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57화 (357/500)

제 3장

인과응보 (2)

유 회장은 정우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뭐 랄까?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으면 맛 있지 않을까? 살아 있는 개구리를 내려 다보고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어째, 좋아하는 것 같다.”

“제가요? 그럴 리가요! 굉장히 분해하 고 있습니다.”

“그렇지, 내가 잘못 본 거지.”

“당연하죠, 제가 왜 좋아합니까. 어려 운 시국인데.”

유 회장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미국과 중국이 눈에 불을 켜고 우리 나라를 샌드위치로 만들고 있는데, 좋 아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강대국에 우롱당하는 과거와 현재가 안타까웠다.

‘예리하시네.’

정우는 뜨끔했었다.

이상하게도 샌드위치가 나쁘지 않았 다. 얌전히 있었으면 괜히 서운할 것 같 은, 그런 기분이 든다. 현생을 살면서 이상한 정의를 세워서 그런가. 건드리 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는다. 기본에 충 실하려고 하다 보니, 억눌려진 감정이 자신도 모르게 이상성향으로 나오는 건 지도.

‘삼세번이라고, 세 번째로 할 걸 그랬 나.’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손을

내밀지 않아서 초조하긴 해도 참아냈다. 그랬더니 손에서 잔경련이 일어났다. 역시 하나의 생에서 갑자기 끊으면 금 단증상이 일어나는 모양이다. 사람은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동물이다. 당 연히 습관을 갑자기 끊어내기가 어렵다. 결단력이 있지 않고서는.

‘안 되지, 원칙은 지키기 위해 있는 거니까.’

잠시나마 그릇된 마음을 먹었던 정우 는 깊이 반성했다.

이것 역시 수련이 부족해서 생긴 부 작용일 테니, 현천공을 보다 더 연마하 기로 마음먹었다. 완성된 10단에 오르 기만 한다면, 생과 사를 초월한 경지에 이를 테니, 경계의 의미가 사라지게 된 다. 그땐 생로불사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자연의 법칙과도 거리가 멀어진 다.

“일전에 언급하신 정부의 요구는 해 결됐나요?”

“네 말대로 장부에 적어놓고, 요구를 하지 않았다. 쯧, 꽁으로 수백억이 날아 가니 입맛이 쓰구나.”

사람들은 말한다. 재벌쯤 되면 돈 몇 억 기부해도 괜찮지 않느냐고, 그거 다 세액공제로 들어가니 일거양득으로 본 다. 하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내 지 갑에서 돈 나가면 아깝다. 유 회장도 보 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돈에 관해서는 부자가 빈자보다 더 철두철미 하다. 그러니 부자가 되었겠지만.

“그 나이 되시면 원래 입맛이 없어지 긴 하죠.”

“이놈이 말을 해도, 나는 아직도 배가 자주 고프거든!”

“1년에 1알, 회충약을 드세요.”

나이가 들면 기력이 떨어지고, 오장육 부의 기능도 노화가 이루어진다. 노년 이 가까워질수록 먹는 양도 줄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이 먹으면 되레 소화가 되지 않아 고생만 한다. 적당히 소식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는 편이 이 롭다.

유 회장도 나이가 먹은 걸 알지만, 면 전에서 늙었다고 하면 기분이 나브다. 요즘도 밖에 나가면 50 중반으로 보거 늘, 심히 괘씸하다.

“어째서 그걸 물어보는 게4?”

“정국이 빠르게 변할 테니까요.”

“너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것이냐?”

“꾸미다니요, 순리를 따를 뿐인데요.”

“순리 좋아하시네!”

정우의 손에 사방신 길드의 비밀장부 가 고스란히 들어왔다.

장부의 일부만 내놓아도 세간을 떠들 썩하게 만들 수 있었다. 특히 사방신 길 드가 해 온 청부의 면면을 살피면 정부 의 주요정책과 접점을 이루었다. 순순 히 털어놓지는 않을 테지만, 준비를 해 놓았으니 계획대로 진행시키면 되었다.

‘수신제가라고 했지.’

내부를 정리해야 비로소 밖에서 마음 껏 활개 칠 수 있다. 내 집만 아니면 된 다는 분도 옆에 계시니.

“그보다 저축은행을 인수했다면서.”

“얼마 전에요.”

“그런데 왜 나한테는 말을 안 했어.”

“지금 말하려고 했거든요.”

“아, 그렇구나……라고 할 줄 알았느 냐! 이 녀석이 나한테까지 숨기고, 너 그러는 거 아니다. 나 하라 할아비야. 너한테는 장조부라고! 예로부터 장조부 에게 비밀이 많은 손녀사위는 벼락 맞 아 뒈진다고 했어!”

