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강무진 (D
대한그룹 계열사인 대한엔터로 강 피 디를 스카우트했다. 공영방송 시스템에 서의 한계를 느낀 그로서도, 이쯤에서 자리를 내려놓으려는 참이라 아귀가 잘 맞았다.
대한엔터에선 강 피디에게 전권을 주 었다.
강 피디로서도 스카우트를 받고 주도 적으로 계획한 프로그램이라 심혈을 기 울였다. 받은 돈만큼 가치를 해야 하는 방송가다. 능력이 없으면 언제든 퇴출 당할 수 있었다.
단, 실력을 보이면 대한엔터의 국장 자리도 머지않았다. 그러나 그가 국장 이 될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는 높은 자리에 죽치고 앉아 있기보다는 프로그램 구상을 더 즐겼다.
“흑금단을 맡고 있는 전호경입니다.”
“명성이 자자한 흑금단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 니다.”
“과분하긴요, 그 나이에 초절정의 경 지에 오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대화는 그쯤 했다.
둘 다 바쁜 사람들이라, 시간이 남아 돌진 않는다.
본론으로 들어갔다.
‘첫술에 배부를 필욘 없지.’
정우는 강 피디의 기획에 맞추어주는 대신 금강문주를 끼워 넣었다. 금강문 주가 메인이 되진 않더라도, 화면에 비 추어야 했다. 게스트 형식이라도 괜찮 다. 강 피디가 만든 프로그램은 사람들 에게 믿고 본다는 인식을 주니까.
그런데 강 피디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이미 금강문에 올 때부터 작정 을 하고 있었던 모양^다. 절차적이지 만, 시나리오까지 완성되어 있었다.
“문주님을 메인으로 하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이 사람 똥도 히트시킬 재주가 있나.
할 수 있다면 방송의 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기는 하다. 문주님을 어지간 한 일반인으로 취급하는 뉘앙스라, 경 고를 해줬다.
“방송이 처음이라 쉽지 않을 텐데, 괜 찮을지‘?”
“저만 믿으세요.”
강 피디의 호언장담에도 정우는 걱정 이 앞섰다.
금강문주의 유명세야 두말해봤자 입 만 아프다. 준비 없이 나간다고 해도 방 송에서 메인으로 설 수 있다. 하지만 그 런 식으로 나오는 건 좋지 않았다. 유명 세를 등에 업기보다는 서브로 나가서 적당히 합을 맞추는 선이 나았다. 한국 무림의 주축이자 최강의 무인이지만, 소탈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하기만 해도 선방이다. 혹여 방송이 잘못되면 금강문이 외압으로 금강문주를 내세운 게 아니냐는 구설수가 생길 수 있다.
‘보록나면 역효관데, 괜찮을까?’
대외적인 금강문주의 이미지와 완전 히 다를 수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조율을 할 필요가 있었다.
정우는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물었다.
“어떤 식으로 방송을 하려는 겁니까?”
“일반인에게 짜인 시스템을 강요하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겁 니다.”
있는 그대로라고, 감당할 수 있으려 나?
괜히 죽방선생으로 불리지 않는다.
정우조차도 간혹, 금강문주를 통제 범 위에 두지 못할 때가 있었다. 강 피디의 넘치는 의욕이 과욕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문주님에게는 편하게 평소대로 하라고는 했지만, 편집을 믿고 있었다.
“감당이 안될수도 있습니다.”
“저와 제 동생이 나서서 안 된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살짝 미간을 찌푸리 는 강무진 피디다. 그로서는 한 가지 마 음에 걸리는 대상이 있었다. 그것만 아 니면 흠집 없이 완벽했을 텐데, 아쉽게 되었다. 피디로서의 사명감을 불태우려 다가 산화될 뻔했다.
“왜 그러십니까?”
“아실지 모르지만, 처음으로 똥 투척 을 받은 경우가 있습니다.”
정우는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그 똥이 나라고, 말을 못 하겠다.
“그러고 보니 금강문과도 인연이 있
겠군요. 국민여동생의 남자친구, 하정우 군이라고. 여태까지 만난 게스트 중에 가장 힘든 게스트였습니다.”
