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52화 (352/500)

제1 장

격돌 (3)

두둥!

털을 곤두세우는 섬뜩한 한기가 뇌리 를 강타할 때, 불안감의 결정체가 도달 해 있었다. 결계를 자동문처럼 열고 들 어왔다.

씨익!

흑금단주가 백호십기의 정면을 차지 하며 미소를 지었다.

‘헉!’

백호십기의 일기(一旗), 장진태의 입 에서 헛바람이 토해졌다. 움직임을 전 혀 감지하지 못했었다. 주변의 다른 백 호십기도 마찬가지였다.

퍽!

반응하시고 자시고 사이도 없이 벼락 같은 일격이 명치를 강타했다. 숨이 턱 하고 막히고 고개가 숙여졌다. 그것이 실수였다. 딱 팔꿈치를 치기 좋은 위치 다. 그런데도 치지 않는다면 무애타이 에 대한 실례일까?

푸각!

예의를 아는 정우다.

창극처럼 날카로운 팔꿈치가 궤적을 그리며, 관자놀이를 정확히 관통한다.

장진태는 운이 좋았다.

고통 없이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으니. 풀썩!

백호십기의 리더, 일주신권(一柱神筆) 장진태의 허무한 최후.

나름 길드 내에서도 최상위로 평가를

받으며 극강의 공간장악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 자신이 점한 공간을 활용 도 해보기 전에 퇴장당하고 말았다. 전 공을 살리지 못하고, 아무 데나 취업한 꼴이다.

저런!

리더의 갑작스러운 퇴장으로 백호십 기의 대처가 늦었다.

설마 두 방에 기절했겠어? 라고 의심 을 품지는 않았다. 눈이 돌아가고, 게거 품을 무는데다가, 다리에 잔경련이 일 고 있었다. 설령 일어난다 해도 전력 외 였다.

“감탄사나 터뜨릴 때가 아니잖아.”

정우는 말보다 주먹이…… 아니라 발 이 더 발랐다.

멍청한 놈들에게 브라질에서 긴급 공 수한 브라질리언 킥의 정수를 선사해주 었다. 단순한 앞차기인 줄 알고 방어를 등한 시했다가는 목이 남아나지 않는 다.

퍼퍽!

수직으로 들어 올린 킥이 궤적을 비 틀더니 내려찍는다. 목 부위를 찍힌 백 호이기와 백호삼기는 대못이 되어 지면 에 박혀버렸다. 어깨뼈가 이쑤시개도 아니고 지나치게 가볍게 부서져버린다. 목숨이라는 게 참으로 요상하다. 어떨 때는 마냥 질긴데, 또 어떨 때는 마냥 가볍다. 그러니 재밌는 인생이다.

크억!

비명이 터질 즈음.

정우는 마치 그려놓았다는 듯 우왕좌 왕하는 백호십기의 진형을 헤집었다. 발에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는 것도 아 닌데 때릴 곳을 정확히 찾았다.

대가리를 내밀면 죽빵을.

퍼억!

배때기를 내밀면 족발을.

푸억!

정우의 손발이 목표지점에 도달했을 때, 백호십기는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 다. 군집된 공간에 파리약을 부린 듯, 일련의 과정이 눈으로 좇기도 어려울 만큼 빠르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야말로 잘 치기 위한 최상의 궤적과 최적의 파괴력을 이루었다. 어디 가서 손발 좀 쓴다고 자부했던 자들은 명함 도 내밀기 어려운 권각(章脚)이다.

하나 당하는 입장에선 단순 주먹질과 발길질에 불과했다. 그런 하찮은 수에 당한 것도 억울한데, 한 방에 쓰러졌으 니 더 빨리 의식이 끊어졌다. 정신이 깨 어 있으면 쪽팔림은 감수해야 했다.

헐!

백호길드의 최정예인 백호십기의 허 무한 퇴장이다.

본인은 다를 거라 자부했건만 매한가 지가 되었다. 특별하긴 개불, 정우 앞에 서는 공평했다. 개중에 몇은 온전한 전 투력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동반자가 있다면 겨우겨우 풀칠은 면할 지경이랄까.

의도치 않은 돌발사태는 공황장애를 불러일으켰다.

스륵!

정우는 기다리지 않았다.

백호십기가 뭐라고. 파리 떼 몇을 더 쓰러뜨린다 한들 딱히 감흥도 오지 않 았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에게 두 번 수를 쓰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줄 알아야 했다. 후일 가문의 영광일 수 도 있다, 병신만 되지 않으면.

“이놈, 감히 허튼수…… 크억!”

허튼수를 쓰든, 정공법을 쓰든.

그건 정우의 맘이다.

지금이라도 공정한 수를 써줘야 하는 건가. 웃기는 놈들이었다. 전투가 시작 된 이상, 판단은 나중에 해야 했다.

일단은 막든가, 피하든가, 반격할 때 다.

한심하긴.

