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취업난 ⑵
“.?.오빠! o] 악당!”
사랑하는 오빠를 동인(凍人)으로 만들 어버린 정우를 향해 하경이 달려들었다. 그녀는 이제야 깨달았다. 인권 오빠가 왜 그렇게 긴장을 했는지, 저 마법사는 보통을 넘었다. 그리고 마법학과의 재 앙으로 불리는 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쩌저적, 파아앗!
그때 인권이 아이스 브레스를 깨부수 었다. 거동이 가능해지자, 그 즉시 달려 들어가는 하경을 막아 세웠다. 끝까지 남자친구로서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하경은 감동을 하고 말았 다.
“이것들이 염장 제대로 지르네, 어디 요것도 받아봐라. 라이트닝 볼트! 레인 샤워! 토네이도 임팩트!”
난사 수준의 다양한 마법이 펼쳐지자, 인권이 육체변이로 막아섰다. 진정 맷 집이 상당하다. 맞아주는 데는 타고난 육체였다.
비틀!
난사의 후유증일까, 정우의 마법에 빈 틈이 발생했다. 그 즉시 인권이 속성을 개방해 달려들었다.
곰처럼 무식하게.
-육체가속!
곰펀치
가속된 육신은 속도가 상당했다. 단숨 에 5미터의 거리를 찌르고 들어와 곰발 바닥 주먹을 날렸다.
“블링크!”
정우는 마법사답게 맞서지 않고 공간 을 벗어났다. 30미터의 거리를 창출해 내며 인권을 보았다. 헛주먹을 날리기 는 했어도 경계를 잊지 않는 인권이었 다. 공수공방이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 는 수준에 도달했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다음 에 손봐주마.”
정우가 물러서자, 소요는 금세 가라앉 았다.
주변을 맴돌던 시선들도 차분히 원래
가던 길을 갔다. 사실 학생들은 인권과 정우가 싸운다 해도 신경을 쓰지 않았 다. 굉장히 무심했다. 자신들과 관계없 는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은 귀찮음이 다 분하다.
“얼마든지, 와봐!”
“오빠, 멋져요!”
인권은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호탕하 게 웃었다.
무너졌던 자존감을 회복하고, 내 여자 를 지켰다는 사내로서의 뿌듯함을 느끼 고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에 권선징악 은 존재하지 않았다.
-너 나증에 따로 보자.
뇌리를 파고들어온 음성, 그건 악마의 속삭임이다. 거절하면 반드시 재앙이 내릴 것이다. 인권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실상, 마법을 막아내고 내심 이 제는 달라졌다고 여겼는데, 명치를 파 고들어 온 한줄기 경력, 그건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났다.
‘대체 정체가 뭐야, 같은 학년 맞아?’
소름 쫙 돋았다. 도저히 항거하지 못 할, 거대한 힘의 편린이다. 과거에도 엄 청나게 강했지만, 지금은 더 강해진 게 틀림없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고 헛수작을 부린 꼴이다.
얄밉지만 고맙기도 했다. 자칫 여자친 구 앞에서 그때처럼 개망신을 당했을 수도 있었다. 체면을 지켜준 것이다.
그러니 거절은 어림도 없다.
‘절대 남을 위해 헛수고를 할 놈이 아 니지!’
치수도 맞지 않는 신발까지 탈탈 털 어 간 놈이었다.
‘이런 신발!’
그때와 다르지 않은 데자뷔였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놈은 정말 안 되는 모양이다. 넘지 못할 벽은 피해 가는 게 상책이었다. 똥을 밟았다 고 또 밟을 필요는 없었는데. 그냥 좋게 갔으면 되는 일을 가지고 괜히 오버한 꼴이다.
‘취업도 안 되고, 젠장!’
취업은 됐는데, 직장이 사라져 다시 구해야 한다. 구하려고 하면 갈 데는 있 으나, 정작 좋은 직장은 구하기가 어렵 다. 예를 들면 이렇다. 서울대라고 해서 다 좋은 직장 갈 거라는 일종의 편견이 작용했다.
하소연도 못하는 참담한 심정의 인권
과 달리 정우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마 법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육체의 변이는 놀라웠다.
‘이걸 막았단 말이지.’
중급 레벨 이상의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어도, 마법의 경지가 높아지면서 일반 마법사와는 위력의 차이가 컸다. 마법의 정밀도와 친화력, 구성배열, 마 나중첩의 배열이 완벽에 가까운 정우다. 그런 정우가 사용하는 마법은 1레벨이 라도 파워가 어마어마하다.
‘미안하다.’
그간 병신인 줄 알았다. 그 일 이후로
다시 만날 가능성 제로인, 엑스트라의 인생이라고 단정 지었거늘. 인권의 발 전이 눈부셨다.
인권성장.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편 견이 작용했었다. 무엇보다 마구 부려 먹어도 잘 부서지지 않는 부류다. 수련 과정은 달라도 금강불괴와 비슷하다.
물론 좀 더 검증이 필요하다. 아무나 막 갖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학과의 강의실에 들어왔다.
쌩!
강의실 분위기가 삭막하고 축 처져
있었다. 꽤 오랜 시간 학과를 찾지 않아 서 그런지 분위기가 어색하다. 그렇다 고 크게 신경은 쓰이지 않지만, 왜 그런 지는 알아야 했다.
“야.”
“정우구나.”
