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격돌 ⑵
후르륵!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들이켠다.
이호극과 정우는 식도와 위장도 단련
이 되어 있었다. 진정한 금강불괴라 함
은 외피, 즉 피부뿐만 아니라 오장육부 를 비롯한 내장기관도 단련이 되어야 한다. 내외(內外)가 완벽히 이루어져야, 음식을 가리지 않고 빨리 먹을 수 있다. 먹는 게 남는 거라고 고민하기 전에 한 개라도 더 먹자는 주의다.
“인생이 별거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지.”
“왜 이러실까, 요즘 들어 너무 의식하 시는 같네요.”
“큰물에서 놀아보자며.”
“어색해서 그렇죠.”
“그럼 나 안 논다.”
“그건 안됩니다.”
저것들 대체 뭐라는 거。??
듣는 참새들, 전선에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또렷하게 귓구멍을 테러해주시고 있었다. 무엇보 다 금강문주의 주먹질 한 방이면 자신 들은 전신줄에 매달린 참새처럼, 대참 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디저트도 먹었겠다, 일하러 가자.”
“일이라니요, 섭섭합니다.”
“실수, 즐기러 가볼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너 자꾸 엇나갈래.”
정리정돈과 분리수거는 필수, 먹은 자 리는 깨끗하게.
자리를 정리한 정우는 약속 장소를 향해 걸었다. 어둠을 투영한 두 눈이 목 표지점을 클릭했다. 더블 클릭이 되는 순간, 거리는 순식간에 무(無)로 돌아가 고. 그 앞에 이를 갈고 있는 세 길드마 스터가 있었다.
“고기 좀 먹었다고 그새 끼네.”
“밥 먹었다고 티내지 마시죠.”
“그래도 저놈들 생각해주느라고 안 보는 데서 먹었잖아.”
“떠벌이면 소용없잖아요.”
금강문주와 흑금단주의 만담에 세 길 드마스터는 인상을 구겼다. 절체절명의 승부가 코앞으로 다가왔건만, 이건 꼭 봄나들이 온 되놈들 같잖아. 말 더럽게 많았다. 세계 어디를 가든 티가 나는 되 놈들이다. 물론 우리나라라고 무조건 좋다고 빨지는 않는다.
“여기가 놀이판인 줄 아느냐!”
“호오, 예의를 발로 차시겠다.” 구면이라도 문주와 마스터다.
상호존중은 필수다.
“이 와증에 예의를 갖추라는 것이냐!”
“나야 좋지.”
세 길드마스터도 예의를 벗어던졌다. 이런 판국에 상호 존중하는 것도 우스 웠다. 이미 볼 장 다 봤다고 볼 수 있었 다. 무엇보다 저 망할 금강문주는 자신 들보다 어렸다. 나이도 두 살이나 어린 놈이 예의를 똥구멍으로 처먹었는지, 말끝마다 반 토막이었다.
“무사히 돌아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 을 거다!”
“어쭈, 세게 나오네.”
“그 잘난 몸뚱이가 언제까지 통할 것 같으냐!”
“아직까지는 잘 통하고 있으니, 기대
에 부응해주마.”
이호극은 길드마스터의 본모습에 히 죽거 렸다.
사람은 원래 생긴 대로 살아야 구김 살이 없다. 괜히 안 어울리는 짓을 하면 건장에도 좋지 않다. 저봐, 얼마나 자연 스러워.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많 을수록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그래야 부술 때 기분이 참 좋다.
“바로 시작할까?”
“좋다!”
백호길드의 마스터의 투왕(聞王) 주지 태.
날카로운 이빨을 사납게 으르렁거렸 다. 그의 전신에 흐르는 호전적인 기세 가 유형화되어 맹수처럼 울부짖는다.
크르릉!
유형화된 백색의 기운은 털이 날카롭 게 곤두선 흉포한 백호를 연상케 했다. 하나하나에 실린 기세가 창극처럼 예리 해서 범상한 무인은 버텨내지 못할 수 준이다.
찌릿, 찌릿!
살을 에는 날카롭고 포악한 기세에 이호극은 절로 홍겨워졌다. 그 어떤 선 율보다 매혹적이었다.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활력소와 같았다.
