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상을 주다 (1)
“빌어먹을!”
오장육부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이가 부득부득 갈린다. 한 번의 판단착 오로 인한 피해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을 걸쳐 이룩한 결실의 반을 잃고 말았다. 다시 복구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게 분명한데,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화를 누그러뜨리고 냉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네놈까지 날 가르치려는 것이냐!”
상처 입은 맹수의 흉험한 기세가 팽 자겸을 덮쳤다.
그는 기본적으로 무공을 익히지 못하 는 체질이다. 버텨내기가 어려웠다. 조 금이라도 더 기세가 강했다면 심맥에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크윽!
육신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팽자 겸은 조언을 멈추지 않았다. 팽가의 총 관으로서 가주의 보필은 당연한 책무였 다.
“고정하십시오, 이러다가 자칫 부상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따위 부상에…… 제기랄!”
흉포한 기세를 뿜어내던 팽우경의 상 체가 흔들렸다.
큭
왼쪽 가슴부터 시작된 통증이 전신으 로 퍼졌다. 이어서 치밀어 오른 울화가 기혈을 들끓게 했다. 팽자겸의 말대로 무리를 하다가는 회복되던 상처가 도로 악화될 우려가 있었다.
‘가주께서 이렇게나 동요를 하다니!’ 팽자겸은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평소의 가주는 냉철한 이성을 지니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가 되어도 흔들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믿 고 있었다. 남궁세가를 밀어내고 오대 세가의 정점이 되리라.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회인 줄 알았던 흑룡성 공략이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이래선 안 된다.’
가주는 팽가의 중심이다. 어떤 상황에 서도 냉철해야만 했다. 씁쓸하지만 가 주도 인간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후우우우!
팽자겸의 불안한 눈빛에 팽우경은 정 신이 들었다. 자신이 흔들리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부정해선 안 되었다. 현실을 냉철하 게 바라봐야 했다. 팽가는 현재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확인은 했나?”
평정심을 찾은 팽우경이 물었다.
팽자겸은 갈등했다.
과연 부상을 회복하지 못한 가주에게 말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러나 결론은 나와 있었다. 가주는 냉철 하며 자존심이 강했다. 동정심은 화를 자초하는 일이 된다.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남궁천 네 이놈을!”
흑룡성의 저항이 거세기는 했어도, 구 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전력을 기울이면 서 승부의 추가 기울었다. 파죽지세로 몰아붙여 사파 무림을 굴복시켰다. 기 울어진 형세가 회복될 기미가 없어지자, 그때부턴 공적을 더 쌓기 위해 오대세 가 간에 경쟁이 붙었다. 흑룡성이 무너 지고 난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혹룡성주 진대악.
사파 무림을 구성하는 12개의 대문파 를 무너뜨렸다고 해도, 그가 남아 있었 다. 그를 제압한다면 사파 무림 공략의 가장 큰 공을 세우게 된다.
하나 흑룡의 마제로 불리는 진대악이 다.
사분오열되었던 사파 무림을 일통한 패자다. 그가 호락호락하리라고는 누구 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호위 하는 흑룡칠혈(黑龍七血)이 모두 참수되 고,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었다. 홀 로 아무리 강해도 독불장군이 통하진 않는다.
빠드득!
당시의 상황이 떠오른 팽우경은 또다 시 기혈이 끓어올랐다.
혹룡성주를 막다른 절벽으로 몰았다 고 여겼고, 승리를 장담했다. 가문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비장의 병기, 천혈 강시를 10기나 데리고 갔었다. 2기만 해도 능히 절대고수를 대적하고도 남았 다. 자신과 천혈강시라면 충분하다고 봤었다.
-정파도 썩을 대로 썩었군, 강시라니!
팽우경은 흑룡성주와 대결에서 진다 고 여기지 않았었다.
난전으로 인해 지쳐 있는 혹룡성주라 면 제압이 가능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다. 상처를 입 었다던 혹룡성주는 멀쩡했고, 신위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강했다. 팽우경은 흑룡성주의 신위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천혈강시가 없었다면 필패였다. 7기를 희생시키고, 겨우 진대악을 제압 직전 까지 밀어붙였다.
-이겼다고 착각하지 마라, 나는 고작 편린에 불과할 분이니!
최후의 순간 예기치 못한 폭발이 일 어났었다. 대폭발의 여파가 공간을 불 태우려는 찰나, 감응으로 연결된 천혈 강시가 몸으로 막아서지 않았다면 팽우 경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남궁세가에서 정보를 흘린 게 분명 합니다. 우리가 흑룡성주의 목을 원한 다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꼴이 우습게 되었구나.”
