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취업난 (3)
“5천 어때?”
“아이고, 상감마마!”
마법사의 가치를 상기하면 싸다. 그러 나 한국은 마법사에 대한 처우가 높지 않았다. 하물며 대형 길드가 아닌 중소 길드로 빠지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이 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와 다르지 않았다.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대 기업으로 가면 좋겠지만, 실상 그런 경 우는 극히 희소하다. 대부분은 중소기 업을 벗어나지 못한 채 빡빡한 인생을 산다. 그래서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하 는 거다. 인생에서 첫 직장을 잘못 택하 면 두고두고 후회를 하게 된다.
‘봅으려고 했는데, 잘됐다.’
4인방에게는 청천벽력일지 몰라도 정 우에게는 희소식이었다.
마법학과에서 어느 정도 레벨에 든 마법사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중에 서도 4인방은 발전 가능성을 봤을 때 쓸 만하다. 취업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포기했었는데 알아서 찾아와 준 격이 다.
“교수님하고 같이 일하게 될 거다.”
“우리야 영광이지요, 형님!”
“무례하게 굴지 마, 존귀하신 상감마 마께!”
형님과 상감마마는 빼라고 했다. 넉살 도 적당히 부려야지, 계속 그러면 짜증 을 유발시킨다.
정우는 마법학과와 관계를 맺을 필요 가 있음을 직시했다. 마법사를 지속적 으로 양산하려면 하이퍼 팩토리를 통해 계약을 맺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마 법사 양성을 위한 자금을 제공하는 대 신, 마법사를 정기적으로 수급받는 것 이다.
‘너무 뛰어나도 곤란하고, 딱 좋지.’
하이퍼 팩토리가 보유한 마도공학력 의 정점은 리차드 교수와 나만 알고 있 으면 된다.
대량생산을 하는 과정에서 마법사가 필요하다. 품질을 관리하고, 지속시키는 작업까지 통제하려면 시간이 많이 든다. 중간에서 품질관리를 할 인원으로 써먹 으면 되었다. 그것만 해도 불량률을 제 로에 가깝게 줄일 수 있었다.
“정우야, 필요한 거 없어? 뭐든지 시 켜!”
“넌 빠져, 이런 건 시다바리 전문인 내가 해야 된다고!”
“웃기시네, 난 유치원 때부터 빵셔틀 이었다고!”
“빵셔틀로 되겠어, 난 국민 왕따였 어!”
“난 너희들을 위해 당뇨가 있는데도.
막대사탕을 던진 생명의 은인이다!”
이것들이 자랑을 하는 거야, 자해를 하는 거야?
컨셉 헷갈리게.
본인들 딴에는 잘 보이기 위한 아부 의 일환이다. 하이퍼 팩토리에 취직을 하게 되면 정우는 직장 상사가 된다. 잘 보여야 승진이 빠를 거 아닌가. 지금부 터라도 기름칠을 잘해놓아야 했다.
‘직업에 대한 소명이나 사명감은 없구 나.’
본인이 좋아하고, 잘하는 직업을 얻어 야 한다고 충고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직장은 연봉 많고, 복지가 좋 으면 그만이다. 그런 곳에 들어가는 것 으로 만족하는 현실이다.
“그만해, 난 그런 거 좋아하지도 않 아.”
“그래도.”
“들어가서 맡은 일이나 열심히 해. 평
가는 나중이야.”
“알았어.”
정우는 그쯤에서 멈추라고 했다.
아부를 떤다고 직무 평가에서 도움되 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그런 마인드 로 직장 생활을 하게 된다면 오히려 불 이익을 받는다고 충고했다.
“와, 진짜좋은 회사네.”
“그러게, 꿈의 직장이야.”
“그것만으로도 좋다.”
4인방도 처음부터 요령이나 부리고 요행을 원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보면 4인방이 뛰어난 엘리트인 줄 알겠지만, 실상 그렇지는 않았다.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크지 않은 편이다.
어쨌든 그 안에서 만족한다는 점은 단점 같지만, 실상 장점이다. 욕심이 크 면 위험도 커진다. 감당하지 못할 일에 목숨을 걸진 않을 테니.
“평생 5천만 벌고 싶다.”
“나도.”
“미투.”
꿈이 참 소박하다.
정우는 만족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저런 삶도 필요하기는 한데 자신한테 는 어울리지 않았다. 근래에 들어 유니 크 다음으로 공무원이 1등 직업군으로 분류되는 이유를 여실히 깨닫게 된다. 공무원, 교사, 군인이 선호되는 세상이 과연 좋은 것인지, 고민해보게 한다.
‘원한다면 5천만 주마.’
