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금강무적당(金剛無®黨) ⑵
무문연합 수뇌부가 집회를 가졌다.
무림대회 이후 정해진 수순대로 연합 의 수장을 봅는 데 동의를 봤다. 그날■이 오늘로 다가온 것이다. 6대 무문의 수장
이 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실상 6명뿐 이니, 굳이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었다.
“큰 거 한 방 제대로 날리셨습니다.”
“비꼬는 게우?”
“그럴 리가요, 축하드립니다.”
“아직 결정 나지 않았다.”
천무룡 정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혹금단주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하지 만, 실상 끝난 게임이다. 전대 무문연합 의 수장이라는 직함으론 대세를 거스르 기 어려웠다.
금강문주의 파격적인 행동은 모두의 예상을 상회했다. 그 어떤 사람도 해내 지 못할 전대미문의 대업을 이루어냈 다.
솔직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사방신 길드가 순순히 내려놓지는 않 았을 터.’
권련이란 피를 머금고 사는 괴물과 같다. 정도를 지향하는 아버지조차도 권력의 단맛을 보고선 헤어 나오지 못 했었다. 이런 걸 보면 자리가 사람을 만 든다는 말도 틀리지 않았다.
정확한 방법은 확인이 되지 않았으나, 분명 길드마스터와 다툼이 있었을 것이 다. 무문과 길드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 는 면이 있지만. 길드의 마스터라면 무 문의 문주에 비견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알면 알수록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정우진은 작금의 파격적인 행보가 금 강문주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지진 않았 다고 확신했다. 배후에서 금강문주를 뒷받침하는 혹금단주가 있기에 가능한 시너지일 것이다.
생긴 것만 봐서는 특별해 보이지 않 거늘, 어디서 이런 자가 나왔을까?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 같다.
“그렇게 바라본다고 답은 안 나온다.”
“어차피 끝난 거나 마찬가진데, 얘기 해주시지요.”
“좋아, 말해주지.”
“진심입니까?”
순순히 답을 해줄 거라고는 예상을 못 한 정우진이다. 문파의 기밀일 수도 있다. 자신이라면 절대로 말하지 않았 을 것이다.
“어떻게 했냐면.”
“어여, 말하시지요.”
귀추를 주목시켰다.
궁금증이 극에 달했을 때.
“길드를 찾아가서 당당하게 한판 뜨 자고 하셨지. 그리고 붙어서 이겼다.”
“예?”
간단하지만, 핵심을 관통했다.
정우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 한 채 혹금단주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나 바라본다고 해도 답을 얻지는 못했다.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안 믿을 거면서 왜 물어본 거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아니면 말고.”
참으로 무책임한 대응이다.
정우진은 무릎의 힘이 풀렸다. 처음에 는 흑금단주가 농담을 했다고 생각했다. 사실대로 밝힐 이유도 없고. 물어본 사 람만 병신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주변 에서 귀를 쫑긋 세웠던 자들도 피식! 웃 더니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뭔 가 증대한 얘기가 나올 거란 기대는 하 지 않았던 것이다.
“말로는 못 당하겠군요.”
“말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겠지.”
“예예, 맞는 말씀이십니다.”
“또 비꼬는 거면, 처맞는다.”
“?그럴 리가요.”
정우진은 순간적으로 거대한 기에 짓 눌리는 기분이다. 등 뒤로 송골송골 솟 아난 땀방울이 그 증거다. 이 사람의 진 면목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쫄았냐?”
“?쫄기는 누가요?”
“누구긴, 너지. 아니면 한판 뜨든가?”
검지를 까딱거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 린 혹금단주를 보고 있자니, 인내심이 강한 정우진도 순간적으로 욱! 할 뻔했 다.
“어제 과음을 했더니, 속이 좀 안 좋 습니다.”
“그럼하는 수없지. 좋다 말았네.”
원색적인 말을 내뱉는데도 정우진은 화를 내기는커녕 대결을 기피하고 말았 다. = 엄연히 인정받고 있는 무인, 자존심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하자고 하는 순간, 벽면에 피칠을 할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이는 무인의 감각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더 벌어졌네!’
정우진은 혹금단주의 강함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수련에 매진을 해서 어느 정도 간격을 좁혔다고 봤건만, 언감생 심 꿈도 꾸지 말라는 혹금단주의 엄포 였다. 평생 그를 넘어설 수 없을 것 같 은 더러운 기분이 든다.
“분발해, 그 정도론 처맞기 딱 좋으니 까.”
“혹시, 지금 그걸 격려라고 하시는 말 입니까!”
정우는 위로하지 않았다.
무인은 위로가 아닌 무력으로 증명한 다. 개똥 같은 논리로 포장을 한들, 의 미는 없다. 강해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해도, 결과를 내지 못하면 이 바닥에선 쭉정이로 치부된다.
이는 어떤 세상이든 마찬가지다. 힘없
는 정의가 통했던 역사는 존재하지 않 았다. 여러 번의 전생을 경험하면서 깨 닫게 된 단 하나의 명제다.
추욱!