흑룡성주의 도주로를 확보한 정황이 이상하기는 했다. 정확히 확인하지 않 고, 부상을 입었다는 말만 듣고 성급하 게 행동한 것이 컸다. 남궁세가의 장단 에 놀아난 격이다. 그럼에도 항의를 하 기는 어렵다. 작전에 천혈강시가 동원 된 사실이 밝혀지면 곤란하다.
“진대악은 찾지 못한 것이냐?”
“송구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을 가능 성은 희박합니다.”
팽우경은 고개를 저었다.
진대악의 강함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속성을 발휘하지 않고서도 자신과 천혈 강시를 압도했다. 그런 자가 폭발에 흔 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자신이 살아 있 다면 그 역시도 살아 있을 확률이 크다.
‘더욱이 마지막에 드러난 기는 마기가 틀림없다.’
그야말로 영혼을 무너뜨리는 가공할 기공. 세간에 알려진 마공과는 전혀 다 른, 본질에 가까웠다. 영혼이 제압된 천 혈강시마저 공포를 느꼈을 정도다.
“가주께서 아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하라.”
“시중에 세가가 반도와 손잡은 매국 노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누가 감히 그런 말도 안 되는 유언비 어를 퍼뜨리는 것이냐?”
“단순한 유언비어로 보기 어렵습니 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금강문에 내어준 석가장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미국의 개로 취급하며, 반한정 서가 급격히 강해지고 있는 시국이다. 해서 한국과 오랫동안 거래해온 기업조 차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했다. 개중 에는 돈을 받고선 쓰레기를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다. 신의를 저버린 명백한 계약 위반임에도 반한정서가 감돌고 있 어, 이를 칭찬하고 있으니 더 말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와중 팽가에서 한국 기업과 거 래를 하고, 뒷배를 봐주고 있는 게 아니 냐는 소문이 번졌다. 실상 다른 지역의 유통산업은 말도 안 되는 태클을 걸어 영업정지를 매기고 있는 가운데, 석가 장의 대한그룹에서 운영하는 세계마트 만 온전했다.
“이것도 설마?”
“남궁세가일 가능성이 큽니다.”
혹룡성이 무너지면서 사파 무림은 오
합지졸이 되었고, 다스렸던 지역은 오 대세가와 구파일방의 몫으로 돌아갔다. 외부의 적이 있어 하나가 되었을 때와 달리, 지금은 서로 간에 더 많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서 노리고 있는 중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증거 자료가 나 오면 그땐 사태가 심상치 않을 겁니다.”
“압박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건가.”
“작금의 행보를 보자면 남궁세가에서 도 어느 정도는 결심을 굳혔을 가능성 이 큽니다.”
“내 부상을 알고 있다는 거군.”
팽자겸은 침묵으로 답을 했다.
남궁세가가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는 팽가의 전력이 약해졌다는 걸 알 고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또한 소문은 명분을 쌓기 위한 구실일 터, 굳이 사실 이 아니더라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무림은 힘의 원리가 지배한다. 세가가 무너지면 거짓도 진실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또 뭐야?”
“공자들 간에 파벌 싸움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진짜!”
외적으로 세가를 위협하는 세력이 다
가오고 있는데, 내부에서 밥그릇 싸움 을 벌이고 있었다. 팽우경의 화를 돋우 게 만드는 현실이다. 그러나 마냥 화만 내기도 애매했다. 서열 싸움의 단초는 자신이 제공했으니.
“누가 우위에 있나?”
“그것이 팽팽합니다.”
“어째서?”
“이극이 삼공자를 지지하고 있습니 다.”
팽우경은 골이 지끈거리는지 관자놀 이를 꾹꾹 눌렀다. 이극은 버린 패 중에 하나였다. 세천이를 위한 제물이었거늘, 살아 돌아왔다.
“치워버릴 수 있을까?”
“이극은 이미 한 번 버림을 당했습니 다. 쉽지 않을 겁니다.”
이극이 비록 실패를 하기는 했어도 귀영각의 각주다. 팽자겸이 총관이 되 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팽가의 두뇌였 다. 그의 머리를 간과해선 안 되었다. 만약을 대비해놓았을 수 있다. 자칫 같 이 죽자고 달려들면 남궁세가를 도와주 는 꼴이 된다.
“그렇겠지.”
“그러나 이대로 경쟁이 과열되면 그
것 역시 위태롭습니다.”
서열 경쟁도 세가의 안위가 보장되어 야 한다. 세가가 무너지고 나면 가주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어찌했으면 좋겠나?”
