먹은 거야?”

“그럴 리가요.”

“그렇지, 난 시작을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거든. 그리고 그간 피가 너무 부 족했어. 이 기회에 시산혈해라는 좋은 환경도 경험해보고 그러자고. 실력 향 상에 경험만큼 좋은 것도 없잖아.”

맹호십도는 나들이 복장으로 기꺼워 하는 혹금단주의 발언에 오싹한 전율을 느꼈다. 마치 일상처럼 말을 하고 있었 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간 단어의 나열 이 섬뜩함의 극치였다.

피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즐기는 혈해 마인(血海魔人)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살 의로 넘친다. 단순한 호기일까? 그렇다 고 하기에는 저 눈빛이 거슬린다. 자신 감하고는 다른, 지나치게 자연스러워 오히려 더 두렵게 다가온다.

‘이……자는 어쩌면 마인일지도!’

‘반도의 마인!’

마인은 마공을 익혔다고 해서 마인으 로 부르지 않는다. 심성이 마(魔}를 쫓는 다면 정공을 익혀도 마인이다. 무공은 성향을 대표하지 않는다. 성향^ 무공 을 드러낸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정과 마가 갈리게 된다.

“농담이야. 난 평화주의자라고.”

정우는 시크하게 웃었지만, 맹호십도

는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농담이라 고 하나,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마치 너희 나라라서 다행이라고 주장하 는, 살의 넘치는 평온함이 자리하고 았 었다.

‘……상종 못할 자다!’

‘늑대를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부른 것 이 아닐까?’

두려움이 깃든다.

맹호십도는 절대 그와 척을 지고 싶 지 않았다. 그들은 흔들리고 있었다. 2 공자를 절대적으로 지지했었다. 그러나 혹금단주는 3공자를 원한다고 대외적으 로 선포했다. 금강문을 방문하기 전이 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3공자를 지지 해야 세가를 보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무섭나?’

난 지금 효자에 착한 오빤데.

완벽한 남친이기도 하고.

정우는 그저 전생의 분위기를 끄집어 냈을 분이다.

현재와 전생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 나는 장면이다. 현생에서는 바꾸고자 했지만, 성격적으로는 크게 바뀌지 않 은 줄 알았다. 한데 그저 전생의 편린을 보여준 것에 불과한데, 두려움을 느낀 다.

‘살업일지도.’

그저 현생을 살아가기 위한 자기 위 로.

정우는 부정하지 않았다. 받0}들이고, 극복해야 할 숙명이었다. 그렇다고 전 생의 죄업에 얽매이며 현생을 자괴감에 빠져 살진 않는다.

‘책임을 물으려면 물어라.’

찰나일까, 정우는 달라졌다.

현천공이 9단을 넘어 10단에 발을 들 인 것이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깨달음 이 아닌가. 그것도 적이 될지도 모르는 맹호십도를 앞에 두고서, 누구도 하지 못할 기행이었다.

그때.

실룩, 샐룩!

육감적인 몸매와 백치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자아내는 압도적인 매력의 미녀 가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비키니 차림 으로 들어왔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흔 들리는 바스트와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몸의 라인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옥구슬 처럼 빛난다. 사람이 아닌 하늘에서 하 강한 천사의 모습이 이러할까.

그녀는 쟁반을 들고 와, 정중히 허리 를 굽혔다.

우연처럼 비키니 사이의 험난한 계곡 이 살짝 보인다. 둔덕이 평온한 평야가 아닌, 그야말로 험난한 고산준령이다. 동서양의 미를 한 몸으로 받아낸, 혜택 받은 유전자의 극치다.

“주인님, 아이스티 가져왔어요.”

“이 앞에 놔.”

“예, 다리 주물러 드릴까요?”

“아니.”

미녀는 두말하지 않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정우의 명을 층

실히 따랐다. 육신에서 풍기는 압도적 인 매력과 달리 순수한 눈빛은 사내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했다. 다 만 정우에게는 별다른 매력 어필이 되 지 않았다. 그저 도구를 대하듯, 무심하 다. 막말로 병기를 붙잡고 열병 같은 사 랑을 하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사분히 돈 그녀와 시선이 마주했다.

부르르!

맹호십도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렸 다. 정심(正心}을 잃지 않기 위해 공력을 운영하지만 그럴수록 힘이 빠져버리고 있었다.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 을 먹지만, 그들은 피가 끓는 청춘이었 다.

“뭘 멀뚱히 서 있어, 올라가지 않고.”

“예, 주인님.”

정우는 지금 맹호십도를 살려준 거다. 계속 보고 있으면 정력이 고갈될 수도 있었다. 조절을 했기에 이 정도다.

하아

그녀가 몸을 돌렸다.

맹호십도는 그제야 운신이 자유로워 졌다. 달아오른 정욕이 폭발해 스스로 를 주체하지 못할 뻔했다는 생각이 뇌 리를 스치자, 맹호십도는 전율을 느꼈 다. 그녀가 절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찮지?”

“대체 뭡니까?”

“보는 그대로, 최강의 병기가 될 것 같지.”

인세의 여인으로 보이지 않는 천상의 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아름답고 순 수한 여인이 병기라니.

그래서 더 소름이 돋는다.

“그럴 수가!”

“순진한 척하긴.”

이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맹호십도는 알면 알수록 흑금단주가 무서웠다. 그리고 그 말이 틀리지 않았 다. 조금 전 미녀의 아름다움은 일반적 이지 않았다. 마주했을 뿐인데도 영육 이 빨려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초절정 의 경지에 이른 무인조차 흔들어놓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 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어째서 알려주신 겁니까?”

“같은 편이잖아. 비밀은 좋지 않은 거

고.”

대놓고 병기를 드러낸다.

맹호십도는 신뢰하고 있다기보다, 잘 못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로 다가왔다. 금강문에 대해서 세가는 완 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다스리는…… 아냐, 됐으니까. 가봐.”

말을 하다 만 정우의 태도에 맹호십 도는 멈칫하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자 리를 빠져나갔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 을 거란 의심이 들게 했다. 맹호십도는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느낌을 받 았다.

‘총관에게 말씀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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