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77화 (377/500)

제 2장

금강문의 위엄 (1)

남궁세가와 하북팽가의 본격적인 격 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원인은 두 세력 이 정파의 핵심중추 세력이기 때문이다. 명색이 명문의 정파로 이름이 높은 세 가로서 ‘네 땅이 탐나니 내놔.’라고 대 놓고 말하진 못한다. 허울뿐이기는 해 도 납득할 만한 명분이 필요하다.

하북팽가와 남궁세가는 오대세가의 일원이다.

같은 식구끼리 집안싸움을 벌이는 걸 로 보인다. 사천당가, 제갈세가, 황보세 가와의 이해관계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명분은 중요하다.

하나 그것도 얼마 전까지다.

남궁세가의 철면검호(鐵面劍虎)가 산 서성으로 향했다.

하북팽가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 다. 반도의 오랑캐와 손잡고 중화를 더 럽혔다는 원론적인 명분을 등에 업은 남궁세가의 전면적인 도발이었다.

하북팽가는 재차 금강문으로 사람을 보냈다.

약속을 받았음에도 늦장을 부리고 있 는 금강문의 행보에 답답했다.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팽가로서는 기 다릴 처지가 아니었다.

파견된 이들은 팽가의 숨겨진 도(暗刀) 맹호십도(猛虎十刀) 였다.

팽가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가문의 젊은 무인을 대표한다. 아직은 가문 내 에만 알려져 있고, 외부에는 얼굴을 드 러내지 않았다. 총관이 직접 몇 번이나 방문을 하게 되면 의심을 살 수 있기에 알려지지 않은 자들을 보낸 것이다.

맹호십도는 금강문에 도착해 적당한 대접을 받았다.

딱히 귀한 손님도, 하찮은 손님도 아 닌 중립적으로 대우했다. 그것이 묘하 게 신경을 거슬렀다. 하북팽가를 대하 는 금강문의 태도를 직간접으로 파악하 게 해주었다.

맹호십도는 흑금단의 거처를 수시로 찾았다.

실질적으로 세가를 원조할 혹금단주

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흑금단주의 지체로 세가의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 는 중이다. 그가 한시라도 빨리 세가에 합류해야 했다.

‘이자가 진짜’

3일간 혹금단주의 행보를 유심히 지 켜본 맹호십도의 일호(一虎), 장경은 어 처구니가 없었다. 약속을 미루고 있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봤었다. 한데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었다.

한국과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는 개뿔!

총관의 언질이 있어 여태 참기는 했

지만, 장경은 성격이 그리 넉넉하지 않 았다. 젊은 무인 중에서도 재능과 실력 을 인정받았기에 자부심이 대단했다.

“서둘러주시오.”

“서두르고 있어.”

“약속이 다르지 않소.”

“간다고 했지, 언제 간다고는 안 했으 니까.”

“말장난하자는 거요!”

장경은 흑금단주의 노골적인 늦장에 인상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맹호의 상 을 지니고 있는 그가 인상을 쓰자 공기 마저 날카롭게 변질되었다.

‘아직 덜 배고픈가 보네.’

정우는 준비를 마친 지 오래다.

가려고 했다면 지금이라도 가면 된다. 그럼에도 시간을 끄는 건 팽가를 다급 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한데 예상과는 달리 무력시위를 또 하고 있었다. 팽우 진으론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면 현실을 깨닫게 해주기를 바라는 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총관이라는 작 자, 제법이다. 이 사태를 일정 부분 예 측하고 있다는 의미니까.

까짓것 원한다면 해주는 수밖에, 어렵 지 않은 일이다.

“좀 맞자.”

“?뭐요!”

흑금단주의 엄포에 장경은 눈살을 찌 푸렸다. 반도의 무림과 엮이는 걸 탐탁 지 않게 여겼던 그다. 세가의 싸움에 금 강문을 끌어들이려고 사정을 하다니,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왜? 원하는 거 아냐. 한판 뜨자고.”

“좋다, 후회나 하지 마라.”

장경은 이번 기회에 세가의 위용을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가주와 총관께서 애를 태울 만큼 금강문이 필요하지 않 다는 것을.

“판 깔아라.”

“예, 단주.”

훈련장에 도열해 있던 흑금단이 원을 그리며 결계를 쳤다.

수라대검진의 활용 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공간을 만들고 결계 를 쳐 완벽한 대결 장소를 마련했다. 안 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내막을 알기 어려운 락앤락 밀폐공간이 되었다.