“앞으로도 많은 조력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그래야……지가 아니고, 개수 작을! 말 돌리지 마라!”근엄함의 표본, 철혈의 사업가라는 별칭이 붙은 유 회 장

그런 분이 정우의 말 한마디에 널뛰 기를 하고 있었다. 만약 이 장면을 누군 가 봤다면, 유 회장의 얼굴 가죽을 벗기 려고 했을 거다.

‘틀렸구나!’

윤철은 유 회장도 글렀다는 걸 이젠 인정했다. 그나마 정우를 컨트롤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건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들은 이미 그릇이 너무 커져 서 담을 수도 없는 거목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어릴 때는 귀여……?’

없었구나.

어렸을 때나, 다 컸을 때나. 아들은 한결같아서 윤철은 입맛이 쓰다.

아버지로서 아들이 커가는 데 보탬이 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도움을 받고 있으니. 부모 자식 간에 주객이 전도되 었다고 해도 할 말 없다. 주변에서는 장 성한 아들 덕을 본다며 좋겠다고 하는 데, 기실 좋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렇 다고 싫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내 아들 이지만,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롤러 코스터를 태우는 데는 천부적이었다.

‘아버지.’

정우는 아버지의 실망한 표정을 보자 안쓰러워했다.

장성한 아들이 초월자의 경지에 이르 고, 사업적으로 성공하고, 세계 시장을 두드리고 있는데. 전혀 실망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에겐 든든한 아들이 있었 다.

“왜 그렇게 시무룩하세요?”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아무것도 아니긴요. 나중에 써먹으려 했지만, 아버지를 위해서 제가 이번에 완성한 썰을 과감히 풀어놓겠습니다.”

“됐다.”

시답지 않은 광속드립을 치면서 재밌 다고 껄껄대는 아들의 모습이 연상되자, 윤철은 단칼에 중지시켰다. 일단 발동 걸리면 멈추지를 않는 녀석이다. 끊고 맺음이 없다. 이럴 때는 무조건 사전에 차단해야 온전한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휙!

정우는 아버지를 포기하고 유 회장을 보았다.

“나도 됐다.”

“왜요?”

“몰라서 묻는 게냐!”

“나증에 안 들은 걸 땅을 치고 후회하 실걸요!”

회심의 카드다. 하물며 즉흥 드립이 아니라, 기획 드립이었다. 사전에 꼼꼼 한 검토를 했고 발성 연습까지 마쳤다. 이번에는 배가 터지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리라, 기대가 컸었다. 만든 사람의 정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배척하 는 건 시대를 아우르는 소통정신을 위 반하는 행위였다.

‘그러시다면.’

정우는 아버지와 유 회장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사회 정의와 웃음이 꽃피는 세상을 위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했다.

“그거 듣다가 당장 혈압으로 저세상

직행하는 거보다 낫겠지.”

“저 많이 발전했거든요.”

“더 발전해도 안 돼, 넌 진짜 소질이

없어!”

유 회장의 팩트 폭격이었다.

융단폭격에 가까웠다.

원투에 이은 뎀프시롤에 정신없이 처

맞았다.

부르르!

정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 어

떤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부 동심의 소유자이건만, 이때만큼 평정심 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아버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윤철은 확인사살을 주저하지 않았다.

기회는 아무 때나 오지 않는다. 그간 매일 아들에게 들들 볶였던 걸 상기하 면 소심한 복수라도 해야겠다. 그래야 속이 덜 상하지. 기대를 버렸던 유 회장 과의 공조가 나름 괜찮았다. 이대로 같 이 영화를 찍는다면 아주 좋은 그림이 나올지도 모른다. 꼭 잘생기고, 아름다 운 미남미녀만 주인공 하라는 법 없지 않은가. 중년과 노년의 아름다운 콜라 보도 괜찮지 않은가. 조폭 미화에 열성 인 한국 영화의 획일성을 타파할 계기 를 마련할 거다.

“주 7일.”

“무슨 뜻이냐?”

“주 150시간.”

“…이 녀석아, 난 네 아비다!”

“전 불효막심한 철없는 아들입니다.” 가재는 게 편, 혈육은 반드시 안으로 굽어야 했다. 아버지에 대한 정우의 배 신감이 상당했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 면 아들로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주 는 수밖에. 눈에는 눈, 개그에는 개그, 사적인 감정에는 사적인 감정으로. 아 버지의 역린을 건드려주기로.

부르르!

윤철의 전신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 다.

아들놈이 기어이 아비를 이기려고 한 다. 이럴 때 자존심을 굽히면 아비로서 위상에 큰 스크래치가 난다. 두고두고 이불킥을 각오해야 했다. 이번에 확실 히 넌 아들이고, 난 아비라는 걸 인식시 켜 주어야 한다.

‘그래도 주 7일에 150시간은 너무하 잖느냐!’

