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55화 (355/500)

제 2장

이호극의 방심 (3)

칼의 끝을 내려다본 주작길드의 적왕 은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다. 비집고 들 어온 칼은 가슴을 관통했다. 더더욱 이 해가 되지 않았다. 전력 소모가 크기는 했어도 전혀 감지를 하지 못했다.

대체 누가?

적왕분만 아니라 창왕과 투왕도 놀라 기는 마찬가지다.

의문은 현실을 해결해주지 않았다. 습 격자는 적왕의 가슴을 찌르고 난 후, 곧 장 투왕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스륵!

그제야 습격자의 진면목을 확인했다.

“?네 W”

“뭐야, 그 눈은?”

혹금단주의 기습은 단순히 빠른 걸 떠나서 감각을 흩어놓았다. 놀란 육신 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제공권을 파고 들었다. 게다가 정면이 아닌 배후를 급 습했다. 금강문주에게 온 신경을 집중 하고 있었기에 대비가 되지도 않았다.

스왁!

칼이 궤적을 그리자 붉은 실선이 그 러지더니 상하로 베어진다.

커억!

투왕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토해졌다. 간발의 차이로 몸을 비틀어 허리가 완 전히 베어지는 걸 피하기는 했어도, 치 명타를 입었다. 수인의 강화된 생명력 이 육체를 회복시키고는 있으나, 흑금 단주의 칼은 무정했다.

솨아악!

영혼을 꿰뚫는 도격이 육신의 버팀목 인 심장을 노렸다.

목표지점을 파악한 투왕이 신속히 막 아서지만, 반응이 늦어졌다. 허리가 베 어지면서 척추에 부담이 간 것이다. 한 템포 늦은 대응으로 인해 심장이 뚫려 들어가고 있었다.

푸아아앙!

심장이 뚫리면 죽는다. 이는 생명체라 면 당연한 이치다.

투왕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 모

르지만, 내경과 속성이 동시에 발동되 어 혹금단주의 도극(刀朝을 밀어냈다.

“?헉…… 비겁한!”

“정당한 대결에서 이러면 곤란하지.”

“?암습을!”

“막말로 암습 좀 하면 안 되나.”

혹금단주의 도격을 또다시 받은 투왕 이 이를 갈며 분노했다. 마음 같아서는 혹금단주를 갈가리 찢어놓고 싶으나, 이상일 분이었다. 두 번의 기습으로 인 해 투왕의 전투력은 거의 상실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도움을 바라기에는 글렀다.

퍼퍽!

창왕은 금강문주에게 두드려 맞고 있 었다. 기습당하는 타이밍을 금강문주는 놓치지 않았다. 냅다 달려들어 창왕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놓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혼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 압 살 수준이었다.

그렇다면 적왕은?

부르르르!

적왕의 상태는 삼왕 중에서 가장 심 각하다. 칼이 심장을 비껴가기는 했지 만, 내부에 침투한 흑금단주의 내경이 심장을 괴롭히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정신을 놨다가는 내경에 심장이 박살 날 위험지경에 처했다.

솨아악!

정우는 무형도기를 마음껏 부렸다.

극세사보다 가느다란 도기에 투왕의 전신은 붉은 핏물을 뒤집어쓴 듯 피칠 갑을 했다. 제아무리 회복력이 뛰어나 도 계속되는 도기에 투왕은 무너져갔다. 저항할 의지를 말살해버리는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어떻게?”

지쳐 있다고 해도 자신들은 한국 길 드를 대표하는 길드마스터다. 하물며 금강문주도 아니고, 흑금단주에게 일방 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도해문의 신임 문주를 해치웠을 때도, 흑금단주를 자 신들보다 위라고 보지 않았었다. 무인 들의 특성상 소문이 과장되었단 측면이 없지 않았다고 봤다.

꽈당!

투왕은 앞으로 쓰러지고.

질질질!

창왕은 엎어진 채 끌려오고.

쿠웩!

적왕은 피를 연이어 토하고.

삼왕이 만신창이가 되는 데 오래 걸

리지 않았다. 외상분만 아니라 내부로 침투한 내경이 육신을 끊임없이 괴롭히 며, 금제를 가해왔다.

정우의 개입으로 싱거운 결투가 되어 버렸다. 물론 이호극과의 전투로 삼왕 의 전력이 꽤나 소모되었다는 점에서는 이견을 두지 않았다. 멀쩡한 상태로 싸 웠으면 시간이 더 소모되었을 것이다.

‘?이럴 수가!’

‘?인정할 수 없단 말이다!’

‘이건 악몽이야!’

의식마저 가물거리는 삼왕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기습은 분 명 비겁하지만 그걸 따질 입장이 아님 을 모르지 않았다.

“하아, 끝낼 수 있었는데.”

