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장
협상 (3)
‘생각이 많아지면, 의심이 강해지지.’
정우는 고의적으로 무력을 전보다 더 드러냈다. 숨기기만 해서는 생각이 많 은 자에게 불신을 새겨준다. 사람에 따 라 보여줄 때 보여주고, 감추어야 할 땐 감추어야 했다. 그래야 목표물을 계획 대로 조종하고 흔들어놓을 수 있다.
‘애를 태우려면 폭탄을 하나 더 투하 할 필요가 있겠지.’
정우는 무력을 보여줌으로써 변수를 만들어낼 확실한 패라는 인식을 심어주 었다. 이는 팽가의 의중과 맞물린다. 팽 자겸의 호위로 팽우진을 데려온 이유이 기도 하다.
처음부터 팽우진을 활용해 금강문을 확인할 계획이었다. 정우는 그저 보조 를 맞추어줬을 분. 팽자겸은 아마 현재 의 사태에 중요한 변수로 활용할 카드 를 손에 쥐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 기 위해서는 금강문과 보다 확실한 관 계를 맺어야 했다.
‘천아, 네가 그렇게 좋다면 포장을 잘 해주마.’
이른 나이부터 족쇄를 차야 하는 강 천의 입장은 대변하지 않았다. 스스루-선택을 했으니, 금강문을 위해 희생할 줄도 알아야 했다. 가문의 후계로서 당 연히 감수해야 하는 책임이었다. 하지 만 가문을 위해 본인을 희생하는 게 올 바르냐는 질문을 하는 자가 있을 것이 다. 그럼 묻겠다. 가문에서 받은 모든 것들을 되돌리고, 홀로 살아갈 수 있냐 고.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요청하지 도 않아야 했다. 혜택은 당연하게 받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모 순이자 무책임이다.
‘운이 좋아.’
정우는 강천의 운이 나쁘지는 않다고 봤다.
강제가 아닌 서로를 원한다는 점에서 금강첨화(金剛添花)다. 물론 강천과 세경 이 엇나갔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전략은 전적으로 강천과 세경의 관계가 원만하다는 전제를 깔고 계획을 한 것이다.
“어디 변수를 만들어보거라.”
애를 태우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본인 과 상대가 아닌 주변 상황의 변화다. 이 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분석할 시 간이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경우는흔치 않다.
그날 저녁부터 팽자겸은 금강문주와 의 접견을 요청해 왔다.
‘하필이면.’
팽자겸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
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가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만 있었다. 예상치 못한 소문이 하북성에 서 번지는 중이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아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로 치부하지만, 내부자가 아니고서는 알기 어려운 정보가 섞여 있었다.
-희대의 마물 천혈강시가 나타났다!
-팽가의 심처에 천혈강시가 있다고 한다!
10줄의 소문, 그 안에 포함된 내용의 파급력은 상당했다. 천혈강시는 금지된 전설의 마물이었다. 그것이 실제로 존 재한다는 걸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런 가운데 제조방법이 외부에 유출되어 의심을 증폭시켰다.
하나 팽가는 정파의 주축이다. 소문만 으로 팽가를 압박하지는 못한다. 더욱 이 팽가의 심처를 소문에 의존해 수색 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간과하기 어려운 현실은 내 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점이다. 언제 어 떤 변수로 작용하게 될지 예측이 불확 실해졌다.
-금강문주의 확답을 받아 오게.
가주의 전언이 도착했다. 그만큼 팽가 에 흐르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팽자겸으로서는 금강문 주와의 협상을 반드시 이끌어 와야 했 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것이 냐!’
시간이 흐를수록 팽자겸은 조급했다. 그러나 금강문주를 탓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한국 내 금강문주의 입지가 상 상을 초월했다. 무문의 수장이 되어 한 국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곧 한국 내에 지각변동을 일으킬지도 모른 다.
‘우리가 보이지 않을지도.’
최후의 카드도 염두에 두어야 할지 모른다. 더욱이 미적거리는 걸 봐선 세 가의 변화를 파악해서 발을 빼려는 걸 수도 있었다.
그때.
객실로 혹금단 소속의 무인이 찾아왔 다.
“문주께서 부르십니다.”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알겠네, 어서 가지.”
불감청 고소원이던가, 팽자겸은 안도 했다.
곧 마음을 추슬렀다. 이제 시작일 분 이다.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침착하게 대응해야 했다. 협상의 기본은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 거다. 객관적이고도 합 리적인 판단을 내리도록 확실한 카드를 내밀어야 했다.
“해봐.”
“예?”
“선수끼리 왜 이래, 짧게 가자고.”
“그래도 자초지종을 아시는 편이 낫 지 않겠습니까.”
“몰라서 묻는 거겠어.”
금강문주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팽 자겸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한 없이 가벼워 보이는 말투와는 달리 금 강문주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상상 을 초월했다. 불경스럽게도 가주에게서 조차 느껴보지 못했던 종류의 기운이 다.
“사전에 팽가에 대한 조사는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니 선문답은 하시지 말 았으면 합니다.”
“알겠네.”
정우는 팽가의 주변 정세를 파악해놓 았음을 밝혔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 하지 말라는 엄포의 성격이 강했다. 바 쁜 사람 붙잡고 있으려면 그에 합당한 거래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작금의 사정이 어렵다고는 하나, 세 가는 누대의 역사를 가진 대중원의 명 문정파입니다. 이번 어려움만 해결이 된다면 금강문의 중원 진출에 날개를 달게 될 것입니다.”
“그거야 상대가 사파였을 때나 그렇 겠지, 이번엔 남궁세가라며. 남궁세가의 검왕이 검 좀 다룬다는 말을 심심치 않 게 들었는데 말이야.”