“정우에게도 복잡한 사연이 있을 겁 니다. 전에 원치 않은 일을 당했다거 나.”
첫 방송을 내보내고 전국적인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일반인이 유명세를 떨치 면 피곤하기는 하겠으나, 나쁘게만 생 각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라의 남자친구인 이상 유명세에서 벗어나기도 힘들고, 좋은 이미지를 심 어주었건만. 등 뒤에 비수가 꽂힌 기분 이었다. 그러나 이 나이에 어린애한테 억하심정을 가질 수도 없고, 강 피디로 선 분을 속으로 삭여야 했다. 한데 혹금 단주가 물어보니 그간 쌓아두었던 감정 이 살짝 토해졌다.
“제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열불이 터집니다.”
“앙금이 많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정우는 살짝 손맛이 궁금해졌다.
안 되지, 참아야 한다. 대계를 위한 첫 시발점이다. 과거는 잊기로 마음을 먹었다. 강 피디에게는 이미 엄청난 똥 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정을 후회하게 될지, 자못 기대가 남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앙금보다는 고마 움이 더 큽니다.”
“고맙다고요?”
정우는 좀 놀랐다.
똥 처맞고 좋아하다니, 사람을 잘못 골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다. 옛말에 ‘벽에 응가칠 할 때까지 살 진 말자’고 그쯤 되면 사고력이 아기 수 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한데 저 나이에 응가칠을 하면 그땐 답이 없다.
‘복수가 좀약했나?’
팔다리 하나 정도는 없앴어야, 신중히
고민했다가 멈추었다.
강 피디를 보고 있자니 누가 떠오르 기는 했다. 전생에서 진강백 다음으로 가장 짜증 나게 했던 놈이 떠올랐다. 머 리 쓰는 놈들로만 구성된 가문, 제갈세 가의 와룡(臥龍)이라 불린 제갈진룡. 진 강백과 호형호제하면서 계략의 절반을 무너뜨렸었다. 진강백과 짝짜꿍 먹은 와룡이 분수를 모르고 설치고 다녀서 그 집안을 시산혈해로 만들었다.
‘필요한 일이긴 했었지.’
진강백도 계략뛰어나지만, 제갈진 룡도 천재였다. 두뇌 싸움으로 몰고 갔 었다면 낭패를 면치 못했을 거다. 그나 마 결정적인 시간이 다가오기 전에 제 거했으니 망정이지.
무엇보다 짜증 났던 건.
‘그놈도 정상은 아니었지.’
제갈진룡 그놈은 천재임과 동시에 돌 아이였다. 어디서 그런 미친놈이 나왔 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어째서요_?”
“제 자랑 같지만 전 실패를 해본 기억 이 없습니다. 그간의 자만심에 경각심 을 주었으니 고마운 것이지요.”
의외로 겸손한 사람이다. 방송가에서
천재로 불리는데다가, 유니크 등급도 굉장히 높았다. 지금 보니 거의 7급에 다다라 속성 통제력이 상당한 수준이었 다. 어지간한 자들은 속성을 쓰지도 못 한 채 백지상태가 될 수도 있었다.
‘다행히 정상이군.’
본인 피알이 좀 있기는 해도, 그 정도 배포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세상이다. 더구나 금강문주와 함께 작업을 해야 하는데, 어지간한 멘탈로서는 버티지 못한다.
그래도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사 전답사를 요구했다.
“촬영 전 본문에서 생활을 해보는 게 어떠십니까?”
“제가 오히려 부탁을 하고 싶었습니 다. 평소 존경하는 금강문주님을 직접 마주할 기회는 흔하지 않지요.”
아무나 존경하면 짱돌 맞는데.
존경할 대상을 잘못 골랐다고 말해주 려다가 말았다. 직접 보고 나면 어정쩡 한 편집으론 어림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시련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앞으로 방송국을 왜 나 왔을까, 고민의 시기가 많을 테니.
“온 김에 계약부터 하시지요.”
