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56화 (356/500)

제 3장

인과응보 ⑴

금강문, 대한그룹, 하이퍼 팩토리의 유기적 결합은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 켰다.

금강문의 인지도와 대한그룹의 막대

한 자본력, 하이퍼 팩토리의 기술력이 결합된 파급력은 컸다. 특히 국내에 제 조업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주목받았 다. 값싼 노동력을 위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해 내수를 죽이지 않았다. 기술만 있다면 충분히 세계에도 통한다는 걸 각인시켜, 국내 관련된 산업의 전반적 인 프레임을 바꾸었다.

“시장을 선점하고 시대를 주도하려면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적 감성도 중요합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 겁니까?”

정우는 하이퍼 팩토리 기술 개발 프

레젠테이션을 열어 각 팀과 회의를 진 행시키고 있었다. 월(月)마다 열리는 회 의로 주(週)에는 중간보고 형식으로 이 루어진다. 각 팀에서 부여받은 점수가 높은 자들을 선별한다.

현재 프레젠테이션 중인 직원은 디자 인 개발팀 박철수 팀장이다.

나이는 이제 막 스물일곱 살.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갔다 온 걸 감안하면 회사 생활은 1년 남짓이다. 승진 속도가 굉장히 빠른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모두를 납득시킬 만큼 박 팀 장의 디자인 개발 능력은 뛰어났다. 현 재 시중에 내놓은 제품 중 세 개의 디자 인을 설계해 호평을 받고 있었다. 그는 다른 이들과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 라보았다.

“우리 회사의 기술력은 타 회사를 압 도하고 있습니다. 기술력만으로 충분히 선도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기술력은 언제든 따라잡힐 수 있는 분야입니다. 미국이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강대국이기도 하지만, 기술뿐만 아니라 감성까지도 만족시키기 때문입 니다. 우리도 우리만의 독자적인 감성 을 완성해내야만 기술력이 따라잡히더 라도, 시장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가 중요하긴 합니다만 이미지 가 제품의 우수성까지 증명하진 않지 않습니까. 오히려 기술력을 등한시하고 감성을 따르려고 하다간 추격당할 수도 있습니다.”

“미래엔 자금과 인구가 많은 나라가 기술을 선도할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 을 보면 아시지 않습니까. 당장은 기술 력이 떨어진다고 자평하지만. 실제로 중국의 기술력은 우리보다 낮다고 보기 는 어렵습니다.”

회의는 정론과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

고 있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검토 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회의실에서는 계급과 나이가 존재하 지 않았다. 참여할 자격이 부여된 자들 로 구성되어 언제든 의문을 제기할 권 리가 있었다.

“감성이란 역사이자 문명입니다. 시간 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하물며 디자인 만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우리만의 감 성이란 말이 좋게 들릴 수도 있으나, 세 계인의 감성과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하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독자적인 이미 지를 구축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 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한순간의 실수로 도태될 수 있습니다.”

하드웨어의 기술력, 소프트웨어의 감 성.

설왕설래가 지속되었다.

정우는 박 팀장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는 확실히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 었다. 제품의 기술력분만 아니라, 디자 인의 중요성을 인지해 모두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었다.

작금의 회의 주제는 하이퍼 팩토리가

단순 제조업이나 하청으로 끝나지 않으 려면 겪어야 할 통과의례다.

일본과 독일이 중소기업 기반이 탄탄 하기는 해도, 현재는 하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만, 대기업이 국가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 커지고 있는 추세다. 현실적으로 중 소기업을 육성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크 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미국과 같은 벤 처 시스템이 잘 발달되면 좋겠지만, 한 국 실정에서는 아직 어렵다.

“이사님은 어떠십니까?”

“어려운 질문이군요, 둘 다 틀리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선택을 하라 면 저는 박 팀장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현재의 기술보다 월등히 진보한 기술력 을 하루아침에 완성하기는 어려울 테니 까요.”

분명 더 좋은 기술을 선보일 수는 있 다.

리차드 교수님을 닦달하면 몇 개 더 나올 거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쥐어짜 는 기술은 허점이 생긴다. 제품은 기본 에 충실해야 했다. 안전상에 문제가 있 다면 기술력이 좋아도, 감성이 뛰어나 도 말짱 도루묵이다.

