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강무진 (2)
‘나도 분발해야겠는걸.’
정우도 금강문주를 가볍게 여기지 않
는다.
그는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발전 가
능성이 떨어지지 않는 부류다. 그야말 로 전투를 위해 태어난 생명체,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며 미지의 힘을 발생시 킨다. 극한에 다다르면 본인도 모르는 능력을 발휘하게 될 터.
“통로는 안전합니다.”
일직선으로 뚫고 들어간 금강문주의 뇌공에 통로는 넓어져 있었다. 마물이 숨어 있다고 해도 뇌기에 녹아버렸을 것이다. 삼왕과의 전투에서 승패를 내 지 못했던 이호극과는 또 달랐다.
통로를 지나왔다.
쩌어어엉!
어둠이 내리깔린 공간에 빛이 번쩍이 고, 굉음이 뒤늦게 케에브를 요동친다. 전투는 시작되고 있었다. 살판난 둣 뇌 기를 줄기줄기 붐어댈 때마다 주변이 밝아진다. 그럴수록 공포는 더 크다. 으 스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케이브다. 진 득하게 퍼져 있는 마기는 인간의 연약 한 마음을 갉아먹었다.
“괜찮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밖에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아 시다시피 훈련받지 않은 자는 유니크라 도 케이브 출입이 불법이거든요.”
“……괜찮습니다.”
강 피디가 괜찮다고 하기 무섭게 숲 속에서 블랙 오크가 달려들었다.
쿵, 쿵, 쿵
오크는 색에 따라서 능력치가 다른데, 블랙 오크는 오우거와 비견되는 덩치와 주술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마물 등급도 7급인, 상급마물이다.
300마리나 되는 블랙 오크가 사방을 에워싼다. 수평선의 끝에서 살판난 듯 싸우고 있는 금강문주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남은 건 알아서 처리할 거 라는 믿음이 깔려 있지만, 생판 처음 보 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한 무신경으로 다가온다.
크어어엉!
블랙오크의 포효는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귀를 틀어막는 다 해도 심령 을 흔들어 놓아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머뭇거리는 강 피디를 노리고 블랙오 크가 달려들었다. 군살 하나 없이 밀도 높은 근육으로 완성된 4미터에 달하는 블랙오크의 위용은 상당했다.
번쩍!
빛이 공간을 가른다.
스적!
블랙오크가 갈라지며 검은 피를 분수 처럼 홀린다. 빛은 멈추지 않았다. 반월 의 청연한 빛의 예기가 연이어 발출되 었다.
슈아앙, 슈앙!
사방으로 토해지는 피의 향연, 그 비 리고 뜨거운 향기는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우는 블랙오 크를 손쉽게 처리해 나갔다. 육신을 둘 러싸고 있는 무형의 강기가 반월을 그 릴 때마다 어김없이 블랙오크는 저세상 으로 직행했다.
쩌저적!
블랙오크가 반으로 갈리는 광경을 마 주한 강 피디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부르 르! 떨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동공에 는 알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담겼다.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진 않아도, 충격 은 받았을 거다.
‘골려줄까?’
일전의 복수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면, 다시 보여줄 때다.
실상 그를 회사로 데리고 온 목적 중 에 하나이기도 하다. 두고두고 써먹으 려면 수중에 두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같은 식구가 된 김에 신고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고작 마물 몇 마리 죽은 걸 로 충격을 받으면 앞으로 버티기 어렵 다. 이 정도는 나른한 오후에 라면 먹고 눕는, 일상처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 다.
쿠웅, 쿠응
블랙오크라고 해도 다 같은 블랙오크 라고 보면 오산이다.
사람마다 각각의 차이와 등급이 나누 어져 있듯, 규격이 더 크고 주술력이 강 한 오크가 있었다. 300마리를 지휘했던 군단으로 비교하면 백부장쯤 되는 블랙 오크가 경갑옷을 입고 달려들었다.
쌔애행!