“그 오만함으로 인해 큰코다치게 될 거다!”
“겸손하고 싶지만, 넌 아닐걸.”
“이 빌어먹을 놈이! 주둥이를 함부로 나불거린 대가를 치러 주마!”
“다 좋은데, 혼자서 하게.”
“너 정도는 나 하나로 충분하다!”
이호극의 도발력(桃發方)도 상당한 수 준에 도달해 있었다. 이제는 몸분만 아 니라 아가리도 입신의 경지에 다다랐다. 정우와 비견될 정도는 아닐지라도, 충 분히 남의 염장을 박살내고도 남는다.
마치 ‘이렇게 하면 너의 염장을 부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라고 약 올리는 패 시브 스킬이 작동했다.
스윽!
주지태가 나서려는 찰나.
청룡 길드의 마스터 창왕(蒼王) 유선 엽이 손을 뻗어 저지했다. 길드의 명운 이 걸린 대결이었다. 섣불리 승부에 욕 심을 부릴 때가 아님을 직시해야 했다. 최대한 냉철하게 실익을 따져야 할 순 간이다. 또한 확인을 해야만 한다. 승부 와 달리 현 상황은 자신들에게 불리했 다. 금강문이 가지고 있는 서류의 일부 라도 유출이 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현 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흥분할 때가 아닐세.”
“저자의 오만방자함을 두고 보라는 말인가!”
“길드의 안위가 먼저네. 알지 않나?”
“제기랄!”
투왕은 강하게 나서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무문의 투신으로 불리는 금강 문주와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를 검증 하고 싶지만, 창왕의 말대로 개인적인 욕심을 낼 때가 아니었다.
“한 대 칠 줄 알았는데, 뻘쭘하게 왜
이래.”
“세간의 평판이 달라졌다고 하더니, 혓바닥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매끄럽 군.”
화가 나기는 창왕도 투왕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기에 참고 있을 분이다. 승부 야 나중에 따로 봐도 그만이었다.
“이번 승부로 그간의 일들을 모두 상 쇄한다고 약속해라.”
“서류작성까지 끝난 일을 가지고 왈 가왈부할 내가 아니라는 거 알잖아.”
“그래도 약속해라.”
“좋아, 약속해. 단, 너희들도 약속한 거 잊지 마라.”
“물론이다. 곧, 오늘 결정을 후회하게 해주마.”
“약속 안 지키면, 후회할 사람은 내가 아닐 거다.”
금강문은 모든 자료를 지우기로 약속 하고, 세 길드는 모든 권한을 양도하기 로 했다. 이는 승부에서 이긴 자의 권한 이다. 즉석에서 공증 작업까지 마쳤다. 만일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모든 불 이익을 감수하기로 서명에 날인까지 찍 었다.
“오만의 대가를 영혼 깊이 각인시켜 주지.”
“그랬으면 좋겠는데, 세상일이라는 게 맘대로 되진 않잖아.”
세 길드마스터는 금강문주의 여유가 거슬렸다.
특히 금강문주 옆에 서 있는 혹금단 주의 태도는 더더욱. 금강문주를 전적 으로 신뢰할 수도 있겠지만, 달리 보면 자신들을 얕보고 있는 것 같았다.
“대결에 네놈도 포함이 된 걸 알고는 있겠지?”
“물론이지.”
“?이놈。] 감히!”
“혹, 대접해줄 줄 알았냐.”
평온한 혹금단주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투왕의 안면근육이 팽창하면서 실룩거렸다. 금강문주야 워낙 제멋대로 인 인사라 어느 정도는 감안했지만, 일 개 단주가 자신과 맞먹고 있었다. 혹금 단주의 위명이 예사롭지 않다고는 해도,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그 문주에 그 단 주라는 말이 괜히 나오지 않았다.
“본문의 단주답다.”
“아무렴요, 문주님도 제 상관답습니
다.”
“어감이 좀 이상하다.”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명백한 칭 찬이거든요.”
“이놈아', 칭찬은 내가 해야지.”
“저도 칭찬해줄 권리가 있습니다.”