하이퍼 팩토리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대부분은 현재 나온 제품보다 뛰어날 뿐이지 전혀 새로운 제품은 아니다. 시 간이 지날수록 상향평준화될 테고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시기가 발생한다.

시장을 지배하고, 소비층의 충성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이런 때일 수록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도록 충 분한 검증을 해야 했다. 사소하고 기본 적인 실수가 커다란 패착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술과의 조화가 아닌, 감성 만으로 우려먹으면 소비자는 언제든 외 면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이사님!”

지 부장과 공 부장의 아부에 가까운 발언에도 아무도 반발하지 않았다.

하이퍼 팩토리의 중추는 정우임을 인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륜의 부족은 의미가 없었다. 지성과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되었다. 단순히 사장님 아들이 어서 회사를 물려받는 것과는 엄연히 달랐다.

‘저 나이에 어떻게 이토록 뛰어난 기 술을 가지고 있는 거지, 대단하셔!’

‘어쩌면 외계인 고문설이 사실일지

도.’

고문은 아닐지라도 리차드 교수는 한 순간에 인간에서 외계인으로 격상되는 현실을 맞이했다.

‘통찰력은 또 어떻고?’

‘우린 저 나이에 뭘 한 건지 모르겠 네.’

단순히 뛰어난 능력만 가지고 있었다 면 존경하지 않았을 거다. 모두를 통솔 하는 지배력까지 갖추었다. 위아래 할 것 없이 포용하고, 받아들였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젊은 사람일수 록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경우가 많은데, 하 이사님은 그마저도 벗어났다. 실제 로 스물두 살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지 경이다.

‘마법도 고위급 레벨이라던데.’

‘우리나라 같은 마법 불모지에서 가능 한 일이냐.’

‘확실히 난분이셔.’

유니크 전문학교에 다니면서 회사까 지 일으킨 공적을 상기하면 직원들에게 정우는 우상이나 다름이 없었다. 항간 의 얘기로 대한그룹과 혈연을 맺어 잘 나가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대한그룹 이 아니더라도 이름을 날리기에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다.

‘그러니 매달리는 거겠지.’

‘나 같아도 매달리겠다.’

‘다음 대 사장님, 아니 회장님이시지.’ 착실하게 우상화 작업을 수행한 정우 는 회의를 마쳤다. 다들 두 눈에서 존경 심이 레이저처럼 투영되고 있었다.

보통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정우에겐 일상이다. 과거에는 이보다 더 충성심이 뛰어난 놈들이 수두룩했 다.

‘특히 철마 그놈.’

충성심이 지나쳐서 뚯하지 않은 사고

를 팡팡 터뜨렸었다. 우상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님을 확인시켜 준 놈이기도 하다. 적당한 선을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인정도 필요하겠지만, 비즈니스 사회에서 공과 사는 뚜렷해야 했다.

회의실에서 나온 정우는 곧장 사장실 에 들어섰다.

“수고 많네요.”

“이사님만 할까요.”

“앞으로도 수고해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버지를 보필하는 비서실장 남선택.

그는 편애를 받고 선택이 되었다. 정

우의 비선인 김 여사께서 비서실장은 무조건 사내로 선택하라는 성 불평등 조건을 내세웠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물었더니, 드라마에서 많이 봐왔던 설 정이란다. 미녀는 무조건 불여시라는, 여적여의 심리였다.

‘하여간 드라마가 사람을 망친다니 까.’

정우가 본 한국 드라마는 지나친 감 이 없지 않아 있었다. 특히 여성의 심리 가 참으로 요상하다. 현실에서는 남녀 가 평등하기를 바라면서 드라마에 나오 는 남자 주인공은 재벌이고, 여자는 가 난하거나 돌싱이다. 이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될 법한 설정인지 의문이다.

실제 그런 식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있는지 흑막을 동원해 확인을 해봤더니, 제로에 가깝다. 간혹 있을지 몰라도 엘 리트 여성이 백수 남성과 혼인은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이 경우 남자가 가사 를 해야 한다는 설정이 나와야 하는데, 한국남자 중에 가사를 제대로 할 사람 이 얼마나 되겠나. 이는 사회적 시선도 한몫한다.