꿈틀!

장경은 혹금단의 기민한 움직임에 신 경을 곤두세웠다.

‘빠르다!’

평생 결계만 쳤다고 해도 믿을 만큼 발랐다. 적이었다면 꼼짝없이 검진에 갇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않았다. 맹호십도는 가문의 숨겨진 예 리한 칼날이다. 겁천마검을 쓰러뜨린 절명사신과도 자웅을 겨룰 자신이 있었 다.

“칼을 봅아라.”

“알았으니까, 다 같이 덤벼!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

맹호십도의 폼만 봐도 견적이 나왔다.

팽가의 절기를 바탕으로 한 도진(刀陳) 을 펼치기에 적합했다. 결론을 내리면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와 연환패왕진 (連環®王陣)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열 명이 겹겹의 도진을 형성해 강력한 패 도로 상대를 압박하는 데 탁월했다.

“후회나 하지 마라!”

“준비된 거면, 공격한다.”

“오너라.”

“그래, 간다.”

정우의 친절은 오해를 회피하기 위해 서다. 합격술이 뛰어난 놈들은 혼자 덤 비다 지면, 우린 한 몸이었다고 개소리 를 지껄이는 경향이 강했다. 실력 발휘 를 제대로 못 했다는 구차한 변명의 시 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밟아줄 필요도 있고.’

팽가의 장로급 이상의 무인들은 팽우 진의 패배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정우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는 경향^ 강해졌 다. 절명사신이란 별호가 소문이 아님 을 증명했다. 반면 호전성이 강한 팽가 의 젊은 피는 여전히 금강문에 대한 반 감이 작용하고 있었다.

스륵!

바닥을 밟은 정우의 신형이 흐릿해졌 다. 눈을 현혹하는 속도다. 어지간한 무 인은 궤적을 읽기도 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이다.

휘리릭!

맹호십도는 흑금단주를 반도의 무인 으로 폄하하는 것과 달리 방심하지 않 았다. 절명사신에 대해서는 귀에 따갑 게 들었으니까. 속성을 개방해 감각을 10배로 증폭, 혹금단주의 궤적을 읽어 냈다.

‘정면으로 오다니, 건방지구나!’

맹호십도가 왜 열 명으로 구성되었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영성이 하나로 연결된다. 한 명이 열 명이고, 열 명이 한 명인 공동 운명체다. 7급의 유니크이며 초절정에 발을 들인 맹호십도는 본인들의 역량을 몇 배로 증폭할 수 있었다. 지나친 자신 감이라고 타박할 일은 아니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은 하다.

‘읽었네.’

감각이 좋다.

그런데?

꽈아아앙!

괴랄한 굉음을 동반한 파장이 번진다.

연환패왕진으로 공력 전이를 이루었 던 장경의 상체가 크게 휘청거렸다. 아 홉 명의 공력이 순환되어 가일층되었음 에도 충격의 여파가 상당했다.

찌릿!

장경은 흑금단주의 공격이 끝나지 않 았음을 파악했다. 내부를 파고들어 온 전사경을 해소하는 것보다 공격을 막아 내는 게 급선무다.

‘ 왼쪽!’

움직임을 읽었다.

그런데?

푸아아앙!

연환패왕진의 한쪽 날개를 받치고 있 는 이호, 오호, 십호가 병기와 함께 공 처럼 튕겨나갔다. 직선으로 나아간 이 호, 오호, 십호는 결계에 부딪쳐 나아가 지 못한 채 꼴불견이 되었다. 동공이 돌 아갔으니, 의식불명이다.

찌릿!

흑금단주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선수를 양보했던 장경의 후회는 늦어 도 너무 늦었다. 실상 선수의 의미도 없 다고 봐야 했다. 공수의 궤적을 감각으 로 읽어내고 있었다. 딱히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니, 대응을 하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대응을 해도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쿠아아앙!

날선 와류의 기경, 스치기만 했거늘 단련된 외공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기 분이다. 속된 말로 스쳐도 사망, 껍질이 낱낱이 벗겨져 나가는 충격을 받았다. 그뿐이랴, 도진의 심중을 파고든 와류 경은 와해되지가 않았다.

쿠다다당!

원형도진으로 차륜전을 치르려고 했 던 애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 고, 연환패왕진을 유지하지도 못했다. 연결된 영성은 비명으로 점철되었다.