어른이 아랫사람을 칭찬하자, 아랫사 람도 어른을 칭찬한다. 이 얼마나 상호 균등의 법칙이 잘 적용된 사례란 말인 가.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받아 들일 줄 알아야,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법이다. 가르쳐주는 척하면서 꼰대짓하 면 대접받고 살기 힘들다.
부글부글!
한순간 투왕은 병풍이 되어 있었다.
망둥이가 날뛰니, 꼴뚜기도 제 분수를 망각하고 분탕질을 했다. 더욱이 아까 부터 거슬렸던 놈이라 살심(殺心)이 주 체하지 못할 만큼 끓어올랐다. 살면서 오늘처럼 화가 치솟기는 처음이었다.
“훌륭하다.”
“천만에요.”
이글이글 타오르는 세 길드마스터의 살기가 충만하다.
이호극은 정우를 칭찬했다. 전투라 함 은 이렇게 죽일 듯한 투기와 살기를 마 음껏 발산해야 제 맛이었다. 어쭙잖은 대련 형식으로 폼이나 잡고 설치는 건 취향에 맞지도 않았다. 절박함과 필사 적인 결의가 충돌해야 진정한 전투다.
“이것들이 쌍으로 미쳤구나!”
“그러니까 주둥이 그만 나불거리고, 해보자고.”
“이후에도 나불댈 수 있나 지켜보마!”
“진짜, 말 많네.”
선수 양보?
그딴 거 이호극에게 없었다. 대결이 시작된 이상, 주저하지 않고 주먹부터 날렸다. 뇌기를 머금은 강권이 KTX고 속열차처럼 직선으로 관통한다.
쩌어엉!
단숨에 목적지에 도달하자 굉음이 울 려 퍼진다.
꽈아앙
귀를 찢는다는 표현마저 부족해 보인 다. 공간 전체를 찢어발기는 충격파가 전달되었다. 대충 휘두른 듯 보여도 오 의가 제대로 실려 파괴력은 충분하다. 방심하고 있었다면 대가는 분명했다.
급작스러운 공격.
당황할 법도 하건만 투왕, 창왕, 적왕
은 한 호흡으로 이어지며 금강문주의 권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내심 적지 않 게 놀랐다. 제공권을 파고들어 온 전사 경이 미친개처럼 날뛰었다. 와해시킨 파괴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날 선 와류를 형성했다.
‘무식한 놈!’
‘확실히 입만 산 게 아니군!’
‘하나 그분이다.’
애초에 방심은 하지 않았다. 그럴 만 한 상대가 아님은 애초부터 알고 있었 다. 세간의 평판만으로 현재의 위치를 선점하진 못한다.
삼왕은 금강문주의 실력이 진짜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질 거란 생각은 하지 도 않았다. 혼자도 아니고, 세 명이서 합공을 약속했다. 이런데도 진다면 얼 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상쾌하게 시작해보자고.”
“건방 떨지 마라!”
맛보기가 끝나고 금강문주와 삼왕이 본격적으로 격돌했다. 피워올린 기세가 충돌하자, 거센 파장을 일으키며 거죽 을 벗겨내 대지를 헐벗게 만들었다.
창왕의 진신기공, 청룡창천공(靑龍蒼 天功)이 청룡의 상(狀}을.
투왕의 진신기공, 백호투신공〈白虎聞 神功)이 백호의 W)을.
적왕의 진신기공, 봉황적멸공(鳳®赤 滅功)0] 주작의 상(狀}을.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사방신 중 현무 가 빠져 균형을 잃어 보이기는 하나, 위 세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킨다.
전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압력이 발생 했다.
이호극의 입이 호선을 그린다. 정우를 제외하면 전력을 기울일 만한 적수는 만나지 못했다. 네즈미가의 가주와 현 무길드의 수왕도 만족감을 주기에는 멀 었다. 이가 아니면 잇몸이라고 했던가. 하나보다 둘이, 둘보다는 셋이 훨씬 입 맛을 당겼다.
“진심에는 진심이지.”
뇌기의 극을 초월하여 자신만의 경지 에 다다른 뇌공이 만개했다. 육신을 휘 감고 도는 와류로 인해 스파크가 튀며 압박하던 삼왕의 기세와 충돌한다.
파파파파팟!