육신에 마기를 둘러쳐 강력한 방패를 형성했다. 얼마 전 있었던 케이브 격변 이후로 마물이 점차 인간형으로 변하고 기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마치 또 다른 문명을 가지고 있는 것처 럼.
-죽어, 죽어
강력한 전언이 발출되었다.
정우는 공간을 제어했다. 블랙오크의 전언에는 죽음이 담겨 있었다. 수련되 지 않은 일반인이 감당하기에는 위험천 만하다.
오크의 칼에 마기가 중첩되어 칼을 형성했다.
‘이거 봐라.’
수련하지 않고서는 나오기 힘든 종류 의 것, 그간 봐왔던 블랙오크와는 달랐 다. 현재까지 발견된 마물도 지능은 가 지고 있지만 고도화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심법처럼 운용이 가능하다면 얘 기가 달라진다. 지능을 발전시킨 문명 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물의 지능지수와 문명의 고 도화가 높아지고 있었다. 물론 지능이 높아진다고 해서 강력한 마물이라는 뚯 은 아니다. 지능과 관계없이 더 강한 마 물도 나온다. 그래서 더 판단을 모호하 게 했다.
‘마치 우릴 시험하는 것처럼.’
격변이 또 한 번 일어나려는 징조였 다. 마물의 등급이 달라지고, 전혀 새로 운 형태의 마물이 등장할 때마다 케이 브가 변이를 일으켰다. 이는 마치 인간 을 시험하기 위해서 게임 시스템을 도 입해 놓은 듯했다.
‘지금까지가 튜토리얼이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꽤나 놀라겠군.’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변수는 언 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격변의 세상 이 되면서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어졌 다. 실상 미래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 는 불확실한 변수와 확률로 구성이 되 었으니, 딱히 달라졌다고 보는 것도 이 상할지 모른다.
스왁!
정우의 반월강기가 마기로 중첩된 칼 을 베어내었다. 스텝을 펼치며 빠르게 치고 들어왔던 블랙오크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다가 강 피디의 코앞에서 멈추었 다.
-?우린…… 멸망하지…… 않는다
멈춰 선 불랙오크의 편린일까? 마지 막 발악이 현천안을 통해 전달되었다.
정우의 두 눈에서 짙은 의혹이 생성 되었다.
‘멸망하지 않는다고?’
이해하기 어렵다. 저들은 침입자다. 남의 구역에 겁도 없이 발가락을 담고 멸망을 거론해. 퍼즐의 조각이 맞지 않 는 것처럼 어긋난다.
그런데 어째서 멸망을 거론했을까? 적반하장처럼 느껴진다. 짐작을 하자면 떠밀렸다는 의미가 된다. 누군가에 의 해. 안타깝게도 자세한 내막을 알아내 기에는 정보가 부족했다.
‘곧 밝혀지겠지.’
누군지는 모르지만, 함부로 사람을 실 험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 게 될 거다. 그것이 설령 우주와 차원을 다스리는 창조신이라 할지라도.
‘그때까지 강해진다.’
정우는 목표를 앞으로 당겼다.
모호한 장막 속에 가려진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한다. 정해진 규 격, 그걸 누가 정한단 말인가. 미래는 오직 스스루 정해야 하는 법이다.
‘운명은 개소리지.’
운명의 가혹한 장난이었던 5번의 전 생이 떠올랐다.
아주 개 같은 기분이다.
쩌어어억!
머리에서 허리까지 검은 선이 그어진 블랙오크의 육체가 점차 힘을 잃어가며 반으로 갈라져 버리고 말았다. 맥동하 던 검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강 피디 를 덮쳤다. 검은 피는 비릿하며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이를 온몸으로 받아 샤 워를 한 격이니, 신고식치고는 과한 면 이 없지 않아 있었다.
부르르!
피 샤워를 한 강 피디는 격렬히 몸을 떨었다. 피를 통해 전달된 블랙오크의 마지막 사념까지 경험했을 테니, 상당 한 충격을 받았을 거다.
‘받았으면 치료하면 될 테고.’