정우는 낱알처럼 홑어진 맹호십도는 가만두지 않았다.

……잔인한!

단전을 발로 찼다. 무인에게 있어 단 전은 목숨보다 소중한 공력보관 장소다. 그걸 거침없이 차다니, 단전이 깨질 것 같은 충격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양산 했다.

크억!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숙이고 있는 턱을 무릎으로 찬 후, 팔꿈치로 내려찍었다. 이중의 동작 이 하나처럼 이어지자 3호는 맥없이 고 꾸라졌다. 허공을 향해 엉덩이를 내밀 었다는 사실마저 잊었다.

“?이놈? 헉!”

동료의 처참한 최후에 일갈했던 장경 은 코앞에 나타난 혹금단주로 인해 숨 이 막혔다. 목이 잡혀버린 것이다. 칼을 들고 살면서 이토록 무방비로 당하기는 처음이다. 가문의 어른에게도 인정을 받았던 무력이 종잇장처럼 찢겨 나가고 있었다.

“나는, 네가 이놈 저놈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대하북팽가의…… 무인이다…… 나를 이리 대하고……무사할 성……싶 으냐!”

오기의 발동일까, 젊음의 객기일까?

붉게 충혈되어 부르르 떠는 장경의 동공엔 적의가 가득했다. 굴복을 당해 보지 않은 젊은 패기였다. 그러나 정우 는 패기를 인정해줄 만큼 아량이 넓지 도 않았다. 자기 사람도 아니고, 팽가의 무인이 잘되기를 바랄 이유도 없지 않 은가. 먼저 길을 개척한 무인이 후인을 배려해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정 신 건강에 이롭다.

“후후, 가문의 배경이나 믿는 버러지 같은 애송이였나.”

“……크윽! 이거…… 놔라!”

“난 말이야, 배경 믿고 깝죽거리는 기 생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럴수록 단전을 뭉개고 싶어지거든.”

“?너?…” 설마!”

장경은 부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혹금 단주의 무심한 시선은 마치 장난감을 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언제든 부서뜨리고, 버리면 그만이라는. 자신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있었다. 언제 이 런 대접을 받아보았던가,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젊음의 패기는 곧 공포에 잠식되었다.

‘?죽는다?!’

핏발이 잔뜩 들어선 장경은 흑금단주 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위험인물임을 깨달았다. 그에게 붙여진 절명사신이라 는 별호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전력 을 다한 맹호십도를 가지고 놀 수 있는 자는 대륙에서도 많지 않았다.

“?살?려!”

“그러니까 알량한 서푼의 재주로 겁 대가리가 없이 깝죽대지 말았어야지. 같이 놀아주니까, 내가 너희들과 같은 급으로 보이냐.”

정우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굳이 팽가에 잘 보이기 위해 애쓸 필 요가 없어졌다. 저들은 그저 목적을 위 한 수단이자 도구에 불과했다. 잠시 놀 아주었다고, 도구 주제에 주인과 맞먹 으려고 하면 고까울 수밖에.

‘?이자는 위험하다?!’

장경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물들어갔 다.

혹금단주는 누구의 밑에 있을 자가 절대 아니었다. 그가 보여주었던 나태 했던 행동은 포장된 이미지일 뿐이다. 그는 결코 멈추지 않는 흉포한 맹수이 자 포식자였다.

“왜 이젠 같이 가고 싶지 않아졌냐?”

M |99

장경은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혹금단주의 실체에 접근하면 할수록 근원을 알기 어려운 공포에 휩싸였다. 저자의 기세에 실린 홍포함은 절대의 마인조차 다가서지 못할 것이다. 아이 러니하게도 저자의 무력이 세가에는 필 요하다. 또한 가장 위험한 적이 되기에 충분했다. 저자와는 절대 척을 져서는 안되었다.

깨달았다.

그는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함부로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라고.

“손속에 사정을 두는 건 한 번으로 족 해.”

“……알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눈깔 바르게 뜨고 다녀. 거슬리면 봅아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이게 엄포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면 해도 좋아.”

“아닙니다!”

장경은 모멸감을 느꼈지만, 그보다 앞 선 공포가 입을 다물게 했다. 수틀리면 저자는 언제든 약속이고 뭐고, 짓뭉개 버릴 자다. 그럴 만한 능력도 충분하고.

=::되2이무탈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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