午}음이 통하는군요, 마침 저도 계약 서를 가지고 왔습니다.”나중에 못 하겠 다고 할 우려가 있기에 정우는 확인사 살을 했다. 하나, 오덕X의 각인작업은 하지 않았다. 강 피디의 속성 무력화는 각인속성까지도 무력시킬 능력이 되었 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피곤한 능력자 중에 하나다.
-일정을 완수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 는다. 이를 어길 시 규정에 따른 손해배 상을 치러야 한다.
정우는 계약을 한 후에 언론에 노출 시킬 작정이다. 기대감을 상승시키는 요인도 되고, 무엇보다 강 피디가 도중 에 발을 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테니, 내일부 터 하시지요.”
“쇠불도 단김에 빼라고 했습니다.”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정우는 식당으로 향했다.
금강문주는 현재 식당에서 점심 식사 를 하고 있는 중이다. 본문의 구내식당 은 그 어떤 시설보다 크고 웅장하며 완 벽했다. 이번에 새로 증축을 하고, 요리 사를 열 명이나 더 봅았다.
요리업계에서 금강문의 주방장은 극 한직업으로 소문이 자자한다. 그런데도 지원자가 방방하단 사실이 이채로울 것 이다. 이유는 있었다. 금강문에서 3년만 버티면 어디에서도 극진한 대접을 받는 다. 극한직업을 버텨냈다는 일종의 자 부심을 나타낸다.
호로록, 호로록!
한창 빌을 받은 이호극이 음식을 흡 수하고 있었다. 입으로 들어가면 빈 접 시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호극의 식탁은 특수 제작되었다. 회전초밥집에 서 공수해 온 기계를 설치해 요리를 주 문하는 즉시 곧바로 나오고 회수도 가 능했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절약하 기 위한 주방장의 고육지계였다.
“어, 무슨 일이야?”
“이번에 하실 프로그램의 피디입니 다.”
“그런데?”
“문주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으로 확 인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되는 게4?”
“판단은 강 피디님의 몫이지요.”
강 피디가 인상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자, 이호극이 손을 내밀었다. 텔 레비전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니더라도, 이름은 들어본 프로그램의 피디다. 제 법 방송가에서 유능하다는 소리를 들었 다.
“강무진입니다. 문주님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영광까지야, 한데 정말로 편하게 하 면 되는 겁니까?”
“요즘에는 리얼리티가 대세입니다. 그 러니 말씀도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야.”
이호극도 방송이라고 해서 위선을 뒤 집어쓰고 싶지는 않았다. 대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있다고는 해도, 위선 을 떨 필요까지는 없다고 봤다. 여하튼 능력 좋은 피디라고 했으니, 적당히 잘 버무려줄 거라 본다.
-괜찮은 거 맞지?
-괜찮다는데 맡겨보시죠.
-그럼 진짜로 편하게 한다.
-그러세요.
정우도 가식을 떨라고 강요하진 않았 다.
일전에 방송에 간간이 비쳐줬을 때도
금강문주는 말수만 줄였을 뿐이다. 특 히 강무진 피디는 자막을 활용하는 데 선수다. 말수가 극도로 적은 묵언수행 자도 방송에서는 무척이나 재밌는 사람 으로 포장되곤 했다. 한 마디도 안 하고 그렇게 웃길 수도 없었단다. 실제로 프 로그램에 나온 배우는 방송이 망할 거 라고 악담을 퍼부었건만, 절대 망하지 않았다. 망하기는커녕 너무 잘되었다.
‘그래도 우리 문주님은 다를걸.’
유니크 중에 유니크거든.
이호극도 정우의 약속을 믿고 편하게 행동했다. 강피디도 없는 사람 취급해 달라고 했으니, 평소 일정대로 움직였 다.
단, 강 피디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없는 사람 취급해 달라고 하면, 진짜로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30인분을 가볍게 해치운 이호극은 세 아들과 비무를 했다.
“부자간의 훈련이군요.”
“꼭 그렇다고 보기는.”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한 수 가르침을 내려주는 훈육으로 보면 엄청난 오산이 다. 그야말로 무자비한 사투가 펼쳐졌 다.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삼형제 의 눈물겨운 고군분투를 봐야 했다.