“어쨌든 못 끝냈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날 못 믿은 거냐?”

“1분 더 드렸습니다만.”

정우는 정확히 16분에 개입을 했다.

1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준 것 이다. 보통 사람이 아닌 금강문주와 같 은 절대고수에게 1분의 시간은 짧지 않 았다. 그 정도면 삼시세끼를 먹고도 남 을 만큼 길었다. 1분 안에 끝을 내지 못 했다면 1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결과 는 같을 것이다.

당연히 금강문주는 인정하지 않았다.

“1분만 더 주었으면 끝낼 수 있었어.”

“시간 죽이려고 손속에 사정을 얼마 나 두었는지 알면서 왜 이러세요.”

청룡구기, 백호십기, 주작십기가 세 길드의 주력이라고는 하나, 정우에게는 혹금단만도 못한 쭉정이들이었다. 혹금 단도 정우에게는 동네북 신센데, 16분 은 따분할 지경이었다.

“그거야 알지만, 야박하게 1분이 뭐냐, 2분도 아니고.”

“약속은 약속입니다.”

“제기랄, 내가다 먹을수 있었는데.” 혼자 삼왕을 먹지 못한 게 아쉬운 먹 깨비 이호극의 탐욕이었다.

잘 버티는 삼왕의 끈질긴 지구력에 성급하게 달려든 게 화근이 되었다. 일 전에 벌인 네즈미가와 현무 길드와의 전투에서 싱겁게 끝을 내, 이번에도 다 르지 않을 거라고 봤던 것이다. 역시나 아무리 강해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이놈들……!”

삼왕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 들려오는 혹금단주와 금강문주의 대화에 억장이 무너졌다. 애초에 자신들을 적수로 여 기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무 시를 당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래도 되나 싶을 만큼 화가 치밀었다. 저 놈들은 상대에 대한 배려조차도 없는 악마들이었다. 자신들도 누구와 견주어 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악행을 저지른 적 이 있으나, 금강문주와 혹금단주는 넘 사벽이었다.

오기가 발동한 투왕이 분노를 표출했 다.

“호오, 끈질기긴 하네요.”

“거봐, 내가 약하]진 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좀 실망이에요.”

“누가 보면 네가 문준 줄 알겠다.”

“아랫사람에게도 배울 게 있는 겁니 다.”

정우의 충고에 금강문주는 입맛이 썼 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위아래 관 계없이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 한다. 열 린 사고를 통해 합리적이고, 냉철한 판 단이 필요한 시기다.

‘가르쳐준 적이 있어야지.’

이호극도 정우에게 매번 배우고 있는 처지였다. 윗물로서 가르침을 내려줄 기회를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일곱 살 때부터 여전히 완전무결한 정 우였다. 다른 사람은 다 넘어도 이놈은 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

‘안 되지, 넘어주마!’

이호극의 사전에 포기는 없다. 정우가 비록 강하다 한들, 언젠가는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죽지 않는 근자감 하나는 최강이었다. 그러니 매번 지는데도 정우한테 죽자 살자 달려드는 거겠지만. 보통 사람이 라면 절대 그렇게 처맞고 다시 덤비지 못한다.

그나마 입을 놀릴 수 있는 투왕이 이

를 갈며 소리쳤다. 적왕과 창왕은 의식 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다.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성싶으냐!”

“무사하지 않으면?”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전에 길드가 남아 있을까?”

“…그딴 수작에 넘어가지 않는다!”

“어째 좀 미안하게 됐네. 수작이라고 할 걸 그랬나 봐, 그러면 좀 마음이 편 하려나.”

투왕은 길드의 마스터다. 사람을 보는 눈이 없지는 않았다. 그가 마주한 흑금 단주는 거짓말을 할 것 같지 않았다. 저 여유, 느긋함이 현실을 증명한다.

“..설마?”

“사람을 집?지.”

정우는 대결 전 흑금단에게 따로 명 령을 내렸다.

각 길드를 방문해서 조용히 필요한 걸 챙겨 오라고, 도중에 방해되는 것들 이 있으면 알아서 처리 잘하라고 단속 했다. 실은 조용히 처리하지 않아도 문 제는 되지 않는다. 최상위 길드원은 자 리를 비운 상태다. 무주공산은 아니더 라도, 혹금단 정도면 충분히 침투가 가 능했다. 정면으로 침투해도 못 막을걸.

“…처음부터 이…걸 노렸구나!”

“우리 같은 프로라면 당연한 거잖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다 담는 건 어리 석은 계책이다. 만약의 상황이 닥치더 라도, 빠져나갈 방법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반대로 정우는 세 길드가 빠져나 갈 방법을 모조리 다 차단해버렸다.