정우는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정신적 으로 문제가 생긴다면 충분히 조정해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의 성격으 로 돌아간단 보장은 하지 못해도, 일상 을 살아가는 데는 부족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사내가 울기는.’
지나치게 떨고 있었다. 7급의 유니크 가 되면 훈련을 거치지 않았다고는 해 도 평정심의 유지는 가능하다. 하물며 방송가에서 구르고 구른 천재 피디가 이 정도로 정신을 놓지는 않을 거라 봤 는데, 사람을 잘못 본 건가?
三J O O O 이
이제는 신음까지 낸다.
‘좀 심했나?’
정우는 케이브에 대해서 안일하게 생 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보여줄 요량이 었는데, 이렇게 되면 살짝 미안해진다.
적당히 쇼크를 주어야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거늘, 충격이 지나치게 컸었다.
“이거 미안하게 됐…… 응?”
반응이 어째 수상하다.
오싹함까지.
“크하하하하하하!”
웃어?
미치면 울기보다 웃는 놈도 있다고 들었다. 사실 그런 놈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니다. 전장에서 한창 칼질을 하고 나 니, 살아남은 놈들 중 대부분은 벌벌 떨 고, 또 몇 놈은 실성했는지 웃었다. 물 론 떨거나, 빌거나, 미치거나 나는 그때 신경 쓰지 않았다. 적으로 만났는데, 남 녀노소미친년놈이 무슨 상관이랴. 그냥 썰어버렸었다.
‘당시엔 약점이 없었지, 그놈 빼고.’
가족도 없고, 수하들은 사용할 도구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설령 가족이 있다 고 해도 권력을 잡기 위해 피를 홀리며 싸우기만 했었다.
“……환상적이야!”
“뭐요?”
“?멋지다. 이렇게 멋질 수가!”
“이거 혹시?”
대오각성?
미쳤다고 하기에는 강 피디의 두 눈 이 지나치게 초롱초롱하다. 마치 새로 운 세상, 신세계를 만나 행복해하는 어 린아이와 같은 순수함, 무아지경의 경 지에 도달해 있었다.
깨달음에는 방식이 따로 없다는 말을 본인도 입에 달고 다니지만, 이런 식의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 다.
‘저럴 수도 있는 거냐?’
보통은 없다.
그런 게 가능하면 개나 소나 다 깨달 음을 얻는다. 그렇다 해서 강 피디가 전 혀 다른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은 아니 다. 무공이나 마법, 속성 등급이 올라가 야만 깨달음이라고 규정하진 않는다.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세 상을 만들어 나가는 구도(求道)도 깨달 음이었다. 달리 표현하면 개안(開眼)이 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그렇지.
‘이거 미친놈인데.’
정상은 절대 아니다. 이걸 정상으로 본다면 그놈도 비정상이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깨달음이 오지 않는다. 하물며 저토록 천진난만하게 좋아하다니, 천재는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른 부류라고 하더니.
그런 면에서 보면 정우도 재앙에 가 까운 천재지만, 돌아이와는 거리가 멀 다고 스스루. 판단했다.
‘어쩐지.’
와룡과 닮은 기분이 들었던 까닭이 이제야 밝혀졌다. 확실히 특이하긴 했 다. 그 미친놈은 죽어서까지도 웃고 지 랄이었다.
-와, 진짜 너 세다! 너 같은 놈한테 대가리가 잘려보고 싶었다. 그래도 아 깝네, 백이한테 이 새끼가 더 세다고 말 해줄걸.
죽기 직전 와룡이 지껄인 개소리다.
확실히 난놈이었다. 진강백이 이놈과 보다 더 오랜 시간 합을 맞췄다면 동귀 어진을 해야 할 상대는 내가 되었을 것 이다. 그만큼 그놈의 기관진법은 상상 을 초월했었다.
‘그런다고 안 죽인 것도 아니지만.’