이러고도 최상위의 유니크라고 떠벌 리고 다녔다니, 우습기 짝이 없다. 얼마 나 나태해져 있는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실력만 놓고 보면 초창기 케이브 오픈 당시보다는 월등이 전투력이 높아졌음 에도, 긴장감이나 절박함은 그때와 비 교가 되지 않는다. 다들 배때기에 기름 기가 좔좔 끼어 있는지, 현재의 국가대 표 야구선수, 축구선수처럼 대강대강이 었다.

“주변에서 떠받들어 주니까, 왕이라도 된 줄 아는 거냐.”

정우의 쉴 틈 없는 맹공에 청룡구기 와 주작십기도 백호십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시간은 좀 약이 되었다.

몇 번 당하니 대응을 해온다.

-지옥 사슬.

-중력 중첩.

-정신 통제.

청룡구기와 주작십기는 속성을 꺼내 들었다. 당장은 혹금단주의 이해 못 할 움직임을 차단해야 했다. 지옥사슬로 육신을 잡아채고, 중력으로 짓누르고, 정신에 혼선을 빚게 한다면 승산은 있 었다.

하나, 바람일 분.

희망은 항상 사람을 모질게 고문한다.

스륵, 스륵!

주작십기의 리더인 화검(花劍) 공유 경.

‘……이럴 수가!’

신기에 가까운 흑금단주의 스텝에 경 악을 금치 못했다. 다중 범위로 속성을 퍼뜨려 곳곳에 마인을 설치하듯 박아놓 았건만, 귀신같이 알아채고 속 터지게 간발의 차이로 비켜 나간다.

이분인가? 속성이 발휘된 공간의 흐 름을 비틀어버린 후, 교묘히 파고 들어 와 버렸다. 너무나 손쉬워서 마치 걸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았다.

보기엔 빠른 것도 아닌데 속수무책이 다. 그래서 더더욱 소름이 돋는다.

아!

주작십기의 제공권이 맥없이 뚫리면 서 공유경은 정면을 제압당했다. 다행 히 정신 줄 놓고 있진 않았다.

그녀는 급히 성명절기인 봉황십이검

W十三劍)을 꺼내 들었다.

■봉황십이검, 속검(速劍) 봉황전시(鳳

봉황십이검의 가장 빠르고, 최단 거리 에서 펼쳐낼 수 있는 초식이다. 찰나지 만 그녀의 내부에 꿈틀거리고 있는 봉 황기경=氣境)이 재빠르게 운행해 기 맥을 타고 검에 전달이 되었다.

이제 나아가기만 하면 검경을 토해낼 수 있다.

탁!

화려하고 강력한 검경이 제 궤적으로 나아가려는 때.

정우가 한발 더 발랐다.

압도적으로 빠르지 않았기에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공유경은 헛바람을 삼켜야 했다. 그녀는 즉시 속성인 무아 지경(無我之境)을 개방했다. 무아의 상태 가 되면 기존의 감각을 벗어난 영안이 개방되어 흐름을 미리 읽어낼 수 있었 다.

‘……사라졌어!’

공유경은 그제야 백호십기가 맥없이 당한 이유를 알았다. 옆에서 볼 때와는 천양지차다. 저자의 보법은 귀신도 속 일 신속(神速)의 경지에 다다랐다.

단순한 걸음걸이지만, 순간순간 인간 의 육감을 착란시켰다. 그 말은 모두의 눈과 귀는 물론 감각을 속였다는 의미 가 되었다.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스 텝이란 말인가!

대수롭지 않아 보였던 주먹질과 발길 질도 모조리 다 계산이 되어 있었다. 이 장소, 이 시간에 있는 모든 이들의 움직 임을 읽어냈다. 마치 수초 앞을 먼저 보 고 움직이는 것처럼 절묘하다. 차라리 시간 속성이면 이해라도 하지.

‘?이자는 괴#이이?,

‘눈치 빠른데.”

공유경의 반응이 정우의 예상보다 더 민감했다. 그 말은 눈치를 챘다는 의미 가 되었다.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영 역을 관람할 수 있는 특출난 여자다. 이 런 여자는 좀처럼 흔하지 않았다.

그것이 개인의 능력이든, 속성이든.

까다로운 상대다.

퍼퍽!

그러니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대상 이다. 번거롭게 두 번 손을 쓰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정우였다. 아랑곳하 지 않고 한 방을 가격하고, 확인사살 겸 다시 한 방을 더 먹였다.

까악!

공유경은 채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고개가 팩! 하고 돌아가더니 허공을 맥 없이 날아가고 말았다. 그 짧은 순간 살 아왔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 다. 어린 시절 엄마가 사주었던 짬뽕을 어째서 외면했을까? 다시 못 먹게 생겼 는데, 라는 짧은 상념도 있었다.

쿠다다당!