‘뭐, 안 보는 사람 입장을 헤아릴 이 유는 없겠지.’

드라마의 주 시청자가 여성이고, 주부 라는 점이 대거 반영되었다. 주 시청자 의 입맛에 맞도록 제작을 해야 시청률 이 나오니 상식 이하의 내용을 근거로 한 막장이 주류를 이루는 거다.

사장실에는 유 회장이 앉아 있었다.

크홈.

아버지와 차를 마시면서 담화를 나누 고 있었건만, 정우가 들어오자 바로 멈 췄다.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리는 걸 로 봐서,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지 훤하 다.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은, 내가 꼭 일이 있어서 오 는 사람이더냐.”

“그럼 일 좀 만들어 드릴까요.”

“커험! 일이 있어 왔다. 나 그렇게 한 가한 사람 아니다.”

곧바로 꼬랑지를 내리는 유 회장이었 다.

윤철은 깊은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좀 전까지만 해도 아들에게 따끔한 충 고를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강직함 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 모습이 철혈의 사업가로 불리는 유 회장이라니, 보고 도 믿지 못하겠다.

“미국하곤 협상이 잘 안 됐나 보네 요.”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이 반덤핑 관 세를 매기려고 혈안이 되어 있더구나.”

미국도 자국 내 실업률이 좋은 편이 라고 보긴 어렵다. 자국 기업을 육성하 고, 외국 기업을 제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하나, 대통령 한 사람으 로 바뀌지는 않는다. 의회에 상정이 된 상태로, 기각될 가능성이 컸다.

“딱히 그럴 만한 이유는 없지 않나 요.”

“이유가 있어서 하겠느냐. 자국에 이

익이 되니까 하는 거지.”

“공장 지어 달라는 거군요.”

“비유가 저렴하기는 해도, 맞다. 일전 에 한성 전자가 헛소리했다가 미국 대 통령이 땡큐하는 바람에 공장 짓게 생 겼단다.”

미국에서 공장을 지어서 고용을 늘려 라, 그러면 통관에서 관세를 매기지 않 는다는 조건이다. 실상 관세를 그런 식 으로 매기면 WTO 제소감이다. 하나 WTO라고 해도 미국이 강하게 나가면 제재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실제로 중 국이 세계 2위의 시장으로 커 가고 있 음에도, 여전히 미국에 비빌 수는 없다. 막대한 소비시장과 생산시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힘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거 양쪽에서 사람 열 받게 만드 네.”

“숭어가 뛰니까, 꼴뚜기도 제값 하려 는 게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도 국내 기업에 대한 제제를 가 해 오고 있었다. 별거 아닌 일로 트집을 잡으며 반한 정서를 일으켰다. 특히 하 북팽가를 앞세웠던 유통산업이 직격탄 을 맞았다. 하북팽가의 이름으로 적당 히 무마시켜 줄 줄 알았는데, 이번 흑룡 성과의 교전에서 타격이 컸었다.

이를 귀신같이 알아챈 남궁세가에서 정부에 알력을 행사해 석가장에 세워진 물류 유통을 건드리고 있었다. 저질스 러운 행위를 하고 당당하게 애국심으로 포장하는 걸 보면 시간이 지나도 짱깨 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냉철하게 행동 해야 한다. 상대가 무례하게 나온다고 해서 같은 행위를 한다면 그것 역시도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다. 땅만 큰 중국 이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최대 한 이성적으로 실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미국은 당장 관세를 매기진 않을 거 다. 힘의 논리를 내세우기는 해도 중국 보다는 말이 통하는 편이니까.”

“쪽바리는 4백 년의 적이지만, 되놈은 5천 년의 적이잖아요.”

일제강점기의 영향이 커서 일본에 대 한 감정이 더 크기는 해도, 실제로 수탈 의 역사를 보면 중국이 더 심하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진실은 대한민국이 여전히 외세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중국, 이 제는 미국으로. 언제까지 외세에 휘둘 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소통은 해야 되지만, 자강을 이루어야 할 때다. 나라 의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이리 치 이고 저리 치이고. 경제도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굽힐 때는 굽혀야겠지만, 굴종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 어리석은 선택이다.

‘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