정우로서도 굳이 더 줄 필요가 없었
다.
5천만 달라고 하면, 5천만 주면 된다. 싫다면 좀 더 올려주고. 소박한 녀석들 에게 소박함의 미덕을 보여주는 것이다. 간혹 100퍼센트 성과급을 주면 어떤 반 응이 나올지 궁금하기는 하나 패스했다. 굳이 돈 더 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주지 않는 게 사업가의 마인드다.
오랜만에 수업을 들었다.
수업 후.
정우는 남 교수와 정 교수를 만나서 후원을 약속했다. 마법학과의 존폐에 걱정이 태산이었던 남 교수와 정 교수 에게는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리차드 교수가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 직이 되면서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었다. 하이퍼 팩토리가 지원을 해준다고 한다 면 마법학과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갈 것이다. 정년 연장의 꿈을 이루게 되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고맙다, 정우야.”
“서로 돕고 사는 거죠.”
“허허, 그럼 우리도 은퇴하면 받아주 겠니?”
“아니요.”
하는 김에 꼽사리를 끼려고 했던 남 교수와 정 교수는 켁! 하고 사레에 걸렸 다. 말이라도 해주면 나중에 ‘그랬잖아.’ 하고 어물쩍 들어가 보려고 했건만, 어 림 반 푼어치도 없다. 사제관계임에도 공과 사가 아주 철저했다. 성공한 제자 의 미덕을 발휘해주기를 바랐거늘, 사 회는 냉정하다.
“매정하기는, 말이라도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
“말에 힘이 실렸던데요.”
“?…"느꼈느냐?”
“그럼요, 너무 간절했거든요.”
마법사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올까?
대부분은 마법을 구사하기 위한 언어 와 마나를 쌓는 심장이라 말한다. 그러 나 정작 중요한 힘은 바로 말이다. 마법 사의 말은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 그 래서 마법사는 가급적 거짓을 입에 담 지 말아야 한다.
“너 진짜 6륜 맞느냐?”
“아니요.”
“혹시?”
“예, 맞아요.”
남 교수와 정 교수는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자신들은 평생을 수련해서 이제 겨우 6륜에 올라섰다. 이것도 리차드 교수님이 가는 김에 알려준 심득으로 완성되었다. 실상 6륜에 발을 들인 수 준에 불과했다. 완전한 6륜의 마법사를 만난다면 솔직히 개 발린다.
‘7륜이라니!’
‘괴물 같은 녀석!’
저 나이에 7륜이면, 어쩌면 마법사로 서 극한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부럽기 도 하지만, 제자가 마법사로서 대성한 다면 스승으로서 자랑거리가 된다. 같 은 마법사로서 높은 수준의 마법사에 대한 존경심도 있었다. 제자지만 오히 려 배움을 청하고 싶을 지경이다.
“무공은 포기한 것이냐?”
“그럴 리가요, 병행하고 있습니다.”
“네 딴에는 둘 다 연성하고 싶겠지만, 욕심은 화를 불러올 수 있으니 조심해 야 해.”
“알겠습니다.”
남 교수와 정 교수는 정우가 마법을 배우기 전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걸 알 고 있었다. 그러나 무공보다는 마법에 소질이 더 많다. 불과 6년 만에 상급의 마법사가 됐으니, 말도 안 되는 재능을 타고났다. 이쯤에서 마법만을 집중적으 로 연성하는 편이 나았다. 둘 다 완벽해 지면 좋겠지만, 자칫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도 있었다.
“네가 사는 거 맞지?”
“그렇다니까, 속고만 살았나.”
“의리가 있네.”
“내가 의리 빼면 시체잖아.”
“우린 같이 죽고 같이 사는 거다.”
“당연하지.”
술을 산다는 말에 별다른 의심 없이 따라온 동기들. 과에서도 애주가로 소 문이 나 있었다. 믿고 쓰는 튼튼한 육신 은 어지간히 먹어선 취하지를 않는다. 최소한 각 열 병은 마셔야 감흥이 조금 오는 정도다. 그래서 술을 산다는 건 어 려운 일이다. 하도 많이 먹어서 돈이 어 마어마하게 깨지기 때문이다.
날이 저무는 가운데 골목길에 들어섰 다.
저 앞에서 어둠을 마주하고 선 그림 자가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돌아서 가 지는 않았다. 서서히 그림자의 형태가 드러나고 완성되었다.
“너는?”
“꼬리를 달고 오셨네.”
오란다고 오기는 했는데, 혼자는 죽어 도 못갈것 같았다.
인권은 함께 동귀어진도 가능한 친구 들을 불렀다. 혼자는 외롭지만, 함께는 괜찮다는 우리만의 구호를 잊지 않았 다.