각 길드의 치부를 고스란히 손에 넣 었으니, 밝혀지는 순간 세 길드는 끝장 날 수밖에 없다. 실상 오늘 일만 언론에 내보내도 이슈메이커가 되기에 충분하 다.

“지금부터 나는 너희들 머리에 침을

꽂고, 벌레를 집어넣을 거야.”

세뇌의 정석.

침술로 머리의 혈을 통제하고, 몸속에 고(띄를 심어 배신하거나 저항하면 독 이 발생되도록 한다. 비인간적인 방식 이라고 욕할 수도 있다.

정우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죽자 사자 싸우고서 신뢰 하기를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였다. 삼 왕도 정우를 믿지 않듯, 정우도 삼왕을 믿지 않았다.

“?…”멈춰!”

“멈추란다고 멈출 거면 말을 왜 하겠

어.”

이대로는 흑금단주의 꼭두각시가 되 어버린다.

투왕은 다급해졌다.

“?그만…… 시키는 대로 하겠다 ...

“사람을 바보로 보는 거냐.”

투왕의 완강한 저항은 당연했다. 사람 은 자유를 희망하는 종족이다. 세뇌를 당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당장은 세뇌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얼마든지 굴욕을 감수할 수 있 었다.

물론, 정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 다.

“?이 저주받을 놈!”

“약속을 어긴 건 내가 아니잖아.”

정우는 기브 앤 테이크에 충실했다.

약속을 어겼으니 당연한 벌칙이다. 금 침대법과 음양혈고는 신뢰를 깬 대가일 분이다. 다들 이렇게 하지 않나, 하물며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다. 이 얼마나 아 름다운 배려란 말인가. 개똥밭에 굴러 도 이승이 낫다고 하니, 계속 개똥밭에 구르도록 허락해줄 요량^다.

“참고로 음고는 내가 심혈을 기울인

병기에 심어놓았지, 나중에 보면 알 거 야.”

“?악마 같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

“그러고 보면 고립무원이 꼭 좋은 방 법은 아니야.”

삼왕은 일대를 통제하기 위해서 길드 원을 배치해놓았다. 완벽한 고립무원의 상태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게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안에서 연락을 보 내지 않는 이상, 길드원은 명령에만 충 실할 것이다.

파팟!

정우는 제혼금침대법(制魂金針大法>을 꼼꼼하게 시전했다.

360개의 극세사보다 가는 침을 머리 에 꽂아 뇌를 장악하고, 제혼마공〈制魂 魔功}을 동시에 운용했다. 혹금단이야, 일반적인 세뇌수법을 써도 되겠지만 명 색이 길드마스터다. 심혈을 기울여주는 게 예의가 아니겠는가. 평상시보다 몇 배의 심력을 쏟아내었다.

‘이중혈고가 제격이지.’

마무리로 음양혈고(陰陽血g)와 폭작 충(爆作蟲)을 심었다.

꾸물, 꾸물

설령 세뇌가 풀린다 해도, 그 즉시 벌 레들이 쌍으로 발동해 대응을 하기도 전에 발작하다가 육체가 녹아버릴 것이 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음양혈고에 대 해서만 말해주었다. 폭작충은 음양혈고 가 발동하기 전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 이 수법은 전생에서 당해본 적이 있어 고생을 꽤 했었다.

“징그러운 걸 잘도 키우는구나.”

“요거 배양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고요.”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패밀리어 마법 과 벌레를 동시에 쓰면 수족처럼 부릴 수 있으며, 어디에서든 관찰이 가능하 다.

“취미가 아주고상하구나.”

“배신할 때가 기대되네요.”

“배신하지 말라고 하는 거 아니었어?”

“아무나 실험할 순 없잖아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정우 는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배신하지 말라는 건지, 배신하라는 건 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 이호극이다. 하 지만 삼왕의 말로가 결코 좋을 것 같지 는 않았다. 기라면, 기고, 죽으라면 죽 는. 완전히 정우의 아바타 수준으로 전 락할듯싶다.

“벌레가 꼭 나쁘지는 않아요.”

“그건 또 무슨 개소리냐?”

“음양혈고와 폭작충을 복용하면 내외 공이 훨씬 강해지거든요. 어때요?”

“싫다, 이놈아!”

이호극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 다. 강해지고 싶은 거야, 어쩔 수 없는 무인의 본능이지만 꼭두각시는 사양이 다. 막말로 몸 안에 폭탄을 안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펑, 펑, 펑

다 끝난 줄 알았거늘.

정우와 이호극의 시선을 끄는 자가 있었다.

“저건 또 뭐냐?”

“공력생산기요.”

여전히 콸콸콸이 아닌 펑펑 터지고 있는 청룡십기의 이민상이다. 그만큼 내공이 남아돌고 있다는 의미다. 무시 못 할 공력을 가지고 있었다. 잘만 다듬 어서 활용한다면, 괜찮은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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