어깨가 반 이상 내려간 정우진이 힘 겹게 돌아서 갔다.
짧은 시간 막대한 심력을 쏟아냈었다. 더 했다가는 본원진기가 손상당할 듯싶 다. 이미 깊은 내상을 입어 운기행공이 필요했다.
염화가 혀를 차며 다가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굳이 그렇게까지 매정하게 대할 필
욘 없잖아. 사람 기를 죽이고 그러냐!”
“현실을 외면하는 건 나약한 자의 핑 계일 분, 아무런 도움이 안 돼. 극복하 려면 자기 현실을 제대로 봐야지.”
“넌 그게 문제야, 다 네 기준으로 보 잖아. 밖에 나가서 물어봐라. 천무룡 정 도면 괜찮은 수준이라고.”
괜찮다?
썩 나쁘지 않은 수준을 넘어 뛰어나 다고 보면 된다. 하나 천무룡이 그걸로 만족할 그릇인가. 그렇다면 사람을 잘 못 봤다는 거겠지. 인간은 자기만의 그 룻을 가지고 있다. 이를 깨지 못하고 안 주할지, 더 큰 그릇이 될지는 본인의 선 택이다. 주변의 사탕방림만을 원한다면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뜻이다.
“무인에게 배려는 독이다.”
“너도 그렇고, 금강문은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어.”
염화는 무림대회에서 강우에게 호되 게 당했다.
전투에서는 이겼을진 몰라도, 전장에 선 패배한 장수가 되었다. 애들을 얼마 나 들들 볶았으면, 그런 식으로 나오겠 나. 강우보다 혹금단주가 더 기웠다. 이 망할 인간의 수련법을 몸소 겪어봤 기에 강우만 탓할 게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지나간 얘기를 한들 씨알도 먹히지 않을 인간이 혹금단주다. 염화는 과거 보다 앞으로의 사태가 더 궁금했다.
“하여튼 대단해, 둘이서 길드마스터를 제압했을 줄이야.”
“믿는 거냐?”
“못 믿을건 또 뭐야.”
“갑자기 살인멸구가 당기네.”
믿으라고 뱉은 말이 아닌데, 믿으면 곤란했다. 다른 사람은 거짓말로 치부 할지 모르지만, 염화는 달랐다. 그녀는 흑금단주의 진면목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말도 안 되는 짓을 버젓 이 자행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납득이 되도록 만들었다. 모두의 머리 위에서 노는 가공할 심계는 누구도 따르지 못 할 만큼 빼어나며, 무력도 일문의 문주 를 넘어서는 역량이다. 저 나이에 가지 기 힘든 완전체에 도달한 무인이었다.
그리고 절대 빈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곱게 죽을거 같아.”
“농담인데, 쫄았구나. 나 그렇게 무도 하지 않아.”
“당연히 쫄지, 너 같은 괴물에게 안
쪼는 게 이상하지.”
“네 앞에선 맘 편히 말도 못 하겠다.”
그게 누구 때문인데.
염화는 내부에서 굼틀거리고 있는 흑 화의 심정을 읽었다. 혹화는 순간 벌벌 떨었다. 저항도 못 해보고 기가 죽는 현 실이 기가 찰 노릇이다. 참으로 답답하 다. 이미 자신은 혹금단주에게 조련된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을 조련했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무심한 놈이다.
“어쨌든 축하해.”
“고맙다.”
“고마우면, 모텔 갈래?”
“죽고 싶다면.”
언제든 육탄공세를 과시할 준비가 되 어 있는 염화다. 여자로서의 수치심, 그 거 별거 없다. 흑금단주만 자빠뜨릴 수 있다면 화천문은 날개를 단다. 속물이 라고 욕해도 감수할 용의가 있다. 속물 맞으니까.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지?
여자는 남자의 능력을 본다. 그게 아 니라고 반박할 여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차라리 아닌 척하면서도 뒤로 호박씨 까기보다는 대놓고 말하는 편이 훨씬 인간적이다. 그러나 혹금단주가 허락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언제나처럼 대놓고 깐다. 여자에 대한 배려는 존재 하지 않았다. 싫으면 싫은 거다. 그래서 더 안달이 나는지 모르겠다.
염화는 앞으로의 그림을 물었다.
“이대로 끝날까?”
“문주님이 수장이 되는 건 기정사실 이겠지만, 천무문주가 가만히 있진 않 겠지.”
“그걸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거야?”
“사실을 말했을 분이다.”
“그렇다고 사방신 길드처럼 할 생각 은 아니지?”
“천무문주의 선택에 따라 다르겠지.”
염화는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결코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천 무문주가 혹시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한 다면 현무길드나 도해문처럼 사라지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외부에 알 려진 금강문의 이미지는 포장만 잘 되 었을 분, 실상 후환을 절대 남겨두지 않 았다. 싹을 뿌리째 봅아 발본색원했다.
“적당히 해, 세상 혼자서 살아갈 셈이 야?”
“네가 우려할 사달은 생기지 않을 테 니, 걱정하지 마라.”
“그걸 누가 장담해?”
“장담은 하지 않아.”