하나 동기들은 인권의 의리를 순순히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우릴 팔았어! 네가 그러고도 친구 냐!”
“언제는 같이 죽고, 같이 살자며!”
친구가 술을 산다는데, 뭔 말을 못할
까? 그 앞에서 솔직하게 말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진실은 마시고 난 후에도 충분하다.
재앙이 앞을 막아서자 본심이 술술 튀어나왔다.
“죽으려면 혼자 죽으라고!”
“호들갑 좀 떨지 마, 죽긴 누가 죽어!”
“아니면 팔이 아작 나겠지.”
“설마 그러기야……
“한데 말끝을 왜 흐려!”
인권의 동기들, 특히 임오의 언성이 컸다.
아직도 그때를 상기하면 오른팔이 쑤
셔왔다. 6년이 지난 지금이야, 가끔 우 스갯소리로 치부하지만 각인된 공포는 여전했다. 자신만만했던 시절, 오른팔이 꺾인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 다.
“우릴 어쩌려는 거야?”
“난 인권이만 불렀는데.”
“그럼 우린 가도 되는 거야?”
“맘대로 하셔.”
정우는 인권이를 시험하려고 따로 불 렀다. 다른 놈들이야 가든지 말든지 자 격요건이 되지 않았다.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거늘, 싫다는 놈들 억지 로 붙잡지도 않는다. 사람은 많고, 좋은 자리는 희소하니. 굳이 매달릴 필요는 없다.
“치사한 자식들. 나만 두고 가면 어떡 해‘?”
“두 번 다시 연락하지 마라, 넌 친구 도 아냐!”
“가기만 해, 진짜로 단절이다!”
“흥! 그러시든지.”
임오와 동기들은 인권과의 우정을 단 칼에 잘라버리고 물러섰다. 다 같이 동 귀어진은 사양이다. 죽으려면 혼자 죽 어야 마땅하다. 셋을 위해 한 명이 희생 하면 그림도 괜찮게 나오잖아, 라는 마 인드다.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네 명이 동시에 뒈지는 그림보다는 훨씬 예쁘다. 나중에 장렬히 산화했다고 포장해줄 수 는 있었다.
‘술 산다고 할 땐 닥치고 따라오던 놈 들이!’
6년의 우정이 물거품이 되었다. 그간 같이 마신 술이 아깝다. 인권은 욕이 튀 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화는 나 지만 동기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정 우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로 다들 엄청 난 후유증에 시달렸었다.
그때는 술도 엄청 마시고 방황도 많 이 했었다. 다구리당하지 않은 걸 다행 으로 여겨야 한다. 이상한 건 시간이 흐 를수록 정우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철없이 행동하고 애 들을 무던히도 괴롭혔었다. 그게 다 업 보로 다가왔고, 부끄러운 과거가 되었 다. 많이 반성했지만, 그런다고 사라지 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왜 보자고 한 건데?”
“취직시켜 주려고.”
“뭐?”
“금강문 어때?”
“?…”콜!”
망설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최근 금강문의 유명세는 어딜 가든 화제다. 한국 제일의 유니크 집단으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 연봉과 복리후생도 업계 내에서 1등을 달린다. 유니크라면 누구 나 선망하는 곳이 되었다.
“나도 콜!”
“나도!”
등을 돌렸던 동기들, 귀는 밝았다. 30 미터를 무시하고 어느새 인권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육체변환학과 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을 받는 스피 드, 이를 단번에 해결해버렸다. 또한 친 구가 가는 길이 지옥일지라도 함께 가 겠다는 의리를 표현했다.
“우정을 위하여.”
“……이 새끼들이!”
정우는 말리지 않았다.
오겠다면 기회를 줄 순 있다. 실상 취 직이라기보다는 기회의 제공이다. 시험 을 통과하면 금강문 소속이 된다. 한데 그럼 끝나나? 취업했다고 인생이 끝나 지는 않는다. 긴 인생의 시작점에 불과 했다. 훌륭한 직장도 중요하지만, 본인 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법이다.
‘버티는건 너희들 몫이다.’
현재의 금강문은 무문으로 만족해선 안되었다.
다양한 속성 능력자를 끌어들여야 한 다. 무인으로 한정시키면 확장성에서 문제가 생긴다. 무문의 독선적인 면을 버리고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했다.
‘무문에 얽매이면 포용성이 줄어들 지.’
단, 사전 검증은 필수다.
배신자는 참수고.
‘통수는 5번으로 됐거든.’
정우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통수다.
당할 것 같으면 먼저 친다. 이것이 현재 정우의 기본 신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