배짱 두둑하다고, 용기가 가상하다고 해서 살려두지 않았다. 그때엔 자라날 싹은 확실하게 베어내고, 밟아주었으니 까. 기실 진강백만 남고 살아남은 천재 들은 거의 없었다. 도중에 나를 만나거 나, 찾아가서 깡그리 다 몰살시켰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본인의 능력을 과시하는 자들 중에 후환이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살려주기도 했었다. 왜 그런 지 아직도 이해는 되지 않는다. 적이 되 어 돌아올 텐데, 그깟 자존심이 뭐라고. 자존심 한번 숙이면 말년이 평온할 수 있었다.
9 9 Q Q 91
저 앞에서 뇌공을 번뜩이며 블랙오크 를 학살하고 있는 금강문주가 잡혔다.
강 피디는 금강문주의 활약에 넋을 잃은 듯 환호하고 있었다. 아무리 안전 에 이상이 없다고 해도, 최상급 마물이 달려들고 있는데 두렵지도 않은 모양이 다. 이는 담력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 야말로 상종 못 할 돌아이의 각성이었 다.
“아름답습니다!”
감탄의 연발.
정우는 골이 지끈거렸다. 이거 다시 스카우트를 철회하고 반품하고 싶은 마 음이 들게 했다. 포장만 믿고 사 온 제 품을 뜯어보니, 벽돌아이가 들어 있었 다. 하나 저 강 피디는 반품하려고 해도, 나갈 것 같지는 않았다.
“완벽하다, 완벽해!”
금강문주를 바라보는 강 피디는 그야 말로 살아 있는 원석을 보고 있는 기분 이었다. 저걸 잘만 갈고닦으면 그 누구 도 만들어보지 못한 방송을 제작할 수 있었다. 금강문주가 어느 순간 방송 아 이템의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전락해버 렸다.
“전 단주, 정말 고맙습니다.”
어째 당한 기분이 왕창 드는 정우였 다.
그렇다고 당했다고만 하기에도 애매 하다. 강 피디가 겁먹고 줄행랑을 쳐버 리면 그게 더 곤란하니 말이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해맑게 좋아하니, 기분이 찝찝해진다. 목에 가시가 걸리고, 모서 리에 발톱이 찍힌 이 짜증 나는 기분을 해소하고 싶어진다.
-1 번, 고춧가루.
-2번, 잿가루.
-3 번, 반품.
-4번, 현천삼도, 일보전광.
다 된 밥상을 엎어버리고 싶은 강력 한 충동이 솟구친다. 옛날부터 이런 걸 많이 당해봐서, 억하심정이 쌓여 있기 는 했다.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는 정우다.
강 피디가 돌아이라고는 해도 능력은 버리기가 정말 아깝다. 반품했는데, 거 기서도 잘하면 배가 더 아플 것 아닌가.
그래서 3번도 마음에 안 든다.
“호오, 더 불타올라라! 더 강하게! 더 세게! 더 황홀하게!”
물 만난 듯 활개를 치는 강 피디의 환 호성에 정우는 골이 지끈거렸다. 오랜 만에 접해보는 신선한 층격이었다. 이 런 식으로도 충격을 받을 수 있구나, 라 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진짜 세상엔 별 의별 놈년이 다 있었다.
-크하하하하. 더 없느냐!
-내가 불패금강이니라!
-너도 죽빵! 너도 쭉빵!
8급의 마물을 도살하고 있는 금강문 주의 호쾌한 외침이 쩌렁쩌렁하다. 이 음산하고 질척거리는 케이브와는 어울 리지 않는 발랄함까지 전해진다. 미친 듯이 광소를 터뜨리면서 마물을 학살하 는 그야말로 도살자의 표본이었다.
“참으로 아름다우시며, 순진무구하십 니다! 이토록 완벽한 천진난만함이라니, 보기 드문 분이 아니십니까.”
강 피디는 한술 더 떠 칭찬을 마다하 지 않았다.
진심이라서 더 심각하다.
어쩌면 죽이 잘 맞을지도.
케이브 정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8 급의 블랙오크-킹이 마지막까지 저항을 했지만, 의미가 없었다. 저항할수록 좋 아하는 금강문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