격장지계를 써 빈틈을 노렸던 염화는 흑금단주의 노련함에 치를 떨었다. 인 간이라면, 젊은 사내라면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어야 하는데, 절대 책임질 일 은 만들지 않는다. 한편으로 책임을 질 때는 지나치게 단호박이라서, 후폭풍이 무지막지하다. 그럼에도 본인한테는 전 혀 피해가 가지 않는 걸 보면 신통방통 하다.
“도대체 꿍꿍이가 뭐야?”
“입신양명을 노리는 건 지극히 당연
한 거잖아.”
“아냐, 뭔가 더 있어.”
“네가 그렇다면 강요할 마음은 없다.” 어떻게 해서든 엮어보려고 했으나, 염 화의 발버둥은 허사가 되었다. 정우는 빈틈은커녕, 짐작조차 하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천무문주는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
개입하려고 했으면 이전에 했어야 했 다. 천무믄-주는 끝까지 정도를 벗어나 진 않았다. 문파의 이익을 위해 나서기 는 해도,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어쩌 면 꼬장꼬장한 정도의 표상이었다.
‘그게 천무문의 한계이자, 장수비결이 지.’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쉽게 말한다.
그 정도 위치까지 갔으면서 더 바라 는 건 욕심이라고. 멈춰야 할 때 멈추면 후회하지 않는삶을살다갈수 있지 않 느냐고.
하나 제삼자가 아닌 당사자가 되었을 때 정도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실제적으로 많지 않다. 그 위치가 되면 더 많은 걸 얻으려고 객관성을 잃 게 된다.
천무문주는 분명 정우로 인해서 망신
을 당했었다. 판단력을 잃고 헤매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기회를 노렸을 분,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안 전지향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볼 수도 있으나, 천무문이 한국 무림의 중추임 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였다.
‘그래도 쉽게는 안 되겠지.’
객관적인 판단을 내렸고, 정도를 지향 했으나.
천무문주도 무인이다.
금강문주는 무문연합의 수장이 되었 다.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하나 투표 결과를 따져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6명 모두가 금강문주를 선택했다. 본인이 본인 표를 던질 수도 있었다. 후보인 천 무문주를 상기하면 6 대 0의 결과는 납 득하기 힘들다.
무문의 수장들은 천무문주를 바라보 았다. 차라리 기권을 했다면 이해가 되 었을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그마저도 수긍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거 완전 족집게네.’
언질을 받지 못했다면 이호극은 노인 네가 망령이 났다고 했을 거다. 하지만 사전에 정우가 결과를 예측했었다. 만 장일치 외에는 다른 답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결과가 발표됐을 때 소름 제대 로 돋았다.
슥
원탁의 탁자를 두고 천무문주가 일어 섰다. 시선을 집중시킨 천무문주는 숨 을 깊이 들이쉬고 내쉰 후, 말문을 열었 다.
“진심으로 감축드리오.”
“감사합니다.”
무문의 수장에 대한 예의를 갖춘 천 무문주다. 그가 일어섰을 때만 해도 긴 장감이 감돌았건만, 괜한 기우였던 모 양이다.
한데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했다.
“한 가지 청이 있소이다.”
“원한다면 얼마든지요.”
금강문주의 반응에 천무문주의 두 눈 은 이채를 띠었다. 속내를 짐작하고 있 었음을 느꼈다. 그간 금강문주에 대해 서 잘못 판단했다는 걸 뼈저리게 체감 했다.
“비무를 청하오.”
“받아들이지요.”
형식적인 말이 오갔다.
평소 금강문주의 화통함과는 어울리 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는 이젠 무 문연합을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리더가 되었다.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 자리를 맡았으니, 변화는 당연했다. 예전처럼 천지분간 못 하고 날뛴다면 무문연합의 위상을 실추시키는 행위가 된다.
비무 장소로 케이브를 택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정우는 회의실에 들어와 케이브를 오픈시켰다. 비무의 관전은 이 안에 있는 최소한의 인원으 로 한정했다. 결과 발표에도 비무를 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봤자, 승복하지 못한 행태로 비쳐질 수 있었다.
‘누가 이길까?’
‘소문이 사실이라면 금강문주겠지.’
‘그럴 가능성이 크긴 해.’
은연중 금강문주의 강함을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패왕문주와 검선문주마저 한 수 접어 주고 있었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반 응이다. 금강문주에게 경쟁심을 불태웠 던 과거를 상기하면 이례적이다. 그만 큼 금강문주의 위상이 남달라졌다는 의 미다. 단순히 과장되고 부풀려진 소문 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저런 단순무식한 자식이 이렇게까지 강해질 줄이야, 하늘도 무심하시지!’
‘대세는 금강문주다, 우리도 발 빠르 게 대처를 해야 할 때야.’
화천문주는 금강문주와의 비무에서 승률이 낮았다. 근래에 와서는 패배만 이 새겨졌다. 비등했던 시기는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신룡문주는 문파의 손익을 감안해 금 강문과 연결 고리를 만들고 있는 중이 다. 이미 사업적으로는 계?] 성사 직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