꽃의 검으로 불리는 공유경의 아름다 움과는 상반되는 결과다. 바닥으로 제 멋대로 굴러다닌 공유경은 홁바닥에 고 개를 처박은 채 발을 부르르! 떨다 의식 을 잃어버렸다.

사삭!

다음 목적지는 청룡일기, 이민상이다.

동공이 눈두덩이 살에 파묻혀 보이지 않을 만큼 뚱뚱해 보이지만, 의외로 센 서티브하고 민첩했다. 순간 반응속도와 내공력만 따지면 청룡길드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다. 이는 그의 내 공력인 층층만겁공(層層萬幼功)의 특성 으로 인해서다.

압도적인 공력과 유연한 신체를 지니 는 대신, 인물을 포기해야 했다. 못생긴 게 죄라면 이민상은 대역죄인일 수도 있었다.

퍼억!

정우의 주먹이 이민상의 뱃살을 두드 렸다.

크크!

이민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만약을 대비해 층층만겁공을 최 대치로 끌어올리고, 방어력 증강 속성 을 개방했다. 어떤 곳을 공격해도 막아 낼 수 있으니, 공격해 오기만을 기다렸 다. 상대는 함정인 줄도 모르고 찾아오 는 불나방이었다. 이제 제멋대로 설친 대가를 치러 줄 때다. 동료의 한까지 더 해 이자 쳐서 갚아준다.

“단순한 주먹질이 계속 통할 성싶으 냐!”

“당연하지.”

“헛소리 허세는 통하지 않는다!”

“보면 알아.”

단순한 주먹질이라니, 그리 말하면 섭 섭하지.

딱 봐도 이상하다. 이민상의 신체로는 유니크로 활동하기 어렵다. 저 몸으론 걷는 것도 벅차 보인다. 그럼에도 최상 위의 길드원인 청룡십기의 일인이 되었 다. 그 말은 육체에 특별한 비밀이 있다 는 걸 의미했다.

정우는 특별히 극강의 와류경(禍流勤) 을 주먹에 실었다.

‘수육은 먹는 거지, 먹히는 게 아니 지.’

파고들어 오고 있는 이민상의 살덩어 리와 융화될 마음 전혀 없었다. 주먹을 기점으로 살덩어리가 수영장의 물 빠지 는 구멍같이 말려들어 가고 있었다.

“?이건?”

“와류경이란다.”

정우는 모두가 싫어하는 분량 잡아먹 는 설명충이 되었다.

이민상은 더더욱 듣기 싫었다.

살덩어리에서 주먹이 빠졌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이민상 의 고통은 지금부터다. 충격적인 괴사 가 벌어지고 있었다. 배 안에서 수류탄 이 터지듯, 몸이 제 멋대로 출렁거렸다. 터질 때마다 배가 산등성이처럼 부풀어 오르며 유연성을 시험했다.

푸어엉, 푸어엉!

정우는 내부에서 공력을 폭파시키는 전사경의 업그레이드 전폭경(=勤)을 덤으로 심었다. 전폭경은 이민상처럼 자기 몸만 믿고 설치는 놈을 상대할 때 굉장히 효율적이었다. 왜냐고? 전폭경 은 내공을 잡아먹는다. 기름이 떨어지 기 전까지 심지의 불이 꺼지지 않듯, 공 력이 남아 있는 한 폭발은 계속된다. 그 러니 지금 상황에서 공력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전폭경을 읽어낸다면 해소할 수도 있을 거다.”

정우다운 충고였다.

본인의 경지를 고려하지도 않고 해보 라는, 무책임의 끝판왕을 보고 있었다. 더욱이 이민상은 와류경에도 당했다.

전폭경을 해소하려면 와류경부터 멈춰 야 하는데, 부질없는 짓이 되어갔다.

퍼어엉, 출렁!

위력적인 폭발이 외부도 아닌 내부에 서 일어나는데 죽진 않았다. 이민상의 신축성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나중에 고무장갑으로 써도 될 것 같다.

스읍.

정우는 남아 있는 자들을 돌아보며 입맛을 다셨다.

오싹!

리더를 잃은 무리는 단합이 되지 않 는다. 전투력이 출중하다면, 리더의 상 실을 상쇄할 수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분이었다.

정우는 재정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이건 말도 안 돼!”

“일개 단주 따위한테 당할 리 없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과다.

혹금단주의 위명이 높다 한들, 과대평 가되었다고 봤다. 하물며 무문의 문주 나 장로도 아니고, 단주에게 일방적으 로 당하다니 악몽을 꾸고 있는 기분이 다.

툭, 크아아악!

정우의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가볍게 쳤을 분인데.

슈앙, 슈앙!

길드원은 비명과 함께 일직선으로 튕 겨나갔다.

치는 족족 가지고 있는 병기와 함께 뭉개졌다. 괜히 반항하다간 더 흉한 꼴 을 봐야 했다. 그냥 가만히 있다가 맞으 면 단숨에 의식이 끊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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