그들을 중심으로 마치 블랙홀이 형성 된 듯 사방을 빨아들인다. 공기의 밀도 가 급속히 높아지며, 내리누르는 중력 에 대지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다.
일촉즉발.
멎었던 흐름이 이어지자, 경천동지할 격돌이 펼쳐진다. 극강의 진력이 거대 한 소용돌이를 이루며 일대를 집어삼킨 다.
후아아앙!
눈으로 좇기도 바쁜, 팽팽한 사투의 연속.
이를 지켜보는 정우는 살짝 걱정이 되었다. 일전에 네즈미가와 싸울 때를 상기했다.
‘신(新) 비기 같은 건 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손발이 오그라들어 사라질 것 같은, 안 듣고 안 본 귀 있으면 돈 내고 샀다. 대한독립만세권처럼 되도 않는 초식을 남발한다면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었다. 다행히 상대가 쪽바리가 아니라서 안심 은 되었다. 개그도 시기적절하게 사용 해야 터지는 법, 아무 때나 사용하면 남 극탐험을 하는 수가 있었다.
‘나처럼.’
정우를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인정하 지 못할 마인드다.
다른 건 몰라도 개그에 관해서는 눈 치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의 경지에 다 다랐다고 보는 시각이 대다수다. 그걸 본인만 모른다. 솔직히 알면서도 모르 는 척하는 것 같아 짜증을 유발시킨다. 눈치가 귀신인 정우가 모른다는 게 더 말이 되지 않는다. 한데 그 말이 안 되 는 걸 기어이 하고 만다. 노잼 추진력 하나는 신의 반열에 올라섰다.
‘제가 짬을 좀 내서 가르쳐 드리겠습 니다.’
누가 누굴.
다른 건 다 인정해도, 개그는 이호극
도 정우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 었다. 물론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게 바 로 솔직하지 못한 주변 사람들 때문에 생긴 정우의 딜레마다.
“어이, 너희들 심심하면 한판 뜰래?”
정우의 물음에 묵묵부답으로 응수했 다.
은신을 들킨 그들은 심기가 편치 않 았다. 만약을 위해 결계를 치고, 은폐 속성까지 사용했다. 거리를 두고 있었 기에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 만 금강문주도 아니고, 혹금단주에게 은신을 들킬 줄이야. 자존심이 상했다.
“어차피 세가 불리하면 암즙을 가하 려고 한 거 아니었나?”
움찔!
속내를 정확히 꿰뚫었다.
은신하고 있는 자들은 세 길드의 최 상위 길드원으로 구성되었다.
청룡길드의 청룡구기(靑龍九旗), 백호 길드의 백호십기(白虎十旗), 주작길드의 주작십기 (朱崔十旗)였다.
“참고로 안 나오면 내가 선수를 칠 거 야. 어느 쪽이 되었든 말이지.”
정우의 나지막한 읊조림은 스산한 살
기가 깃들어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 뒈 질래? 아니면 싸우다 뒈질래? 선택하라 는 뉘앙스다.
대결의 살벌함이 더해지고 있는 가운 데, 3 대 1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팽팽 함이 자리했다. 이쯤에서 균형을 깨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결과를 예측하기 어 렵다.
‘그렇다 해도 저놈이 대체 뭘 믿고?’
‘둘이서 이길 거라고 보는 건가?’
그들도 금강문주의 똘기에 대해서는 귀에 딱지가 달리도록 들어왔다. 이견 이 없는 똘아이임을 오늘 다시 증명해 주었다. 전투에 미친 생명체라는 소문 이 괜히 나오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그 러나 비슷한 수준의 유니크를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하려는 것 자체가 미친 거다.
하물며 이 일대는 주작, 청룡, 백호 길드에서 관리를 해왔다. 적진의 한가 운데, 즉 고립무원의 처지다. 누가 봐도 불리한 형세임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나타났다. 배짱 하나는 인정해줄 만하 다.
‘운 좋은 줄알아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흑금단주의 단죄보다 길드마스터의 명령이 우선이었다. 개인적인 판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길드마스터의 명령이 있을 시에만 움직이도록 계획을 세웠다. 무엇보다 이 대결은 약속대로 이겨야 명분이 생긴다.
응?
도발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했던 그들 을 당황하게 한 상황이 벌어졌다.