1학년 m 이후로 나름 눈부신 성장 을 한 동기들이다. 차명호와 이재덕은 4레벨이고, 김승현과 맹승구는 3레벨에 올랐다. 정식으로 마법사라는 호칭이 붙어도 될 만한 괄목상대다. 이쯤 되면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이 가능하다. 침 울한 분위기를 상식적으로 납득하기는 어렵다. 한창 꿈과 희망을 키워나갈 녀 석들이 벌써부터 세속에 찌든 기색이 완연했다. 요즘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다들 왜 그래?”
“왜긴, 1년 있으면 졸업이잖아. 네가 우리 맘을 알겠냐.”
“내가 듣기로 너희들 취업했다고 하 던데.”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는 그만해라.”
군대도 남아 있어서 더 걱정이 가득 한 4인방이다. 정우도 군대 문제가 남 아 있기에 시간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실상 군대까지 포함해서 취업 자리를 확보해놓고 있어서 안심하다 크게 당한 꼴이다.
“길三가 사라질 게 뭐람!”
“내색할 수도 없고.”
“지은 죄가 너무 크잖아. 적당히 좀 할 것이지!”
유니크 전문학교도 다른 일반 학교와 비슷하게 6학년이 되면 취업할 시기다. 입대할 시기와 겹쳐 취업을 한 상태로 군대를 가는 경우가 흔하다. 복역 후에 곧바로 복직을 하면 여러모로 시간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학교는 무문연합, 길드연합, 유니 크연합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졸업학 년이 다가오기 전에 스카우트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취업문이 너무좁아졌어.”
“하필 우리 때에!”
“우리 집안은 왜 이런 거야? IMF에 딱 걸린 할아버지도 그렇고.”
명호의 할아버지는 사업으로 한창 잘 나가고 있다, IMF로 직격탄을 맞고 자 연인이 되었다고 한다. 여전히 건강하 게 잘 살고는 있는데, 찾아가기 무척 귀 찮다.
“너만 그러냐, 나도 대대로 운이 없 어!”
“우리보고 죽으란 거지.”
97학번이셨던 분들이 할아버지 세대 가 되어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경기 호황으로 대학만 나와도 취업이 가능했 던 호시절이었거늘. IMF 이후로 정규직 취직이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고, 비정 규직이 양산되었다. 하물며 취업을 해 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어려운 시국으 로 변했다. 자신들도 할아버지 때와 비 슷한 케이스가 되었다.
정우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 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의 태평 양에 태풍을 일으킨다고 하더니, 그 짝 이다. 사실 4인방은 고려의 대상에 포 함하지도 않았다. 건드린 놈들을 그냥 두고 볼 성격도 아니고.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학과는 물론 학교 전체 분위기가 왜 그렇게 다운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무문과 길드를 합쳐서 16개의 유니크 집단이 있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절 반으로 줄어든 상태다. 단순 수치상 취 업문이 반으로 줄어든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더 줄었다고 봐야 한다. 다른 길 드가 없어졌으니 경쟁 상대가 줄었다고 만 보기 어렵다. 무문과 길드에서도 채 용할 한계가 있어, 당장 취업문이 넓어 지진 않는다.
“무문이나 박살 날것이지.”
“어째서 길드냔 말이야.”
“우리까진 해먹고 망하면 얼마나 좋 아.”
마법학과 학생으로서는 선택지가 많 지 않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으니, 무 문보다는 길드가 나았다. 한데 4방신 길드가 하루아침에 망하는 바람에 낙동 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남의 일일 때 는 객관적이지만, 내 일이 되니 굉장히 이기적으로 변한 4인방이었다. 어쨌든 화가 나서 내뱉은 신세한탄이었다. 자 신들도 4방신 길드의 죄는 인정했다.
“정우는 좋겠다.”
“맞아, 잘나가는 재벌 2세잖아.”
“우리 같은 서민의 마음을 알 리가 없 지.”
“루저의 한풀이니까, 맘에 담진 마 라.”
답답해서 하는 소리기는 해도 정우가
부러운 4인방이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하이퍼 팩토리의 오너 아 들이자, 대한그룹의 금지옥엽이며 국민 여동생을 여자친구로 두고 있으니 부럽 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역시 되는 놈들은 뭘 해도 된다.
‘기회는 줘야겠지.’
미안해서는 아니다. 필요가 없으면 기 회조차 줄 이유가 없다. 길드는 무너질 짓을 했고, 대가를 치른 것이다. 후폭풍 이 두려워서 쓰레기를 처리하지 않으면 후일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부럽냐, 서민들아.”
“너 그러는 거 아냐, 잘나갈수록 겸손 해야지.”
염장을 제대로 지르고 있었다. 남은 취업을 할지 말지 고민이 태산 같거늘. 그 앞에서 한가로이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는 정우가 곱게 보이진 않았다. 그 러나 정우의 만행을 겪어본 4인방이다.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상종 못 할 녀석 이었다. 1학년 때 MT에서 겪은 고난을 상기하면 아직도 솜털이 곤두선다.
“자리 좀 알아봐 주려고 했는데, 싫음 말고.”
“헤헤, 우리가 언제 싫다고 했습니까,
형님!”
“형님?”
“이제부터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처세술 하나는 기가 막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마른 오징어인 양 질겅질 겅 씹었으면서 그새 형님이란다. 강자 에 악한 전형적이고도 구태의연한 태도 다. 요즘 대학생의 모습이라 씁쓸하기 는 하다. 과거와 같은 열정이나 낭만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였다.
정우는 4인방을 질책하지 않았다. 그 런 세상을 만든 게 4인방의 책임은 아 니다. 이는 개인이 아닌, 이런 세상을 만든 권력자와 사회의 책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