“금강문을 끌어들여야 합니다.”
“사정을 알면 여의치 않을 텐데.”
“아가씨가 있지 않습니까.”
팽우경으로선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이 다.
이율배반적이기도 하고. 반한정서로 인해 압박을 받고 있는데, 반도 무림과 혈연을 맺어야 하다니. 더 큰 화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반한정서 만으로 세가를 압박하진 못한다. 결국 에는 힘이 정의가 되고, 현실을 증명하 게 된다. 세가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금 강문의 도움이 필요하다.
‘처량하군.’
신생 무력단인 백금단의 전투력은 하 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무 인으로서 한 꺼풀 벗어던진 탈피를 이 루었다. 그럼에도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성장 속도가 빠르면 뭐하나, 단 한 번도 혹금단을 이겨보지 못했다. 혹금단은 거대한 벽이 되어 백금단의 미래를 막 아섰다.
-20년을 수련하고, 고거밖에 안 되냐.
-대체 뭘 배운 거야?
-쓸모가 하나도 없네.
-이대론 주어진 임무를 달성하지 못 한다, 아그들아.
-억울하냐? 억울하면 이기든가.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데에 천부적 이었다. 저 얄미운 종자들을 반드시 때 려눕히고 싶었다. 살면서 이토록 악에 받친 적은 처음이다. 흑금단의 수단 방 법을 가리지 않는 행패에 맞서 당당히 굴복시켜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보다 더 더러웠 다. 혹금단의 전투경험은 상상하는 범 위 그 이상이었다. 도저히 넘지 못할 거 대한 벽이다. 이대로는 주군에게 아무 런 도움이 되지 않는 무능력자에 불과 했다.
“언제까지 수모를 당해야 하는 거야?”
“약한 게 죄지.”
“단주, 방법이 없을까?”
“개인전으로 간다 해도 여간내기들이
아니라고.”
흑금단의 진정한 전투력은 속된 말로 다구리에 있었다.
비슷한 수라고 해도 효율적으로 완성 시킨다. 10 대 10의 싸움도 결과적으로 3 대 1이 되곤 했다. 한 명이 세 명을 상대해야 하니 패배는 당연했다. 전투 의 효율성에서 따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개인전에서 확실하게 우 위에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동수가 가 능한 무인은 단주 이하 다섯 명이 안 된 다.
간혹 주군이 상태를 확인하고 돌아갔
었다.
그때 한 말이 벼아프다.
- 여전하군.
애초에 주군은 목적을 밝혔다.
독문 무인을 받아들임으로써 대외적으 로 금강문의 이미지를 개선할 선전용이 라고. 문파의 광고판이라는 말을 듣고 좋아할 무인은 없다.
기필코 주군의 벼린 칼이 되기 위해 서 노력했다. 그럼에도 격차는 줄어들 지가 않았다.
“뭐가 문젠 거야‘?”
“모르냐.”
“모르니까, 묻지.”
“너무 많잖아. 우리가 뭐 하나 유리한 게 있냐.”
천호는 단원들 간의 설전에 동의하지 않았다. 혹금단은 분명 강하다. 개개인 의 전투력도 경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 좁혀지지 않는 간격은 의 문으로 남는다. 평소 통찰안을 활용해 혹금단을 살피고 있었다.
‘개인은 승률이 7할 이상인데, 단체가 되면 제로가 되다니.’
7할도 전력을 모조리 다 개방한 채 흑금단의 하위 단원과 싸울 때를 말한 다. 상위 서열과는 또 차이가 있었다. 흑금단 내에서도 철저한 피라미드 구조 다. 전투력은 위로 올라갈수록 엄청나 게 강해진다.
‘실전은 또 모른단 말이야.’
믿어지지 않지만 혹금단은 백금단을 봐주고 있었다. 설렁설렁, 여유가 철철 넘친다. 그럼에도 백금단은 매일 피똥 을 싸고 있었다. 실전이었다면 전력 차 이는 지금보다 더 크다. 흑금단의 진정 한 전투력은 실전에 있기에 소름이 돋 았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최강의 전투집단이었다. 이보다 더 강력한 무 력 단체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그리 억울해할 일은 아니라고 봤다.
천호는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싶지만 욕심은 자제했다. 강함을 단순한 수치 로만 비교해선 안 된다. 나아간 만큼 내 실을 다져야 한다. 똑같은 힘도 기초의 단단함과 허술함에 의해 차이가 크게 난다. 이는 혹금단과 백금단의 경험의 질적 차이에서 기인했다. 단숨에 극복 하기는 어렵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