하루 24시간, 7일이면 168시간이다.

18시간 빼줬다고 감사해야 하나, 이 런 18.

그러면 과로사로 뒈진다. 한데 안 죽 는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아들놈은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되었다.

“?들어는 보자꾸나.”

“그리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역시 아버지밖에 없다니까요.”

정우의 엄지척에 입맛이 쓴 윤철이다.

주 7일, 150시간에 항복했다. 몸은 괜

찮을지 몰라도 정신이 망가질 거다. 막 말로 집에는 들어가 봐야지 않는가. 가 족끼리 스킨십하는 거 아니라고는 해도, 아내와의 잠자리는 소중했다. 요즘 들 어 키스를 언제 했더라, 혼후순결을 간 직하려고 노력 중이긴 하다.

아버지를 제압한 정우는 유 회장을 보았다.

“장조부님께서는요?”

움찔!

유 회장의 동공은 어느 때보다 빠르 게 계산을 굴렸다.

이대로 자존심 싸움을 해서는 상대가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몇 배로 치명적 인 내상을 입고, 골방에서 골골거려야 할지 모른다. 아버지도 저리 보내는 냉 혈인인데, 장조부라고 해서 봐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이 나이에 내상을 입으면 약 도 없다.

“?한……번 해보거라.”

“거봐요, 듣고 싶으면서.”

이놈이 진짜, 병 주고 약 주는 건가!

유 회장과 윤철은 서로 계면쩍은 표 정을 지으면서 정우의 개드립을 위해 10분간 할애를 해야 했다. 그 시간은 억겁의 시간보다 더 길고, 지루하며, 짜 증을 유발시켰다. 그 짧은 시간을 두 시 간짜리 불면증 치료 영화보다 더 지루 한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심히 두뇌를 열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고문도 이런 상고문이 없다.

“하하하하, 이 깨알 같은 드립력! 하 늘은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주었나 보군 요.”

“내 아들이지만 정말 굉장하구나!”

상종 못 할 개드립을 치고 본인 얼굴 에 금칠을 대놓고 할 수 있다니. 그것만 으로 윤철은 아들이 범상치 않음을 새 삼 실감했다. 저 정도면 얼굴이 남아 았 지 않아야 정상인데, 아들은 꿈쩍도 하 지 않는다.

‘이 망할 녀석이, 내 손녀를 얼려 죽 이려는 거 아냐!’

유 회장은 정우에게 하라가 오염이 될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저 썰렁함을 잘못 배웠다가는 연예계에서 퇴출당할 지도 모른다. 방송에서 해서는 안 되는 노잼 중에 핵노잼이다.

“저 얼마 후에 하라랑 방송 나갈 겁니 다.”

“?안 돼!”

“왜요?”

“절대 안 돼, 하라 인생 망칠 일 있느 냐!”

유 회장의 격렬한 반응에 정우는 다 시 한 번 하라와 방송에 나가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나가서 하라에게 굴 욕을 새겨준 후, 당당하게 개그력을 만 천하게 공개하는 거다.

‘섭외가 들어오면 귀찮지만, 못 이기 는 척.’

떡 줄 사람 생각도 하지 않는데, 벌써 부터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일전에는 정우의 신선한 캐릭터 때문

에 섭외가 자주 들어왔을 분이다. 혹여 입을 터는 순간 방송 접어야 할지도 모 른다. 실제로 하라와 방송 출연했을 때 드립을 쳤다면 시청률이 급격히 하락했 을 거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가장 쉬운 방법을 놔두고, 어렵게 돌아가는 정우 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유 회장은 시답지 않은 얘기로 시간 을 질질 끌지 않기 위해서 방향을 전환 시켰다. 이대로 정우의 페이스에 말리 면 한도 끝도 없었다.

“그보다 판이 지나치게 커지는 거 아 니냐.”

“소심하시긴, 지금보다 더 키울 계획 인데요.”

“제법 큰 저축은행이기는 해도 감당 하기 쉽지 않을 텐데.”

“새로운 저금통을 구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저금통이 단순히 돼지저금통을 의미 하지 않는다는 걸 유 회장도 모르지 않 았다.

이놈의 스케일은 최소한 대기업에 버 금하는 저금통을 의미한다. 알짜로 다 빼먹은 일우그룹의 배를 갈라버렸으니 까.

현재 일우그룹은 쭉정이나 마찬가지 다. 앨런가까지 끼고 도는 과정에서 일 우그룹의 능구렁이는 벼만 앙상하게 남 은 채 씁쓸하게 퇴장당하기 일보 직전 이었다. 안 본 사이에 사람이 그렇게 맥 없이 변할 줄은 정말 몰랐다.

한편으로 굉장히 소름 돋는 일이다. 한 개인에 의해서 그룹이 무너질 수 있 다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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