팽자겸은 떨리는 검미를 다스려야 했 다. 예상보다 금강문의 정보력이 상당 하다. 남궁세가의 사정까지 살피고 있 었다. 이럴 때는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나았다. 괜히 빙빙 말을 돌려봤자, 금강 문주와 같은 자를 설득하기는 어렵다.
“원하는 것이 뭡니까?”
“그렇게 나왔어야지. 사실 말이 나왔
으니 하는 말인데, 우리가 팽가와 협상 을 해서 얻을 게 뭐가 있을 것 같아. 무 인을 파견해봤자 일전에도 그랬듯 쓰다 버리는 패로 쓸 텐데.”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바본 줄 아냐? 당시 석가장 공략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만 봐도 얼 마든지 예측할 수 있잖아.”
팽자겸은 마른침이 저절로 삼켜졌다. 단순히 찔러보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당시 세가의 작전은 분명 혹금단주를 희생양으로 쓰려고 했었다. 의도치 않 게 대공자가 휘말리면서 큰 파장을 일 으켰지만.
“사흑문의 공세가 심상치 않았고, 흑 금단주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인해 자초 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 모든 사태가 세가의 전략이라고 볼 수는 없 습니다.”
“어쨌든 이용당한 느낌은 더럽거든. 그럼에도 우린 석가장에 대한 권리만 받았어. 그 정도면 팽가로서도 싸게 먹 힌 거잖아. 자칫 큰 손해를 볼 수 있었 는데 말이야. 한데 이마저도 제대로 관 리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팽가를 믿 고 가야 할 이유가 없지, 안 그래?”
금강문주의 말에서 허점을 찾지 못한 팽자겸이다. 어디까지 정보가 홀러갔는 지는 몰라도, 대략적인 부분은 예측이 가능할 정도다. 만약 계획대로 되었다 면 혹금단주와 혹금단은 희생양이 되었 을 테니까. 그럼에도 세가 내부에서는 너무 많은 권한을 준 게 아니냐는 설왕 설래가 있었다. 더욱이 협상 내용이 지 켜지지도 않고 있는 상태다. 석가장에 진출한 대한 그룹의 세계 유통이 영업 정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문주님의 혓바닥이 매끄럽 네.’
카드의 달콤함이란, 대단하군.
평소와 다른 문주의 모습을 보고 있 는 정우다. 사전에 충분한 리허설을 했 다고는 해도 저렇게까지 완벽하게 해낼 줄은 몰랐다. 다른 때 같았으면 단어 열 개 정도는 틀리고, 문맥의 위치가 뒤죽 박죽이었을 거다.
“조건을 말해주지. 팽가가 관리하는 전 지역에 대한 산업 진출의 허용이야. 물론 전에 했던 거래와 동일한 협상으 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석가장이 아닌 하북성 전 지역에 대
한 산업 진출의 허용이었다. 팽가로서 는 간단치 않은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럼 에도 수용을 하겠다는 건 팽가의 절박 함을 드러낸 것이다.
“실은 거절하라고 던진 조건인데, 받 아들이면 내가 뭐가 돼.”팽자겸은 이번 협상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걸 느꼈다. 금강문으로서는 충분히 그럴 만했다. 상대가 사파도 아닌, 오대세가의 남궁 세가였다. 자칫 패배를 하는 날엔 금강 문이 받는 타격이 상당할 것이다.
“거래를 위해서 혈연을 맺었으면 합 니다.”
“꼭 그래야 하는 게4?”
“가문의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천이 이 녀석! 여자에 눈이 멀어가지 고. 쯧쯧!”
팽자겸에게는 천만다행이 었다.
강천과 세경이 결합을 한다면 금강문 이 불리하다고 해서 도중에 발을 빼지 는 않을 것이다. 실상 사업권을 내주고, 남궁세가와의 격전에서 우위를 점한다 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혹금단주는 들으라.”
“예, 문주님.”
“팽가를 도와 무도한 남궁세가를 단
죄하라.”
“명을 받드나이다.”
정우와 이호극의 지나치게 형식적인 격식이었다. 속내는 전음으로 속사포처 럼 오가고 있었다. 전음입밀의 최고경 지인 심어를 대수롭지 않게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내 카드 유효기간 무한대로 늘려놔 야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여하튼 부럽다, 짜식아!
-문주님 대신 맘껏 활개치고 오겠습 니다.
백지수표를 죽을 때까지 사용하겠다 는 금강문주의 신념이다. 실제 금강문 주의 육신은 불사신에 가까워지고 있었 다. 현재 75세부터 받는 국민연금도 꾸 준히 내고 있으니 300년은 거뜬히 타 먹을 수 았을 것으로 보인다.
‘공력추출기를 써먹을 때가 왔구나.’
정우는 하북팽가와 남궁세가의 경쟁 에 비밀병기를 투입하기로 마음을 먹었 다. 벌써부터 어떤 능력을 발휘하게 될 지 두근거렸다. 한편으로 병기로 재탄 생된 후 실전은 이번이 처음이라, 부작 용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필요하면 미인계도 괜찮고.’
다용도로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 가된다.
팽자겸이 돌아갔다.
정우는 곧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혹 금단을 분배해서 보내야 하기에 시간이 좀 걸렸다. 남궁세가가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이니, 꼬투리를 잡히지 않아 야했다.
정우는 팽가의 일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선결과제가 있었다. 이는 금강문주 가 하북성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가 되 었다.
5개의 시도에서 각각 천 명씩, 최소 5 천 명의 당원을 모집해야 했다. 흑막을 동원해 선전을 하고, 광고까지 냈다.
-금강무적당
-크고 단단한 신념을 가진 자, 오라.
짧고 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