“…아버지! 피디님도 계신데……
“위선은 좋지 않다, 평상시대로 해야
지.”
목을 잡힌 강현이 살기 위해 바동거 리지만 이호극은 가차 없다. 바닥에 패 대기를 친 후 강우의 배때기를 발로 쳐 버렸다.
강천이 뇌기를 증폭하며 달려들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헉! ……뇌……력 대천강!”
“평소대로 하마.”
평소는 개불!
위력을 줄였다고 해도 뇌력대천강이 다. 뇌의 화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전력을 다해 막아선 강현, 강우, 강천은 벽면에 본인의 음각을 새겨 넣었다.
부르르르!
독특한 부자관계를 지켜본 강 피디는 몸을 떨었다. 그로서는 상상도 못 해본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대련이 시 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부자간의 훈훈한 대결을 기대했을 텐데. 그런 것하고 전 혀 거리가 멀다.
‘충격 먹었군.’
정우는 강 피디를 흥미롭게 관찰했다.
당황하는 모습이 꽤나 볼만하다. 항상 출연자와 게스트를 마음대로 조종해왔 던 강 피디로서는 규격 외의 존재, 임자 제대로 만난 것이다. 과연 어떤 식으로 프로그램을 구상해낼지 궁금하다.
위이이잉!
때마침일까, 사이렌이 울렸다.
긴급출동.
케이브를 감지하는 시스템이 작동했 다. 기존에 수차례 열렸던 동암역에서 케이브가 감지되었다. 랜덤 케이브가 절반 이상 열리고 있기는 하나, 완전히 불특정으로 열리진 않았다. 케이브가 한번 열리면 최소 세 번은 더 열린다.
금강문주는 그 즉시 동암역으로 날■아 갔다.
“나 먼저 간다.”
“준비되면 따르겠습니다.”
문주가 이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케이브 등급이 8급이기 때문이 다. 근래에 들어 오픈된 케이브 중에서 도 최상위에 속한다. 하물며 최근엔 마 물의 등급이 급속도로 올라갔다. 전체 유니크의 등급이 상향 조정되어 과거의 8급과 현재의 8급은 또 달랐다. 9급으 로 나누어 놓은 과거의 등급표는 의미 가 없어졌다. 그에 따른 마물의 등급도 기존과 차별화되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위험할수 있습니다.”
일반 케이브도 아니고, 최상급 케이브 다.
까딱 잘못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장에 강 피디를 데려가면 문제가 된 다. 비록 강 피디가 상급의 유니크기이 기는 해도, 전투능력과는 무관했다. 마 물을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 마물을 마 주한 평범한 사람은 호환을 당한 사람 처럼 정신을 놓기 일쑤다. 하물며 일반 등급도 아닌, 최상급 마물이다. 현장을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결연 한 각오가 필요했다.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습니 다.”
“프로시네요.”
“고집이죠, 보고 싶기도 하고.”
“원래는 안 되지만, 하는 수 없군요.” 정우는 강피디를 데리고 동암역에 도 착했다.
케이브가 오픈되기는 했어도 마물이 튀어나오지 않아 피해는 없었다. 주변 에 결계를 치고, 케이브 안으로 진입했 다.
‘아!’
강 피디는 케이브에 직접 들어와 본 적이 처음이다. 전혀 다른 공간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피부에 와 닿지는 않 았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해가 쨍쨍 내리 쬐고 있었거늘, 케이브 안은 어둠이 깔 려 있었다.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하 지 않을 어두컴컴한 통로를 걸었다.
“제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럼요.”
케이브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강 피디로서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공포였을 것이다.
영상과 실제의 갭은 컸다.
‘강단은 있군.’
의식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초보자에게는 대단한 일이다. 강 피디 의 프로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그나저나 신나셨네.’
간만에 등장한 최상급 케이브의 오픈 에 금강문주는 제약을 풀었다. 무문의 문주들과 드잡이질을 거하게 했으면서 도 여전히 목이 마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